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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의 유승호, 아이와 어른 그리고 남자

 

<태왕사신기>에서 어린 담덕 역할을 할 때 유승호에게 슬쩍 보인 얼굴이 있다. 그저 가녀리고 순수한 얼굴로만 알았던 그 소년에게서 어떤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의 카리스마가 숨겨져 있다는 것. 그 후로 <선덕여왕>의 김춘추는 유승호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연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욕망의 불꽃><공부의 신>은 이 양갈래 길에 서 있는 유승호를 각각의 이미지로 끌어냈다면 <보고싶다>는 드디어 유승호가 어른의 얼굴을 드러냈던 작품이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군 제대 후 <상상고양이>를 선택했다는 것이 못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이제 본격적인 유승호의 연기자로서의 행보가 시작됐다는 걸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간 아이와 어른 사이 그리고 슬쩍 슬쩍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리멤버>에서는 느껴진다. 서진우라는 캐릭터가 그 세 가지 얼굴을 끄집어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로 점점 기억을 잃어버린 채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수로 수감돼 있는 아버지 앞에서 유승호는 아이의 얼굴로 돌아간다. 간간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서 유승호는 여전히 남아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아무 걱정도 없던 아이의 얼굴. 그것은 아마도 유승호가 다른 배우와는 확연히 다른 강점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세월이 빗겨간 듯한 그 동안의 얼굴에서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순수의 얼굴이 5년의 세월을 거쳐 복수의 칼날을 숨긴 어른으로 돌아온 유승호에게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복수를 위해서는 뭐든 할 것 같은 그 모습은 아이 같던 얼굴의 변신이라는 점에서 더 살벌하게 느껴진다. 변호사로 돌아온 그는 더 이상 과거 진실을 좇던 아이가 아니다. 진실도 이겨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것. 복수를 위해 조금씩 남규만(남궁민)에게 접근해가는 그 얼굴에서는 유승호가 저 <태왕사신기> 때 살짝 보여줬던 그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래서 변호사로 돌아온 서진우는 과거 한 아버지의 아이 같던 시절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그 아버지의 무고함을 풀어주기 위해 변호사가 된 이인아(박민영)에게 냉혹할 정도로 달라진다. 그런데 술 취해 쓰러진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 단란한 가족을 보며 다시 그 아이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그에게서는 언뜻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마도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리멤버>는 그래서 남자 유승호의 모습을 제대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지 않을까 싶다.

 

한 배우의 얼굴에서 세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가 그것도 전혀 이물감을 주지 않고 공존한다는 건 연기자로서는 굉장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버지 앞에 아이 같은 얼굴을 드러내며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아버지를 그리 만든 세상을 향해 복수의 날을 세우는 어른의 얼굴을 보여주고, 또 냉철한 이면에 숨겨진 따뜻한 연심을 동시에 표현한다. <리멤버>는 어찌 보면 유승호라는 배우에게 최적화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어쨌든 이제 유승호는 더 이상 아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아잇적의 순수함을 모두 지워버린 것도 아닌 어쩌면 그 모든 걸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배우로서 우리 앞에 서고 있다. <리멤버>라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그간의 유승호라는 배우의 성장들을 기억하게 해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그 세 가지 얼굴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가능성으로 존재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Posted by 더키앙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전우’의 2010년판 리메이크는 화려한 스펙터클로 무장했다. 레드원 카메라로 찍어 선보인 첫 전투신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폭격기가 쏟아 붓는 폭탄과 기관포 세례에 튀는 흙가루가 그 미세한 입자까지 드러내며 허공에 흩어지고 빗줄기처럼 날아드는 총알 속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병사들의 모습은 과거 ‘배달의 기수’ 같았던 ‘전우’의 전투신을 더 실감나게 재현해냈다. 첫 방 시청률은 16% 남짓(AGB 닐슨). 반공드라마가 아니냐는 논란 속에서도 성공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제빵왕 김탁구’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경제 개발 시대. 김탁구(윤시윤)라는 인물이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제빵업계의 1인자로 서는 과정을 그린다. 배고픔의 시절, 빵이 심지어 어떤 판타지로 다가왔던 70년대. 이 드라마에는 어린 시절의 탁구가 당대 코미디언들을 흉내내듯 그 시대의 향수를 자아내는 장면들이 도처에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드라마는 초반부부터 당대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신파극과 치정극으로 물들어 있다. 월드컵 시즌의 특수를 맞아서(경쟁드라마가 없는 상황) 시청률은 벌써 25%에 육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1970년대 개발시대를 향수하고 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개발이나 성장에 대한 집착이나, 반공이라는 구시대적 가치관에서 완전히 달라진 2010년 현재, 왜 이들 드라마들은 여전히 그 과거의 가치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걸까. 이것은 과연 단지 시대에 대한 향수를 담아내는 복고 트렌드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드라마가 이제 노골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일까.

