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동의보감’을 낸 뜻을 요즘 의사들은 알까

 

<구암 허준>에서 허준(김주혁)의 스승 유의태(백윤식)는 병자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에도 그가 백정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물러가라는 유도지(남궁민)를 보고는 혀를 차며 그 병자의 집을 찾아 나선다. 헐벗고 가난에 찌든 아이들이 다 쓰러져가는 집 앞에 나와 유의태와 허준을 맞이하는데, 유의태는 똥오줌도 가리지 못해 냄새가 진동하는 병자의 욕창에 난 고름을 입으로 빨아낸다. 허준은 그걸 보고 비로소 심의(心醫)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구암 허준'(사진출처:MBC)

또 목을 맨 딸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가난한 노부부에게 자신은 의원이 아니라며 극구 거부하는 허준이 결국 그 딸을 시술해주는 장면도 그렇다.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딸을 살려내자 고마운 마음에 내미는 가락지를 극구 거부하며 “병자가 건강해지는 게 보답”이라 돌려보내는 허준에게서 지금의 대중들은 무엇을 느낄까. 또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병자들에게 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처방전을 써주는 그 마음은 어떤가. 돈이 아니라 오로지 생명만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심지어 성인의 면모까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실력은 당대 최고 침술의 대가로 알려진 어의 양예수(최종환)를 구침지의로 꺾을 만큼 출중하지만 출사하지 못하고 낙향해 오로지 병자만을 긍휼이 여기는 명의 유의태나, 잘 나가는 내의원이었지만 어린 아들이 나병 환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 업보를 풀기 위해 한 평생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길을 걷는 삼적대사 김민세(이재용), 김민세 일가에 찾아온 불행으로 자신도 관직을 던져버리고 산속에 은거에 부술(해부술) 연구에만 몰두하는 안광익(정호빈)이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반면 <구암 허준>에서 유도지의 모습은 지금의 의사들을 그대로 빼닮았다. 병자를 보는데 있어서도 그 귀천을 따지고, 배운 의술은 많지만 마음으로부터 병자를 긍휼하게 바라보는 진정한 심의(心醫)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그런 의원. 오로지 의술을 통한 내의원 입성만을 목표로 세우는 유도지는 그래서 출세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의사들을 닮았다. 일반외과나 내과 같은 생명을 다루는 과의 지원자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그래도 돈벌이가 되는 과로 몰리는 작금의 현실이 그걸 말해주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직업이 아니라 돈 잘 벌고 출세하기 좋은 직업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은 제 아무리 어려운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의술의 혜택을 받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라도 처치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세상이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본화된 의료시스템 속에서 인간이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봐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되는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치솟는 의료보험료와 그걸 내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로 몰리고, 제 아무리 당장 죽어가는 병자라고 한들 돈 없으면 문전박대 당하는 현실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입장에서 <구암 허준>이 보여주는 유의태나 허준, 김민세 같은 인술의 대가들은 그래서 그 자체가 감동일 수밖에 없다. 병자를 살리기 위해 고름을 손수 입으로 빨아내는 유의태와 허준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을 썼다는 것 외에 그다지 역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 값비싼 중국 수입 약재 대신 우리 산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다수 소개한 <동의보감>은 그 자체로 허준이라는 심의(心醫)의 긍휼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는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한 1613년으로부터 정확히 40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무려 4백년 전의 허준이 작금의 세태에 전하는 메시지는 더 커졌다. 물론 극화된 것이지만 <구암 허준>을 보다가 느끼는 그 울컥함은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게 된 세상에 대한 아픈 반응일 것이다.

'구암 허준'에 구침지희가 주는 교훈 

 

허준을 소재로 한 드라마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재 중 하나는 이른바 구침지희(九針之戱)가 아닐까 싶다. 즉 아홉 개의 침을 침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닭에게 찔러 넣어도 닭이 아파하거나 죽어서는 안 되는 침술 경지를 대결하는 장면이다. 후한 시대 명의 화타의 전설적인 이야기지만 <구암 허준>에서는 이 구침지희가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낙방한 유의태가 자신을 떨어뜨린 침술의 대가 양예수를 찾아가 벌이는 대결로 그려진다.

