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보스>, 스토리는 과했고 연기는 부족했다

 

티저 예고편이 준 기대감은 어째서 조금씩 허물어져 갔을까. tvN 새 월화드라마 <내성적인 보스>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아서 그 눈치를 보느라 퇴근 못하는 보스. 그 상황을 보며 그 이야기가 나 같다는 팀장들도 꽤 있었을 법 하다. <내성적인 보스>는 이처럼 이 주인공 캐릭터가 주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대한 묘한 공감대 위에서 빵빵 터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내성적인 보스(사진출처:tvN)'

하지만 <내성적인 보스>의 첫 회는 그 스토리의 과함으로 인해 오히려 몰입이 잘 되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시작부터 건물 옥상 위에서 투신자살하는 채지혜(한채아)의 모습은 별다른 설명 없이 툭 던져졌고, 그것이 결국 주인공인 은환기(연우진)의 내성적인 성격(사실 이건 내성적이라기보다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의 이유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걸 후에 암시하게 해줬다. 그가 채지혜의 동생인 채로운(박혜수)이 뮤지컬을 할 때마다 꽃다발을 가져다 줬다는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상큼 발랄하고 웃음이 빵빵 터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게 하는 작품에서 시작부터 투신자살 신을 보여주는 건 과도한 시선끌기처럼 보였다. 물론 그 후 이어진 브레인 홍보회사의 대규모 오페라 홍보를 따내기 위한 PT에서 은환기와 그의 친구이자 공동대표인 강우일(윤박)의 흥미로운 관계가 등장했다. 사실상 천재적인 능력으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건 은환기였지만 누구 앞에 나서는 걸 하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강우일이 사실상의 대표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

 

그렇지만 이런 캐릭터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PT 신에서도 역시 과도한 상황 설정이 눈에 띄었다. PT 자리에서 보고서를 찢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PT를 하는 장면은 과장되게 그려졌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다는 전제는 1시간 전 은환기가 메모로 간략하게 적어준 새로운 PT 콘셉트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과한 장면들을 빼놓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납득가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내성적인 보스>는 전반적으로 스토리나 캐릭터에 있어서 너무 과한 상황들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예를 들어 채로운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며 팬입니다라고 말하러 가는 도중 마침 그녀의 차를 들이받은 은환기가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차창도 내리지 않고 도망치는 장면이나, 그를 회사까지 추격해 와 사장실에 난입해 서랍을 뒤지는 채로운의 이야기는 현실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신입사원이 이런 행동을 마구 할 수 있겠나.

 

게다가 신입사원 환영회처럼 벌어진 회식자리에서 사장인 강우일에게 채로운이 거의 반말에 가깝게 말을 건네며 순식간에 친해지는 장면도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 결국 이런 납득되지 않는 과한 상황 설정들의 반복은 심지어 채로운을 연기하는 박혜수의 연기력 논란으로까지 불거지고 있다. 제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이 상황을 연기한다고 해도 그걸 납득시키기는 어려웠을 게다. 비현실적인 상황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성적인 보스>는 이런 과한 상황 설정 자체를 코미디 특유의 과장으로 연출하려 의도했을 수 있다.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었지만 그것을 아예 코미디 설정이라고 내놓고 보여주려 했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연출에 있어서 더 현실을 뭉그러뜨리는 만화적 연출법이 들어가거나 연기에 있어서 대놓고 캐릭터를 과장하는 연기가 들어갔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대본과 연출, 연기의 조화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코미디적 상황을 의도한 대본이었을 수 있지만 연출은 좀 더 과감하지 못했고 연기는 그걸 받쳐줄 만큼 능숙하지 못했다. 결국 스토리는 과하고 연기는 부족하게 느껴진 건 그래서다. 첫 회 만에 연기력 논란까지 갖게 되었지만 <내성적인 보스>는 향후라도 어떤 하나의 선택을 해서 이 문제를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출을 과감하게 하던가, 다소 과한 설정의 대본을 피하던가. 그나마 괜찮았던 로맨틱 코미디의 기대감을 되살리려면.

<또 오해영> 서현진, 로맨틱 코미디가 어울리는 배우

 

서현진이 이렇게 존재감 있는 배우였던가.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캐스팅만 두고 봤을 때 단연 주목되는 배우는 에릭이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은 에릭 때문에 그가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에 시선을 주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또 오해영>에서 시청자들은 의외의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리는 보물을 발견했다. 바로 오해영 역할의 서현진이다.

 


'또 오현진(사진출처:tvN)'

사실 서현진의 가능성은 <식샤를 합시다2>에서 보인 바 있다. 먹방이 기본인 <식샤를 합시다2>에서 그녀는 정말 잘 먹는연기와 코믹하면서도 달달한 멜로 연기를 그녀만의 색깔로 보여주었다. <또 오해영>이란 작품은 그녀의 이 가능성을 온전한 확증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은 듯 때론 과장된 느낌으로 때로는 진정성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서현진의 연기는 이 드라마를 확실히 살리고 있다.

