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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가 들려주는 진정한 사과와 진정한 소통이란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목소리의 형태>는 그 제목이 마치 미디어 이론의 제목처럼 이색적이다. 목소리는 청각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지만, 형태란 시각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담아내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진출처:영화<목소리의 형태>

영화는 니시미야 쇼코라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와 이시다 쇼야라는 왕따 경험으로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년이 진정한 사과와 용서 그리고 소통에 이르는 그 과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전학 온 소녀 쇼코는 청각장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런 쇼코를 쇼야는 짓궂게 괴롭힌다. 

왕따 경험을 가진 쇼야가 쇼코를 왕따시키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그대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쇼야는 쇼코에게서 자신이 왕따 당하던 그 때의 경험을 떠올리고, 그래서 그런 왕따에도 늘 웃고 먼저 사과하는 쇼코를 보며 참을 수 없게 된다. 쇼코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그 무기력했던 시절의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쇼코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가게 되고 쇼야가 왕따의 주동자로 내세워지면서 그는 이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더 이상 삶의 의미 같은 걸 찾지 못하는 쇼야는 모든 걸 정리하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 마지막 정리를 위해 쇼코를 찾아간다. 쇼코는 도망치지만 소야가 수화를 하자 쇼코는 마음이 돌아선다. 수화를 통해서 소통하려는 쇼야의 진심을 읽게 됐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쇼코와 쇼야라는 두 인물의 소통이 이뤄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의 두 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쇼’라고 똑같이 불리는 이름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게 되고, 똑같은 왕따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고통(죄책감이든 상처든)에서 벗어나려 한다. 쇼야가 자살하려 했던 것처럼, 쇼코 또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쇼야는 쇼코라는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이 가진 절망감의 손을 잡아주고 그녀를 구하는 동시에 자신과의 화해에도 이르게 된다. 

<목소리의 형태>가 굳이 이렇게 딱딱한 연구 논문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건 소통이라는 것이 단지 목소리나 시선 같은 감각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쇼코와 쇼야 사이에 놓여진 소통의 장벽은 듣지 못한다는 청각 장애를 가진 쇼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쇼야 역시 쇼코가 전하는 마음의 소리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마음이 진정으로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신에 대해 마음을 여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걸 가로막고 있는 건 두려움이다. 처음으로 쇼야가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즐거움을 느끼며, “내가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건가”하고 자문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는가를 말해준다. 그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 친구는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은 굉장히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지만 그래도 즐기려 한다고. 그녀는 고공에서 뚝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에서 양손을 활짝 벌리고 즐거움을 만끽한다.

겉으로 나오는 목소리나 시선만으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영화는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쇼코는 결국 왕따 피해자였고 쇼야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왕따의 가해자였다. 그들은 모두 상처를 숨기고 또 죄책감을 숨긴 채 친구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이 과거의 기억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청산되지 않는다.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과가 이뤄지지 않는 한 과거를 덮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것이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쇼코를 둘러싼 쇼야와 그 친구들 사이의 변하지 않는 관계가 보여준다. 쇼코를 구한 쇼야는 자신이 그녀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사과를 구하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진정한 소통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영화 첫 도입부분에서 자살하려던 쇼야가 이제는 자신의 분신같던 쇼코를 구하고 자신을 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목소리의 형태>는 추락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쇼야는 자살하기 위해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려 하다가 물가에서 누군가 날리는 폭죽을 보며 그걸 포기한다. 쇼코는 불꽃놀이를 하는 축제 때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그 불꽃을 바라보며 난간에서 뛰어 내리려 한다. 마침 그걸 목격한 쇼와는 쇼코를 구하고 대신 자신이 떨어진다. 쇼야와 친구들은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쇼코의 필담 노트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자 쇼코와 쇼와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 노트를 찾는다. 또 쇼와는 친구와 롤러코스터를 타며 그 뚝 떨어지는 순간의 두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러한 추락의 이미지가 가장 상징적으로 반복되는 장면은 쇼야와 쇼코가 늘 다리 위에서 만나 물고기에게 빵을 뜯어 던지는 장면이다. 물고기의 시각으로 날아온 빵은 물 위에 떨어지고 물고기는 그 빵을 기막히게 찾아 먹는다. 물고기는 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그 형태를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물 위로 떨어지는 그 진동을 느낌으로서 그걸 찾아 먹는다. 듣는다고 보인다고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진심이 전달되면서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순간 소통의 문이 열린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 그 ‘가해자’의 자기변명처럼 오인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오해일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진정한 사과와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해자에게도 그렇지만 피해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요즘처럼 소통이 화두가 된 적도 없고, 또 냉각된 국제관계 역시 소통의 문제라는 점을 두고 보면 <목소리의 형태>는 그저 단순하게 바라볼 청춘 로맨스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국가 간의 정서로 읽어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많은 소통 단절의 문제들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단지 말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사과가 열어 놓는 진정한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Posted by 더키앙

