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유’, 임수정의 공정한 일과 멜로가 말하는 건

 

“그 이혼 선언한 며느리가 그럽디다. 포털을 조작하면 논란만 야기시킬 뿐 얻을게 아무 것도 없는 시대라구요. 맞는 말이죠?”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에서 KU그룹 장회장(예수정)은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한다. 필요하면 실검을 삭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관철시키려던 담합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면서 만들어진 대통령과 장회장 사이의 긴장감이다.

 

물론 장회장은 포털 조작을 허용해주고 대신 얻어갈 것을 얻어가려 했지만 그걸 막은 건 바로의 배타미(임수정)와 유니콘의 송가경(전혜진)이었다. 배타미는 그 안건에 사인하려던 걸 저지했고 결국 대표직으로 돌아온 민홍주(권해효)에 의해 포털 조작 의도는 무산되었다. 또 본사의 힘을 얻어 유니콘의 대표자리에 오르게 된 송가경 역시 이 포털 조작에 반기를 들었다.

 

<검블유>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포털업체의 ‘검색’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액면을 들여다보면 능동적인 여성들의 일과 사랑이 진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반을 넘어오며 점점 분량이 많아지는 건 역시 멜로 라인이다. 그래서 <검블유> 역시 결국은 멜로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검블유>의 멜로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포털 조작을 하려는 권력자들의 움직임에 맞서는 배타미와 송가경의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공정한 경쟁’에 대한 부분이다. 배타미와 송가경은 한 때 같은 회사의 선후배로 지냈지만 지금은 경쟁업체에서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이는 경쟁자다. 그래서 때론 공정한 경쟁의 선을 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털업체 전체의 존폐를 좌우하는 사안 앞에서 똑같은 입장이 된다.

 

이런 지점은 <검블유>가 다루는 일과 사랑 모두에서 드러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배타미가 처음 바로로 왔을 때 팀원으로 일하게 된 차현(이다희)이 사사건건 반기를 들고 나서지만 그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의견’으로 수렴해내는 쿨한 모습이 그렇다. 또 배타미와 송가경이 서로 각을 세우고 으르렁대면서도 어떤 지점에서는 마치 애증을 가진 애인들처럼 서로를 생각하는 부분이 드러날 때도 그렇다.

 

그리고 이것은 <검블유>가 다루는 멜로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배타미와 박모건(장기용)은 그 나이 차와 결혼에 대한 다른 생각 때문에 갈등을 겪지만, 이들은 그렇다고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정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한다. 결국 이별을 통보하는 박모건에 있어서도 그것이 그가 표현하는 ‘사랑’이라는 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런 부분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 송가경과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오진우(지승현)의 관계다. 그들은 처음부터 계속 이별하는 중이었지만, 그것이 또한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법정을 나오며 송가경이 “그동안 함께 불행해줘서 고마웠다”고 밝히는 대목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 드라마는 결혼을 사랑의 끝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공정하게 서로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해주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 보고 있는 것.

 

<검블유>가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가지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공정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일에 있어서 치열하게 대결하더라도 최소한 공정한 경쟁을 유지하고, 권력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불공정한 일들에 대항하는 것처럼, 사랑 같은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기보다 공정하게 타인의 입장을 들여다보는 것. <검블유>는 이 지점을 제대로 집어내고 있다.(사진:tvN)

장사 안 보인다는 <객주>, 현실도 그렇지 않을까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KBS에서 드라마화 되며 장사의 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장사의 신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장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그저 나오는 소리가 아니고 실제가 그렇다. <객주>가 최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육의전을 대표하는 신석주(이덕화)와 보부상들을 대표하는 천봉삼(장혁)의 대결이다. 천봉삼은 대놓고 신석주에게 장사로서 대결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신석주는 번번이 이런 천봉삼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술수를 써 천봉삼을 궁지로 몰아세우려 한다.

