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보다 캐릭터, <응답>의 핵심은 예능 유전자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다. 속편이 본편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는 다른 것 같다. 시청률로만 봐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이 <응답하라> 시리즈는 갈수록 강력해진다. 신원호 PD는 애써 겸손하게 망할 작품이라고까지 말했지만 시청자들의 선택은 그 말을 결국 뒤집어버렸다. 6% 시청률(닐슨 코리아)부터 시작한 드라마는 어느새 11%를 훌쩍 넘기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로서도 놀랍고 본편을 뛰어넘은 속편으로서의 <응답하라> 시리즈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이 시리즈가 가진 기존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작법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응답하라>시리즈는 기존 드라마들이 하듯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스토리라인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에 포인트가 맞춰진다. <응답하라1988>의 핵심 경쟁력은 그래서 쌍문동 골목집에 살아가는 제각각 개성강한 인물들에서 나온다. 덕선(혜리)을 중심으로 하는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에 맞춰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면,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이일화, 김성균-라미란 그리고 김선영과 최무성은 윗세대에 맞춰진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이 같은 세대끼리 우정과 정으로 엮어지거나 애정으로 엮어지는 그 관계의 변주는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이 된다.

 

쌍문동 골목집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에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놓지만 어떤 일관된 스토리라인의 흐름을 만들어놓지 않은 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매회 이야기가 이어지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나올 지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을 갖고 있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매 회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고 그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들이 매력적인 인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는 마치 시트콤을 닮아있지만 그렇다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트콤은 아니다. 단지 시추에이션이 있고 코미디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가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그래서 덕선의 언니인 보라(류혜영)가 데모를 하고 경찰에게 잡혔을 때 엄마인 이일화가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천재바둑기사 택이가 아버지 최무성과 무뚝뚝하지만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진 기자 인터뷰를 통해 진심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드라마적인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연속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이야기는 뭘까 하는 궁금증을 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 궁금증은 누가 덕선과 결혼했나 하는 등의 인물들의 관계에서 나오고, 나아가 이것은 이 드라마의 힘이 결국 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응답하라>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다분히 예능적인 그림이다. 예능은 애초에 어떤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청자를 끌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캐릭터를 세워두면 그 인물의 매력에 의해 시청자들이 어떤 기대를 갖게 된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온 인물이라는 점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어떻게 이들에게 최적화되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렇게 스토리라인을 잘 몰라도 인물의 매력을 알게 되면 빠져드는 드라마는 새로운 시청자들의 중간유입이 용이해진다. <응답하라1988>이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나가는 건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쌍문동 골목집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아련한 판타지를 경험하고 있다. 스토리보다 먼저 캐릭터에 매료시키는 이 예능의 유전자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속편이 나와도 본편보다 더 강력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12> 시즌3 2주년, 이 장수예능이 부활한 까닭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손님을 모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단골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12> 시즌3 2주년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호진 PD가 한 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지금껏 시즌3가 어떻게 이 장수예능을 되살렸는가를 잘 말해준다.

 


'1박2일(사진출처:KBS)'

사실 시즌2만 해도 <12>은 끝났다는 얘기가 많았다. 시즌1이 워낙 큰 성과를 냈던 터라 뚝 떨어진 시청률은 이런 이야기를 증거하는 지표처럼 거론되었다. 그래서일까. 시즌2는 여행보다 게임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12>은 본질을 잃어갔다. 의미를 잃어버리자 재미도 반감됐다.

 

이런 상황에서 시즌3를 맡게 되었으니 유호진 PD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게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의외로 쉽게 이 모든 위기의 징후들을 뛰어넘어 버렸다. 가장 먼저 한 것은 <12> 특유의 조금은 촌스러워도 어딘지 정감이 가는 그 훈훈한 정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구탱이형 김주혁은 그 중심을 잡아주었고, 김준호는 그 위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정준영 같은 에이스는 막내 같지 않은 막내로 자칫 나이로 서열이 맺어질 것 같은 그 관계를 여지없이 깨는 인물로 자리했다.