이승철 입국거부, 왜 일본의 자충수일까

 

저도 송일국씨의 귀여운 세쌍둥이 이름을 불러봅니다! 대한 민국 만세~~!!!” 이승철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지난 9일 아내와 함께 일본 지인의 초대로 하네다 공항에 내렸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출국사무소에 4시간 가량 억류된 후 국내로 돌아온 후의 심경이었다.

 

'이승철의 독도공연(사진출처: 진앤원뮤직웍스)

소속사측이 말하는 것처럼 독도 이슈 후 첫 일본 방문이었던 이승철의 이번 일은 표적 및 보복성 입국 거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승철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참여를 통한 독도 지킴이 행사 같은 건 좀 열심히 적극 나서야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실 연예인들의 입국 거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비스트와 씨엔블루가 비자 문제를 빌미삼아 공항에 8시간가량 억류됐던 적이 있었고, 송일국은 2012년 독도 수영횡단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일본 외무성 야마구치 츠요시 차관으로부터 송일국은 일본에 입국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송일국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그냥 제 아들 이름이나 불러봅니다. 대한 민국 만세라는 글을 SNS에 올린 바 있다.

 

한일 관계는 늘 민감한 부분이 있어왔지만 일본이라는 시장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류만 하더라도 배용준 열풍으로 시작해 K팝 열풍과 장근석 열풍으로 이어지는 일본이 거의 독보적인 시장으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집권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일본의 한류도 차츰 식어가는 모양새다. 한류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5.9%에서 지난해에는 4.5%까지 줄어들었다.

 

즉 이승철의 입국 거부 사건은 이미 이러한 한일 관계에 의해 틀어지기 시작한 문화 교류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 때문에 우리에게도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네 대중문화계는 일본인들의 출연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비정상회담>의 타쿠야, <학교 다녀왔습니다>의 강남, <헬로 이방인>의 후지이 미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야노시호 등이 그들이다. 정치적으로는 민감하더라도 문화적으로는 열린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철의 입국 거부 같은 노골적인 사건은 우리의 시선을 일본에서 중국으로 자꾸만 옮겨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이 중국 내에서 한류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고, 우리의 배우들이 중국 드라마에 진출하는 것도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지난 10일 체결된 한 중 FTA 타결은 이러한 한중 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화 교류의 시기에 최근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행보는 시대에 반하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시대를 과거 6,70년대로 되돌리려는 듯한 이런 행태가 가져올 결과는 뻔하다. 그것은 고립이다. 최소한의 물꼬로서 문화의 교류는 보다 복잡한 사안들의 해결을 위해서도 허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유치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일본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신의 선물>, 오죽하면 시간을 되돌리겠나

 

