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속의 명사, 예능 속의 명사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명사와 사랑에 빠졌다? 명사(名士).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예술가들, 스포츠 스타들 같은 이름난 유명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물론 예술가들 같은 유명인들은 다큐멘터리에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는 그 명사의 대열에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연예인들의 출연보다는 그간 잘 보이지 않던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들의 출연이 대중들의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MBC 스페셜'은 일찍부터 대중적인 스타들의 일상적인 얼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아왔다. 스타 이영애는 물론이고 여자 역도선수 장미란, 배우 김명민,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그리고 이번 주에 조명될 박찬호까지 'MBC 스페셜'은 명사 다큐라는 한 형식을 구축해낸 셈이 되었다. 물론 처음 다큐멘터리가 스타를 다루는 것은 낯설었다. 따라서 그런 시도가 단지 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명사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면면을 소개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는 김명민이라는 한 배우의 조명을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존재의 문제까지도 포착해냈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는 제목대로 우리가 몰랐던 인간 박지성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주 방영될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에서는 우리네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그가 슬럼프일 때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는 박찬호의 모습을 통해, IMF시절에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주었고, 여전히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스포츠인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끝없는 슬럼프 끝에 이제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의 끈질긴 노력은 마치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듯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이른바 명사다큐의 경향은 'MBC 스페셜'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다큐멘터리의 한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히트곡의 비밀코드'를 다룬 'SBS 스페셜'에는 국내의 작곡가들, 중견가수,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해 일련의 히트곡에 존재하는 특별한 요소들을 이야기했다. 아이템 자체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유명 스타들이 늘 보여지던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에 조명된다는 점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 방영되는 '매력 DNA,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매력 DNA라는 명제 하에 히딩크나 인순이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이 가진 매력의 요인을 포착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보다는 예술가나 스포츠 스타를 게스트로 출연시킴으로써 더 큰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출연해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대중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것은 토크쇼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발레리나 강수진,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소설가 황석영, 이외수 등등 '무릎팍 도사'가 초빙한 명사들은, '무릎팍 도사'가 펼쳐놓은 한바탕 신명나는 토크의 굿판을 통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이것은 '1박2일'에서 박찬호와의 하룻밤을 통해 얻어냈던 공감과 궤를 같이하는 것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연예인이 아닌 명사를 섭외하기 시작한 이유는 연예인에 집중되는 프로그램 자체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흔히 '저들끼리 노는 걸 우리가 왜 봐야 하느냐'는 한탄조의 말들은, 프로그램이 대중들과 나누려고 하는 어떤 공감이 이제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로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공감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줄 때 가능한 일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탈신비주의화 되고 있는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명사들 역시 어떤 친근함을 통해 대중들과 더 소통하려 하는 욕구가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명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약간 다르다. 다큐멘터리의 명사 출연이 그 엄격한 형식에서 좀 더 대중적인 것을 향해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의 명사 출연은 지나치게 낮아져 있는 형식에 어떤 격을 더하고 게스트의 외연을 넓히기 위함이다. 하나는 내리려 하고 다른 하나는 올리려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현재의 프로그램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중간지점을 향해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장르만을 들어서 어느 것이 격이 높고 어느 것이 낮다고 인식하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따라서 그 자신의 위치에서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본연의 형식이 갖는 본질적인 틀은 깨서는 곤란하겠지만, 대중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한 퓨전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와 예능 속으로 들어오는 명사들은 그 변화의 징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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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의 알몸, 혹서기의 잠바, 김C가 만드는 계절감

'1박2일'에서 계절은 실로 중요하다. 계절이 주는 자연적인 도전 자체가 '1박2일'의 미션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한겨울의 차가운 날씨는 야외냐 실내냐를 정하는 잠자리 복불복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갑작스런 기상악화는 목적지 자체를 바꾸게도 만들고, 예상했던 일정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한여름에 바다에 빠지거나,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 역시 모두 계절이 주는 묘미와 한계를 이용한 것이다.

혹한기 대비 캠프와 혹서기 대비 캠프는 이러한 계절을 활용한 '1박2일'만의 아이템. 그런데 이 아이템에 유독 어울리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C다. 그는 종종 '고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복불복이 제공하는 고통스러움을 꽤 잘 버텨내기 때문이다. 매운 소스가 들어있는 음식도 별 표정 없이 잘 삼키고, 모두가 꺼려하는 번지점프도 별 감흥 없이(?) 뛰어내린다. 어찌 보면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다. 평상시의 모습 자체가 고통을 버티고 있는 듯한 고행자의 그것이니까.