 

서울특집에서 부모님들의 사진 속 공간에 그 자식들이 들어가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장면은 <12> 시즌3의 상징 같은 풍경으로 남았다. 꽤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겹쳐지는 공간도 있지만 그것이 식상한 게 아니라 어느 때 누구와 함께 그 공간에 가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그 장면은 보여주고 있었고, 또 그 곳에 남아있는 과거의 이야기가 오롯이 추억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도 담겨 있었다. 여행이란 하나의 추억을 남기는 일이라는 걸 <12> 시즌3는 대단할 것 없지만 꽤 떠들썩하게 한바탕 놀아보는 왁자함으로 보여줬다.

 

출연자들의 관계가 끈끈해지고 그런 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도 어떤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하자 <12>은 시즌1이 그러했던 것처럼 복불복만 해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 날 갔던 여행지에 대한 특별한 정보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12>이 가진 본연의 색깔이라는 걸 유호진 PD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유호진 PD<12>을 부활시킬 수 있었던 건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것처럼 무언가 새로운 맛을 내려고 해서가 아니라 기존 <12>이 갖고 있는 그 맛을 지켜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시즌2나 속편이 어긋나는 건 새로운 걸 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PD가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이전의 실적과는 다른 자신의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그 성격 그대로 선배들이 잘 차려놨던 그 밥상을 잘 지켜내는 겸손함으로 시즌3를 만들어왔다. 물론 조금씩 자기만의 색깔을 특집에 넣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코 <12>이라는 궤도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12>의 단골들은 그 변함없는 맛에 늘 찾아와도 만족하게 됐던 것이다



<탐정>, 권상우 성동일 콤비를 보며 부부를 떠올렸다면

 

미드 <셜록>에서 셜록은 마치 편집증 환자 같은 탐정의 독특한 매력에 전 세계 시청자들을 푹 빠뜨린 바 있다. <셜록>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탐정물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셜록 같은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 우리네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황과 정서에는 거기에 맞는 그만한 캐릭터가 필요할 테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탐정 : 더 비기닝(이하 탐정)>은 이러한 질문에 마치 정답지를 내미는 듯한 영화다.

 


사진출처: 영화 <탐정 더 비기닝>

별 기대 없이 <탐정>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그 소소하고 일상적이며 나아가 비루하기까지 한 시작에 혹시나가 역시나가 아닐까 후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탐정>은 초반의 이 소소함이 향후의 긴박감 넘치는 추리와 액션으로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

 

미제사건카페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로 탐정을 꿈꾸는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과 레전드 형사였지만 지금은 후배에게 밀려날 처지에 놓여있는 노태수(성동일). 읽고 본 건 많아 촉이 살아있는 강대만과 몸으로 부딪치며 갖게된 감이 살아있는 노태수.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틀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덜컥거릴 수밖에 없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하지만 바로 그 다르다는 점 때문에 살인사건을 수사하는데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환상의 콤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 다른 성격과 삶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은 살벌한 살인 현장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이 인물들이 마누라의 한 마디에 !”하고 뭐든 할 것 같은 공처가들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은 깨알 같은 웃음으로 관객들을 빠뜨린다. 이 정도면 코미디로서 괜찮은 조합과 선택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면서 굳이 더 비기닝이라는 의욕을 내비쳤을까. ‘더 비기닝이라면 이번 영화로 만들어진 설정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 <탐정> 시리즈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여겨지는 건, 아내에게 꼭 잡혀 살면서 눈치 보며 그래도 제 하고 싶은 일을 기웃거리는 강대만이나, 살벌한 비주얼과 느낌이지만 역시 빨간 고무장갑이 손에 맞지 않아 설거지가 어렵다는 노태수가 너무나 우리네 정서에 딱 맞으면서도 우리식의 추리와 형사물에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추리물이 갖는 의외의 반전들이 주는 재미와 함께 이들의 일상에 대한 공감이 각자 다른 이야기처럼 움직이다가 후반부에 하나의 메시지로 묶여지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추리물이나 형사물이 아니라 그 장르를 통해 일상의 메시지까지를 던지는 깊이를 숨기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이 터지고, 그러면서도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공처가로 내몰린 두 남자가 마치 남편과 아내 같은 케미로 엮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태수가 힘과 경험만을 내세우는 남편이라면 강대만은 꼼꼼하게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아내 같은 느낌. 그래서 마치 남편과 아내가 공조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듯한 이 영화의 느낌은 공처가인 두 남자의 판타지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분위기가 싸해져도 또 뭐가 잘 맞지 않아 툭탁거려도 결국은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그런 관계에 대한 판타지. 그 관계가 부부건 아니면 버디무비의 형제 같은 느낌이건.