 

박도경(에릭)과 첫 대면하는 장면에서 부딪쳐 코피를 흘리는 모습은 빵 터지는 웃음을 주면서도 강렬하게 그녀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회사에서는 마치 싸움닭 같은 모습이고, 동창회에 가면 자신이 일부러 결혼식 전날 식을 취소시킨 자유연애주의자 같은 허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상처투성이의 그녀다. 마녀 같은 이사도라(24시간 돌아다닌다는 뜻, 혹은 돌아이 이사라는 뜻) 박수경(예지원) 눈치 보기 일쑤고, 사실은 결혼식 전날 퇴짜 맞은 상처를 숨기려 자신을 과장하는 그런 인물이다.

 

서현진의 연기가 주목되는 건 이 과장과 진정성 사이를 오가는 균형 감각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여배우들이 연기를 위해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시청자들은 반색하기 마련이다. 서현진은 자양강장제를 마시다 뒤로 넘어가며 입으로 뿜어내기도 하고, 물오른(?) 만취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처럼 보이는 웃음만이 아니라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아픔 같은 것들이 동시에 느껴지게 연기한다. 서현진이 과장된 몸짓으로 탱고 리듬에 맞춰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은 그래서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그녀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 가운데 떨어진 도경의 지갑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 주워 오면서 난 안 죽어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오해영의 심경을 제대로 짚어낸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늘 예쁜 오해영과 비교되어 그냥 오해영이었던 그녀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결혼식 전날의 퇴짜에 사실은 죽고 싶었던 것.

 

그런 그녀가 도경에게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얘기해줄 수 없냐고 말했을 때, 도경이 그게 어떻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이냐고 되묻고 그것이 그녀에게 오히려 진정한 위로로 다가가는 장면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심지어 그녀의 엄마도 미친 ×’라 부를 정도로 이상해 보이는 그녀지만, 그녀의 진짜 속내를 그가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이 그 장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현진의 로맨틱 코미디 연기가 주목되는 건 그저 망가지고 과장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아픔을 가리기 위한 망가짐이고 과장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복합적인 연기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은 확실히 서현진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보물을 끄집어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간 평이해 보였던 그녀가 이토록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

<SNL>, 성호 그릴스가 회사, 대학, 편의점에 간 까닭

 

편의점 알바는 갑의 횡포를 견디며 친절을 판매하는 나약한 존재였어요. 깨달은 것도 있었고요.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거. 여러분도 명심하세요.” 베어 그릴스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기막히게 패러디한 <SNL코리아><Man vs City with 성호 그릴스>에서 정성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생존기로 그려낸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어찌 보면 이런 풍자는 자칫 비하 논란을 만들 위험성이 있다. 전국의 모든 편의점 사장들과 그 편의점이라는 근로 환경이 이 풍자가 그려내는 것처럼 갑질을 하거나 조악하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코미디의 풍자 코드는 이런 위험성을 베어 그릴스를 패러디한 성호 그릴스라는 기괴한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슬쩍 비켜나간다.

 

성호 그릴스는 도시의 환경 자체를 위협적으로 대응하는 과잉되고 과장된 캐릭터다. 그에게 편의점 사장은 사장이 아니라 도시의 포식자. 그러니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어 사장에게 한 소리를 듣고 있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낮은 포복으로 숨어 들어가려는 성호 그릴스는 광인에 가깝다. 즉 이건 상황의 일반화가 아니라 성호 그릴스라는 도시의 위험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특정한 광인의 시각과 목소리라는 점이다.

 

이렇게 풍자가 만들어낼 일반화의 위험성을 광인이란 캐릭터로 슬쩍 넘어서자 그 풍자는 거칠 것이 없어진다. 회사라는 정글로 들어간 성호 그릴스에게 상사는 상위 포식자에 해당한다. 그 상위 포식자가 그를 발견하고 무언가 꾸지람을 하려 하자 성호 그릴스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며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몸을 부풀린다. 심지어 책상 위에까지 올라가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물론 베어 그릴스가 야생에서 보여줬던 모습의 과장이고 과잉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이 도시 정글에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중간 중간에 이건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대단히 위험한 행동입니다.”라는 베어 그릴스가 자주 던지는 말을 집어넣으며 얼토당토않은 대응을 해나가는 성호 그릴스. 바로 이 엉뚱함이 이 코미디의 웃음의 코드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그것이 단지 코미디만이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와 맞닿을 때 다가오는 현실 공감이다.

