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달달 오가는 '여우각시별' 이제훈의 놀라운 연기 폭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닮았다. 비행기가 붕붕 떠오르는 그 곳은 상상력도 한없이 커지는 설렘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작은 것 하나에도 엄청난 사고가 벌어지기도 하는 두려운 현실 공간이기도 하다.

이수연(이제훈)이 사고를 당해 몸의 반쪽이 로봇 보조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설정은 공항이 갖는 설렘과 두려움, 상상력과 현실을 캐릭터화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캐릭터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럴 듯한 과학적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는 SF 장르가 아니라 현실을 동화처럼 담아내는 판타지 장르에 가깝다.

결국 관건은 이수연이라는 캐릭터가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성이 조금 떨어져도 시청자들을 몰입시켜야 한다는 것. 이 캐릭터의 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다시 보인다.

괴력을 드러내며 생명을 구해내는 슈퍼히어로이면서, 남과는 다른 몸을 갖고 있어 그 특별함을 오히려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가려 애쓰는 인물. 하지만 한여름(채수빈)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그 숨겼던 자신의 특별함을 그 앞에서 드러내며 “이런 나라도 괜찮겠냐”고 묻는 인물이 바로 이수연이다.

이제훈의 연기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드디어 한여름에게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보조기를 떼고 휠체어를 타고 그를 만나러 갔다가 사고를 겪는 장면이다. 한여름이 공항에서 난동객에게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던 중 지나치는 행인에 부딪쳐 전화기가 계단 밑으로 떨어지자 그걸 주우려다 굴러 떨어지는 장면에서 이수연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난다.

보조기를 찼을 때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몸이지만, 그걸 떼고 나면 장애를 가진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수연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도 단박에 뛰어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다. 그러면서 그와의 사랑을 꿈꿨던 것이 너무 섣불렀다는 알게 된다.

장애를 가진 존재로서의 절망감과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한 난동객에 대한 분노가 더해지며 이수연은 보조기를 한 후 그 난동객을 찾아가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섬뜩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분풀이가 끝난 후 제 주먹에 남은 폭력의 흔적들을 보며 그는 더 큰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통제 가능하지 않은 특별한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하는 걸 스스로 자인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섬뜩했던 얼굴이 한여름 앞에 서면 한없이 녹아내리는 달달함으로 바뀐다. 그러고 보면 이수연이라는 이 인물은 너무나 많은 감정들을 동시에 껴안고 있다. 분노, 절망감, 기쁨, 슬픔, 사랑, 증오 같은 감정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고 변화한다.

실로 이런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와 그래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경을 연기를 통해 설득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하지만 이제훈은 이 인물에 제대로 무게감을 실어줌으로써 다소 과장된 설정과 과잉된 이야기들로 인해 허공으로 붕붕 떠오를 수 있는 이야기를 눌러주는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 하나 표정 하나로도 순간 변화하는 감정들을 표현해내는 이제훈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드라마의 몰입이 가능했을까 싶다. 다시 보는 이제훈이다.(사진:SBS)

‘여우각시별’, 공항은 어째서 드라마의 공간이 되었나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고 만나는 곳. 또 날고픈 비행의 설렘과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는 운명을 가진 우리네 현실이 교차하는 곳. 공항은 어쩌면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이 담으려 하는 ‘평범’과 ‘비범’이 교차하는 지점으로는 최적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만 사고로 인해 비범한 몸을 갖게 된 이수연(이제훈)과, 누구보다 비범하게 인정받고 싶지만 실상은 지극히 평범해 오히려 사고만 치고 다니는 한여름(채수빈)이 만나는 공간.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그 길 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설렘을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냈던 것처럼, <여우각시별>은 가까이서 보면 별의 별 인간 군상들이 모여 복작대는 그 공간이지만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여우각시별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공항처럼 그 부대낌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랑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비행기들이 오르내리는 그 여우각시별에는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그 곳을 지나쳤던 우리들에게는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최근 들어 공항이라는 공간이 자주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우각시별>은 아예 공항을 소재로 삼았고, JTBC <뷰티 인사이드>에서도 남자주인공 서도재(이민기)는 티로드항공 본부장으로 공항에서 그 첫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2007년에 방영된 <에어시티>가 그저 공간으로서의 공항만을 차용한 느낌에 머물렀다면, 2016년 방영됐던 <공항 가는 길>같은 작품은 공항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정서를 통해 풀어낸 바 있다. 이처럼 이제 공간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드라마가 담아내는 정조를 표징하는 곳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다.

