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국민 예능으로 거듭나고 있을 때, 또 그 여파를 몰아서 '해피선데이'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남자의 자격'이 하모니 특집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실질적으로 이 남자들의 예능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있었다. 프로그램 전면에 나와 있는 이명한 PD나 나영석 PD가 한창 주목을 받을 때, 그들 옆에 앉아 있던 인물. 바로 이우정 작가다. 그녀는 당시 이 두 남성적인 예능의 14명의 남자 MC들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안방마님으로 알려져 있었다. 2008년 KBS 연예대상 쇼 오락부문 방송작가상, 2010년 한국방송작가상 예능 부문을 거머쥐면서 그녀는 예능 작가계에서는 드물게(드물지만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새로운 스타 작가의 탄생을 알렸다.


 

오른쪽부터 이우정,모은설,이현희 작가(사진출처:시사저널)

하지만 업계에는 이처럼 이미 스타 작가로서 자리매김한 이우정 작가였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예능의 대세였던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격상 예능 작가라는 존재는 어딘지 드러나면 안되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었으니까. 당시 터졌던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논란은 리얼 예능에 있어서 그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대본의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었고(그것이 그저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따라서 대본을 쓰기 마련인 예능 작가도 숨겨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또 달라졌다. 이제 예능에 있어서 대본은 반드시 필요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고, 예능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들의 선망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예능 작가의 세계. 도대체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스타 작가들은 어떻게 그 위치에 오르게 되었을까.


이우정 작가는 무역학과 출신으로 사회의 첫발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MBC아카데미에서 작가 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에 방송작가들의 등용문은 MBC아카데미 같은 방송사 산하 교육기관이나 방송작가교육원 같은 곳이 하나의 거쳐 가는 길로 정해져 있었다. 아카데미 같은 교육기관으로 방송사에서 인력을 요청하면, 예비 작가들이 자신의 이력서와 간단한 포트폴리오(대본구성안)를 제출하고 거기서 발탁되면 일을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우정 작가는 2000년도에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인 '백만 송이 장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였던 서바이벌 형식을 따와 만든 연예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이우정 작가는 '21세기 위원회'로 사실상 입봉(?)을 했고, 후에 KBS로 와서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운명(?)적인 두 PD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이명한 PD와 나영석 PD다. 그 후로 나영석 PD의 '여걸파이브', '여걸식스' 작업을 했고 후에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으로 우뚝 섰다. 현재는 이명한 PD와 '더 로맨틱'을 하고 있고 또 '남자의 자격'을 함께 했던 신원호 PD와 시트콤 '응답하라 1997'을 준비 중이다.


어찌 보면 이우정 작가의 성공은 좋은 PD를 만났던 것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 예능 작가의 성공이 어떤 PD를 만나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의 경우는 어떤 면에서는 PD들을 확실히 뒷받침해줌으로서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작가로 이름나 있다. 같이 작업을 한 PD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한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으로 서슴없이 이우정 작가를 지목하곤 한다. 그만큼 확실한 자기 역량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우정 작가가 주로 리얼 예능쪽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점도 그녀의 성공에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침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의 대세로 자리하면서 예능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자질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우정 작가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예능 작가들이 하는 일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주로 하는 일이 게임을 개발하는 거였어요. 그게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거의 하는 일이 PD와 비슷해요. 물론 PD의 고유영역이 분명 존재하지만 기획에서부터 심지어 편집에까지 예능 작가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죠." 또 리얼 예능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본을 쓰는 일보다는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일과 후반작업이 더 중요해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대본은 분명 존재하지만 대본을 상세하게 쓰거나 아니면 느슨하게 쓰는 것은 작가와 프로그램의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했다.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의 경우 작가들은 대본을 쓰기 보다는 현장을 읽고 발견하는 작업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예능 작가라고 하면 '작가'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듯이 무언가를 집필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리얼화된 예능의 트렌드 속에서 이런 역할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예능이 아니라 토크쇼 같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예능작가들은 어떨까. 작년 K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 쇼 오락부문을 수상한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모은설 작가는 이 분야에서 베테랑이다. 96년도에 기자시험을 준비하던 그녀는 선배의 권유로 'TV는 사랑을 싣고'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이 길로 들어섰다. 당시에는 아르바이트였어도 너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프로그램 성격 때문에 재연대본(과거 이야기를 재연하는 대본)과 추적대본(실제 과거 인물을 쫓아가는 대본)을 써내는 게 당시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프로그램을 관장하시던 PD분이 바로 개그맨 김준현의 아버지인 김상근씨였는데, 대단한 능력을 가진 워커홀릭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던 분들이 연결이 되어 그 후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뮤직플러스', '감성채널' 등을 한 후 '비타민'과 '미녀들의 수다'는 기획부터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역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부터 인연이 된 이기원 PD와 줄곧 같이 작업을 했다고. 그 후로 윤현준 PD와 '상상플러스', '승승장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스튜디오물에 있어서 작업은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예전과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과거에도 섭외와 대본 작업이 주였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토크쇼라면 특히 섭외, 조사, 큐시트 작업이 거의 주라는 것. 하지만 연차가 달라지면서 하는 일은 거의 전방위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기획에서부터 편집 자막 작업에까지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방송국이 파업을 하는 와중에도 방송이 그나마 나갈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이런 모든 작업에 관여했던 예능작가들이 있기 때문이죠. 방송사에서는 그 작업 자체를 외주를 주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하면 방송 자체가 망가질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예능작가들이 그 편집 작업까지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죠."