 

'구암 허준'(사진출처:MBC)

<구암 허준>의 원작인 이은성이 쓴 <소설 동의보감>에서는 이 구침지희를 ‘다섯 침까지가 범의, 여섯 침이 교의, 일곱 침이 명의, 여덟 번째 침은 대의, 마지막 아홉 침을 다 쓸 수 있으면 이미 침 하나로 모든 병을 다 볼 수 있는 태의’라 설명하고 있다. 허준 소재의 드라마에서 구침지희 에피소드는 유의태의 의술을 가늠하게 해주는 장면이면서 장차 허준과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가 벌이게 될 의술 대결의 전조가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최완규 작가가 쓰고 이병훈 감독이 연출했던 <허준>에서 초반 대중의 관심을 한 방에 끌어들인 이 구침지희 에피소드조차 <구암 허준>에서는 그다지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시청률이 6%에서 7% 사이를 오가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 <허준>이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걸 떠올려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구암 허준>의 대본은 여러 차례 반복되며 풍부해진 소재 덕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허준(김주혁)이 유의태(백윤식)의 문하로 들어와 고초를 겪으며 의술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대목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흥미롭다. 병자에게 쓰는 물을 몰라 유의태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는 대목이나, 예진아씨(박진희)에게 조금씩 의술에 눈을 뜨는 허준의 성장 과정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구침지희 같은 에피소드는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즉 <구암 허준>의 시청률 하락은 콘텐츠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한 시간 남짓의 시간에 익숙해 있는 시청자들에게 30분 정도 분량으로 뚝뚝 끊어지는 일일극(그것도 사극)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편성의 문제이지 콘텐츠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구암 허준>이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에서 그만큼의 성과를 가져가지 못하는 이유는 즉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파격적인 편성 탓이 크다고 보인다.

 

시청률에 갈급하던 MBC가 8시 대로 <뉴스데스크>를 옮기는 파행 편성으로 결국 시청률에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 9시 대의 편성 공백을 만들어낸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 아무리 ‘허준’이라고 하더라도 9시를 뉴스 시간대로 기억하는 시청자들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KBS 9시 뉴스>가 여전히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MBC의 8시부터 10시까지의 편성 전략이 총체적인 실패로 드러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암 허준> 제작을 종용하면서 “9시대 시청률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2013년 3,4월이면 1등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던 김재철 전 MBC 사장은 그가 자신만만해했던 4월에 오히려 방문진에서 해임안이 가결되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시청률을 빌미로 몇몇 프로그램들이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종영된 것도 문제지만, 적어도 그 근간인 편성만큼은 뒤흔들지 않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구암 허준>이 그간 시대를 넘어 네 차례나 반복되어 만들어지면서도 MBC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준 허준 콘텐츠의 유일한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남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릇 경영이라는 것은 마치 구침지희처럼 아홉 개의 침을 꽂으면서도 직원들에게는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MBC의 경영진들이 꽂아 넣은 아홉 개의 침은 결국 그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중 잘못된 편성은 가장 치명적인 침이 되었다. <구암 허준> 같은 좋은 콘텐츠도 애물단지로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김재철의 MBC, 그 잃어버린 3년의 의미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토록 공고하게 세워둔 MBC라는 방송사의 위상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은. 그 중심에는 이명박 정권과 함께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김재철 사장이 있다. 이전에는 MBC 사장이 도대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면서 방송을 즐겼던 대중들도 이제 김재철 사장이 누구인지 알 정도로 그는 MBC 프로그램의 추락을 초래했다. 그 전까지는 잘 몰랐던 사장 한 명의 위력을 실감하던 시간이었다.

