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과 개그맨의 조건

 

아마도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인간의 조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했을 지도 모른다. <개그콘서트>가 개그맨들을 발굴하고 키워내고 성장시키는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 그렇게 해서 성장한 개그맨들은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다양한 예능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지만 정작 그런 프로그램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게다가 <인간의 조건>은 그 프로그램 형식상 콩트에 적응한 개그맨들이 저 넓은 예능의 세계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전초전이자 훈련소이면서 또한 그 프로그램 자체로도 재미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절묘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또 <1박2일>에서도 몇 번 시도되었던 관찰카메라를 이용한 리얼리티쇼 형식이다. 그다지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개그맨들을 그것도 여럿을 한 공간에 세워두었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만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조건>은 현대인들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몇몇 문명의 이기들, 이를 테면 휴대폰이나 인터넷, TV 없이 일주일 간 생활하는 모습을 특별한 설정 없이 그대로 찍어 편집해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종 조미료(예를 들어 <1박2일>에는 복불복이라는 조미료가 있듯이)를 치지만 그것 없이도 맛있는 웃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의 조건>은 보여준다.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해 스케줄이 없는 양상국이 하루 종일 집을 지키다 집에 들어온 김준호를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는 장면이나, 잠깐 전화를 걸러 나간 양상국의 빈 자리를 김준호가 똑같이 느끼는 장면은 특별한 설정 없이도 웃음을 준다. 남들이 다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할 때 그 소리를 들으며 금단증상을 느끼는 김준호나, 늘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케이스를 만지작대는 정태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예능이 주는 특별한 웃음이다.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 몇 개를 빼냄으로써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인간의 조건>이 가진 특별한 의미는 따라서 동시에 예능에 있어서 조미료 역할을 하는 의도적인 설정 자체를 빼냄으로써 그 안에서 예능 본연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특이한 프로그램이다. 이 안에서 개그맨들은 지금까지 콩트 코미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일상적인 모습)를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은 콩트 코미디에 익숙해져버린 개그맨들에게는 새로운 적응훈련이 되는 셈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투입되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상황극을 자꾸만 하려 하거나, 개인기, 유행어를 선보이려는 콩트의 습관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부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카메라 앞에 있으라는 <인간의 조건>의 미션은 얼마나 좋은 기회이자 훈련인가.

 

<인간의 조건>은 리얼리티쇼가 갖는 다큐적인 속성 그대로 어떤 분명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개그맨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들을 한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인공조미료 없는 순수한 재미까지 선사하는 예능이다. 한참을 보다보면 거기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까지 느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콩트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우러지는 이미지의 변화과정은 앞으로 리얼 예능을 꿈꾸는 개그맨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인간의 조건>. 개그맨들에게 새로운 예능의 조건을 제시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남격>, 멤버교체보다 중요한 것

 

<남자의 자격>이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기존 멤버였던 전현무, 윤형빈, 양준혁이 하차하고 새 멤버로 차인표, 김준현, 심태윤이 합류할 예정이다. 기존 멤버들 중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은 그대로 남기로 했다. PD도 교체됐다. 조성숙PD 대신 <해피투게더> 등을 연출했던 정희섭PD가 수장을 맡았다. 벌써부터 새 멤버에 대한 찬반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로써 <남자의 자격>은 변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변화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신원호PD가 프로그램을 이끌었을 때는 확실히 <남자의 자격>만의 색깔이 분명했다. 중년 아저씨들을 전면에 내세운 예능으로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역력했고, 도전 과제 자체도 ‘전투기 조종’이나 ‘지리산 종주’, ‘마라톤’ 같은 좀 더 땀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제작에 있어서도 확실히 달랐다. 소재 기획에서만 봐도 ‘하모니’나 ‘자격증’ 같은 굵직한 장기 아이템들이 시도되었고,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촘촘히 채워 넣음으로써 중년의 도전 그 자체가 전하는 의미를 분명히 해주었다. <남자의 자격>은 그간 어딘지 소통되지 못하는 듯 여겨졌던 중년 아저씨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예능이었다.

 