사실상 거의 모든 일을 하는 등 전방위에서 뛰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그래도 예능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과 관계된 것이라 한다. 결국 예능의 핵심은 그 안에 담겨진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토크쇼 같은 경우에는 섭외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 모은설 작가는 심지어 쇼에 나오기로 하고 대본 작업도 다 끝났는데 촬영 하루 전에 게스트가 못나오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유가 황당했죠. 작업한 대본을 보냈더니 자기 인생이 이렇게 초라한 줄 몰랐다며 이렇게 자신이 비춰지는 게 싫다는 거였어요. 결국 밤새 설득해서 다음 날 촬영을 할 수 있었죠." '안녕하세요'의 이현희 작가는 그래도 연예인들은 준비된 이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는 낫다는 말한다. '안녕하세요'는 일반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그들이 나중에는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모든 걸 다 체크할 수가 있겠어요. 사실 증명서 같은 걸 떼어서 보자고 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현재 tvN에서 일반인들의 러브 리얼리티쇼인 '더 로맨틱'을 하고 있는 이우정 작가 역시 일반인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성격상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방송으로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점에 있어서 늘 고민을 하게 되죠."


예능작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그들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궁금증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능작가들은 현재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 이들의 직업은 향후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99년 스크립터로 시작해 2001년 '동물농장'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스펀지', '상상플러스', '미녀들의 수다', '안녕하세요'를 작업해온 이현희 작가는 최근 예능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변에도 예능작가출신의 드라마 작가, 시트콤 작가, 뮤지컬 작가까지 다방면에서 예능작가의 영역이 많아지고 있죠." 실제로 예능작가 출신으로 현재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전체 시청률 1위(36%에 육박)를 기록하고 있는 박지은 작가도 예능작가 출신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도 초기에는 '사랑의 스튜디오'의 예능작가를 해던 인물이다. 이현희 작가의 경우 네이버와 합작으로 '환타스틱 어른백서'라는 책을 쓴 적도 있고, '서태지 8집 다큐' 작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다양한 분야에서 예능작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우정 작가가 시트콤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예능작가의 영역이 거의 음지에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만 국한됐다면 요즘은 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넓혀지고 있다는 것. 이렇게 된 것은 예능작가라는 특성상 다방면에 대한 경험이 많다는 점과, 또 늘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자질로서 중요하게 어필되는 지점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 방송 트렌드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즉 '드림 소사이어티'로 접어들면서 삶의 가치로서 펀(fun)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고, 따라서 모든 콘텐츠가 펀을 지향하는 흐름이 방송에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들은 상당 부분 코미디를 필요로 하고 있고, 대다수의 교양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인포테인먼트로 전환되고 있다. 모은설 작가는 이런 변화 때문에 예능작가들의 영역이 점점 넓혀지고 있는 반면, 교양작가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교양작가들이 했던 것들을 지금은 예능작가들이 하고 있죠. 예를 들어서 '비타민' 같은 경우 이제는 교양이 아니라 예능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점점 교양작가들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예능작가들의 처우는 하는 일에 비한다면 결코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확실히 좋아진 게 사실이고, 그 비전은 앞으로 방송 전체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장밋빛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 분야에 뛰어든다고 처음부터 이런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이우정 작가나 모은설 작가 그리고 이현희 작가 모두 '적어도 10년'을 버틸 수 있는 예능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상과 인간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필수이고, 사람들과 서슴없이 친근해질 수 있는 친화력도 중요하며, 또 예능이라고 해서 그저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철학과 생각을 갖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펀 사회로 접어들면서 예능의 시대의 문은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존재들로서 그간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예능작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나갈 드림 소사이어티는 어떤 세계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예능작가 얼마나 벌까-------------------------------------------------------
