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것 김민기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

한국 포크 음악과 민중음악의 선구자이자 전 학전 대표였던 김민기가 별세했다. 향년 73세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 전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는 현재의 문화 예술계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아침이슬’처럼 떠난 김민기

지난 21일 김민기가 별세했다. 향년 73세였다. 그는 떠났지만 그는 ‘아침이슬’처럼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다. ‘나 이제 가노라’며 ‘저 거친 광야’로 떠난 그는 이제야 좀 ‘서러움 모두 버리고’ 갈 수 있었을까. 그의 삶의 행적을 좇다보면 ‘시대의 아픔’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스무살에 내놓은 ‘아침이슬’이라는 곡 하나만 두고 봐도 그렇다. 1971년에 낸 데뷔앨범에 들어 있던 그 곡은 김민기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유신 정권 반대 시위 현장에서 울려퍼졌다. 결국 정권이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그 곡은 김민기 평생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됐다. 

 

물론 김민기 스스로도 시대의 아픔 한 가운데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그가 당시 했던 활동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독재정권과 정면대결을 벌였던 시인 김지하를 만나고 일찍이 야학에 뛰어들었으며 김지하가 쓴 희곡인 ‘금관의 예수’ 공연에 참가해 주제가인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작곡했던 김민기였다. 70년대 마당극 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마당극 ‘아구’에 참여했고 군 생활 이후에는 인천 부평 봉제공장에 취직해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을 하며 ‘공장의 불빛’ 같은 음악극을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운동가요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광장에서 울려퍼졌던 ‘상록수’는 사실 공장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였다. ‘공장의 불빛’ 제작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기도 했던 김민기는 10.26 사태가 벌어진 후에는 농부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고, 탄광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삶을 몸소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통해 그의 금지곡들은 일부 해제되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져온 혹독한 독재정권의 그늘 아래서 그의 삶을 가장 낮은 자들 곁에 있었다. 그들을 위해 살았고, 그 삶이 노래가 됐고, 그래서 핍박받았지만 끝내 그 노래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네 현대사의 아픈 구석들을 들여다보면, 그의 노래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 삶이 그 시대의 아픔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맨, 김민기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요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용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김민기가 쓰고 곡을 만든 ‘친구’는 고등학생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창이다. 가사는 시이고 곡 또한 단순하지만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썼다는 이 곡을 보면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김민기의 면모가 일찍이 드러난다. 거기에는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다. 그런데 그의 활동은 그 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노래도 만들고 불렀지만 음악극도 했다. 연극 또한 직접 만들었던 것. 1991년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그가 직접 연출한 ‘지하철1호선’은 지난해까지 8천회 이상 상연했고 무려 70만명의 관객이 함께 했다. 

 

그가 만든 학전(學田)은 ‘배우는 텃밭’이라는 의미다. 그 이름 그대로 예술인들의 텃밭이 됐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무수한 배우들이 이 곳을 거쳐갔고, 동물원, 들국화, 장필순, 박학기, 권진원, 유리상자, 윤도현 등이 이 곳에서 노래했으며 고 김광석은 1천 회 공연을 했다. 그가 운영한 학전은 출연자들에게 그 날의 공연 수익을 밝히고 정산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는데, 그건 그 스스로 예술인들의 텃밭이 되겠다는 그 취지에 합당한 방식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문학과 연극과 음악을 아우르는 예술인이면서 동시에 그런 예술인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학전’의 대표이기도 했다. 늘 적자에 시달리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스스로에게는 ‘돈 안되는 일’을 자처함으로써 예술인들을 살게 하는 일에 앞장섰던 후원자에 가까웠다. 

 

뒷것 김민기

“나는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그가 학전을 세워 했던 일들은 그가 생전에 했던 이 말 하나로 설명된다. 그건 물론 뮤지컬, 아동극, 가수들의 공연 등을 무대에 올리는 역할을 자신은 뒤에서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한 것이지만, 스포트라이트를 예술인들에게 내려주고 자신은 무대 아래서 그걸 비춰주는 역할을 자임한 그의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전’이라는 이름 자체가 나서지 않고 묵묵히 예술가들의 못자리가 되어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 아닌가. 

