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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트>가 그리는 경쟁적인 대학생활의 단상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암 유발자들얘기다. 4학년 선배인 김상철(문지윤), 스토커처럼 홍설(김고은)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찌질이 오영곤(지윤호), 홍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는 손민수(윤지원), 유정(박해진)을 좋아하지만 마음이 홍설에게 가있다는 걸 알고 취객을 보내는 충격적인 짓을 저지르는 남주연(차주영), 하는 일도 없이 유정의 집안에 빌붙어 살아가는 무대책의 빈대 백인하(이성경) 등등. 이들이 하는 짓은 막장드라마의 한 대목을 연상시킬 정도로 충격적이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물론 <치즈 인 더 트랩>은 막장과는 거리가 멀다. 대본, 연출,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성도가 높은데다, 이 드라마가 주는 느낌은 청춘 멜로의 밝음과 아픔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막장적인 인물들과 대척점에 있는 홍설, 백인호(서강준), 장보라(박민지), 권은택(남주혁) 같은 인물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더 전면에 배치되어 있어 풋풋한 청춘 멜로의 균형을 맞춰준다.

 

<치즈 인 더 트랩>의 막장적인 인물들은 자극을 위해 의도적으로 들어간 인물이라기보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 우리네 대학사회의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고 보면 유정이라는 어찌 보면 사이코 패스 같은 섬뜩한 느낌을 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 상처받은 짐승 같은 측은지심을 이끌어내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역시 이 주제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연이대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과거 8,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에게는 대단히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그 때라고 경쟁이 없었겠냐마는 그렇다고 이 드라마 속 대학생들처럼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다. 홍설은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아르바이트의 압력을 덜어낼 수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강교수(황석정)의 수업에서 팀 과제를 수행하면서 홍설이 겪는 괴로움은 과제의 어려움이 아니라 지나치게 이기적인 팀원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오영곤이라는 찌질이에 스토커인 인물이 같은 과에서 저토록 버젓이 범죄행위에 가까운 짓들을 벌이고 다녀도 선배들이나 동기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홍설과 둘도 없는 절친인 장보라나 말만 하면 뭐든 들어줄 것 같은 착한 후배 권은택을 빼놓고 보면 이 학과의 학생들은 홍설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니 나아가 오영곤의 말만 듣고는 홍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 이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홍설이 이 학과에서 꽤 공부를 잘해 학점이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무존재감으로 살아오다 홍설을 따라하게 된 손민수는 자신의 거짓말들이 발각되자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건 네가 다 가졌잖아. 학점도 친구도 남자친구까지 다 가졌으면서 너 뭐가 그렇게 억울해.” 그러자 홍설은 이렇게 자신의 오래도록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낸다. “니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학점도 친구들도 그 어느 하나 쉽게 얻은 거 없다고.”

 

즉 대학사회에 깔려 있는 경쟁적인 분위기와, 가진 자는 쉽게 사회로 나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는 처절하게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 부조리한 구조는 이들의 관계를 친구나 동기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관계로 놓아두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른바 암 유발자들이 대학생이라고는 보기 힘든 놀라운 행위들(심지어 범죄에 가까운)을 하고 있는 건 그들이 본래 그런 악한 존재였다기보다는 이런 경쟁적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부추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고 보면 유정의 이중적인 캐릭터도 이 사회의 경쟁적인 분위기와 인간적인 관계가 깨져버린 삶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목적을 갖고 다가왔다는 점은 유정이 때때로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지는 이유가 아닐까. 그 차가움과 살벌함은 그래서 이 인간적 관계들이 깨져버린 삶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려는 처절한 보호본능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치즈 인 더 트랩>이 그리고 있는 대학생활의 풍경은 물론 극화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이 지금의 우리네 대학현실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도대체 우리네 사회의 어른들은 이 순수하고 풋풋하게 피어나야할 청춘들에게 무슨 짓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원치 않는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태생이 모든 걸 결정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시 돋친 경쟁자로 여기게 만드는 짓.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Posted by 더키앙

<SNL>, 성호 그릴스가 회사, 대학, 편의점에 간 까닭

 

편의점 알바는 갑의 횡포를 견디며 친절을 판매하는 나약한 존재였어요. 깨달은 것도 있었고요.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거. 여러분도 명심하세요.” 베어 그릴스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기막히게 패러디한 <SNL코리아><Man vs City with 성호 그릴스>에서 정성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생존기로 그려낸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어찌 보면 이런 풍자는 자칫 비하 논란을 만들 위험성이 있다. 전국의 모든 편의점 사장들과 그 편의점이라는 근로 환경이 이 풍자가 그려내는 것처럼 갑질을 하거나 조악하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코미디의 풍자 코드는 이런 위험성을 베어 그릴스를 패러디한 성호 그릴스라는 기괴한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슬쩍 비켜나간다.