드라마가 다루는 공간은 당대의 대중들이 갖는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의학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꽤 오래도록 드라마의 공간이 되고 있는 병원은 ‘생명’과 ‘자본’이 뒤얽혀 있어 극적인 사건들이(심지어 사람들이 살고 죽는) 벌어지는 곳으로서, 대중들이 갖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축소해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 법정드라마의 법정은 대중들이 갖는 ‘법 정의’에 대한 갈증이 투영되는 공간이고.

<여우각시별>의 공항은 갖가지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때로는 날아든 새 때문에 프로펠러에 불이 붙어 비행기가 불시착하기도 하는 그런 큰 사건들이 벌어진다. 또 난동을 부리는 진상 여객들 때문에 기물이 파손되거나 사람이 다치는 사고들이 벌어진다. 물론 국가와 국가가 나뉘어지는 일종의 접경지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특별하고 비범해 보이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여우각시별>이 집중하고 있는 건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이수연과 한여름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의 진전과 저마다의 성장담이다. 좌충우돌의 사고뭉치로 보이는 한여름을 마치 젊은 날의 자신처럼 바라봐주고, 또 남다른 몸을 갖게 된 이수연을 지극히 평범한 직원처럼 보듬어주는 양서군(김지수)이라는 인물은 이들의 나날이 벌어지는 사건들의 지향점이 어느 방향으로 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저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거나 넘치는 걸 덜어내 가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간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감성을 가진 양서군의 모습 같은.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익숙해도 여전히 설레는 감정. 아마도 우리가 공항을 떠올리면 항상 반복해서 느끼는 그 감정의 교차는, <여우각시별>이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그 특별함과 일상의 균형과 닮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담아내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복작대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지만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특별한 여우각시의 형상을 닮은 우리네 삶이라는.(사진:SBS)

<공항>, 우연을 인연으로 엮어주는 공간의 마법

 

온 우주가 엮어주는 인연? 그들은 어떻게 그리도 우연의 만남이 반복되는 걸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와 서도우(이상윤)는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인연은 최수아의 딸 효은(김환희)과 서도우의 딸 애니(박서연)가 유학중 홈스테이 룸메이트로 지낸 데서부터 시작한다. 애니가 사고로 죽자 딸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러 가는 길에 최수아와 서도우는 만나고 마침 애니의 유품이 든 가방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걸 기다리며 두 사람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애니의 죽음은 최수아와 서도우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그것은 딸을 둔 부모로서의 공감대이면서 죽음을 애도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대이기도 하다. 그 공감대는 그래서 두 사람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이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는 걸 알게 되고 모든 일들이 뒤틀어지게 되면서 최수아는 더 이상 서도우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자신의 일탈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잘못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결국 최수아는 딸을 데리고 무작정 떠난 제주도에서 다시금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최수아와 서도우의 끊어져보였던 인연은 다시금 제주도에서 이어진다. 그것은 최수아가 막연히 꿈꾸던 공간이 바로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조용한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들을 볼 수 있는 제주도의 한 마을이었고, 마침 돌아가신 서도우의 모친이 자신의 매듭 작품이 전시됐으면 하는 공간으로 이야기한 곳이 바로 제주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 밑에는 필연이 감춰져 있다. 즉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나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최수아가 했던 제주도의 어느 바람 많지만 조용한 곳의 이야기는 어쩌면 서도우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그녀의 작품 전시 공간을 생각할 때 막연히 떠올렸을 풍경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저 마다 겪게 된 절망감(최수아는 남편과 친구 문제로 서도우는 어머니의 죽음으로)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라는 공간을 떠올렸고 찾아왔을 수 있다.

 

물론 이건 추정이지만 이야기는 독자들의 추정을 하나의 개연성으로 삼기도 한다. <공항 가는 길>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만남이 그저 우연의 남발이 아니라 어딘지 신비로운 인연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런 만남은 사실 굉장히 확률이 낮은 것이지만, 공항이나 제주도 같은 특정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매개로 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욕망과 그들이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했던 이야기들 같은 것들이 얹어지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는 만남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것은 공간의 마법이다. 우리는 공간을 그저 물리적인 위치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간이 머금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우연히 아는 사람을 어떤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어떤 경우에는 두 사람이 똑같이 떠올리는 어떤 공통의 기억이 그들의 발길을 그 곳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

 

<공항 가는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주로 공항에서 만나게 되는 건 그 공간이 주는 상징(일탈의 설렘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곳이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굉장히 확률이 낮은 일이지만, 그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그들의 발길을 어느 한 공간(그것도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으로 향하게 하고 그래서 거기서 우연히 그들이 만나게 되는 일은 그래도 가능할 것 같은 일이다.