 

결국 김민기의 생애는 개관 후 33년 간이나 버텨왔지만 재정난으로 지난 3월 폐관한 학전과 거의 닮았다. 건강이 악화됐고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끝까지 학전의 레퍼토리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뜻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네 예술계에 영원히 든든한 ‘뒷것’으로 남았다. 

 

올해 4월에 방영됐던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은 그가 뒷것을 자임하며 남긴 우리네 예술계의 흔적들을 담아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다큐멘터리가 담아낸 내용을 보면 그가 뒷것을 자임한 건 예술인들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피혁공장에서 일하며 만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노동자들을 위로해주는 ‘공장의 불빛’이라는 음악극을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나온 그들에게 야학의 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농사꾼이 되겠다고 연천에 내려가서도 그는 농민들의 뒷것을 자처했다. 중간유통업자들 때문에 농민들이 제 값을 못받고 소비자도 비싸게 쌀을 사야하는 현실을 알고는 직거래를 통해 모두가 좋은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료 야간학교를 열었고,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유아원 건립을 위해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나서기도 했다. 또 ‘지하철 1호선’이 큰 성공을 거뒀을 때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극에 뛰어들었다. 돈 안되는 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 앞장섰던 거였다. 

 

김민기가 삶 전체로 전하는 메시지

그는 떠났지만 그 삶은 우리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먼저 예술이란 시대와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담아낸 예술은 당대의 대중들과 호흡함으로써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걸 김민기는 보여줬다. 그렇게 세상은 예술을 만들고, 예술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또 모든 것이 자본화되고 상품화되어가는 세상에 ‘돈 안되는 일’이 오히려 예술이 해야 하는 일일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줬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뒷것을 자임하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려줬다. 만일 문화예술에 대해 정부 등이 나서 지원을 한다면 든든한 뒷것의 전형을 보여준 김민기의 선택들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앞것을 자임하는 현실들 앞에서 그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무수한 뒷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김민기는 보여줬다. 가난해도 작품을 통해 세상을 말하는 예술가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돈벌이의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농사를 짓는 농부들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 김민기는 그런 이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걸 삶 전체로 우리에게 전했다. (글:시사저널, 사진: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그는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이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나는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김민기가 했다는 그 말은 그의 삶과 그가 가난한 예술인들을 위해 만들었던 학전(學田)이 해온 일을 압축해 설명해준다. 학전을 세워 ‘지하철 1호선’ 같은 최장기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뮤지컬, 아동극 그리고 가수들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던 김민기. 하지만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역할을 자임했다. ‘학전’이라는 이름 그대로 나서지 않고 묵묵히 예술가들의 못자리가 되어준 것이다.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은 개관 후 33년을 버텨왔지만 재정난과 김민기의 건강악화로 지난 3월 폐관한 학전과 이 소극장을 세운 김민기의 삶을 담았다. 제목에도 담긴 ‘뒷것’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먹먹하다. 모두가 앞으로 나서려 애쓰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뒤를 자처한다는 뜻이 담긴 데다, ‘것’이라는 표현 또한 자신을 낮추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서다. 

 

다큐멘터리가 포착한 김민기의 삶은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을 자처하는 삶이었다.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황정민, 장현성, 강신일, 이정은 등등 무수히 많은 유명 배우들은 물론이고, 고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강산에, 정재일, 노영심 같은 음악인들의 면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전은 그들의 든든한 못자리였고, 그 못자리를 지킨 건 다름 아닌 뒷것 김민기였다. 