 

성호 그릴스는 도시의 환경 자체를 위협적으로 대응하는 과잉되고 과장된 캐릭터다. 그에게 편의점 사장은 사장이 아니라 도시의 포식자. 그러니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어 사장에게 한 소리를 듣고 있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낮은 포복으로 숨어 들어가려는 성호 그릴스는 광인에 가깝다. 즉 이건 상황의 일반화가 아니라 성호 그릴스라는 도시의 위험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특정한 광인의 시각과 목소리라는 점이다.

 

이렇게 풍자가 만들어낼 일반화의 위험성을 광인이란 캐릭터로 슬쩍 넘어서자 그 풍자는 거칠 것이 없어진다. 회사라는 정글로 들어간 성호 그릴스에게 상사는 상위 포식자에 해당한다. 그 상위 포식자가 그를 발견하고 무언가 꾸지람을 하려 하자 성호 그릴스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며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몸을 부풀린다. 심지어 책상 위에까지 올라가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물론 베어 그릴스가 야생에서 보여줬던 모습의 과장이고 과잉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이 도시 정글에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중간 중간에 이건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대단히 위험한 행동입니다.”라는 베어 그릴스가 자주 던지는 말을 집어넣으며 얼토당토않은 대응을 해나가는 성호 그릴스. 바로 이 엉뚱함이 이 코미디의 웃음의 코드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그것이 단지 코미디만이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와 맞닿을 때 다가오는 현실 공감이다.

 

대학을 대학생들의 생존지로 그리면서 출석체크를 성대모사로 대신해주는 성호 그릴스의 모습이나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자신만의 영역표시를 하는 대목은 그저 웃음을 주는 것 같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취업의 관문을 얘기하다 보면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을 공감하게 된다는 것. 대학을 정글로 그리면서 인분교수를 패러디 대상으로 삼은 건 우리네 현실이 때로는 광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코미디와 별 다를 바 없는 지점이 생겨나기도 한다는 걸 통쾌하게 보여준다.

 

애초에 <SNL코리아>가 가진 두 가지 코드는 성적 농담과 정치 시사를 가리지 않는 과감한 풍자에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풍자가 점점 사라지고 성적 농담만 가득했던 <SNL 코리아>에 대중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된 <Man vs City with 성호 그릴스> 같은 코너는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새로운 풍자 코드를 보여준다. 회사든 대학이든 편의점이든 어디서나 발견되는 갑질하는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성호 그릴스라는 캐릭터는 웃프게도 그려내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12>과 서울대, 그 부조화의 재미

 

우리에게 서울대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혹 막연한 스펙의 가면으로만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가면 뒤에 실제로 웃고 우는 학생들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서울대를 찾아간 <12>이 흥미로웠던 건 그 막연한 느낌으로만 다가왔던 그 곳에서 공부하고 땀 흘리고 있는 학생들과 직접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물론 대학은 본래 예능의 텃밭이었다. 대학 특유의 자유로움은 예능과 만나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곤 했으니 말이다. 과거 1998년에 방영됐던 <캠퍼스 영상가요>는 대표적이다. 강호동이 MC를 맡은 이 프로그램은 끼 많고 재주 많은 대학생들을 발굴해냈는데, 이 프로그램이 인연이 되어 연예계에 입성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혁재는 대표적이고 전현무, 류수영, 샘 해밍턴도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은 인물들이었다.