 

'뉴스데스크'(사진출처:MBC)

가장 큰 문제는 공정방송 회복을 위해 무려 170일 동안의 파업을 벌였지만, 이로 인해 2백여 명의 MBC직원이 해직되거나 징계되었다는 것이다. <PD수첩>의 최승호 PD, 박성제, 박성호 기자, 정영하 노조위원장, 이상호 기자 등 8명이 해고되었고, 파업 관련자들을 본래 직종과 무관한 부서로 전보 처리하는 등 보복성 인사와 징계가 이어졌다.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MBC의 얼굴들이 일거에 사라져버린 것. 서울남부지법은 이러한 전보 처리 등이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이들은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MBC의 얼굴들이 해고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가장 눈에 띄게 망가진 것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다. MBC 하면 먼저 떠오르던 <뉴스데스크>나 <PD수첩>의 날선 비판의식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뉴스의 정부 편향성은 대중을 위한 뉴스가 아니라 정부를 위한 홍보에 머물렀고 당연히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다. <PD수첩>은 PD의 해고에 이어 작가 8명 전원이 해고당하고 대신 시용PD들이 배치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00분 토론> 또한 손석희가 빠지면서 급격히 신뢰도가 떨어졌고 결국 대중들의 기억에서조차 멀어진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전문 인력들이 빠져나가자 뉴스 프로그램의 방송 사고도 줄을 이었고 몇몇 아나운서들의 적절치 못한 발언과 실수로 연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그저 시청률에 목매달면서 <뉴스데스크>를 8시 대로 옮긴 것은 MBC 전체 프로그램의 틀을 뒤흔들었다. 시간대를 옮겼지만 여전히 시청률은 지상파 방송3사 꼴찌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고, 9시 대에 <구암 허준>이라는 일일사극 파격 편성 또한 그다지 시청률을 가져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뉴스데스크>의 시간대 변경은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의 공백을 가져온 셈이다.

 

시청률에 대한 집착은 MBC 주말드라마의 막장으로 이어졌다. <메이퀸>은 아동학대에 가까운 자극적인 전개로 시작해 개연성 없는 인물들의 변화와 극악스러운 캐릭터들을 세움으로써 시청률을 가져갔지만 대중들의 냉랭한 비판을 받았고, 그 바톤을 이어받은 <백년의 유산> 또한 비상식적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등장해 막장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오로지 시청률 지상주의가 가져온 MBC 드라마의 비극이다.

 

시청률 지상주의의 그림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드리워졌다.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8년 장수한 예능 프로그램인 <놀러와>가 떠난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종영되었고, 그 자리를 채웠던 <배우들>이라는 토크쇼 역시 시청률 난항으로 갑작스런 폐지를 맞았다. 아예 이제 MBC는 월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을 빼고 <MBC스페셜>을 편성함으로써 사실상 예능 포기선언을 한 셈이다.

 

이 월요일 저녁 시간대를 때우고 있는 <MBC스페셜>도 그 위상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다. 과거 참신한 기획으로 다큐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금요일 밤의 최강자로까지 자리했던 <MBC스페셜>은 끝없는 편성 변경으로 인해 한없이 망가져버렸다. 눈물 시리즈와 <휴먼다큐 사랑> 같은 좋은 아이템들이 즐비했던 <MBC스페셜>의 추락은 MBC의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뼈아픈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사장 한 사람의 전횡으로 인해 방송사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그것이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을 떨어뜨리는 그 일련의 과정이 지난 3년 동안 MBC에서 벌어진 일이다. 방송의 성패가 프로그램의 질만큼 대중들이 그 방송사를 바라보는 정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 3년이 준 뼈아픈 교훈이다. 해고 노동자 복직, 변방으로 밀려난 직원들의 원대복귀 등등 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김재철 사장이 물러난 자리를 누가 채우느냐는 문제다. 이 하나의 선택은 앞으로 MBC가 잃어버린 3년을 되돌려 다시 대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대중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인가를 가름하는 일이 될 것이다.