예능작가의 벌이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들 중에도 A급의 수입과 B급의 수입이 천지차이인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프리랜서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그 능력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반향에 따라서 예능작가들의 수입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충의 기본적인 수입의 수준은 분명 존재한다. 보통 처음 들어온 예능작가의 경우에는 주당 3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한 주에 한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10년차 정도가 되면 주당 1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벌고, 메인급이라면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번다고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예능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메인급 작가들은 한 주에 한 프로그램만 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두 탕을 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물론 한 편에 집중하는 것만큼의 수입보다는 낮게 책정되지만 두 편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수입이 많아진다는 것. 이런 기본적인 수입 구조를 통해 볼 때 최고로 잘 나가는 작가들은 연봉 1억을 넘긴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예능작가의 메인 잡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버는 수입만을 추산한 것이다. 여기에 때때로 들어오는 강연 수입이나 책 출간으로 생기는 인세수입, 혹은 각종 원고료를 더하면 수입은 더 많아진다. 게다가 시트콤 같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 수입의 단가가 달라진다. 시트콤은 드라마의 영역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쳐주기 때문이다. 향후 예능작가들의 비전은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는 방송사와의 문제 같은 풀어야할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법률적인 조항이 생긴다면, 향후 예능작가들은 이른바 '포맷' 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자신이 만든 포맷과 아이디어를 팔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게 되면 예능작가들처럼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분야의 향후 비전은 훨씬 좋아지게 되는 셈이다.

 

예능대본 과연 어떤 걸까----------------------------------------------------
리얼 예능으로 접어들면서 대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마치 리얼리티가 없는 것처럼 오인되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예능대본은 모든 방송대본이 그러하듯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심지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나가도 미리 사전 인터뷰를 통해 대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작업하면 대본대로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리얼 예능에서 대본이란 하나의 설계도 같은 것이다. 그 안에 목적이 있고 목표도 있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리얼 예능의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예능 작가들은 대본대로 움직이는 방송분량은 사실상 건진 게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의 경우 PD의 성향이나 프로그램의 성격 상 좀 더 상세한 대본이 만들어지고 실제로 행해지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토크쇼 같은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좀 더 상세한 대본이 만들어진다. 물론 충분한 사전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렇게 대본이 충만해야 토크쇼도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해진다. 예능 작가들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에 따라 보다 상세한 설계도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예능대본이 반드시 존재하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대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예능인과 방송인 사이, 전현무가 처한 상황

 

전현무는 밉상이다. 선배건 후배건 사사건건 깐족대는 건 일쑤고, 프로그램은 실수투성이다. 춤은 저질 수준이고 노래는 듣기 힘들 정도다. 물론 누구나 알다시피 이건 캐릭터다. 하지만 아무리 캐릭터라고 해도 본업이 아나운서라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아나운서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 어딘지 딱딱하고 단정하며 신뢰가 가는 그 이미지를 그는 확실히 뒤집어엎었다. 아이러니이지만 바로 이 반전요소 때문에 전현무는 대중들의 눈에 들었다.

 

 

'불후의 명곡2'(사진출처:KBS)

아나운서라는데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는 사실은 전현무라는 전혀 새로운 방송 캐릭터의 핵심적인 포지셔닝이다. 물론 기존에 아나테이너로 대변되는 아나운서들의 변화의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전현무는 다르다. 그는 여타의 아나테이너들처럼 방송사로부터 프리선언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아나테이너들에게도 어떤 보이지 않는 벽으로 여겨지던 버라이어티쇼까지 진출했다. '생생정보통'에서 아나운서로서는 튀는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던 전현무는, '해피투게더'나 '남자의 자격'에서 한없이 망가지며 웃음 주는 전현무로 변신했다.