 

<12>도 대학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과거 충주대에서 깜짝 이벤트로 일이 커진 게릴라 콘서트<12>의 레전드에 해당한다. 본래 목적지는 문경이었으나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르게 된 충주대에서 군것질할 돈이나 벌어보자고 했던 게릴라 콘서트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진 열기가 <12>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하지만 서울대를 찾아간 <12>의 그림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공부 잘하는 수재들 많기로 유명한 서울대는 어찌 보면 무식하고 놀기 좋아하는 <12>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만점자 세 명을 찾아오라는 미션이 너무나 쉬운 서울대라는 공간과 수능수학으로 알고 있는 정준영과의 만남이라니.

 

수조의 물의 양을 재오라는 미션을 받고 황당해하던 정준영은 그러나 지나는 학생의 차분한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이성의 방에서 세 명의 학생을 오목으로 이기라는 미션을 받은 데프콘은 그 게임이 오목인 줄 몰라 모눈지에 갖가지 귀여운 그림을 그려내는 여학생들을 만나고는 즐거워했다.

 

또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학생들에게 연주시키라는 미션을 받은 김종민은 단 10분 연습으로 환상적인 곡 연주를 성공시킨 음대생을 만났고,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오라는 미션을 받은 차태현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SNS를 뒤져 김태희 뺨치는 미모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서울대생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느껴지는.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수능 만점자를 찾아오라고 해서 막막해 했던 김주혁이 나중에는 만점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발견했던 순간이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집결지로 왔는데, 그 장소에서만 만점자들을 몇 명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서울대라는 공간을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부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서울대가 어딘지 놀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면, 늘 퀴즈 게임 등을 통해 무식을 뽐내왔던 <12>은 공부와는 영 관계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와 <12>이 의외로 잘 어울리고 그 섞여드는 과정이 흥미로울 수 있었던 건 공부와 놀이의 부조화가 그 안에서 깨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2>의 놀이에 적극적이었고, <12>은 서울대의 그 면학 분위기에 자못 진지해지기도 했다. 이 놀이와 공부가 어우러지는 공간은 또한 서울대 캠퍼스가 해외의 대학들처럼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도시인들에게는 녹지와 공원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는 대학 캠퍼스는 특유의 지성적인 분위기가 발길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닌가.

 

대학이 어느 순간부터 스펙이 되어버린 지금, ‘서울대라는 이름은 그 스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스펙으로만 막연히 그려지는 서울대는 허상일 뿐이다. 그 안에는 치열하게 공부하며 젊음의 열정을 불태우고 각각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실제적인 대학생들이 있다. 그 가면으로서의 스펙이 아닌 실제 서울대의 민낯을 살짝 보여주는 시간. <12>과 서울대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Posted by 더키앙

유승호, 군 복무의 좋은 예로 남은 까닭

 

“19개월 동안 군 생활 하면서 많이 배우고 추억도 쌓았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생각을 정리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전역을 하며 다시 팬들 앞에 선 유승호는 그간의 군 생활에 대해 이렇게 짤막한 소감을 전했다. 거기에는 마치 모든 장병들이 다 하는 그 의무를 담담히 치러낸 건실한 청년의 의연함이 엿보였다.

 

'유승호(사진출처:대한민국육군SNS)'

하지만 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치러낸 유승호의 군 복무 소식은 대중들에게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연예인들의 군 복무와 관련된 소식들이 나올 때마다 나왔던 이야기들은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군 기피, 기강 해이 같은 이야기들이 늘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작년에 터졌던 일련의 연예사병 특혜 의혹들과 제대로 된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논란은 연예사병이라는 제도 자체의 폐지로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연예사병을 바라보는 국민적인 정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터져 나왔던 작년 유승호는 그러나 너무나 조용히 입대를 했다. 늘상 연예인들의 입대가 거대한 이벤트나 되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치러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유승호는 그저 팬 카페에 20초 남짓 입대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에서 유승호는 군대 다녀오겠다는 담담한 몇 마디만을 남겼다.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연예인들의 떠들썩한 입대가 다른 입대 장병들에게 줄 상대적 박탈감을 저어했기 때문이었다.