1975년부터 2013년까지, MBC는 왜 허준에 집착할까

 

MBC가 허준 소재의 드라마를 처음 방영한 것은 1975년이다. 당시 <집념>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일일드라마는 고 김무생 선생이 허준 역을 맡았다. 일일드라마라고 해도 거의 세트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76년 방송의 특성상 그다지 고된 작업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당시 신문을 보면 <집념>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매력은 출세에 대한 욕망과 그 성공을 위한 교육과 헌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분상승 욕구는 개발시대의 대중들이 가장 목말라했던 것이고, 허준의 어머니와 스승 유의태로 대변되는 교육은 그래서 그 유일한 길처럼 받아들여졌을 게다.

 

'구암 허준'(사진출처:MBC)

이 작품을 쓴 이은성 작가는 사실상 허준이라는 사극의 모태가 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드라마 <집념>의 성공으로 이듬해 1976년 이순재를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를 집필했고 이 영화는 77년 대종상에서 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이은성 작가는 거의 평생을 소설 <동의보감>을 쓰는데 보냈는데 미처 완결이 되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소설 <동의보감>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미완의 소설은 1991년에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의 사극으로 역시 MBC에서 제작된다.

 

사극 <동의보감>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겪고 난 후 87년을 기점으로 달라진 대중의식과 민초의식을 상당 부분 껴안음으로써 여러모로 75년도의 <집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허준이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지면서도 동의보감이라는 의서가 어떻게 민중의식을 담고 있는가를 주목했다. 누구나 쉽게 의학지식을 공유하겠다는 그 의식을 담고 있는 동의보감의 탄생 과정을 허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잘 그려냈다.

 

하지만 단 14회로 끝난 91년 작 <동의보감>에 어떤 미진함이 남았던 것인지, 1999년 MBC는 이병훈 PD와 최완규 작가의 <허준>을 제작한다. 이병훈 PD가 이미 91년작 <동의보감>을 기획했던 것으로 보아 그가 이 소재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허준>은 당시 변화해가는 사극의 흐름을 가장 전면에서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퓨전 사극으로서 이야기들은 더 미션화되고 구성과 에피소드가 탄탄하게 배열되었다. 그 유명한 구지침희(九鍼之戱 아홉 개의 침을 닭에게 놓고도 살리는 대결)를 벌이는 양예수와 유의태의 대결이나, 구안와사를 침으로 고치는 에피소드는 퓨전사극 특유의 미션구조와 맞아 떨어지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3년 허준은 이제 MBC에서 <구암 허준>이라는 이름의 일일사극으로 부활했다. 흥미롭게도 2013년 <구암 허준>의 주인공은 <집념>의 주연이었던 고 김무생 선생님의 아들인 김주혁이 맡았다. 의성으로 받들여지는 허준의 모습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허준을 그려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그 내용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게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MBC는 이토록 허준이라는 소재를 단골로 활용하는 걸까.

 

여기에는 이미 1975년도에 등장한 허준이라는 소재가 그만큼 파격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사극이라면 응당 떠오르는 것은 왕조 중심의 정통사극일 수밖에 없다. 그런 시대에 허준처럼 서출에서 시작해 어의가 된 인물의 성장드라마는 이미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약 10년 정도의 터울로 다시 제작되는 허준 소재의 사극은 식상해지기는커녕 당대의 정서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풍요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구암 허준>은 지금껏 허준 소재의 사극이 그래왔듯이 과연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미지수다. 일단 같은 일일극이라고 해도 <집념>이 방영되던 75년과 지금은 그 환경이 달라졌다. 세트 촬영으로는 마치 시트콤 같은 완성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야외 촬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사극이라는 노동 강도가 높은 장르를 일일극에 맞춰 찍어낸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다만 허준 소재의 사극을 수십 년 간 반복 제작하면서 갖게 된 무수한 준비된 에피소드들과 노하우는 <구암 허준>의 가능성으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2013년 현재의 정서를 어떻게 허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첫 회 시청률은 6,7%(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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