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들어온 다큐의 특별한 진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번의 만남'(사진출처:KBS)

사람만큼 진한 향기를 내는 소재가 있을까. 특히 그 사람과 첫 만남을 가질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러 번 만나 향기에 익숙해지고, 그래서 무덤덤해지는 만남처럼 흥이 깨지는 일도 없다. 피천득의 '인연'이나 조동진이 부르는 '제비꽃' 속의 만남들이 가슴에 아련히 남는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단 몇 번의 만남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의 만남'이다. 이 인물다큐는 단 세 번의 만남이라는 제한으로 오히려 만남의 향기를 더 진하게 전한다.

'세 번의 만남' 속에서 장재인은 갑작스럽게 신데렐라가 된 그 변화에 놀라는 얼굴로 다가왔다가, 힘들 때 이대 앞에서 사먹던 치즈케이크와 홍대 클럽에서 봤던 오디션, 그리고 노래가 좋아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홍대 클럽으로 오고 '슈퍼스타K'를 하게 된 얘기들을 들려주는 꾸밈없고 인간적인 얼굴을 조금씩 보여준다. 마치 짧은 만남 속에서 어떤 깊은 순간을 포착하려는 듯, 카메라는 장재인의 손 때 묻은 노트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 신데렐라가 아닌 싱어 송 라이터 장재인을 찾아낸다.

사실 '세 번의 만남'의 카메라는 무덤덤할 정도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다만 꼼꼼하게 인물과 인물 주변의 것들을 담아내면서 그 인물이 가진 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악역 전문 프로레슬러에 종합격투기 해설가, 7권의 책을 쓴 작가, 칼럼니스트, IT전문가, 프랜차이즈 사업가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낭만레슬러 김남훈을 만났다고 해서 카메라가 호들갑을 떠는 일은 없다. 그 일상들을 마치 일기 쓰듯 기록하고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 무덤덤함도 세 번이라는 제한 속에서는 그 인물을 오히려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울지 않고 슬픔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더 큰 슬픔을 전해줄 수 있듯이.

'세 번의 만남'이 인물과의 만남을 다루는 것처럼, '그 날'이라는 휴먼다큐 역시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인물이다. 다만 그 인물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그 날'에 집중하는 형식이 다를 뿐이다.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 '그 날'을 중심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그 날의 이전과 그 날 당일, 그리고 그 날 이후를 조명한다. 특정한 날이 어떤 클라이맥스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큐는 어떤 극적인 형식을 얻게 된다.

한류팬 다나하시씨의 실종을 그녀를 찾기 위해 찾은 그녀의 딸들의 시선으로 다룬 '엄마가 실종된 그 날' 편은 마치 추적하듯 엄마가 실종된 그 날의 길들을 되밟는다. 자신의 간 절반을 내주고 그것도 모자라 신장까지 아버지에게 떼어준 수홍씨의 '그 날'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2PM이 일본을 처음 진출하던 '그 날'의 흥분과 설렘은 또 어떻고.

'세 번의 만남'과 '그 날' 같은 다큐멘터리는 '다큐3일'이나 '미지수' 같은 일상화된 다큐들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진화된 형식으로 탄생한 것들이다. 공통점은 시간적 제한이다. '세 번의 만남'은 횟수를 제한했고, '그 날'은 시점을 제한했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대작 기획형 다큐멘터리가 갖는 한계들, 예를 들면 제작비나 제작기간 같은 것들을 뛰어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제한 자체가 새로운 시각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보다 일상의 반짝반짝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게 된 다큐는 확실히 재미있어졌다.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의 말투를 빌자면, "다큐, 당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재미있었나"하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728x90