 

조소사(한채아)를 사이에 두고 신석주와 천봉삼이 벌이는 밀고 당기기는 <객주>에 장사는 안보이고 심지어 막장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조소사는 천봉삼의 아이를 낳지만 신석주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두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잠깐 안아보자고 조소사로부터 건네받은 아이를 안고는 도주해버리는 장면은 실제로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용대리에 말뚝이(황태) 덕장을 직접 만들어 신석주의 독점을 막으려는 천봉삼의 노력에, 신석주의 사주를 받은 길소개(유오성)는 덕장 창고에 쌓아둔 말뚝이에 불을 질러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천가객주에 관군을 몰고 가 쫓기는 신세인 쇠살주 조성준(김명수)을 잡는다는 핑계로 토포를 하고, 여기에 질투에 눈이 먼 매월(김민정)까지 조소사를 죽여달라는 요구를 함으로써 대신 방금이(양정아)가 살해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사정이니 <객주>에 정작 장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객주>가 그리고 있는 것이 온전히 장사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천봉삼은 신석주의 독점으로 막혀 있는 판로를 뚫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아예 자체 생산을 하는 장사의 신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신석주는 그런 장사를 통한 대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막장에 가까운 일들을 막후에서 벌임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는 장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한다.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건 아마도 공정한 장사로서의 대결일 지도 모른다. 최소한 공정하기만 하다면 실패한다고 해도 그다지 서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에서 장사의 성공은 그런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돈이 많은 자들은 자본의 힘으로 영세 상인들이 힘겹게 일궈온 장사 밑천들을 하루아침에 밀어버릴 수 있는 환경이다. 때로는 그 불공정한 경쟁의 우위를 잡기 위해 불법적인 정치적 결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법 역시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도용되기도 한다. 지리한 소송 끝에 영세한 상인들은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무너져 내린다.

 

안타깝지만 이게 우리네 현실이다. 장사가 어려운 건 장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헤게모니들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위들 때문이다. <객주>가 온전히 장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는 아닐까. 결국 <객주>가 보여주려는 건 단순히 장사를 잘해 일가를 이룬 장사의 신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육의전 신석주로 대변되는 기득권자들이 모든 걸 장악한 현실에서 그들과 싸워나가는 그 과정이 아닐까. 장사는 안하고 술수와 모략들만 넘쳐난다는 비판은 공감 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참가상 된 대종상, 누가 참가하겠나

 

국민이 함께 하는 영화제인데 대리 수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공식기자회견 자리에서 대종상측이 이런 입장을 밝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제 아무리 참석을 독려한다는 취지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그런 식으로 공표하는 건 무리수 중의 무리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사진 : 제52회 대종상영화제 포스터

물론 대종상측의 입장이 일견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결국 시상식의 꽃은 역시 연기자들이다. 어떤 스타가 참석하느냐에 따라 시상식의 위상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대리수상이 남발되는 것은 피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그런 식의 엄포를 놓은 것일 게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도대체 언제 적 대종상인가. 대종상의 권위와 위상이 땅에 떨어진 건 이미 오래 전이다.

 

오죽하면 대충상이라고까지 불리게 됐을까. 상영도 안된 영화에 상을 주고,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시상에 심지어 몰아주기식 시상으로 매 해 빈축을 사왔던 대종상이다. 그러니 공정성에 흠집이 간 건 오래고 신뢰도 권위도 없는 상이 되어버렸다. 가장 오래된 영화상이라는 수식어는 오히려 구태의연한 관행으로 점철된 영화상이라는 의미처럼 들리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대종상은 참가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는다고 엄포가 아닌 사정을 해도 모자랄 일이다. 배우들의 대거 불참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종상이 밝힌 대로라면 논란이 불거진 대로 상은 참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좋은 작품에서 열심히 연기를 해 그 공정한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시상식에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에 받는 듯한 그 뉘앙스는 연기자들로서는 부담스럽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일이 된다.

 

유아인, 하정우, 엄정화, 한효주, 김혜수, 황정민, 전지현 등등 모두가 자신들의 스케줄을 이유로 불참을 양해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빠져나간 건 단지 우연적인 일로 보기는 어렵다. 그 시상의 불편함이 몇몇 연기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을 테고 그건 도미노처럼 다른 연기자들의 불참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들 빠져나가는데 혼자 나가 앉아 있는 것도 우스운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도 참가상이라는 오명까지 덧붙여지니 더더욱.