 

전현무는 따라서 현재 아나운서라기보다는(물론 서류상으로는 아나운서가 맞겠지만), 예능인에 더 가까운 포지셔닝으로 옮겨갔다. 아나테이터라는 위치가 시대적 요청(정보에도 재미를 요구하는)에 의한 아나운서들의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면, 전현무는 아예 그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신뢰 있는 정보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전현무에 요구하는 건 밉상 캐릭터거나 저질 댄스거나 돌발 발언으로 스튜디오를 초토화시키는 그 독특한 예능감이다. 우리는 어느새 전현무에게서 재미만을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지점은 전현무에게는 그다지 유리한 것이 아니다. 전현무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애초부터 개그맨이나 예능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아나운서라는 어딘지 엄밀해 보이는 직업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예능감이 훨씬 돋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나운서로서의 이미지나 포지션이 점점 흐릿해지는 건 나아가 예능인으로서의 포지션 또한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에 KBS가 파업 중이라는 사실은 전현무에게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서 방송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운서들이 스스로 자신을 어떤 위치에 세우는가 하는 점은 자신들의 정체성과도 관련 있는 문제다. 방송PD들과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 전현무는 어떤 위치에 자신을 세울 것인가. 방송인인가 아니면 예능인인가. 오상진 아나운서와의 비교점이 만들어지고, 개념과 무개념 운운되는 논란이 생긴 건 지금껏 전현무 같은 애매모호한 포지션의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활동은 연예인처럼 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위치는 방송사의 직원이자 아나운서인 전현무는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곤혹을 치를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모두가 파업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연예인처럼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전현무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연예인(방송인)이든 아니면 방송사에 소속된 아나운서든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이런 애매한 포지션은 사라지겠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현무는 아나운서라는 바탕과 그것을 뒤집는 예능인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 축조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전현무는 지금 위태로운 위치에 서 있다. 아나운서라는 바탕을 버리면 자칫 밉상이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밉상이 될 판이다. 그렇다고 예능인으로서의 활동을 좀 더 본격화하거나 아예 버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것은 전현무라는 독특한 경계의 캐릭터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필 동료 아나운서들이 거리로 나가는 이런 시기에, '불후의 명곡2'에서 하차한 김구라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은 그래서 전현무에게는 정말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현무는 그저 본격적으로 예능인으로서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아나운서라는 본래 위치를 함께 가져갈 것인가. 그 상황이 애매하고 선택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 정답은 나와 있다. 아나운서라는 위치를 버리는 순간, 예능인으로서의 길도 쉽지 않은 것이 전현무가 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현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경규,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옷 입어야

이경규는 1960년생, 만으로 51세다. 한때 함께 '일밤'을 이끌었던 주병진(1959년생)과는 한 살 차이다. 둘 다 토크쇼를 하나씩 하고 있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주병진은 어딘지 옛날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지만, 이경규는 현역의 냄새가 난다. 당연할 것이다. 이경규는 물론 중간에 휴식기가 있긴 했지만 계속 방송의 끈을 놓지 않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새로운 장르가 예능의 트렌드로 등장했을 때도 이경규는 옛 것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그 새로운 트렌드를 도전했다. 이것이 이경규와 주병진을 가르는 지점이다.

그래도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51세라는 나이는 예능에서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사실 물리적인 나이가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이경규는 실제로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서 식스 팩을 만드는 몸짱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물론 체력적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프 마라톤이나 지리산 종주 같은 미션을 이경규는 잘 수행해냈지만 역시 힘겨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그렇게 해내는 것이 보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예능 프로그램(특히 '남격' 같은 도전이 미션인)에서 미션은 한계를 뛰어넘을 때 감동을 주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힘겹게 여겨지거나 안쓰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면 보는 이들도 불편해질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슬랩스틱에서 누군가 머리를 딱 때렸을 때 맞은 사람이 웃을 수 있어야 관객도 웃게 되는 이치와 같다. 만일 맞은 사람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면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남격'의 미션이 그렇게 과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경규라는 예능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그래서 확고한 자기만의 영역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 '남격'처럼 몸으로 부딪치는 예능을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의 답처럼 제시되는 프로그램이 '힐링캠프'다. 사실상 이경규가 메인으로 진행한다고 봐도 될 '힐링캠프'에서 그는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무리 어려운 게스트가 나와도 자신의 캐릭터(귀찮아하고 톡톡 쏘는)를 유지하고 어려운 질문도 피해가지 않는다.