'무한도전', 예능 그 이상의 도전이 갖는 가치

만일 시청률을 위한 것이라면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은 무모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청률만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예전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처럼 레슬링 협회 같은 곳을 찾아가 적당한 시범과 몸 개그로 웃음을 뽑아내는 편이 낫다. 진짜 프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레슬링경기답게 해보겠다며 장장 1년 동안 기술을 배우며 링 바닥에 몸을 수십 번씩 내던지는 그런 행위가 어찌 시청률 하나만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너무나 무모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대충 레슬링을 한답시고 흉내만 내면서 몸 개그를 시도한다면 그게 '무한도전'일까. 초창기 진짜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던 '무한도전'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미 세월을 겪으면서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실제 출연자들도 성장을 거듭했던 '무한도전'에서 이런 '대충대충'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한도전'은 이미 댄스스포츠 대회에도 나간 적이 있고 에어로빅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그 살벌한 봅슬레이 위에도 오른 바 있다. '무한도전'은 이제 예능이 다루지 않았던 영역 바깥으로 나가, 예능이 다루던 방식 그 이상을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무한도전'의 레슬링은 기대치에 걸맞게 달라야 한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은 그것이 예능 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그 도전 자체가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합을 맞춰서 하는 것이지만 맨몸으로 부딪치는 레슬링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엄청난 고통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힘겨운 스포츠다. 하지만 힘겨워도 고통을 감내하며 링 위에 오르는 그들의 도전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무한도전'이 몸으로 보여준 모습들은, 한때 그저 쇼일 뿐이라는 오해의 시선 때문에 이미지가 추락한 프로레슬링에 충분히 긍정적인 시선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에 제기된 레슬링 협회와의 마찰이 생겨난 것은 오히려 '무한도전'이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이게 예능 맞아하고 물을 정도로) 지나치게 진지했다는 반증이다. 만일 그저 몸 개그를 끄집어내기 위한 제스처였다면, '무한도전'의 동호회 성격의 레슬링에 대해 프로 협회가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무한도전'의 멤버들의 실제를 방불케 하는 연습은 프로 경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마추어고, 레슬링이라는 경기 자체에 대한 찬사를 1년 동안 온 몸을 던지며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여기에 대한 레슬링계의 비판은 가혹하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이지 다큐가 아니다. 레슬링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좀 더 대중들에게 레슬링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이지 레슬링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예능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에는 예능에 대한 선입견이 들어가 있다. 예능은 그저 재미있는 말을 건네고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웃음을 만드는 그저 그런 어떤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미 예능의 외연이 다큐와 드라마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 속에 온몸을 던져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의 몸이, 링이라는 경기장 위에서 몸뚱어리 하나를 던져 보는 이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레슬링의 몸과 뭐가 다를까. 고통의 강도는 다를 지 몰라도, 그 몸이 해야 하는 일과 해내는 일의 강도는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저 늘 예능이 해왔던 웃음의 코드 속에서 익숙한 웃음을 반복하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지만, 적어도 '무한도전'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는 말은 역시 '무한도전'이 그만큼 예능에만 머물지 않고 그 한계 바깥으로 나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부상 투혼까지 발휘하는 출연진들에게 좀 더 안전하게 도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사내들에게 겨우 1년이라는 시간을 주고(1년도 작을 것이다) 완전히 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레슬링다운 경기를 선보이겠다는 도전을 한 것 자체가 어떤 어려움을 내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몇은 진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선보이지만 몇몇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바로 그것이 '무한도전' 레슬링 경기가 말해주는 진정성이다. '무한도전'의 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장충체육관에 운집한 관객들이 보고자하는 것은 레슬링 경기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간 '무한도전'이 해온 과정들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 확인 과정을 통해 레슬링은 관객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향해 늘 새롭게 도전해가는 '무한도전'을 그저 시청률이라는 숫자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온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1년 동안 지옥 같은 링 위에서의 연습을 어떻게 숫자 하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 몸의 고통스러움이 주는 지독한 진정성을 느끼면서, 바로 그것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안타까워한다면 그것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을 한 가지 면으로만 바라보는데서 나온 오해일 것이다.

이제 예능은 웃음은 물론이고 리얼함이 주는 진정성을 통한 감동까지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예능의 외연이 이만큼 넓어진 데는 예능이 오로지 웃음에만 집착하지 않고 형식실험을 통해 다양한 차원의 재미들을 끌어안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무한도전'의 일련의 도전들은 예능 전체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해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어 이런 것도 예능이 되네?', 하고 말이다.