<나를 돌아봐>, 논란의 힘으로 굴러가는 이상한 예능

 

<나를 돌아봐>는 설마 막장 예능을 지향하고 있는 걸까. 막장은 드라마에만 있다는 편견을 깨고 싶은 건가. 이번에는 최민수 폭행 논란이 불거졌다. <나를 돌아봐>를 촬영하는 도중, 최민수가 의견충돌을 빚은 외주제작사 PD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는 것.

 


'나를 돌아봐(사진출처:KBS)'

일단 무슨 이유에서든 폭력을 썼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한 번도 아니고 시작부터 반복적으로 계속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은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도 그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제작발표회에서 벌어졌던 논란부터 이번 최민수 폭행 논란까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기 출연하는 인물들의 평소 이미지와 캐릭터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증폭되어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평소 욕쟁이에 독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수미가 제작발표회에서 조영남을 도발했던 건 시청률을 빌미로 하차 운운했던 돌직구였고, 평소 기행을 일삼는 조영남이 거기에 대응했던 것 역시 하차 선언 후 발표회장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번 최민수 폭행 논란 역시 그에게 늘 따라다니던 거친 남자의 이미지가 프로그램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문제적 출연자들의 어둡고 불편한 부분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하나같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건 마치 이것이 의도된 것 같은 생각마저 갖게 만든다.

 

물론 제 아무리 시청률이 갈급하다고 해도 논란을 의도했을 리는 없다(실제로 논란에도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프로그램의 정체성 자체가 이런 논란의 소지를 어느 정도 품고 있었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를 돌아봐>는 결국 관계의 불편함을 예능의 기폭제로 끌어오는 콘셉트일 수밖에 없다. 김수미와 장동민 그리고 박명수가 그렇고, 조영남과 이경규가 그러하다. 이홍기와 최민수는 말할 것도 없다.

 

매니저라면 연예인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홍기는 매니저로 온 최민수 앞에서 늘 긴장하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그 역전된 상황이 웃음의 포인트가 되는 것. 이것은 평소 버럭 하던 박명수가 욕쟁이 김수미 밑에서 얌전해지는 모습이나, 늘 주도권을 쥐고 방송을 하던 이경규가 조영남에게 휘둘리는 모습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불편한 관계는 어쨌든 그 불편한 인물이 하는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조영남은 기행을 하고 김수미는 욕과 독설을 던질 때 그 불편함이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니 최민수는 어딘지 거칠고 센 이미지를 계속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 물론 폭행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지만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촬영 분위기가 그런 센 이미지를 어느 정도는 부추겼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관찰카메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설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감나는 진짜모습을 꺼내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이 만드는 불편함이란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인물들의 불편함을 마치 과시하듯 적극적으로 밖으로 꺼내놓는 이 프로그램이 논란의 많은 빌미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건 그래서다.

 

김수미도 조영남도 최민수도 잘못했다. 하지만 그들만을 욕하는 것으로 이런 논란의 바탕을 제공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들이 비껴가는 건 더 잘못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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