 

참가를 독려하려 했다면 공표할 일이 아니라 조용히 배우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종상측의 경거망동은 그잖아도 땅에 떨어진 상의 권위를 더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린 결과로 이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자충수를 두게 된 것일까.

 

가장 큰 것은 대종상측이 아직까지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간 매해 반복되어온 시상의 잡음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불러왔다. 그 누구도 대종상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고 여기는 마당에 주최측만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대종상이 앞으로도 계속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대중들이 이 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오랜 상의 역사는 그 자체로 권위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꾸준히 대중들과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을 때만이 그 역사는 비로소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권위도 없고 소통도 되지 않는 상. 어쩌다 참가상이 되어버린 대종상에 참가할 연기자가 누가 있겠는가.



'닥터 챔프', 공정한 기회의 세상을 꿈꾸다

그들이 원한 건 최소한 공정한 기회였다. 성공? 그건 일단 기회가 있는 사람이어야 꿈꿀 수 있는 거니까. 똑같이 6주 휴식을 요하는 부상을 입고도 어떤 이는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어떤 이는 버젓이 훈련을 하는 상황. 의료과실을 보고 눈감아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다른 어떤 병원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된 상황. '닥터 챔프'가 그리는 세상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는 그런 곳이 아니다. 선수촌이든 병원이든, 그들은 어떻게든 버텨내려 하지만 세상은 늘 이들을 쫓아내려고 한다. '닥터 챔프'라는 드라마 속의 갈등은 바로 이 기회조차 공정하지 않은 만만찮은 사회와 그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청춘들 사이의 대결에서 비롯된다.

스포츠 의학이라는 일반외과보다는 조금은 여유롭게(?) 느껴지는 의학 분야가 등장하면서도 이 드라마가 여전히 흥미진진한 이유는 태릉선수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메달의 꿈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연습을 하지만, 그렇다고 부상을 입게 되면 국가대표 선발에서 밀려나게 된다. 즉 일반외과를 다루는 의학드라마에서처럼 생사를 오가는 질환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릉선수촌의 의료실에서는 죽음보다 더 한 퇴촌 명령이나, 선수 생명이 끝나는 부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적어도 이 선수들에게 대회에 못나가거나 운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일은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일일 테니까.

그런데 이토록 생명처럼 여기는 선수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잣대가 공정하지 않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체급의 다른 선수를 찾기 위해 퇴촌의 명분을 찾는 감독이라면? 물론 이것은 극화된 것이지만, 작금의 우리네 청춘들이 겪는 '기회의 격차'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점점 태생의 조건에 의해 교육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사회로의 진입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고착화되어버린 사회 앞에서 청춘들이 느끼는 절망감 같은. 아무리 해도 이미 안 되는 것이 정해진 현실 앞에서 꿈이 더 이상 기회가 아니라 고통이 되는 세상. '닥터 챔프'의 지헌(정겨운)이 힘겨운 건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헌을 통해 차츰 선수들(청춘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연우(김소연)가 의료실장인 도욱(엄태웅)을 통해 배워가는 건 바로 이 공평함이다. 내부고발자인 연우를 선수촌 의료실의 의사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료과실을 알고 있는 연우를 해고시켜달라는 담당의에게 거꾸로 해고 통보를 내리며, 최고의 스타로 특별대우 받는 수영선수에게 다른 선수와 똑같이 대하는 도욱은 마치 공평함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다지 남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던 연우가 차츰 타인들의 입장을 고려하기 시작하는 건 지헌이 보여주는 사랑과 도욱이 행하는 정의로움을 보기 때문이다. "이젠 포기하지?"라는 도욱의 말에 "포기하지 말란 말이죠?"하고 그것이 반어법임을 알아차리는 연우는 그래서 현실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지헌은 불공정하게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연우는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 선수를 치료해주는 것뿐이다. 이것이 냉정한 그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닥터 챔프'가 꿈꾸는 세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쫓겨났지만 다시 선수촌으로 들어가겠다며 연우에게 치료를 구하는 지헌에게서, 그럼에도 꿈꾸기를 포기 않는 청춘의 건강함을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그래도 도욱 같은 인물이 있어 '기회의 격차'를 줄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드라마처럼 적어도 포기 않는 청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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