모든 도전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결과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특히 이 도전의 과정이 갖는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더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도전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해 어떻게 걸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실패? 적어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실패란 그래서 없다. 도전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라면 실패한 과정 자체 역시 성공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이라는 도전은 그래서 실패가 아니다. 조금 떨어진 시청률로도, 또 예능 영역 바깥으로 나옴으로써 조금 줄어든 웃음으로도 '무한도전'이 1년 간 온 몸을 링 위에 던진 그 도전 자체가 주는 가치를 상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728x90

20분으로 압축된 다큐, 그 일상의 미학

그릇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상차림이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때론 그릇이 어떤 형태이냐에 따라 담겨지는 음식도 달라진다. 감성다큐 '미지수'는 20분으로 압축된 3편의 다큐멘터리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다. 짧아진 분량은 단지 짧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1시간 정도의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분량이 부담으로 작용해 다큐멘터리 자체를 무겁게 만들기 마련이다. 여기에 다큐가 삶을 성찰하는 형식이라는 고정된 인식은 다큐 자체를 일상적인 삶과 멀어지게 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분이라는 분량은 다르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찍어내기만 하면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분량은 그 다큐 속에 담겨질 소재 역시 제한한다. 지나치게 진지한 부분은 소화해내기 어렵기 때문. 따라서 20분 분량 속에 들어오는 소재들은 우리 손에 들려져 삶을 바꿔나가는 휴대폰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가 되기도 하며,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던 골목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 입고 지나쳤던 호피무늬 옷이 되기도 한다. 다큐라는 마운드에 올라서기 전, 20분이라는 분량은 그 VJ의 어깨에서 힘을 빼준다.

'미지수'가 특별해지는 것은 어깨에 힘을 뺀 투수가 오히려 더 잘 던지게 되는 것과 같다.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라면 재료가 될 수 없었던 것들이 재료로 올려지자, 그 요리법 또한 달라졌다. 다큐멘터리는 거대담론을 담기 위해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하기보다는 이 미시적 세계를 살짝 드러내주는 것으로 감성으로 무장한다. 주장하던 목소리는 권유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2010 골목길 감성지도 만들기'는 말 그대로 골목길 속으로 들어가 차츰 사라져가는 향수의 한 자락을 잡아내면서 우리에게 일상 속에 담겨진 특별한 그 무언가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어떤 고향 이태원'에서는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의 고향으로서의 이태원을 재조명한다. '실험여행, 서울로의 출국'은 서울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서울을 다시 바라본다.

논리적 접근이 영상을 통한 설명이라면, 감성적 접근은 그 포착된(혹은 연출된) 영상 자체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직관적인 보여줌이다. 따라서 '미지수'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연출에 적극적이다. 다큐를 흔히들 연출 없는 영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큐만큼 연출에 고민하는 장르도 드물다. 다큐는 기본적으로 촬영자의 시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규정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비빔밥, 그 섞임에 대하여'에는 지휘자가 등장해 젓가락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장면이 나온다. 카메라가 지휘자의 앞을 휘돌아 비출 때, 그 젓가락 지휘가 비빔밥을 비비고 있는 구성은 분명한 연출이지만, 이 짧은 다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짧고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려는 의도. 이것 역시 20분짜리 다큐의 압축 속에서 좀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면서 나온 산물일 것이다.

'미지수'는 일일 다큐시대를 예고했던 '30분 다큐'의 후속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30분 다큐'보다 더욱더 미적으로 영상을 구성하고 있고, 그 단순한 일상에서 시작한 영상은 의외의 지적인 결과물로 도출되곤 한다. '30분 다큐'가 그 시간적 단축으로 다큐의 일상화를 실험했다면, '미지수'는 거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이 짧은 다큐를 미학적인 차원으로까지 끌고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지수'에 이르면 짧아서 쉽기 보다는 오히려 짧다는 그 형식 때문에 더 어려워지는 구석이 생긴다. 20분짜리 분량을 느슨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1시간짜리 분량을 20분으로 압축한다는 것. 따라서 이 미(美)적이고 지(知)적인 수(秀)작 다큐는 처음 그 낯설음을 따라 걷다보면 의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거대한 외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내게 가까운 일상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한 자락을 끄집어내 보여준다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다큐의 새로운 지점인지도 모른다.

