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달달한 로맨스로

졸업

교육 현실을 꺼내 놓는 방식

 

“풀이 스킬, 예상 문제 그런 거 말고 애들이 스스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요.” 이준호(위하준)는 지금까지 해왔던 서혜진(정려원)의 방식 대신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건 서혜진이 황당해하는 것처럼, 학원이 해야할 일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저 이걸 외워라 하고 하는 방식이 아니고, 제대로 텍스트를 읽고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보겠다는 것. 그래서 학생들이 국어 시험을 볼 때 선생님이 해주지 않은 데서 문제가 나올까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tvN 토일드라마 ‘졸업’은 서혜진과 이준호의 달달한 멜로로만 흘러갈 것 같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교육 방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 상황을 그려낸다. 이미 일타강사로서 성공한 서혜진 앞에서 이제 막 강사의 길에 들어선 이준호가 하는 말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 관계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같은 학원 선후배 동료의 관계라면 팀장인 서혜진의 한 마디만으로도 이준호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연인 관계로 발전한 상황에서 이준호의 말들은 꽤 도발적이다. 서혜진은 심지어 이준호의 이런 말들이 자신이 그간 쌓아온 경력들을 무시하고 모욕주는 것처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준호에게 “너 나 이렇게 자극하고 모욕해서 대체 얻는 게 뭐야?”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여기에 이준호가 툭 던지는 말에 이들의 말다툼을 듣던 사람들이 빵 터진다. “백년해로?” 

 

즉 서혜진과 교육방법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맞붙는 상황 속에서도 이준호는 서혜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자신이 하는 제안과 조언이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라 두 사람이 다 같이 잘 살기 위함이라는 걸 콕 짚어낸다. 서혜진은 화가 나다가도 이준호가 드러내는 이 진심 앞에 슬쩍 슬쩍 감정이 수그러든다. 사실상 이 대화는 토론에 가까운 것이지만, 멜로적 감정이 더해지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이건 ‘졸업’이 멜로를 활용하는 방식이고, 안판석 감독의 로맨스가 현실문제들을 꺼내놓는 방식이기도 하다. 안판석 감독이 최근 연달아 연출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 이어 ‘졸업’도 비슷한 결의 멜로드라마로, 그 달달함의 이면에는 지금껏 문제의식을 별로 느껴지 않고 살아왔던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일침이 담겨 있다. 

 

이를 테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손예진)는 서준희(정해인)의 사랑고백을 받기 전까지 회사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왔다. 심지어 성차별에 성희롱을 해도 그런게 다 회사생활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것. 하지만 서준희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윤진아는 변화하게 되고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싸워나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 

 

‘졸업’도 마찬가지 스토리 구조를 가진 멜로드라마다. 이준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서혜진은 잘 나가는 대치동 일타강사로 별 문제의식도 없이 수강생을 늘리고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재미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준호라는 첫 제자였고 동료 선생님으로 다가와 이제 연인이 된 존재가 그의 삶에 들어오자 서혜진은 변화한다. 

 

이준호의 친구 최승규(신주협)는 서혜진과 이준호가 다니는 학원 상담실장인 엄마 김효임(길해연)에게 이준호가 하려는 수업의 기획서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꽝은 아니에요. 서혜진 선생님 초창기 방식. 나도 이렇게 배웠어요.” 즉 이준호가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은 사실 서혜진이 초창기 이준호를 가르쳤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건 서혜진이 성공과 더불어 초심을 잃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혜진 선생님은 10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찬영고 최종병기가 됐고 준호는 시장을 다르게 잡은 거죠.”

 

이준호는 서혜진의 국어 수업이 좋았던 건 단지 국어만이 아니라 그 문해력을 높여주는 수업을 통해 전 과목의 성적을 올릴 수 있어서라고 했다. ‘졸업’이 굳이 다른 과목도 아닌 국어라는 과목을 소재로 가져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어는 결코 암기과목이 아니지만, 당장 계속 되는 시험을 치르고 등급이 나뉘어지는 상황 속에서 암기과목처럼 취급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준호는 국어를 암기과목처럼 대하는 방식의 수업을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다른 과목들까지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고 그건 다름 아닌 이준호가 국어를 좋아하게 되고 또 서혜진을 좋아하게 됐던 이유이기도 했다. 