 

대학을 대학생들의 생존지로 그리면서 출석체크를 성대모사로 대신해주는 성호 그릴스의 모습이나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자신만의 영역표시를 하는 대목은 그저 웃음을 주는 것 같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취업의 관문을 얘기하다 보면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을 공감하게 된다는 것. 대학을 정글로 그리면서 인분교수를 패러디 대상으로 삼은 건 우리네 현실이 때로는 광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코미디와 별 다를 바 없는 지점이 생겨나기도 한다는 걸 통쾌하게 보여준다.

 

애초에 <SNL코리아>가 가진 두 가지 코드는 성적 농담과 정치 시사를 가리지 않는 과감한 풍자에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풍자가 점점 사라지고 성적 농담만 가득했던 <SNL 코리아>에 대중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된 <Man vs City with 성호 그릴스> 같은 코너는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새로운 풍자 코드를 보여준다. 회사든 대학이든 편의점이든 어디서나 발견되는 갑질하는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성호 그릴스라는 캐릭터는 웃프게도 그려내고 있다.



80년대 드라마 식의 어법과 운명적 장면의 어색함

‘에덴의 동쪽’은 시청률면에서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첫 회에 10%대를 가볍게 넘겼고 6회에 20%를 넘기고 나서 현재 12회에 이르러 27%(AGB 닐슨)로 30%대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과 함께 점점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대사’다. 어째서 이 나연숙이라는 베테랑 작가의 작품을 두고 때아닌 대사 논란이 불거지는 걸까.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했던 형제가 만나는 장면에서 동생 동욱(연정훈)은 형 동철(송승헌)에게 연거푸 “형 맞아!”하고 소리친다. 어두컴컴한 그 장면에서 절절한 동욱의 외침과 “동욱아, 형이야!”하고 답하는 동철의 대사는 그 상황 자체로 보면 극적이고 가슴 절절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장면이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차안에서 그 장면을 보던 국회장(유동근)의 “불 좀 켜 줘라”하는 대사는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결국 보는 이에게 참았던 실소가 터지게 만든다.

이런 장면은 이 드라마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마카오에서 동철이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이들은 그렇게 “동욱아!” “형!”을 반복해 소리쳤다. 오랜 세월을 지나 동철이 어머니 춘희(이미숙)를 다시 만나는 장면 역시 지나칠 정도로 길게 장면을 잡았다. 한참을 서로 쳐다보고,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을 떼면서 다가오는 동철에게 춘희는 “어딜 갔다 이렇게 지 아부지 마냥 훌쩍 커서 온겨!”, “왜 말을 못하냐! 예전처럼 말문이 막힌겨!”하고 반복해서 소리친다. 이 장면은 역시 극적이지만 떠오르는 건 멀리 서서 반복해 소리치는 “동욱아!” “형!”의 변주처럼 들린다.

이 절절한 가족애가 ‘에덴의 동쪽’이 승승장구하게 만드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김범이 연기했던 어린 시절의 동철이 동생 대신 방화의 죄를 뒤집어쓰고 기차에 올라 “너는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다!”라고 외칠 때 그 울림은 실로 컸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그런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표현 자체가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극적인 대사는 일상적인 어법에서는 어색하기 마련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런 극적인 대사의 활용은 적절하게 사용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의도적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강박관념이 작용할 때, 이 대사들은 힘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드라마의 현실성을 무너뜨린다. 거의 매 시퀀스마다 극적 상황을 연출하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한 이 드라마는 따라서 거기 활용되는 대사들도 비일상적이다.

물론 연기력 부재에서 비롯한 바가 크지만 이연희의 연기력 논란은 이 비일상적 대사가 더 부추긴 이유도 있다. “벌써 날 사랑하게 된 거니?”같은 대사나, 혼자 읖조리는 듯한 톤의 대사들, 예를 들면 “충성스런 사냥개로군”처럼 “∼군”같은 어미로 끝내는 대사들은 연극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일상언어를 추구하는 드라마로서는 부적격하다.

만일 지금이 8,90년대라면 이런 대사들과 어법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대의 드라마들은 아직까지 운명적인 사랑 같은 것들을 다룰 만큼 극적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호응을 얻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2008년이다. 운명적 사랑은 사극에서나 겨우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졌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도 이 드라마는 여전히 2008년도에 묶여있다.

운명적이고 극적인 것보다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더 보편적인 이 시대의 드라마에 있어서 과도함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에덴의 동쪽’은 스토리나 연기자들 소재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드라마임에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극적 장면에 집착하고 있다. 사실상 스토리 자체가 극적인 이 드라마는 오히려 좀더 절제하는 맛이 필요하다. 과도한 대사와 과도한 연출은 극적 상황마저 과장된 것, 혹은 우스운 것으로 바꾸어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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