 

전역을 하고 팬들 앞에 다시 서게 된 유승호는 눈물을 흘렸다. 팬들의 응원이 이어지자 미소를 지으며 20133월 입대할 때 제대로 팬들에게 인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송함과 아쉬움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군 생활을 통해 얻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유승호가 군 입대와 전역을 통해 보여준 이런 담담함은 그가 연예인으로서의 어떠한 특혜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의 이런 개념은 대학진학을 포기한 것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유승호 정도면 어떤 대학이든 특례입학이 가능했을 것지만, 그는 이를 포기했다. 그 이유 역시 그가 군 입대를 조용히 치른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유승호는 학교와 군대 문제를 이렇게 담대하게 치러냄으로써 이제 오롯이 연기자의 길에 정진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든 셈이다. “행복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뜻을 밝혔지만 그는 이미 군 복무의 과정을 통해 대중들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집밥이 먹고 싶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전역 후의 간단한 소감 역시 남다를 것 없는 군 복무를 마친 자의 소탈함이 묻어났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집밥. 유승호는 어쩌면 군 복무를 통해 보통의 젊은이들과 똑같은 그 소박한 마음을 깊이 공감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들은 앞으로 그의 연기에 생각보다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는 연예인 군 복무의 대표적인 좋은 예로 남았다.

 

Posted by 더키앙

오디션? 스타? 대학문화 실종도 문제다

 

MBC 대학가요제는 결국 폐지를 결정했다. 작년 폐지 이야기가 나왔다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의 반발이 있었고 그래서 올해 다시 재개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었다. 하지만 최종 폐지 결정이 내려진 데는 더 이상 대학가요제를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학가요제(사진출처:MBC)'

알다시피 오디션 트렌드는 기존 가요제를 구식의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같은 가요제가 가수의 등용문이 되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요제 출신 스타가 배출되지 못했던 현실은 이러한 변화를 잘 말해준다.

 

기존 가요제가 구식이 되어버린 이유는 오디션 트렌드로 가수의 탄생과정이 결과 자체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가요제는 마지막 무대에서 기량을 선보이고 심사위원이 상을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오디션이 일반 대중들의 참여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는 사뭇 폐쇄적인 방식이다. 결과에만 집중하는 가요제의 구태의연한 형식이 달라진 대중들의 욕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

 

물론 이런 형식의 문제는 언제든 가요제가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오디션 트렌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대학생들만의 가요제라는 틀은 어딘지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준다. 대학을 들어가건 못 들어가건 노래 잘하고 음악 잘 만드는 지망생들은 넘쳐난다. 그러니 대학생들만의 가요제는 저들만의 성을 쌓고 있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과거 대학가요제가 대중들에게 주목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이라는 선망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런 지성인들이 벌이는 음악의 향연이라는 점이 어떤 특별한 정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을 보라. 대학이 과연 선망의 대상인가. 대학은 취업을 위한 치열한 전장터가 되어 있다. 대학이 사회의 변화에 선봉적인 역할을 하던 시대도 이미 지나버렸다. 청춘의 도전과 낭만? 그런 게 지금 대학이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가.

 

대학생이라는 특권적 위치에 대해 대중들이 납득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어쩌면 대학가요제가 존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문화가 점점 실종되어가고 대학을 특권으로 바라보기를 원치 않는(정서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대중들에게 대학가요제는 저들만의 리그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결국 대중들이 참여할 수 없는 가요제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대학가요제 폐지는 물론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이제는 대학가요제 폐지를 두고 방송사의 공영성을 운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대학가요제가 없어서 가수 지망생들의 등용문이 사라지는가. 그게 아니라면 대학가요제가 없어서 대학문화가 실종되는가. 가수 지망생들의 등용문은 오디션쪽이 훨씬 넓어졌고 더 효과적인 방식이 되었다. 대학문화? 대학가요제 살린다고 생겨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가요제의 폐지는 그래서 시대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을 말해주지만 동시에 대학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시대가 이제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대학이 지성인의 공간이 아닌 미래의 스펙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대학생들만의 축제란 대중들에게는 위화감만을 줄 뿐이다.

Posted by 더키앙

왜 노는 것은 나쁜 것이 되었나

왜 ‘고고70’일까. 이 영화의 제목은 70년대로 가자는 뜻일까. 제목으로만 보면 이 영화는 또 하나의 복고풍을 겨냥한 영화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고고’란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이병욱(이성민)이라는 팝 칼럼니스트는 닐바나라는 고고클럽을 열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이...밤이 너무 조용해, 좀 시끄러웠으면 좋겠어.”