728x90

김C와 김성민, 예능에 리얼을 입히는 그들

확실히 예능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남들은 웃기려고 안달복달 예능을 하려 할 때, 오히려 진지한 얼굴로 다큐해서 호평을 받는 시대니 말이다. 그 새로운 시대의 징후처럼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김C다.

그는 강호동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시베리아 야생 수컷 호랑이~"를 연발할 때도, MC몽이 발군의 예능감을 살려 몸 개그를 날릴 때도, 은초딩이 눈을 깜박깜박하며 또 무슨 장난을 쳐서 웃음을 줄까 고민할 때도, 이승기가 안되는 요리 실력으로 요리를 하겠다며 난리 블루스를 출 때도, 이수근이 예능의 빈 공간에 불쑥불쑥 초절정의 개그를 선보일 때도 그저 묵묵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니 무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인상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1박2일'이라는 야생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지나치게 진지하게 "사는 건 고행"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진지함이 예능 속으로 들어오자 놀라운 마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이 새로운 조류로 만들어진 리얼 예능에 진짜 리얼을 입히는 존재로서 김C가 부각되는 것이다. 그는 지지리도 운 없는 사나이로 한 겨울에는 속옷 차림으로, 한 여름에는 털 잠바로 그 생생한 계절감을 전한다.

재수 없게도 복불복에 져서 홀로 도보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여정에서도 그는 진지함의 극을 보여주었다. 방송분량은 아예 포기했고, 어두컴컴한 밤길을 묵언수행하듯 걷는 김C는 말 그대로 이 예능 프로그램을 다큐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다큐일까. 그렇지 않다. 이 예능 속의 다큐는 오히려 웃음을 만들어내는 포인트가 된다. 모두가 웃기려 노력하고 웃음을 터뜨릴 때, 혼자 그 옆에 서 있는 진지한 인물은 그 대비효과를 통해 웃음이 만들어진다. 이 '1박2일'의 이 '예능 속의 다큐'가 준 웃음은 사실상 김C라는 캐릭터가 '1박2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주는 웃음과 일맥상통한다.

'1박2일'에 김C가 있다면 '남자의 자격'에는 김성민이 있다. 김C가 주어진 야생의 상황을 버티는 것으로 그 예능에 리얼과 웃음을 선사한다면, 김성민은 여기서 한 발작 더 나가 적극적으로 힘겨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 모습을 통해 리얼과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입에 붙은 말, "나 그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는 다른 멤버들의 한숨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양측의 웃음을 강화한다.

일일 직장 체험에서도 그는 주어진 여행사 직원의 일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고 싶은 것을 더 하려는 자세를 보였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전투기 조종에서도 그는 즐기는 자세로 하늘을 날았으며, 모두 힘겨워 하는 2PM의 UCC 만들기에서도 "한번 더"를 외쳐 주변사람들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만들었고, 모두 귀찮아하는 가사일에서 조차 마치 주부가 된 것처럼 열심히 임하는 자세를 보였다.

김성민의 이런 예능에 대한 '열혈'의 자세는 리얼과 웃음을 넘어서 어떤 감동마저 주는 이유가 된다. 나이 든 아저씨들의 도전기로 이루어진 '남자의 자격'에서 고개 숙인 아저씨들과는 상반되게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땅의 아저씨들에게 어떤 힘을 부여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능에 리얼을 입히는 그들. 예능이 아니라 다큐를 하는 그들. 김C와 김성민이라는 존재는 이제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이 서 있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설정이 아닌 리얼한 웃음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제 예능 프로그램의 베이스가 되고 있고, 김C와 김성민은 바로 그 베이스로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 유재석, 강호동의 존재만큼, 이 시대의 예능을 잘 알려주는 인물로서 이들 만한 존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예능에서 웃음만큼 중요해진 것이 진정성이 된 시대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