사실 최근 드라마는 보수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말 저녁 KBS1에 편성된 일련의 드라마들이다. ‘명가’는 하필이면 현 방통위원장의 종친인 경주 최씨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때문에 보수적인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내세운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메시지는 자칫 ‘가진 자의 논리’를 정당화해줄 소지가 다분하다. ‘명가’에 비해 그 후속작인 ‘거상 김만덕’은 여성 성장극을 집어넣어 그 보수적인 색채를 드라마적인 힘으로 많이 누른 흔적이 보이지만 그 메시지만은 동일했다. 그리고 이어 방영되는 ‘전우’는 여전히 반공드라마의 논란 위에 서 있다.

한편 주말극으로 끊임없는 막장 논란에도 불구하고 4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종영한 ‘수상한 삼형제’ 역시 드라마의 퇴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과거의 틀을 더 독하게 현재에 재현했다. 과거 드라마들의 고질적인 소재였던, 고부갈등이나 불륜,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치정극은 이 드라마에서 더 자극적으로 무장한 채 반복되면서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 퇴행적인 양상은 이 드라마가 경찰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사실(이것 때문에 한때 경찰만을 옹호하는 드라마로 논란이 인 적도 있다)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막장이라 취급돼도 시청률만 높으면 마치 ‘국민드라마’인 양 심지어 자긍심까지 갖는 모습은 자칫 드라마의 상업화와 시청률 지상주의의 늪으로 타 드라마들까지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

올해 초에 큰 인기를 끌었던 ‘공부의 신’도 마찬가지다. 마치 입시경쟁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법이라도 가르쳐 줄 듯 나섰던 이 드라마는 그래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거듭했지만, 기존 입시 제도를 결국은 두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후반부에 와서 이런 메시지는 슬쩍 ‘진정한 공부’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지만, 이것은 ‘수상한 삼형제’가 패악스런 가족들의 자극적인 이야기로 점철되다 마지막에 급속히 봉합했다고 해서 착한 드라마라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다. 이들 드라마들은 어떤 면으로 봐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놓은 듯한 드라마 소재와 진행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드라마가 70년대를 향수하거나 6.25 같은 전쟁을 다루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과거를 다룬다고 해서 과거의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2010년도에는 2010년도에 맞는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드라마는 현 대중들과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퇴행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에서 성공한 드라마들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아직까지 리모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보수적인 중장년 시청층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들 드라마들의 뛰어난 위장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스펙터클과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스토리 진행 같은 것은 드라마의 실체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하다. 게다가 이들 드라마들은 스스로를 복고라고 말하지 보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Posted by 더키앙

팽팽한 긴장감 놓지 않는 '파스타'의 일과 사랑

'선덕여왕'의 독주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된 월화극 삼파전에 '파스타'는 꼴찌로 시작했다. 장르적으로 보면 그것은 당연해 보였다. 사극 '제중원'이 당연히 시청률 1위를 할 것이고, 사회극의 성격을 가진 '공부의 신'이 그 다음을, 그리고 멜로드라마인 '파스타'가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가 가진 힘에 의한 서열은 '공부의 신'이 앞서나가고 '제중원'이 뒤떨어지면서 무너졌다. 그 와중에 멜로드라마로서 '파스타'는 놀랄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사극 '제중원'을 앞서나갔고, '공부의 신'이 종영하고는 드디어 시청률 20%를 넘기면서 수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멜로드라마는 그다지 시청률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멜로드라마들이 갖는 천편일률적인 삼각 사각 구도의 사랑타령이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멜로드라마가 그 특성으로 취해왔던 '운명적인 거창한 이야기'가 작금의 시청자들에게 그저 감정 과잉의 드라마로 인식되게 된 것은 가장 큰 멜로드라마의 한계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멜로드라마의 이야기구조는 사극 속으로 편입되거나, 가족드라마 속으로 들어가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 속에 끼워 넣어지는 상황에 도달했다. 멜로드라마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 현실(리얼리티)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파스타'가 시도한 것은 일과 사랑을 적절히 엮는 것이었다. 그간의 멜로드라마들이 저마다 멋진 직업을 가져왔지만 직업과는 상관없이 남녀 간의 감정 게임에 몰두해왔다면, '파스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요리사라는 직업 속에서 그 일이 갖는 의미에 천착하면서도, 그것을 또한 사랑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서유경(공효진)이라는 캐릭터가 기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멜로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전문직 장르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성장드라마가 갖는 개인적 성취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멜로드라마를 끼워 넣던 형국에서 거꾸로 멜로드라마가 전문직 장르드라마를 활용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파스타'는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요리사로 성장해가는 서유경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사랑은 새롭게 부임한 까칠한 셰프 최현욱(이선균)과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라스페라의 주방은 이 일과 사랑이 동시에 얽혀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최현욱의 호언장담처럼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말한 그 곳에서 조금씩 그 선을 넘어서는 멜로는 그만큼 달콤해지고, 서열이 엄격한 주방에서 조금씩 인정받아가는 서유경의 일은 그만큼 흐뭇해진다.

