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정치에선 멀어져도 대중 옆엔 늘 가까이 있길

“잊히는 영광을 허락해주시길 바란다.” 유시민 작가가 JTBC <썰전> 하차를 선언했다. 하차의 이유는 “정치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본래 처음에는 넉 달만 해보자고 했던 <썰전>이라고 했다. 어느덧 2년 반이 지났고, 원래 “정치에서 멀어지려고 정치 은퇴를 했는데” 정치 비평이 그 색깔이 된 <썰전>을 하다 보니 “정치에서 안 멀어지더라”는 것. 결국 유시민 작가가 원하는 건 “정치에서 한 걸음 멀어져서 글 쓰는 유시민”이었다. 

아마도 <썰전>의 열혈 시청자가 아니라고 해도 유시민 작가의 하차 선언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을 게다.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분들도 <썰전>의 유시민 작가를 통해 조금이나마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를 통해 우리는 저들만의 이야기로만 들려오던 정치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지 않았던가.

이것은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본래부터 지향하던 바였다. 초창기 <썰전>을 이끌었던 강용석 변호사와 이철희 소장이 시사나 정치 이슈도 예능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정도였다면,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등판하면서는 훨씬 더 깊이가 있으면서도 시청자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언변으로 <썰전>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특히 <썰전>이 최고조에 올랐던 건 최순실 게이트에서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이슈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사안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특유의 쉬운 비유들을 들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전원책 변호사와 때론 각을 세우고 때론 함께 분노를 터트리며 만들어낸 케미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원책 변호사의 하차 이후, 박형준 교수가 투입되면서 <썰전>은 조금 힘이 빠지기도 했다. 박형준 교수가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 활동했던 사실은 시청자들로서는 그 논평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때 <썰전>의 힘이 빠진 건, 문재인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야권 성향의 멘트를 할 때 힘을 발휘하던 유시민 작가가 이젠 정부를 두둔하는 입장으로 공수가 바뀐 상황 때문이었다. 

이런 변화된 정국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유시민 작가의 하차는 작가 본인은 물론이고 <썰전>에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노회찬 의원은 그래서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현 정권 하에 할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위치라고 여겨진다. <썰전>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썰전>에서 하차하고 정치에서 멀어지려 한다는 유시민 작가에게 대중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건, 그가 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을 정치가 아니라도 계속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tvN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는 인문학적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흥미진진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지 않았던가. 

정치에선 멀어진다고 해도 대중들 가까이에 늘 유시민 작가가 있기를 바란다. 저들만의 언어로 되어 있어 우리를 무관심으로 이끌어가는 많은 시사나 인문학적 사안들에 대해, 그가 잘근잘근 씹어 우리의 귀에 넣어주기를 여전히 기대하기 때문이다. 굳이 정치비평이 아니라도 글 쓰는 유시민 만큼 방송을 통해 인문학의 재미와 깊이를 풀어주는 유시민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필요하다.(사진:JTBC)

김장겸 사장 해임, MBC 정상화에 남은 숙제들

결국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이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지난 9월부터 70일 넘게 이어져온 노조의 파업은 이제 정리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번 해임안을 통해 겨우 MBC 정상화의 실마리가 보이게 됐지만, 이건 지난 70일 간의 파업만을 통해 얻은 성과는 아니다. MBC는 김재철 전 사장 이후부터 지금껏 너무 오래도록 시청자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만큼 이를 되돌리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장이 해임됐다고 해도 그와 수족처럼 함께 해온 MBC의 경영진들이 그 자리를 그대로 버티고 있는 이상 MBC의 정상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방송 장악을 시도했거나 이에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처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엇나갔던 그 길을 되돌리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MBC가 예전의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뉴스, 시사, 교양 부문을 자율성을 다시금 확보해야 한다. 알다시피 시청자들은 과거 <피디수첩>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같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한때 국민의 귀와 입이었던 프로그램이 정치적인 힘에 의해 핍박받으며 결국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MBC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피디수첩>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뉴스데스크> 역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인력 구성에 있어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그 자리를 지키려 애썼던 이들이 모두 방출되어 있는 현재, 남은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뉴스 보도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힘이 바로 이 신뢰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부분에 대한 개혁 없이는 <뉴스데스크>의 복원은 불가능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MBC는 과거 ‘MBC스페셜’이나 ‘눈물 시리즈 다큐’처럼 교양 부문에 있어서도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던 방송사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이후에 아예 교양국 자체가 와해되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런 과거의 MBC 교양이 갖던 존재감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 때 좋은 프로그램들을 만들던 이들은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결국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좋은 프로그램이 좋은 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라진 교양국을 어떻게 다시 부활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그래서 MBC가 가진 또 하나의 숙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MBC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주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외주제작사들마저 외면하는 방송사가 되어버린 건 이 역시 파행적인 간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막장드라마화한 주말드라마만이 겨우 남게 된 MBC 드라마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이런 권위적인 구조를 깨는 일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예능은 <무한도전>이 상징적으로나마 MBC를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분야에도 지난 10년 간 꽤 많은 인재들이 방송사를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늘 참신하고 새로웠던 MBC 예능 특유의 도전적인 분위기가 다시금 생겨나기 위해서는 그간 위축된 제작진들의 사기를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장겸 사장의 해임으로 이제 겨우 MBC는 정상화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됐다. 무려 10년 간의 엇나감이다. 그걸 되돌리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보여준다면 의외로 빨리 시청자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사진:MBC)