 

<공항 가는 길>의 이 공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만남과 헤어짐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만남과 헤어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하늘 위에서 공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헤어진 사람들이 그들이 나누었던 어떤 작은 이야기나 기억 같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는 그 과정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관조적 관점은 우리가 인연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신비함을 드러내면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준다. 마음 아픈 이별을 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만날 사람은 그 공유된 기억을 통해 발길이 이끌린 어떤 공간에서 결국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 가는 길>이 불륜을 다루는 특별한 방식

 

어느 낯선 도시에서 잠깐 3,40분 정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이 스르르 사라지고 인생 별거 있나 잠시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 3,40분 같아. 도우씨 보고 있으면.”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최수아(김하늘)가 하는 이 한 마디의 대사는 <공항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도우(이상윤)와 함께 있으면 좋다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기혼자들끼리 마음이 오고간다는 걸 뜻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륜의 정서를 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잠깐 동안의 일탈이다. 늘 가던 길에서 잠깐 멈춰서거나 어느 날 살짝 자신도 모르게 다른 길을 걷다가 느끼는 잠시 동안의 일탈. 고작 3,40분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일탈이 어쩌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그런 경험.

 

이 드라마의 제목이 <공항 가는 길>인 것은 그래서 단순히 그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났다는 걸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우리가 공항을 갈 때 느끼는 그 설렘과 낯섦 그리고 여행의 의미만큼 더해지는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이나 일탈의 느낌에서 오는 살짝 현실을 벗어난 듯한 그 해방감 같은 정서를 이 제목은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다고 함부로 일탈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인연이 어느 길에서 갑자기 등장했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이나 떨림 같은 세세한 감정들을 잡아낸다. “공항, , 새벽. 몇 시간 전인데 벌써 까마득하다는 최수아의 말은 공항에서 서도우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에 대해 그녀가 현실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서도우 역시 딸의 죽음으로 그 유해를 갖고 돌아올 때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최수아와의 공항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비가 내리고 그래서 잠시 딸의 유해가 들어있는 가방을 최수아에게 맡긴 채 차를 끌고 오는 서도우의 눈에 마치 자신의 딸이라도 되는 듯 그 가방을 꼭 껴안고 있는 그녀에게서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건 어떤 따뜻함과 위로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런 좋은 감정들은 조금씩 쌓여가며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만들어낸다. 딸의 유해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사진을 붙이던 서도우가 어린 나이에 해외생활을 했던 딸 때문에 어렸을 적 사진 밖에 없는 걸 확인했을 때, 마침 그녀와 함께 살았던 자신의 딸이 갖고 있던 사진을 발견한 최수아가 그걸 서도우에게 보내주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인연이 어떻게 이어져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은 정성스럽게 이어져 있어요. 한 올 한 올. 인연이란 건 소중한 겁니다.” 서도우의 어머니인 고은희(예수정)는 도우에게 딸의 유품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하라며 조각보를 내민다. 그녀는 인간문화재 매듭장이다. 매듭은 인연의 또 다른 상징이다. <공항 가는 길>의 관계들은 그래서 이 고은희가 말하는 것처럼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이어져 있다.

 

마치 그 잠깐 동안의 일탈이 주는 좋은 감정. 서도우가 그 3,40분 같다고 고백한 최수아에게 그는 생애 최고의 찬사예요.”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저 좋아하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나 휴식 같은 특별한 시간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인간적인 뿌듯함 같은 느낌이 들어가 있다.

 

최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서도우의 집으로 향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위스키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데 그 독한 위스키의 느낌에서 기내 일식을 떠올린다. 마치 거대한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 강렬함. 하지만 그 느낌은 타버릴 것 같은데 멀쩡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아마도 불륜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공항 가는 길>이 만들어내는 정서일 게다. ‘온 몸이 타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렬하지만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얽혀진 인연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