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없는 리얼버라이어티쇼는 없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은 신년 첫 미션으로 '남자, 그리고 식스팩'을 다뤘다. 새해를 맞아 각오도 남달랐을 것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남격' 아저씨들은 배에 왕(王)자를 새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MBC에서 차승원이 '헬스클럽'을 통해 시도된 소재지만 '몸 만들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신년인데다가 '남격'의 아저씨들이 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이 미션은 프로그램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사실 '남격'이 과거 같지 않다는 비판이 생겼던 것은 바로 진정성 부족을 느끼게 만드는 '날방'의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대표주자는 이경규다. 그는 제빵사 도전에서도 실패했고, 오토바이 면허 도전에서도 실패했다. 물론 실패는 나쁜 게 아니다. '식스팩' 미션 역시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패를 어떻게 비춰주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남격'의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소재도 나쁘지 않고 미션을 임하는 멤버들의 자세도 그다지 불량하다 할 수 없지만, 이들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방식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춘합창단'을 기점으로 '남격'에서 몇몇 멤버들은 화면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때 대부분의 멤버들이 그랬지만, 특히 김국진, 이윤석, 윤형빈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저 가끔 이경규와 전현무가 자가 발전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편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물론 이유는 있다. '청춘합창단'의 주인공은 거기 서 있는 어르신들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 살 도려내듯 멤버들의 방송분량을 잘라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청춘합창단'을 지속하면서 김태원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멤버들이 거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건 큰 잘못이다. 최소한 그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줬어야 '청춘합창단'이 '남격'의 소재로서 하게 되는 명분이 된다. '청춘합창단'은 하모니를 다루는 독립된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특정한 결과를 상정할 때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억지로 결과를 도출하려 하는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무리하게 과정을 짜 맞출 수도 있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과정이 과도하게 생략됨으로써 미션 자체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경규가 제빵사 미션에서 연거푸 떨어졌거나 오토바이 면허 도전에서 떨어진 것은 이 과정을 중시했다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흐지부지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왜 그 과정들은 모두 생략되었을까.

1년 동안의 프로젝트였던 '귀농' 미션 역시 과정이 생략되고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 '탭댄스' 미션은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지만 과정이 사라진 채 마지막 대회만 보여주었다. 개인 출전권을 갖게 된 이윤석은 정말 노력한 티가 역력했지만 그 땀의 장면들은 편집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이유는 함께 하기로 했던 탭댄스 미션에서 어느 순간 쑥 빠져버린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을 통해 유추될 수 있다. 이들이 빠진 과정은 생략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 즉 이윤석, 윤형빈, 전현무, 양준혁이 노력하는 과정을 길게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이 과정을 잡으려면 모두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어야 한다. 빠진 이들은 왜 빠진 것이고 뽑힌 이들은 왜 뽑혔는지를 말이다. '탭댄스' 미션의 이 그림들은 마치 선배들은 빠지고 후배들만 굴리고는 자기들이 빠졌기 때문에 후배들도 빠져야 한다는 볼썽사나운 수직체계의 인상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남격'의 이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나오는 상황은 자칫 멤버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나오지 않고, 결과적으로 늘 나오던 얼굴들(대체로 이것도 서열 순이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그 누가 열의를 갖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느낌은 '남격'을 노후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린다. 즉 서열과 라인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팀의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얘기다. 이경규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남격'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수직적인 서열의 느낌과, 과정보다 결과만 드러나는 상황, 그럼으로써 리얼이 아니라 만들어진 듯한 인상이 거기서 생겨나는 데 있다. 이경규처럼 나이든 대선배가 더 돋보이기 위해서는 혼자만 잘나갈 게 아니라, 유재석처럼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다른 멤버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남격'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무한도전'의 아저씨 버전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남격'은 '무한도전'이 아니라 '라인업'이 되어가고 있다. 팀원들의 수직적인 체계가 가져오는 이 고루함을 없애고 '무한도전'처럼 수평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맨 꼭지점만 드러내는 수직체계로는, 모두를 동등한 눈높이에서 보고 그 각자의 캐릭터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남격'이 신년에 들어와 시도하는 '식스팩' 미션은 소재에 있어 시의적절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미션 자체보다 중요한 그 미션을 수행하고 영상에 담아내는 방식의 변화가 없는 한, 이 미션 역시 그다지 공감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격'이 그들 말대로 "3년을 버텼으니 2년은 더 갈 수" 있으려면 바로 이런 변화가 시급하다. 꼭지점을 없애고 수평화시킨 후, 각각의 캐릭터들이 수행하는 과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