 

하지만 김민기가 뒷것을 자처한 건 학전을 통한 가난한 예술인들만이 아니었다. 피혁공장에서 일하며 만났던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알고는 그걸 음악으로 담아 무수한 노동자들을 위로해준 ‘공장의 불빛’이라는 음악극을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나온 그들에게 야학의 길을 열어 주었다. 노래가 모두 금지곡이 되고 모든 길이 막혀 농사꾼이 되겠다고 연천에 내려가서도 그는 농민들의 뒷것이었다. 중간유통업자들 때문에 농민들은 제 값을 못받고 소비자도 비싸게 쌀을 사야하는 상황에 직거래를 통해 모두가 좋은 길을 열어줬던 거였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신정동에 중학교 과정을 무료로 가르치는 야간학교를 열기도 했고, 농사 짓겠다고 내려가서도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유아원 건립을 위해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나서기도 했다. 또 ‘지하철 1호선’의 큰 성공을 거뒀을 때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극에 뛰어들었다. 돈이 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조명한 김민기의 뒷것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가 뒷것을 자처해 지지해온 세상의 진정한 앞것들이 무엇인가가 새삼스럽게 눈에 띤다. 그들은 가난해도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말하는 에술가들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며, 집의 생계를 위해 하고픈 학업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생업에 나선 학생들이고, 결코 돈벌이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농사를 짓는 농군들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어린이들이다. 즉 김민기가 뒷것을 자처해 지지해온 것들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존재들이지만 세상의 앞것을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가려져 뒷것으로 치부되어온 것들이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그래서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을 자처한 김민기의 삶을 들여다 본 다큐멘터리면서, 그 삶이 지탱했던 진짜 세상의 앞것이 되어야할 존재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로 이런 존재들이 있어 세상은 그나마 살아갈 수 있고 또 살만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학전은 간판을 내렸지만 모두가 염원하듯 병을 툴툴 털어버리고 돌아와 다시 부활하는 학전의 모습이 보고 싶다. 그 어두운 시대에도 늘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겼던 그의 모습처럼. (사진:SBS)

‘거리의 만찬’ 같은 프로그램이 KBS의 가치를 높여준다

시청률은 3%(닐슨 코리아)대다. 최고시청률 5.2%를 찍기도 했지만 사실 KBS <거리의 만찬>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방송사들의 격전지가 되어있는 금요일 밤 10시에 편성되어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니, 타 방송사의 웃음 터져 나오는 쟁쟁한 예능프로그램들과 경쟁이 될 리가.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웃음보다는(그렇다고 시종일관 심각하다는 얘긴 아니다) 진지함과 아픔 때로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더 많다. 실제로 여기 고정출연해 매회 현장을 찾아가 그 곳의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개그우먼 박미선, 정치학박사 김지윤, 아나운서 김소영은 그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그러니 즐기고픈 ‘불금’에 높은 시청률을 낸다는 건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만찬>에 대해 시청자들은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자는 시청률이 3%라도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KBS 같은 공영방송이 제대로 해야할 일을 하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시사프로그램으로서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들여다봐야할 중요한 문제들을 ‘용감하게’ 소재로 선택하고, 그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할 말이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이로써 두루뭉술한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이라도 확실한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점이 그렇다. 

예를 들어 지난 18일 방영된 ‘노동의 조건 첫 번째 이야기-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가 다룬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은, 최근 안타까운 죽음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고 김용균씨의 빈소를 찾아가 조문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비정규직과 하청, 청년실업 게다가 안전불감증까지 겹쳐져 있는 이 사안을 피하지 않고 소재로 가져와 문제를 환기시키고, 우리 사회에 결코 적지 않은 또 다른 김용균씨라고 할 수 있는 세 사람을 어느 삼겹살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대기업 하청공장에서 메탄올에 중독되어 실명을 하게 된 김영신씨와, 고 김용균씨의 동료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 다리를 다쳐 수차례 수술을 받고 있는 김범락씨, 그리고 산업체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열아홉살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가 그들이다. 메탄올의 위험성 따위는 알려주지도 않고 작업을 하게 했다는 사실이나, 사고가 났을 때 그 사실이 알려질까봐 앰블란스를 부르지도 않고 병원을 갈 정도로 쉬쉬했다는 이야기, 평소 말 잘 들으라 했던 말이 통한의 후회로 남는다는 아들의 죽음으로 무너진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 사안이 가진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감정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게다. 그 삼겹살집에서 묵묵히 그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세 명의 여성MC들과 그날 특별출연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차오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내는 것으로 그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청취와 눈물은 아마도 가슴 속 응어리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던 그 아픈 이야기를 꺼내놓은 분들에게 천만분의 일이라도 무게를 덜어내주지 않았을까. 