‘고고 70’의 ‘고고’는 개발의 시대, 피곤한 청춘들의 해방구라는 의미로서도 쓰인다. 영화 속에서 마치 노홍철이 과거로 돌아간 듯이 연거푸 소리치는 “그래 가보는 거야!”하는 대사는 군사정권으로 인해 모든 게 통제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70년대에서 그래도 ‘한번 저질러보자’는 막가파식 청춘(?)들의 외침이다.

군사정권이 통행금지로 통제하려던 밤, 청춘들은 지하로 모여들어 그 답답한 숨통을 트이려 한다. 데블스는 그들을 광란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밴드. 기지촌에서 술취한 미군들과 양공주들을 상대로 연주하던 그들은 상경해 서울을 순식간에 고고 열풍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고고’는 이른바 고고클럽을 지칭하는 그 춤을 말하는 것으로 극중에서는 이병욱이 만들어내는 단어다.

긴급조치9호가 발표되면서 퇴폐, 향락으로 몰려 일제 단속에 스러졌던 청춘들. 안기부에 끌려가 대마초를 한 동료 이름을 대라며 갖은 고문을 받는 상규(조승우)가 “지미 핸드릭스요”라고 하는 말에는 기막힌 시대의 아픔과 함께 어떤 젊음의 반항 같은 통쾌함도 느껴진다. 온몸의 멍을 드러낸 채 목욕탕에 앉아 신세한탄을 하며 “대학생들은 아무리 때려도 이름은 안 부는데 우리 같은 놈들은 한 대에 한 명씩 분다더라. 그래서 우리가 딴따란가봐.”하는 말에는 당대 음악인들이 가졌을 딴따라라는 자조감을 엿보게 해준다.

그들은 당대의 투쟁가도 아니었고 혁명가도 아니었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그저 “놀자”는 것. 그 청춘들의 특권이기도 한 “놀자”는 단순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시대를 돌아보며 그만큼 절실했던 음악을 향수하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이 음악의 “놀자”는 주장은 지금 시대에 TV를 켜면 어디든 등장하는 풍경들이다. 그것은 ‘순수함의 상징’이라는 대학가요제도 예외는 아니다.

긴급조치9호로 음악에 드리워진 퇴폐, 향락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학가요제는 음악에 굳이 지성을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짙었다. 하지만 ‘대학생만의 순수함, 도전정신’을 강조하던 대학가요제는 어찌 보면 청춘들의 음악에 또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대학가요제는 과거의 그것과는 달라졌다. 과거 대학생들의 음악발표회 같은 느낌을 주던 대학가요제는 언제부턴가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32회 대학가요제에서 심사위원장이었던 이정선씨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대학생만의 패기보다는 상업음악화 되어가는 대학가요제를 말한 것에는 그런 뉘앙스가 들어가 있다. 대상을 탄 무려 16명의 혼성밴드인‘파티캣츠’의 퍼포먼스는 음악을 갖고 노는 자들의 그 순수한 즐거움을 보여주었다. 데블스가 만일 이 장면들을 보았다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이 놀이의 장이 되어가는 대학가요제는 우려보다는 오히려 즐기는 음악으로의 바람직한 회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이라는 벽을 거기에 세워두는 것이 온당한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시대의 억압을 넘어서기 위해 대학가요제가 굳이 음악을 지성과 연결되는 거창한 그 무엇으로 연결시킨 것은 훌륭한 기획임이 분명하지만, 이제 그 억압이 사라진 시대에 음악을 여전히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온당치 않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김하늘이 “난 고1 때 중퇴했다”고 말하고, 김장훈이 “자기는 고2 때”라고 말할 때 아무 거리낌없이 관객과 시청자들이 웃는 시대에 굳이 대학가요제라는 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고졸이어도 음악을 좋아하면 언제든 가요제라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마땅한 시대다.

시대가 만들어놓은 음악을 하면 딴따라라는 자조감, 따라서 대학생이라는 라이센스가 있어야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는 지금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편견들이다.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청춘이 있으면 그만이던 ‘고고70’의 그 짧았지만 대중문화가 꽃을 피웠던 그 시기의 자유분방함이 그리운 건 그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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