'런닝맨', 일요예능 새 강자의 조건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급성장한 시청률이 '나가수'를 앞지르고 '해피선데이'를 코끝가지 추격하고 있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이 프로그램은 나날이 진화하는 게임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그 날의 미션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 게임 형태에 스파이라는 변수를 집어넣자 이야기는 끝없이 반전으로 치닫는다. 송도에서 벌어진 미션에는 더블 스파이라는 개념을 넣어 반전에 반전을 주었다.

스파이가 되고 싶은 지석진과 이광수에게 스파이 미션을 주고, 사실은 김수로와 박예진이 진짜 스파이 역할을 하게 한 이 미션은 흥미로운 트릭이 엿보였다. 즉 도시를 가득 메운 풍선 속에서 런닝맨들이 미션의 단서를 찾는 과정에서 '수'자와 '진'자를 먼저 발견하게 한 것. 이 두 글자는 지석진과 이광수에게는 자신들의 이름에서의 한 자씩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김수로와 박예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실로 절묘한 제작진의 트릭이 아닐 수 없다.

게스트로 등장한 김수로와 박예진은 확실히 이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에 활기를 만들었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과 김종국 등과 함께 한 패밀리로 예능을 겪었던 그들인지라 그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 김수로가 가진 '게임마왕' 캐릭터는 능력자 김종국을 능가하는 '초능력자' 캐릭터로 되살아났고, 달콤 살벌 박예진은 제대로 된 타이밍에 송지효를 아웃시키며 그 캐릭터가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들이 출연한 지난 주부터 급격히 시청률이 오른 것에는 분명 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런닝맨'의 급상승에는 타사 경쟁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이나 '바람에 실려' 같은 프로그램의 부진이 한 몫을 하는 게 사실이다. '남자의 자격'은 청춘합창단 이후 급격히 힘이 빠지고 있다. 이어서 했던 '야구' 소재는 프로야구에 묻혀버렸고, '시' 소재는 참신했지만 '귀농일기' 마지막편은 급작스런 느낌이었고, 모터바이크 편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제는 소재도 소재지만 웃음의 포인트가 너무 개인기에 집중되는 인상이다. 무언가 '남자의 자격'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소재발굴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바람에 실려'는 음악이라는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예능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음악 이외에 다른 부분들은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특히 임재범이 무대에 섰을 때와, 무대 바깥에 있을 때의 호불호는 확실히 갈린다. 이번 레이크 타호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 벌어진 김영호와의 마찰은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무슨 일인지 편집이 좀 과도하다는 인상이 짙다. 그래서 이 마찰은 프로그램의 주제곡인 'Saddle the Wind'를 처음 발표한 감동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즉 음악의 탄생과정을 보여주는 건 흥미롭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임재범의 잠적이나 멤버들 간의 갈등이 편집 없이 보여진 것은 과연 이 프로그램에 어떤 이익을 주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타사의 같은 시간대 일요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동안, '런닝맨'은 뚝심 좋게 줄곧 앞으로만 달려온 느낌이다. 게임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시청자들도 룰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엄밀히 말하면 '런닝맨'의 이런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게임이 시청자들에게 이해되기 위해서 사실은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런닝맨'은 그 캐릭터도 어느 정도 구축되고 있고, 그 게임의 흐름 역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바탕으로 계속 새로운 반전(의외의 전개)을 만들어온 것이 현재 '런닝맨'의 승승장구를 만들어낸 요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예능은 역시 웃음과 즐거움이 그 첫 번째라는 사실이다. 주말 예능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웃음만이 아니라 감동을 추구하는 예능이 지속적으로 등장했지만, 결국 예능의 바탕은 웃음에 있다는 것을 '런닝맨'은 보여주고 있다. 물론 추격전과 일종의 서스펜스, 스릴러 같은 예능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결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늘 웃음을 잊지 않는 '런닝맨'. 이것이 이 프로그램이 향후 일요 예능의 새로운 강자가 될 가능성인 셈이다.