가혹한 운명은 과연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딸. 아마도 부모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이었을 게다. ‘신의 선물인 아이의 죽음은 그래서 그 엄마인 김수현(이보영)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순간 시간이 14일 전으로 되돌려지며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시간(또 다른 의미로서의 신의 선물이다)이 엄마에게 주어진다.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 14(이하 신의 선물)>은 이러한 가상이지만 간절한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신의 선물 14일(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14일 전으로 되돌려진 김수현은 자신의 딸을 살해했을 거라 믿어지는 연쇄살인범을 직접 추적하게 된다. 김수현은 끝없이 이 다가올 미래를 바꾸려고 새로운 선택들을 하게 된다. 현재의 다른 선택이 다른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약간의 상황변화만 있을 뿐 일어날 일은 계속 벌어지는 것을 보며 김수현은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에 빠진다.

 

아이와 같이 만나던 지적장애인 기영규(바로)의 카메라가 부서지는 장면이나 그토록 막으려 했던 연쇄살인범의 피해자인 미미의 죽음도 그녀는 막지 못한다. 김수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지갑 속에 사진을 꺼내보지만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함께 찍었던 사진 속에 사라져버린 딸은 이 운명이 결코 변하지 않고 예정된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암시를 전해준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아무 것도 바뀔 수 없다면 그것만큼 더한 고통은 없을 게다. 드라마의 첫 도입부에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된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엄마의 고통 그대로다.

 

이것은 또한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고통이기도 하다. 김수현이라는 엄마의 입장에 몰입되어 바라보면 그녀의 긴박감과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게 시청자들의 기대와 추측을 계속해서 배반하며 그를 통해 보는 이들 또한 멘붕에 빠뜨린다. 범인 차봉섭(강성진)을 잡았다고 여기는 순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고, 그래서 또 증거를 찾아내 다시 검거했지만 갑작스런 사고(이것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것이다)로 도주하던 차에 결국 차봉섭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든 괴한의 야구방망이에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괴한 역시 현장에서 즉사한다.

 

차봉섭의 죽음에도 여전히 사진 속 딸의 모습이 빈자리로 남아있다는 것은 제3의 범인이 있다는 얘기. 운명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차봉섭도 본래부터 교통사고로 사망할 운명이었다. 대신 사건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차봉섭과 공범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사건이 단순한 유괴사건이 아니라 과거에 얽힌 일들에 대한 계획된 복수극이었다는 쪽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김수현을 둘러싼 인물 모두가 낯설어진다. 그녀를 돕는 기동찬(조승우)은 과거 자신의 형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을 했고 그 때 법정에 선 검사가 바로 김수현의 남편 한지훈(김태우)이었다. 또 기영규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그의 오발 때문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한지훈은 차봉섭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해준 장본인인데다 그가 죽은 뒤에도 김수현이 입수한 차봉섭 살인증거인 반지와 목걸이를 숨기는 등의 의심스런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의 정체나 기영규를 홀로 키우고 있는 이순녀(정혜선) 또한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각 떨어져 있는 인물처럼 초반부에 그려졌지만 지금 현재는 과거의 어떤 사건 하나에 모두 연루된 인물처럼 보인다. 결국 샛별(김유빈)이의 유괴살인사건은 이 모든 사건의 겉면에 불과할 뿐이고 이면에는 이 사건을 촉발시킨 숨겨진 과거사가 있다는 것.

 

의문은 끝이 없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를 벗겨내면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나는 식이다. 시청자들은 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와 인물들 뒤에 숨겨진 비밀들 때문에 계속해서 멘붕에 빠진다. 그럴수록 범인이 누구인가와 과거의 숨겨진 사건이 무엇인가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이것은 이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놀라운 동력이다. 되돌려진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복잡해지는 것.

 

이 이야기는 그래서 어느 한 아이의 유괴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 어느 사회면 한 쪽을 채우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을 사건이 사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그저 지나치는 행인에서부터 선생님,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형사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관계되어 있다. 누군가의 한 죽음이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한 작은 선택들의 축적으로 일어난다는 것. <신의 선물>이 굳이 14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 그 죽은 아이의 엄마로 하여금 사건을 추적하게 하는 이유다.