하지만 신원호PD가 퇴사하고 조성숙PD 체제로 넘어오면서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귀농’ 미션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끝나버렸고, 대박 소재였던 ‘하모니’의 후속편인 ‘청춘합창단’은 지나치게 의도 과잉으로 편집되면서 전편만큼의 성과를 갖지 못했다. 특히 합창단의 어르신들을 주목한다는 이유로 멤버들이 실종된 것은 큰 문제로 지목됐다. 한껏 기대를 갖게 했던 ‘탭댄스’ 미션도 대거 편집되어 수개월을 준비해온 멤버들의 과정이 생략되는 파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즉 소재가 나쁘지 않았으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멤버들의 열의도 점점 식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의욕이 상실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한 회 한 회를 때우는 인상이 짙어졌다. 변화는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의미와 재미에 있어서 좋은 아이템이 이대로는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멤버 교체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먼저 중요한 것은 새롭게 재정비된 제작진들의 마인드다. 전체적으로 멤버들의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제작진이 이들을 장악하고 콘트롤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새 멤버가 수혈된다고 해도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경규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사실상 이경규 없는 <남자의 자격>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경규라는 대선배에 휘둘리는 <남자의 자격>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멤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선후배 관계의 수직구조가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게 되면 <남자의 자격>의 핵심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저씨들의 권위 깨기 같은 수평적 시선이 흐트러지게 된다. <남자의 자격>이 작금의 위기에 봉착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이 수평적 시선이 깨지면서 어딘지 선배의 후배 가르치는 분위기가 프로그램의 뉘앙스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젊은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불쾌감마저 느낄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의 새 멤버들을 갖고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에게 있다. 이들이 공고하게 갖고 있는 수직적인 관계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면 <남자의 자격>은 그 어떤 새 멤버가 들어온다고 해도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군림하려 하려는 이경규나 그것을 잘 받쳐주는 이윤석, 그리고 2인자로서 안주하고 있는 김국진과 김태원이 갖고 있는 안정적인 틀은 그래서 <남자의 자격>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결국 열쇠는 정희섭PD에게 달려있다. 얼마나 멤버들의 진심을 잘 끌어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중년을 다루는 예능에서 더 중요한 건 그들과 적당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이다. 그것이 없다면 <남자의 자격>은 시즌을 거듭해도 달라지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게 된다. 알다시피 시즌을 바꾼 후에 달라지지 않는 예능이란 살아남기 어렵다.


김준현,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

"고뤠?!"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김준현이라는 개그맨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그는 지금 가장 '핫'한 개그맨이 분명하다. 새로 시작한 코너 '4가지'에서도 단연 그의 존재감은 빛이 난다. 뚱뚱한 몸에 뻘뻘 흘리는 땀, 그리고 조금은 걸쭉한 목소리까지. "누굴 돼지로 아나-" 하고 툴툴대며 시작했다가 "마음만은 홀쭉하다"로 끝나는 그 짧은 멘트지만 그가 연기해내는 이 '뚱뚱한 사람(그래서 오해를 사는)'이라는 캐릭터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독보적인 느낌이 있다. 도대체 그게 뭘까. 이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을 직접 만나 물어봤다.

"연기력이 좋다고 하시는데, 과찬의 말씀입니다. 다만 대본을 보고 그걸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 수 있을 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합니다. 예전보다 조금 편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 때는 이걸 해야겠다. 저걸 해봐야겠다. 이런 의욕이 좀 과잉되기도 했었는데 5,6년차가 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죠. 그러면서 비로소 코너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죠.”

김준현의 연기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가 코너에서 활약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늘 사이드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중심으로 이동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DJ변의 별 볼일 없는 밤에’에서의 광고 패러디맨도 그랬고, ‘9시쯤뉴스’에서의 잎새반 김준현 어린이도 그랬으며, ‘생활의 발견’의 취객, ‘비상대책위원회’의 군당국자 역할로 그랬다. 그것이 모두 캐릭터를 살려내는 그만의 연기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쪽에서도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만나 본 그는 과연 연기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

“연기 고민이 본래 많은데, 관심을 가져주시니 더 고민이 많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해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한 걸로 한다고 터지는 것도 아니죠. 참 연기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연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굳이 배우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개그맨이지만 진짜 진한 페이소스를 줄 수 있는 그런 연기를 선보이고 싶죠. 김준호 선배님도 그런 쪽으로 길을 많이 뚫고 있는데, 적어도 개그맨들이 한 명의 코미디 연기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요즘 하고 있는 ‘4가지’는 ‘이 땅에서 오해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언대’로 만들어진 개그 코너다. 김준현은 이 코너에서 ‘뚱뚱한 남자’ 역할을 맡아 뚱뚱하다는 이유로 받는 갖은 오해와 설움을 토로한다.

“처음에는 김기열, 이종훈이 코너를 짰는데 허경환이 나도 시켜줘 해서 들어왔습니다. 나한테는 돼지 캐릭터로 하나 할 거냐는 제안이 와서 하기로 했죠. 그런데 처음에 이것은 콩트 형식이었습니다. 뭔가 빵빵 터지는 게 없어서 계속 고치고 바꾸고 했는데, 서수민 PD가 콩트 말고 그냥 자기의 핸디캡을 털어놓고 그게 어떠냐는 식으로 처음부터 치고 가자고 제안해서 방향성이 잡혔죠. 이 코너는 개그맨들은 바뀌어도 코너는 오래 지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핸디캡을 내세울 개그맨들은 널려 있으니까요. 김준호 선배도 이 코너를 하고 싶어하시더라구요. ‘오래됐다’는 콘셉트로 “오래된 개그 한번 해줘?”하고 치고 나오면 다들 좋아할 거라는 거죠.”