찬반이 팽팽한 낙태문제 같은 소재도 피하지 않고 다룰 수 있었던 건 거기 어떤 이념이나 사심이 전혀 없는 진솔한 대화들이 오고갔기 때문이다. 실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머릿속 논리로만 생각해왔던 문제가 현실에 부딪쳤을 때 어떤 다른 파장으로 돌아가는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것. 그것은 낙태라고 하면 일단 ‘죄’를 먼저 떠올리는 그 사회적 시선 이면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홀로 감수하고 있는가를 공감하게 했다. 

희귀중증질환을 가진 어린 환자와 가족들을 찾아간 ‘내일도 행복할거야’ 편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만 하는 사안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안아줘야 하는 사안이라는 걸 보여줬다. 아픈 아이들 때문에 온전한 삶 자체가 불가능한 엄마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는 “웃어야 하기 때문에 웃는다”는 이 엄마들의 웃음 속에 깊이 담겨진 아픔들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근 들어 ‘지상파가 위기’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 지상파들은 생존하기 위해 오히려 더 자극적인 드라마를 편성하고 어떻게든 시청률을 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KBS 같은 공영방송에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인화되어가는 미디어 활용 때문에 보편적 시청을 추구하는 기존의 지상파의 헤게모니는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필요해지는 건 공영성이 아닐 수 없다. <거리의 만찬> 같은 공영성을 가진 시사교양프로그램이 KBS 같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지 시청률만 높은 프로그램이 아니라.(사진:KBS)

<송곳>에서 중간관리자 지현우의 역할

 

JTBC <송곳>은 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외국계 유통체인점인 푸르미 마트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정리해고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주인공으로 당사자라기보다는 관리자인 이수인 과장(지현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왜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정규직 그것도 사원도 아닌 관리자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을까.

 


'송곳(사진출처:JTBC)'

사실 이 부분은 <송곳>에서 이수인 과장이 부신노동상담소를 찾아갔을 때 구고신(안내상) 소장이 그의 의도를 의심하는 장면에서 이미 거론됐던 이야기다. “이수인씨 관리자잖아요. 당신이 해고당한 것도 아닌데 왜 나서는 거요?” 그것이 구고신이 이수인 과장에게 던진 의구심이었다. 즉 자기 일에 나서는 것과 그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서는 건 다르다는 걸 구고신이 지적했던 것.

 

그렇다면 정작 <송곳>이라는 드라마는 왜 이수인을 주인공으로 세운 걸까. 그것은 드라마를 좀 더 객관화하려는 작가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해고노동자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면 드라마는 감정적으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들의 감정에 동일시하게 되고 그것은 드라마를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불을 지르는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 수 있다.

 

<송곳>은 해고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드라마다. 너무 깊게 빠져 들어가면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더 무거운 이야기다. 하지만 <송곳>이 추구하는 건 노동자들만 공감하는 노동자들만의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 이러한 현실을 당면하지 않은 보통사람들 또한 공감하기를 원하는 드라마다. 결국 달라지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는 그런 현실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수인 같은 앞뒤 꽉 막힌 듯한 캐릭터는 그래서 <송곳>이라는 드라마의 중요한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즉 한 발 물러서 있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입장에 다가가는 인물. 그래서 그들의 입장을 객관적이면서도 타인의 관점에서 공감하게 해주는 인물이 바로 이수인이다. 노동지부장 선거에서 지부장이 이수인이 아닌 푸르미의 직원인 주강민(현우)이 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구고신이 항상 얘기하듯 남일이다. 심지어 푸르미의 노동자들도 자신에게 해고 통지 같은 부당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내 앞에 떨어진 일 앞에서야 그것이 내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수인은 그런 점에서 보면 독특한 캐릭터다. 오지랖이 넓다기보다는 무언가 부당한 일을 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그런 인물. <송곳>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송곳>이 지목하고 있는 건 결국 현실에서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의 각성을 위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잠재적 송곳들을 일깨우는 이야기다. 이수인이라는 중간관리자의 시선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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