 

세상은 냉혹하고 시간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달려간다. 그래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거기에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신의 선물>은 그 지나쳤던 선택들을 반추하는 시간이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모든 걸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비극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죽 하면 시간을 되돌리겠나. 그들의 비극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Posted by 더키앙

<상어>, 복수극과 멜로 사이에서 길 잃었나

 

박찬홍 감독에 김지우 작가. 드라마를 좀 봤다 싶은 시청자들에게 이 이름은 각별할 것이다. <부활>과 <마왕>이라는 이들의 전작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모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가 보였던 꽉 짜인 스토리 전개를 시청률이 따라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상어(사진출처:KBS)'

<상어>는 이들의 아우라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 전부터 김남길과 손예진의 합류로 기대감을 한껏 모았던 것도 전작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그것은 전작들이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점. 따라서 마니아 드라마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안 나와도 호평은 받는.

 

하지만 <상어>가 과연 마니아 드라마일까. 아마도 1,2년 전만 해도 그런 호칭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추적자> 같은 작품이 복수극과 사회극의 접점으로써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싸인> 같은 작품 역시 형사물이나 스릴러는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뒤집은 바 있다. 그렇다면 <상어>는 이들 작품과 비교해 과연 웰 메이드라 말할 수 있을까.

 

<상어>의 이야기 구조는 <추적자>와 유사하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이 그렇고,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갖고 있는 것이 그렇다. <상어>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오현식(정원중)이 진실을 위해 과거를 파헤치려는 검사 며느리 해우(손예진)에게 “묻어둬. 과거란 들출 때만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즉 이 드라마는 우리의 근대사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뿌리 깊은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가야호텔그룹 회장인 조상득(이정길)은 그 과거사를 덮으려 하는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이수(김남길)와 가족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조상득의 손녀 딸인 해우는 조상득의 과거사와 연관된 오현식의 아들 준영(하석진)과 결혼함으로써 복잡한 가족 내의 숨겨진 갈등이 생겨난다. 기성세대들은 과거사를 덮으려하고 이수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의 친구(이자 여전히 연인)들은 그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한다.

 

그리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전작과는 달리 주제의식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드라마의 대중적인 코드들에 더 충실해졌다. 이수가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복수극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몰라보는 이수와 해우 사이의 안타까운 멜로나, 이수와 준영 사이의 우정 또는 이수와 관계된 과거 인물들(동생, 친구 등)과의 만남 등에서 머뭇대고 있는 건 그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나는 시퀀스들이 전형적인 드라마들의 성공방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어>의 연출력은 ‘웰 메이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또 이를 연기하는 김남길이나 손예진의 호연 또한 볼만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어딘지 너무 지지부진하게 여겨진다. 이수의 말 한 마디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해우로 하여금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를 뒤흔드는 시퀀스들은 너무 반복되면서 지루해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물론 과거의 불편한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만들어낸다.

 

<상어>는 멜로와 복수극이 얽혀있는 드라마다. 복수극이 드라마의 속도감을 만들어낸다면 멜로는 감정을 덧붙인다. 이 두 가지가 잘 엮어진다면 그 힘은 의외로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어>는 멜로의 늪에 빠져 복수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파헤쳐야할 검사 해우의 혼돈과 방황에 드라마가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수의 복수극은 물론 여타의 복수극과는 다르다. 그것은 해우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에 얽혀 있는 불편한 과거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우를 사랑하는 이수 역시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진실을 그녀 앞에 내놓으면서도 “도망치라!”고 분열되는 것. 이것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비장미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감정에 드라마가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좋은 설정마저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된대.” 이것은 이수가 처한, 진실을 밝혀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해우는 상어 조각을 만들어 이수에게 주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부레도 만들어 줬어. 언제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게 하려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수에 대한 해우의 사랑을 담고 있다. <상어>가 더 속도감이 있어지려면 안타까워도 해우가 달려 하는 부레를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 상어처럼.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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