물론 김준현이 지금처럼 가장 관심을 받는 개그맨이 되기까지는 많은 힘든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서수민 PD는 김준현을 ‘폭소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때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친구였다”고 한다. 심지어 녹화도 빵구내고 잠수를 타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혼자 코너를 짜야 되기 때문에 외롭기도 했구요. 그게 결국 보니 동기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콘’으로 들어오면서 저도 동기들이 생겼죠. 지금 현재 ‘개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22기가 저의 동기들입니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도 되고 도움도 주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김준현은 열정의 개그맨으로도 불린다. 그가 코너를 할 때면 유독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후배 개그맨인 정태호는 김준현을 이렇게 평가했다. “안녕하세요” 하나 치는 것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고. ‘생활의 발견’ 같은 코너에서 식당 손님 역할을 할 때도 그는 기다리는 동안 결코 가만 있지 않는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진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연기에 쏟는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찬입니다. 물론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사실 체질상 제가 땀을 많이 흘립니다. 냉면 먹으면서도 육수를 뽑아내죠. 그래서 NG도 참 많이 냈습니다. '생활의 발견‘에서 제가 NG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었죠. 오래 기다리는 동안 땀에 마이크가 젖어서 첫 대사가 안 나오기 일쑤였으니까요. 살을 좀 뺄 생각입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너무 많이 찌면 연기하는데도 불편하게 되거든요.”

김준현이라는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저 뒷편에 잠깐 지나가는 역할조차 허투루 보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대본의 그 흔한 대사조차 유행어로 살려낼 수 있었던 것.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겸손하게 답하는 김준현에게서 ‘개콘’의 주축인 22기 중에서도 그 중심에 서 있는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감과 그 이면에 놓여진 노력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김준현의 연기력, '개콘'을 살린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고뢔?!"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조금은 과장되게 질러대는 김준현의 이 대사는 대본에 어떻게 적혀 있을까. 대본에는 그저 "그래?"라고만 적혀 있다. 그런데 그 평이한 되물음이 김준현의 입을 거친 후,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 발휘된 것일까. 그것은 연기력이다.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은 저마다 특성이 있다.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김준호 같은)이 있는 반면, 개인기를 장기로 하는 개그맨(이승윤 같은)이 있고, 아이디어가 좋은 개그맨(최효종 같은)이 있는 반면, 얼굴이 무기(?)인 개그맨(박지선 같은)도 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개그맨은 누구일까.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이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대본이 있어도 '살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김준현은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이다. 그가 지금껏 들어간 코너의 면면을 보면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메인을 맡기보다는 메인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주로 했다. 그의 존재감이 가장 먼저 보였던 'DJ변의 별볼일 없는 밤에' 코너에서 그는 변기수를 보조해 영화광고 패러디 원맨쇼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처음에는 보조 정도로 생각됐지만 차츰 김준현의 광고 성우 역할이 더 화제가 되는 상황이 되자 분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9시쯤 뉴스' 코너에서도 김준현은 개콘유치원 잎새반 김준현 어린이 역할로 주목받았다. 어린이 같은 얼굴로 어른 세계를 풍자하며 분노하는 연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100% 이상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생활의 발견'에서 우연히 남녀 간의 대화에 끼어들게 되는 주로 취객 역할로 투입된 건 김병만의 추천이 있어서였다. 현재 '생활의 발견'은 어느덧 초반 송준근 신보라가 이끌던 분위기에서 이제는 김준현의 끼어들기 개그로 중심이동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편 '비상대책위원회'에 군당국자 역할로 그가 들어간 것은 이 코너의 메인인 김원효의 연기를 좀 더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서수민PD의 제안으로 들어간 김준현은 역시 이 코너에서도 확실한 자기 영역을 만들어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하고 '비대위'의 관료주의를 꼬집지만, 정작 자신은 상황 파악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군 당국자의 역할은 긴장감을 만들었다고 일시에 풀어내는 김준현의 연기력이 그만큼 돋보이는 코너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네가지'에서 김준현은 뚱뚱한 사람 역할을 맡았다. '네 가지'는 못생긴 사람, 좀스러운 사람, 뚱뚱한 사람, 잘 생기기만 한 사람이 각각 나와 발언대에 올라 자신들에 대한 오해를 토로하는 코너다. 이 코너에서 김준현은 벌써부터 "누굴 돼지로 아나-"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뚱뚱하고 땀을 줄줄 흘리는 그 모습으로 엉뚱하게 오해받는 역할은 김준현이라는 개그맨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그 연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냈다.

김준현이 지금껏 해온 개그 코너에서의 역할을 보면 결코 주인공으로 나선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보조 역할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는 주목받는 역할이 된 건 그 특유의 성실성과 연기력 때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즉 이제 김준현은 다른 개그맨들이 코너를 짜도 거기에 '꽂아주고 싶은' 개그맨이라는 얘기다. 그가 코너를 살려주는 '개그콘서트'의 연기담당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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