윤학원을 통해 보는 진정한 카리스마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김태원 감독님이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제가 가르치면서도 소위 은혜를 받습니다." 지휘자 윤학원은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합숙 특훈에 참여해 특별지도를 하기 전에 먼저 청춘합창단의 지휘자인 김태원을 언급했다. 제자인 김태원을 추켜세워 주고 또 그 자리에서 자신과 김태원의 역할을 명확히 한 것이다.

"야외라 잘 안 들리니까 다 지르고 있어요. 좀 좁히고 둥글게 앉았으면 좋겠습니다... 야외에서 하는 건 참 힘든 겁니다. 마라토너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연습하는 거랑 비슷한 거죠. 아마 여기서 연습하고 홀에 들어가면 더 멋있게 들릴 거예요." 경륜이 묻어나는 격려가 이어진 후, 본격적인 교정에 들어갔다. "첫 음이 맞으려면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부딪치는 음을 화성을 쓰려면 음량이 같아야 합니다." "어린이처럼 노래하시면 안돼죠. 모음이 둥글게. 모음이 연결이 돼야 되요. 소리가 울리게 하기 위해서." "세 분의 목소리가 다 달라요. 하나로 만들어야 되요."

윤학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배려가 배어 있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마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든 합창단원들은 귀 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소리가 변해간다. 이것은 작년 '남자의 자격' 하모니를 이끌었던 박칼린과는 또 다른 카리스마다. 박칼린은 부드럽게 가다가도 때론 폭풍처럼 밀어붙이기도 하면서 단원들을 이끌었지만 청춘합창단은 이미 고령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지도 방식은 애초부터 가능한 게 아니었다. 물론 윤학원 지휘자 역시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하지만 윤학원은 굳이 호통을 치거나 경쟁심을 자극하지 않고도 조화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무려 50년을 지휘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경륜에서 묻어나는 카리스마다. 소프라노를 얘기하며 "높아지면 겸손해져야 합니다"라는 말은 노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윤학원 스스로 그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은 한 분 한 분을 지목할 때마다 꼭 '선생님'이라고 붙이는 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틈틈이 김태원 감독에 대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다. "저는 지휘를 50년 했어요. 김 감독은 지휘를 이제 석 달. 이 정도면 아주 잘 하시는 겁니다. 박수 한 번 해주세요." 또 늦게까지 열정을 보이는 단원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힘드시지 않으세요 괜찮으세요? 대단하시네요. 허허허" '코스모스'라는 가사의 '으' 모음이 어렵다고 하자 이경규가 "다른 꽃으로 바꾸자"고 한 얘기에 '코스모스'가 가진 특별한 이미지를 언급한다. 결국 김태원이 가사를 아주 잘 썼다는 칭찬이다. 윤학원 특유의 자신을 낮추고 단원과 김태원을 배려하는 지휘는 결국 합창단 스스로 더 조화로운 목소리를 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작년 1월 '아침마당'에는 지휘자 함신익과 윤학원이 나와 지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함신익은 윤학원 선생을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로 꼽았는데 그가 해준 지휘자의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지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카리스마입니다. 카리스마는 지휘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휘자는 카리스마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전에는 지휘자의 고압적인 모습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같이 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들이 서로 듣고, 서로 알게 하고, 그들의 카리스마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지휘자는 그들이 카리스마를 내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합니다." 항상 뒤에 서서 단원들과 제자 김태원을 돋보이게 만드는 윤학원 리더십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시청률로는 볼 수 없는 '청춘합창단'의 감동