 

첫 회에 등장해 서혜진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고집스런 모습으로 그려져 ‘공교육 비하’라는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던 표상섭(김송일) 역시 이준호처럼 서혜진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 때의 일에서 비롯해 결국 학교를 나와 학원강사의 길을 선택한 표상섭에 서혜진은 충격을 받지만, 표상섭은 이준호의 이야기를 듣고는 “헛소리가 아니라 로망 같은 데요?”라며 이준호와 비슷한 자신의 로망을 드러낸다. “애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울 필요 없이 제대로 읽게 만들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들고, 그걸 위해 자기 방식대로 애들을 가르쳐 보는 거. 그거 모든 선생님들 꿈일 거예요. 그걸 할 수 있는 곳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라는 게 역설입니다만.”

 

결국 서혜진은 이준호 앞에 항복을 선언한다. “이준호 니가 이겼어. 니가 이겼다.” 달달한 멜로를 그리고 있지만, 이를 통해 ‘졸업’은 입시경쟁으로 인해 비뚤어진 교육현실의 문제들을 저마다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학교선생님, 학원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꺼내놓는다. 문제의식 없던 한 인물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이가 만들어내는 로맨스와 삶의 변화. 이것이 안판석 감독이 이어오고 있는 멜로의 방식이다. (사진:tvN)

신하균 이외에도 '괴물'이 끄집어낸 연기 괴물들

 

신하균만이 아닌 모두가 연기 괴물들이었다.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그래서 드라마 말미에 되돌아보면 그 제목이 마치 이들 연기 괴물들을 지칭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첫 회부터 끝까지 드라마의 추동력을 중심에 잡아준 신하균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연기괴물이다. 그는 이동식이라는 피해자 가족이자 형사 역할로 범인과 사체를 찾으려는 절박한 심정을 그 눈빛 하나 표정 하나에도 담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이동식의 파트너이자, 동시에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든 한주원(여진구)은 <괴물>을 이끄는 또 한 축이었다. 지극히 공적인 형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모습과 점점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수록 사적인 관계와 충돌을 일으키는 한주원이라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여진구는 너무나 생생하게 잘 표현해 줬다. 배우는 함께 하는 배우로부터 배운다고 하던가. 신하균을 만난 여진구는 그래서 그 관계의 시너지를 통해 한껏 성장하는 배우가 됐다.

 

<괴물>은 신하균과 여진구 이외에도 다양한 '연기 괴물들'을 선보였다. 다리를 저는 평범하고 소심한 인물처럼 보였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 소름을 안긴 강진묵 역할의 이규회, 이동식의 절친이지만 그의 여동생을 차로 쳐 죽였다는 드러낼 수 없는 비밀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정제 역할의 최대훈도 이 작품이 끄집어낸 빛나는 배우들이다.

 

특히 최대훈은 <괴물>이라는 심리가 더해진 범죄스릴러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범죄에 가담하게 된 인물이면서, 그 피해자가 절친의 여동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물. 그 복잡한 심리는 <괴물>이 범죄스릴러이면서도 보다 깊은 감정과 정서적 쓸쓸함 같은 걸 더할 수 있게 된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조역이지만 최대훈의 연기는 주역만큼 중요하고 도드라졌다 평가된다.