이것은 김C를 종종 그 자체가 '다큐'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 진지한 얼굴은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음식을 놓고 하는 복불복게임에서 조금은 과장되거나 놀라는 리액션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그는 반응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웃음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가 '1박2일'이라는 야생 버라이어티에 위치하는 존재감이 꽤 크다는 것은 말이다.

지난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김C는 박스 하나에 의지한 채 알몸으로 방송을 했다. '1박2일'이 계절 자체를 중요한 아이템으로 삼는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추운 기온을 시청자들에게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C의 희생(?)은 프로그램에 어떤 기본적인 바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혹서기 대비 캠프에서 그가 뜨거운 날씨에 두꺼운 잠바를 입고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수박을 따거나, 잠자리에 드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캐릭터가 그것을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두었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김C가 걸린 것은 '1박2일'로서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1박2일'에서 김C만이 가진 독특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코끼리 열 바퀴'를 돌고도 별 어지러움 없이 달려 나갈 수 있는 고통과 한계에 둔감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음식을 먹고 리액션을 보이지 않는 것은 보통은 예능을 썰렁하게 만들지만, 그는 자신의 캐릭터로 그것을 끌어들임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C의 이런 과장 없는 모습으로 인해 '1박2일'의 리얼리티가 한층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이 "다큐를 예능화 했다"고까지 말하는 데는 김C가 역할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한기에는 알몸으로, 혹서기에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김C의 존재감은 이처럼 크다. 그 다큐적인 얼굴과 다큐적인 리액션이 그 자체로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본업인 '뜨거운 감자'의 꾸미지 않은 듯 담담하기 그지없는 노래 속에서도, 또 이제는 하나의 부업으로 자리한 각종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렇게 보면 김C는 리얼리티 시대가 낳은 최적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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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기록’이다. 거기에는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이른바 명작 다큐들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볼거리다. 물론 이 볼거리란 단지 스펙타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영상으로서의 볼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 연달아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명작 다큐들, 즉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에는 바로 이 시공을 초월하는 볼거리들의 유혹이 넘쳐난다.

EBS ‘한반도의 공룡’은 공룡이 존재했던 8천만년 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볼 수 없는 시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다. 정교한 실사와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는 또한 한반도를 공간으로 상정함으로써 이미 익숙하게 보았던 공룡 다큐와 선을 긋는다. 이 작품은 타르보사우르스인 점박이의 일생을 스토리로 엮어가면서 자연스레 당대 우리네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들의 궤적을 찾아간다. 이야기를 통해 엮어진 이 기록물은 그 정보들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서 문득 감동과 조우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

KBS의 ‘누들 로드’는 국수 만드는 기술이 탄생하고 전파되었던 그 궤적을 추적한다. 한 개인이라면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길들을 카메라는 종횡무진 찾아다닌다. 중국 산시성에서 시작한 여행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세 이태리 파스타의 발상지였던 시칠리아로 날아가고, 영국 옥스퍼드 도서관에 보관된 고문서를 통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스타가 이태리로 전파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일본의 사찰로 날아가 중국에서 어떻게 국수를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여행은 계속되어 몽골에 쫓겨 남하한 중국인들에 의해 동남아로 전파된 쌀국수를 찾아간다. 2500년에 달하는 그 긴 생명력을 가진 국수의 탄생과 전파 경로를 지금 이 순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카메라가 시청자들의 눈앞에 생생히 펼쳐놓는 것이다.

한편 MBC의 ‘북극의 눈물’은 온난화로 인해 녹아가고 있는 북극의 상황을 이제 30명 정도 남아있는 마지막 사냥꾼들의 행로를 따라 담담하게 보여준다. 북극의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바다사자나 일각수 고래의 사냥 장면들은 또한 그 얼음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는 북극의 생명들과 같이 조명됨으로써 이 재앙 앞에 동시에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인간과 자연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TV를 통해 날아든 이 매서운 영상들은 문명에 가려져 보지 못하는 그 파괴되어 가는 환경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그 아름다운 북극의 영상과 그것이 눈물처럼 녹아 사라져 가는 모습의 대비는 그 자체로 이 다큐의 주제를 압축한다.

이 명작 다큐들이 집 안으로 배달해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볼거리들은 HD로 보다 선명해진 화면 속에서 더 생생하게 우리의 눈을 유혹한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곳, 또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 볼거리들은 우리에게 관조적인 입장이 주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동시에 전해준다. 땅에 발붙여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던 것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재조명해주는 것, 이것이 이들 명작 다큐들이 가진 진짜 매력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간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다큐의 진짜 얼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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