차인표가 나왔을 때, 첫 질문부터 독하게 "연기자로서 주목받기 보다는 나눔의 아이콘으로 더 주목받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 "라면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요"라는 차인표의 응수에 되려 당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차인표가 행한 많은 일들에 대해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경규의 모습을 보다보면 그는 '힐링캠프'의 MC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말 그대로 빠져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김정운 교수를 찾아가서도 처음부터 "사짜 느낌"을 거론하고 그쪽으로 몰아갈 수 있는 건 역시 이경규만한 경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정운 교수의 자화자찬하는(?) 특징을 콕 집어내 자신도 그런 캐릭터임을 드러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상황을 공감하는 장면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힐링캠프'가 때로는 19금 토크를 하고, 때로는 정치인을 게스트로 데려와도 그 소재들을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이유 역시, 이경규라는 경륜의 소유자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주는 편안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주목되는 건 '힐링캠프'에서 한혜진 같은 보물(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재적소에 할 이야기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 물어보는)이 발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이경규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한혜진의 그 착하고 순수한 심성이 한 몫을 한 것이지만, '힐링캠프'의 최영인CP는 한편으로 그것을 잘 받아준 이경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경규가 '남격'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힐링캠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격'은 어딘지 힘들어도 억지로 하는 듯한 인상이 짙지만, '힐링캠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진심으로 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나이 오십 줄을 넘겨 젊은이들도 힘겨워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그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경규 정도의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이 그 경험을 잘 녹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는 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힐링캠프'는 이경규의 그 '잘 맞는 옷'이 되어주고 있다.


예능에서 저평가된 작가라는 존재의 진가

'1박2일'(사진출처:KBS)

'해피선데이'의 최고 전성기는 재작년일 것이다. 그 때 '1박2일'은 강호동을 위시해 전체 예능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었고, '남자의 자격' 역시 '하모니'편을 통해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PD까지 주목받게 할 정도였으니 그 팬심이 어디까지 닿아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실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전면에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은 '해피선데이'의 숨은 공신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우정 작가다.

당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두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를 하고 있던 이우정 작가는 그 엄청난 수의 남자들(이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모두 남자들이 아닌가)을 사실상 만들어낸(물론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본인이지만 인터뷰를 꺼려했다. 그것은 작가, 그것도 리얼 예능의 작가라는 지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 예능에도 작가가 있었어?'하는 오해는 이우정 작가라는 발군의 재원이 대중들에게 잘 소개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의 기획력과 순간 순간 상황에 따라 만들어내는 아이템들은 이미 당시 '해피선데이'의 CP였던 이명한PD나 PD인 나영석PD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 있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을 이끄는 건 이우정 작가라는 것에 모두 동의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자격'이 갑자기 프로그램의 매력을 잃게 된 데는 물론 PD 교체의 원인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우정 작가가 빠져나오면서 생긴 변화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시즌2로 만들어지는 '1박2일'에도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다.

작가들은 직업의 특성상 방송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이직(사실상은 이직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프리랜서니까.)이 그만큼 잦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우정 작가를 놓친 것은 '해피선데이' 최대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 그 차원을 넘어선다. 즉 작가는 어찌 보면 프로그램의 인력(제작진에서부터 출연진까지)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유출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타 인력들의 유출(때로는 출연진들까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KBS처럼 스타를 키우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덩치가 커진 PD들이 타방송사로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소속PD들이 이런 상황인데, 소속도 아닌 작가들은 오죽할까. 실제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두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라는 강행군을 해오면서 이우정 작가가 그만한 대우를 받았을까는 의문이다. 소속되지 않은 작가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지만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다.

이우정 작가가 '1박2일' 시즌1을 끝으로 '해피선데이'를 떠나게 된 상황은 그래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브레인을 잃은 것이면서 동시에 인맥을 잃은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떤 PD를 세우는 것보다도 작가 하나를 제대로 붙잡아 두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예능과 교양 같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방송작가들에 대한 방송사들의 인식은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제 아무리 리얼이라고 해도, 프로그램의 얼개와 기획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툭하면 자르고 교체하는 지금의 작가를 대하는 방식으로는 프로그램의 핵심인 작가들의 성장을 가로막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결국 프로그램의 질적인 저하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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