 

후반부에 들어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도해원과 이창진을 각각 연기한 길해연과 허성태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의 넘쳐나는 욕망과 자식을 향한 모성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도해원이나, 그럴 듯한 사업가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든 야수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창진은,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최강 빌런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복잡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길해연과 허성태의 연기자로서의 저력 또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신인 같지 않은 신인 최성은을 빼놓을 수 없다. 만양정육점 주인으로 실종된 엄마를 기다리는 유재이 역할을 소화해내는 최성은은, 역시 이 지역의 살풍경하고 쓸쓸한 정조를 잘 드러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신하균, 여진구, 이규회 같은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 연기하는 모습 속에서 그는 신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냈다. 아마도 그로서는 <괴물>이 연기자로서의 성장에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괴물>이 이처럼 다양한 연기 괴물들을 발굴해내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그리는 인물들이 누구 하나 전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이나 아픈 상처 혹은 숨겨둔 욕망들을 갖고 있어 복합적이고 입체적이었다. 그러니 이를 소화해내는 연기자들의 잠재력이 인물들을 통해 끄집어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괴물>은 그래서 작품으로서도 괴물 같은 완성도를 만들어냈지만, 연기 괴물들을 쏟아낸 작품으로도 주목받는 작품이 됐다.(사진:JTBC)

포용 혹은 위계, ‘봄밤’이 그리는 두 세계의 대비

 

이정인(한지민)의 엄마 신형선(길해연)이 유지호(정해인)의 엄마 고숙희(김정영)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잡은 두 손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들이 있었다. 고숙희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에는 아이가 있어 자신의 삶을 거의 포기하듯 살아가고 있던 아들이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그럼에도 신형선이 가졌을 부담에 대한 미안함, 그러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손을 잡아준 그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었다.

 

MBC 월화드라마 <봄밤>이 짧게 보여준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너무나 상반된 두 개의 기성세계를 보여준다. 그 한 세계는 자신의 마음과 달라도 이를 이해하려 하고 포용하려는 세계다. 신형선은 그 세계를 대변하는 인물. 그는 딸 이정인이 만나고 있는 유지호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힘겹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딸을 꼭 껴안아줬다. 그 역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보통의 엄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고 그러니 그 힘겨운 선택을 한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끌어안아주게 되었던 것.

 

도대체 어떤 남자일까 궁금해 유지호가 일하는 약국을 찾아와 살피다, 우연히 인근 카페에 들어온 신형선은 거기서 고숙희와 약사 왕혜정(서정연)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들을 걱정하며 또 그런 아들과 만나는 이정인에 대한 좋은 마음을 드러내는 그 대화를 들은 신형선은 버스정류장에 홀로 앉아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고숙희에게 다가가 자신이 이정인의 엄마라며 손을 내민다. 그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다만 같은 엄마로서 서로를 이해한다. 그래서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이 전해진다.

 

반면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이 엄마들의 가슴 먹먹해지는 만남과 대비되는, 소원해져 서로 얼굴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이태학(송승환)과 권영국(김창완)의 관계를 병치한다. 정년을 앞두고 있어 이사장인 권영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딸 이정인과 그에게 집착하는 권영국의 아들 권기석(김준한)을 내놓고 밀어줬던 이태학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날아온 이정인과 유지호의 다정한 한 때를 사찰한 사진들과 그 사진들이 아마도 권영국이 보냈을 거라 판단하는 이태학은 더 이상 그런 장밋빛(?) 미래는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된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세계. 그들이 맺고 있는 모종의 거래 관계는 그것으로 차갑게 식어버린다.

 

<봄밤>은 다른 입장에 있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준 신형선과 고숙희의 인간적인 관계와, 서로를 이용하고 거래하는 이태학과 권영국의 권력과 연계된 거래 관계를 대비한다. 또 권력과 폭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려는 권기석과 남시훈(이무생)의 ‘범죄적 세계’와, 이에 맞서는 이정인, 이서인(임성언), 이재인(주민경) 그리고 신형선의 연대를 대치시킨다.

 

그래서 드라마는 초반부터 별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갈등과 대립의 요소들이 사실은 일상 속 깊이 들어와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걸 드러낸다. 차츰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평온해 보였던 일상에 담겨진 폭력적이고 권력적인 세계의 민낯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하지만 동시에 그에 맞서는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세계의 만만찮은 대결구도가 그려지면서 <봄밤>은 흥미진진해졌다.