'남자의 자격': 사진출처(KBS)

이건 오디션이 아니다. 누군가를 심사하고 뽑는 자리라기보다는 그 분들의 삶을 듣고 느끼는 자리다. 그래서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단원을 뽑는 자리에서 한 쪽에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은 이 온몸으로 오는 묵직한 삶의 이야기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들이 어찌 감히 심사를 할 수 있으랴. 조금 음정이 불안하고 박자가 틀린다고 해도 날 것으로 다가오는 이 감동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작년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 합창대회에서 듣게 된 실버합창단의 노래에 모두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 노래가 조금 힘에 벅차고 간혹 틀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맞추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한 어르신들의 마음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겨워도 그 무언가가 그토록 노래하게 한 어르신들의 그 마음을 고스란히 떨리는 목소리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합창단'의 첫 번째 오디션은 바로 그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33년간 교직생활을 하고 명퇴하여 이제는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다는 김우연(60) 어르신은 그 당찬 모습이 부르는 '비목'이란 노래와 그대로 어우러졌다. 일본에서 온 사카이 신지(53)씨는 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분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그 마음이 어색한 한국어의 낱말 하나하나를 정성껏 발음해 부르는 '내가 만일'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단어에 신경써 주셔서 부르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는 박완규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84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부끄럽고 귀여우신 노강진 할머니는 42살부터 줄곧 합창을 해올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소리가 잘 안나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이 부른 아일랜드 민요 종달새는 바로 자신의 분신이었다. 힘겹지만 또박또박 음정과 박자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며 노래하는 어르신은 마치 종달새처럼 아름답게 비춰졌다. 노강진 할머니는 음악이 얼마나 즐겁고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작년에 먼저 갔습니다" 하고 담담히 말하며 자녀들에게도 자신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홍기표(79) 할아버지가 부르는 '고향생각'은 가사 하나하나가 어른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그래서일까. 그 분의 뒷모습에서 아마도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한편 결혼하는 딸이 혼자 지낼 엄마를 걱정할까봐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지원했다는 박원지(67) 할머니가 부르는 '무인도'도 마찬가지. 그 노래 속에는 홀로 무인도처럼 외로워도 굳건히 우뚝 서 있는 강한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1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잊기 위해 '만남'이라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는 정재선(54)씨의 무반주 노래는 아무런 기교가 없어 그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로 시작해서 "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해."로 끝나는 그 곡은 아들을 향해 부르는 엄마의 노래였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꽉 깨무는 뮤지컬 배우 임혜영의 모습은 아마도 모든 시청자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침체된 분위기를 일소해버린 요들 할머니 유혜정(62) 어르신은 또 어떻고. "저를 떨어뜨리면 굉장히 손해일 거예요. 제가 합창단의 기쁨조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소녀 같은 청춘이 깃들어 있었다.

'청춘합창단'은 여러 모로 점점 더 자극으로 치닫는 현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오디션이지만 심사가 아닌 공감이 더 빛나고, 경쟁보다는 협력의 의미가 더 크며, 무엇보다 노래에 있어 기교가 아닌 그 삶의 진심이 묻어나는 진정성이 살아있는 이 아이템은 현재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과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젊은이들의 오디션도 보여주지 못한 뜨거운 열정과 감동을 '청춘합창단'은 삶의 더깨가 그대로 드러나는 어르신들의 주름과 환한 웃음과 눈물로 그대로 보여주었다. 여러모로 일요일 저녁 시청률 경쟁 속에 묻히기에 이 깊은 감동은 너무나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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