유시민의 ‘차이나는 클라스’, JTBC 교양의 위엄

역시 JTBC 교양 프로그램은 클라스가 다르다? 과거 <차이나는 도올>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도올 김용옥의 클라스가 다른 강의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보여줬던 JTBC 교양 프로그램이 이제는 <차이나는 클라스>로 돌아왔다. 그 첫 번째 포문을 연 인물은 최근 <썰전>을 통해 대중들의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유시민 작가. 그가 ‘민주주의’를 주제로 출연자들과 나눈 질문과 대답 그리고 열띤 토론은 왜 이 강의가 ‘차이나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차이나는 클라스(사진출처:JTBC)'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너무 익숙해서 그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 개념이다. 또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같은 오용된 사용이나 박정희 시절 ‘민주주의’라며 실제로는 독재를 자행한 그 시절의 경험들로 인해 그 진짜 개념이 모호해졌다. 굳이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첫 강의로 선정하고 유시민 작가를 세운 데는 이런 모호한 개념들을 제대로 다시 들여다보려는 의도다. 유시민 작가는 역시 다양한 궁금증들에 대해 특유의 유머러스한 언변으로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들을 정리해줬다. 

그는 ‘민주주의’가 최상의 선택이 아닌 최악을 피하는 선택(가장 나쁘지 않은 제도)이라는 걸 명확히 한 후, 그 핵심으로서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한 삼권분립을 들었다. 민주주의란 “권력의 상호견제, 권력의 분산, 권력의 제한”이라는 것. 또한 “다수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합법적으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으면 민주주의”라는 명쾌한 판별기준을 제시했다. 

이 프로그램이 첫 회에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정립을 하겠다고 나선 건 다분히 현재의 대중들이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국면을 겪으면서 특히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잘못하니까 국회가 탄핵을 하고, 또 이걸 잘못하면 안 되니까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한다”는 유시민이 건네는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현실적 사례가 되어주었다. 

<차이나는 클라스>가 그 짧은 시간동안 들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꽤 광범위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거기에는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의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들은 물론이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칼 포퍼의 정치 철학,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같은 다양한 생각의 편린들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시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거기 함께한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귀에 쏙쏙 박혔던 건 현 시국과 어우러진 주제선정과 그걸 쉽게 풀어내는 유시민 작가 특유의 친절한 답변들 덕분이었다. 즉 현재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제에 대해 깊은 통찰에 이른 지식을 가진 강연자를 통해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명쾌하게 풀어내는 것. 이것이 <차이나는 클라스>가 여타의 강연 프로그램과 다른 지점이다. 

최근 들어 JTBC의 교양 프로그램들의 선전이 눈에 띄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그 지점으로 들어와, 보다 쉽게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면면들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썰전>은 물론이고 <말하는 대로>, <김제동의 톡투유> 그리고 <차이나는 클라스>까지. 시청률은 물론이고 좋은 반응까지 얻고 있는 건 그래서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차이나는 클라스>의 웃음의 강도는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교양 프로그램이 주는 몰입감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 못지않다. 그건 당장 우리네 현실과 직결되어 있는 주제의 선정, 그리고 유시민 작가 같은 호감가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쉽게 전해주는 강연자의 조합이 단순하면서도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MBC 교양국 해체에 왜 이승환은 분노했을까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가진 힘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가수 이승환에게는 각별했던 모양이다. 2006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방영된 너는 내 운명편 이야기다. 간암 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서영란씨와 이를 알고도 결혼한 정창원씨의 이야기를 본 이승환은 깊은 감동을 받고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곡을 써내려갔다. 그 노래가 바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히든싱어3(사진출처:JTBC)'

아마도 이 감흥은 이승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게다. 당시 너는 내 운명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당시 죽음을 앞둔 서영란씨와 정창원씨가 보여줬던 병원에서의 결혼식이 다시금 눈앞을 가릴 것이고,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인터뷰 도중 PD를 껴안고 울어버린 정창원씩의 모습이 여전히 아른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영란씨는 서둘러 떠나버렸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이승환의 곡은 그래서 이제 그에게만 특별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당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토록 간절하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곡으로 남았다. 이것은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떠나버린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남겼고, 그 다큐멘터리는 노래로 탄생됐으니 말이다.

 

이승환이 MBC 교양국 해체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래서다. 그 기적 같은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그 PD들이 제작과는 무관한 부서로 보내진다는 사실이 어찌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교양국이 해체되어 PD들은 예능국으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그간 해왔던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보내지게 되었다. 당시 <휴먼다큐 사랑>은 물론이고 <아마존의 눈물> 같은 대작을 기획했던 윤미현 PD는 지금 어느 부서로 가있는지 조차 모르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감동을 선사하고 시청자들을 위해 올바른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외압과 싸워온 분들이 좌천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런 점에서 MBC 교양국의 해체는 말 그대로 교양 없는’ MBC를 상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이승환의 곡을 빌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그래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누구보다 자기 일에 소신을 갖고 일해 온 사람들이 눈앞에서 밀려나는 세상에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 지난 정권부터 계속되어온 MBC의 추락은 그래서 단순한 시청률 몇 프로의 수치만으로는 더 이상 회복될래야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