결국 '파스타'가 보통의 멜로드라마들이 겪던 침체의 길을 걷지 않고 끝까지 힘을 유지하면서 막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과 사랑을 엮으면서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 결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지만, '파스타'는 공개적인 연인 선언을 한 이후에도 라스페라라는 공간 속에서 살얼음을 걷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것은 어쩌면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부터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는 '전문직이 있는 청춘멜로'의 경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외과의사 봉달희' 같은 멜로가 섞인 전문직 장르드라마는, 이제 '파스타' 같은 전문직의 리얼리티를 살려낸 멜로드라마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현실+판타지+실용 > 논란

‘공부의 신’이 가진 현 교육제도에 대한 태도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천하대(사실상 서울대의 다른 말이나 마찬가지다)를 가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반은 전형적인 우리네 교육 정책의 엘리트주의를 그대로 답습한다. 특별반에 들어온 네 명의 아이들은 그래도 선택받은 아이들이지만 나머지 병문고 아이들은 거꾸로 버려진 아이들과 마찬가지다. 물론 천하대 특별반을 만드는 강석호(김수로) 변호사는, 늘 그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룰 속에서 패배자로 남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룰을 바꾸기 위해서 천하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위해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답습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는 본래의 뜻을 갖고 있는 ‘공부’라는 말이 이 드라마가 내세우고 있는 ‘공부의 신’과 잘 어울리는지도 의문이다. 항간에는 ‘공부의 신’이 아니라 ‘입시의 신’이 더 맞는 표현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입시를 위한 문제풀기의 방법을 익히는 과정을 주로 보여준다. 문제풀기와 실제 배움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논란거리들에서 자유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거꾸로 현실에서 찾아진다. 아마 드라마가 우리네 교육 현실을 실감나게 다루지 않고 그저 뜬구름 잡는 이상만 떠들어댔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이상적일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네 교육현실은 한창 꿈꾸어야 할 아이들이 하루 네 시간씩 자며 입시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니 이 참담한 교육현실을 외면하고 교육을 다루는 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부의 신’은 바로 그 현실을 그대로 가져와 드라마의 바탕으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이 현실 위에 판타지를 그려 넣는다. 만일 현실을 현실 그대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그려냈다면 ‘공부의 신’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부를 해야할 시간에, 혹은 아이들 공부할 시간에 굳이 이 드라마를 보며 현실의 씁쓸함을 곱씹을 시청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 드라마는 현실 상황 위에 그것을 넘어서는 판타지를 집어넣음으로써 시청자들이 현 교육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대리 체험하는 쾌감을 제공했다. 물론 ‘수학의 신’ 차기봉(변희봉) 선생이나, 춤과 노래를 하는 앤써니 양(이병준) 같은 영어 선생이 학교에서(아마 학원에서는 가능할 것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천하대 특별반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고, 그 사연을 넘어서 도전하는 모습과 이를 도와주는 선생들의 이야기는 지친 수험생과 부모들에게 드라마가 주는 작은 위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 ‘공부의 신’은 보다 강력한 양념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것은 판타지 위에 지극히 실용적인 공부의 방법(문제 푸는 방법이 더 많지만 이것이 더 실용적이다)들을 제공한 것. 영어문장을 독해할 때, “단어를 모르더라도 찾아보지 말고 일단 때려 맞춰라”라는 방법이나, 수학문제를 풀 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서로 문제를 내보는 방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니 이 실용적인 정보들은 판타지와 만나면서, 판타지를 더욱 강화하는 힘을 부여한다. 저렇게 공부하면 나도 천하대(사실은 명문대)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실은 다르지만.