 

달라도 손을 잡고 이해하려는 엄마들과, 타인의 입장이나 고통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기기 위해 ‘부정한 방법’들까지 동원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추구하는 이들의 세계. 그 팽팽한 대결구도에는 <봄밤>이라는 달달한 멜로를 소재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가는 드라마가 제기하는 만만찮은 문제의식이 담겨있다.(사진:MBC)

‘봄밤’ 송승환, 가정폭력 당한 딸에게 참고 살라는 아빠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뭐 이런 몰상식하고 천박한 아빠가 다 있나. MBC 수목드라마 <봄밤>에서 이태학(송승환)은 이 드라마 최악의 인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딸들의 행복이나 앞날보다 자신의 위신과 입장을 먼저 밝히는 천박함으로 시청자들마저 창피한 어른의 모습을 보였다.

 

둘째 딸 이정인(한지민)이 4년 간 사귀었던 권기석(김준한)과 헤어지려 하자 딸의 입장은 상관하지도 않고 “결혼하라”고 나서고, 이미 딸이 이별을 통보한 권기석을 만나 “뭐든 팍팍 밀어주겠다”며 결혼을 독려한다. 그 이유는 권기석의 아버지 권영국(김창완)이 자신이 일하는 학교 재단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후 학교 재단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권영국의 제안에 이태학은 반색하고 어떻게든 딸과 권기석을 결혼시켜 그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이미 정인은 마음이 돌아선 지 오래다. 그래서 이태학에게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을 전하지만 “마음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말로 일축하고, 심지어 자신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돌리라고 딸에게 종용한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딸을 정략결혼시키려는 이 자를 과연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더 심각한 건 첫째 딸 이서인(임성언)이 사위 남시훈(이무생)에게 당했던 가정폭력을 알면서도 “참고 살라”고 하는 이태학의 면면이다. 남시훈이 이서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걸 딸로부터 듣게 된 엄마 신형선(길해연)은 분노에 벌벌 떨며 사위를 찾아가 뺨을 올려붙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빠인 이태학은 무덤덤하고 심지어 차분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뒷일이 걱정되어 일부러 이태학을 찾아와 무릎 꿇으며 그 폭력이 술기운에 한 번 있었던 일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굳이 딸 이서인과 남시훈을 함께 앉혀놓고 그런 일에 이혼하면 결혼생활을 유지할 부부가 어디 있냐며 참고 살라고 말한다. 결국 이서인은 아이가 있다며 그런데 그 아이가 폭행에 의해 생긴 아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이태학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딸을 생각해서 한 말과 행동들이 아니었다. 그걸 정확히 보게 된 이태학의 아내 신형선은 집으로 돌아와 그를 질타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서인이 같은 일 당했다는 걸 봐도 부들부들 떨려야 정상이야. 당신이 얼마나 나를 실망시킨 줄 알아? 어쩜 그렇게 야비할 수가 있어. 내 새끼가 맞았는데 가정폭력 피해자가 됐는데도 행여나 누가 알까 무서워서 입 틀어막을 생각이었던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이혼이 뭐가 창피해. 자식보다 남의 시선이 무서운 천박한 부모가 부끄러운 거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속 시원한 일갈이었다.

 

하지만 이태학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정인의 결혼을 서두르라고 했다. 그것은 언니인 서인이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이 정인의 결혼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형선은 참지 못하고 “야 이태학. 네가 진짜 인간이냐?”하고 소리쳤다.

 

안판석 감독의 전작이었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는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어른으로 김미연(길해연)이 최고의 악역을 자처했지만, 이번 <봄밤>에서는 그 역할을 이태학이 차지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결혼을 두고 이를 반대하는 이들을 악역으로 내세웠지만, 이들이 표징하는 건 속물적이고 천박한 세상과 전혀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다. 심지어 부부강간을 당한 딸에게 “참고 살라”니. 이게 어디 어른, 아니 부모가 할 말인가.(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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