‘공부의 신’의 성공방정식은 ‘현실+판타지+실용 > 논란’이다. 즉 현실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그 위에 판타지를 그려 넣은 후, 추가로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스토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힘은 이 드라마가 “기존 잘못된 교육정책을 결국은 인정하고 심지어는 부추기고 있다”는 그 논란의 불씨마저 압도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대해 우리는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 드라마의 내용에 강력히 공감하면서도(현실적인 공감),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그 마음. 드라마의 성공이 그만큼 현실의 실패를 말해주는 그 씁쓸한 상황, 이것이 ‘공부의 신’의 성공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제중원, '공부의 신', '파스타'가 그리는 세 가지 성공

'제중원'의 황정(박용우)은 그 신분이 백정이다. 하지만 그가 쥐고자 하는 건 소 잡는 칼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칼이다. 백정에서 의사가 되고자하는 그 지난하고도 먼 길. 신분의 벽을 넘어야 하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야 하고, 서양의학이라는 벽을 넘어서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 멀고도 험한 길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제중원'이다.

한계를 넘어 성장해나가는 황정이라는 인물. 이 드라마틱한 성장드라마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그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 중에도 언급되지만 본래 서양의사들의 시작은 칼을 잘 다루는(?) 이발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아직 서양의학이 도입되기 전인 구한말의 상황에 서양의 이발사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직종은 백정이다. 칼을 잘 다루고, 바느질도 잘 하는 데다, 무엇보다 생명에 칼을 댈 수 있는 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적 의료교육기관이었던 제중원이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을 때, 박서양이라는 인물이 백정의 아들로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일곱 명 중의 한 명으로 졸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의 격동기에 백정의 아들에서 의사라는 길까지 걸어간 박서양이라는 인물의 성장 이야기가 '제중원'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공부의 신'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학교인 병문고의 오합지졸 학생들이 최고의 명문이라는 천하대에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현(유승호)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집마저 쫓겨나게 된 상황이지만 강석호(김수로)의 도움으로 천하대 특별반에 들어와 공부를 하게 된다. 풀입(고아성)은 작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고, 찬두(이현우)는 춤과 노래에 빠져있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다. 봉구(이찬호)는 부모의 방임으로 스스로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간다.

이 학생들이 꾸는 꿈은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이 드라마는 굳이 '꿈을 꾸라'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신, '천하대에 들어가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바로 이 점은 우리 시대의 성장에 대한 양면적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천하대라는 특정 일류대에 가는 것이 현실적인 성장이 되는 사회, 하지만 그로 인해 진정한 성장(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는)은 잠시 보류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담겨져 있다. "저게 현실이야"하고 긍정하다가도, "그래도 저건 좀"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바로 이 성장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파스타'는 파스타 요리사가 되기 위한 서유경(공효진)의 성장드라마다. 그녀는 3년이나 이태리 음식점 라스페라에서 보조로 일해오지만 드디어 프라이팬을 잡게 된 순간, 새로운 쉐프 최현욱(이선균)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최현욱은 "자신의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외치는 인물. 그러니 이 성장드라마에서 서유경의 장벽은 바로 최현욱이다.

그런데 이 최현욱이라는 버럭남은 묘한 매력을 갖는다. 따라서 서유경이 요리사라는 직업으로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 최현욱은 부딪치고 깨지고 넘어서야 할 인물이지만, 그저 한 여성으로서 멜로적인 판타지를 갖게도 하는 인물이다. 서유경의 성장드라마와 그녀의 최현욱과의 멜로드라마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레시피처럼 드라마 속에서 녹아든다. 직업적 성취와 사랑의 쟁취를 성장의 두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파스타'라는 드라마는 맛을 낸다.

신년 벽두부터, 이처럼 드라마들은 모두 성장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구한말이라는 과거의 시제로 날아가기도 하고, 지금 이 땅의 교육현실로 돌아오기도 하며, 라스페라라는 자그마한 조리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꿈을 꾸는 이들이 모두 백정, 열등생, 주방보조라는 측면은 이 사회의 낮은 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들을 꿈꾸게 한다. 이것이 성장드라마가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현실이 갑갑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꿈을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현실이 그만큼 꿈꾸기 어렵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Posted by 더키앙

다양해진 월화드라마, 강약 비교

'선덕여왕'이 끝난 자리, 새해의 시작점. '선덕여왕'의 뒤를 이을 월화 드라마는 무엇일까. 일제히 방송3사가 새 드라마를 포진하고 있어 그 기대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 드라마의 첫 회를 접한 느낌은 어느 작품 하나 빠질 것이 없이 각각의 재미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도 '제중원' 15.1%, 14.6%(AGB 닐슨), '공부의 신' 13.4%, 15.9% '파스타' 13.3%, 15.1%로 엎치락뒤치락하곤 있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청률은 이전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전통적으로 사극은 극성이 높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시청률 경쟁에서 늘 수위를 차지하곤 했다. 따라서 장르적 특성으로 봤을 때 '제중원'의 우위는 당연할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제중원'은 첫 날 근소한 차이로 시청률 우위를 보였지만 다음날 '공부의 신'과 '파스타'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을까.

'제중원', 완성도 높지만 약점도 존재
'제중원'이라는 작품이 재미에 있어서나 완성도에 있어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중원'은 구한말이라는 시대상황 속으로 들어가 실로 의학드라마와 사극을 흉터 없이 봉합시키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 박용우와 연정훈의 연기에 대한 몰입도도 좋고,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압축적으로 전개되는 상황과, 그러면서도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단순하고 쉽게 전달하는 점에 있어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중원'의 약점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큰 것은 이 작품이 다루는 서양의학이라는 소재가 구한말의 시점에서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의 도입이라는 긍정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학문을 갖고 들어온 일본과 서양열강을 제국주의적인 외세로 바라보는 부정적 측면이다. 구한말의 불행한 역사를 가진 우리로서는 서양의학을 다루는 '제중원'의 이야기는 '허준'이 한의학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의학을 구한말 시점에서 다루기 때문에, 장면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제중원'은 그 시대적 배경 상 '하얀거탑'처럼 깨끗이 정비된 수술실에서 각종 정교한 기기들을 활용해 수술을 하는 장면을 다룰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점들이 약점으로 지목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중원'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구한말을 다루는 시대극들이 늘 이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와 그 미지의 영역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중원'의 시도는 그 어려운 만큼 가치가 인정된다는 이야기다.

'공부의 신', 불편한 논리지만 판타지를 건드려
한편 '공부의 신'은 일본 원작이지만 상당부분 우리네 교육 현실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학원물이지만 강석호(김수로)가 병문고의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패배자"라고 도발하면서 "승자들의 손에 놀아나기 싫다면 공부해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부분은 사실 궤변에 가까운 것이지만 우리네 교육 현실 속에서 바라보면 실제로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승자가 되어야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는 기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인정과 다르지 않다. 패자가 승자가 되는 순간, 승자의 논리가 유지되는 시스템을 그들이 왜 바꾸겠는가. 교묘한 논리지만 그것은 결국 지금 시스템에서 패자보다는 승자가 되라는 역설일 뿐이다.

이런 부분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작금의 교육 현실이 그만큼 바뀌지 않는 벽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빈부의 차가 성적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이 결국 미래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현 사회 시스템 속에서 '공부의 신'은 하나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현실은 바꿀 수 없으니 갖은 방법을 동원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적당히 건드리면서 판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파스타', 익숙한 청춘 멜로지만 캐릭터의 힘이 돋보여
반면 '파스타'는 청춘 멜로에 요리사라는 전문직을 첨가한 맛좋은 요리 같은 드라마다. 멜로 드라마가 갖는 전형적인 구성이 있긴 하지만 마초이면서도 감성적이고 까칠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최현욱(이선균) 같은 캐릭터나, 조금은 어눌하고 존재감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서유경(공효진) 같은 캐릭터는 이 라스페라라는 음식점에서 만들어지는 파스타 만큼 드라마에 입맛을 돋군다.

전통적으로 사극과 멜로드라마가 경쟁하면 거의 백전백패 멜로드라마의 패배로 이어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결코 작지 않은 경쟁력을 이해할 수 없다. '제중원'의 심각함과 '공부의 신'이 떠올리는 현실의 무거움이 버겁다면, '파스타'라는 청춘 멜로의 세계가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비슷한 류의 드라마가 떠올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지만.

'선덕여왕'이 끝나고 '선덕여왕' 같은 국민드라마는 당장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한 편의 국민드라마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을 골라 즐길 수 있는 작금의 월화의 상황이 더 좋은 것은 왜일까. 다양한 취향들을 느끼게 해주는 월화 드라마의 균형 잡힌 시청률은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건강해진 드라마 세상을 꿈꾸게 해준다. 국민드라마 한 편의 독주보다 괜찮은 드라마 여러 편이 공존하는 그런 세상.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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