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777’, 돈과 성공 판타지로 만들어진 힙합씬

이번 Mnet <쇼미더머니777>에는 이전 시즌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그 첫 번째는 갈수록 점점 지원자가 늘고 있는 1차 예선전의 장관을 모두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별거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껏 <쇼미더머니>에서 항상 처음 시선을 끌었던 건 바로 이 1차 예선전이 연출하는 장관과, 거기서 늘 존재하기 마련인 특이한 출연자들을 통한 이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슈들 중에는 힙합에서 늘 논쟁이 되던 이른바 ‘힙합 아이돌’과 언더그라운드 사이에서 가중되던 ‘진정성 논란’ 같은 뜨거운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1차 예선전에 몰리는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은 <쇼미더머니>가 명실공히 국내 힙합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오디션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들어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제 더 이상 그런 왁자지껄한 연출이 불필요하다는 자신감이다. 우선 화제가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온 건 이미 오래고, 많은 진정성 논란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국내 힙합에서 <쇼미더머니>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1차 예선전의 세 과시는 이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쇼미더머니>는 시즌7까지 오면서 국내에서 힙합을 하는 거의 모든 이들(물론 아직도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이 있지만)을 그 장으로 끌어들였다. 이를테면 LA에서 한인 힙합을 이끈 수장으로 이번 시즌 참가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루피는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래퍼들을 정조준 해 비난했던 인물이었다. 스윙스가 그에게 “마음을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며 루피가 했던 그 비난의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끄집어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루피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들어가서 저만의 길을 가려고 노력을 해봤고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후에 이런 결심을 내리게 됐다. 사실 굉장히 긴장된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참가자들에게 리스펙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얘기는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루피가 쿨하게 드러낸 참가의 속내는 ‘돈’이었다. 그는 돈을 벌고 싶어서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힙합과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쇼미더머니>는 그걸 촉발시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 짧은 오디션 기간을 거쳐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부를 과시했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장신구들과 화려한 스포츠카가 그들의 후광을 만들었다. 

힙합과 돈 혹은 성공의 관계는 본토에서 도저히 성장의 사다리를 탈 수 없는 시스템 속에 갇힌 흑인들이 실제로 그 가난한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로서 힙합이 인식되었기 때문에 박수 받는 성공사례로 공감되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의 힙합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일까. ‘국힙’이라고도 불리는 국내의 힙합은 그 태동 자체가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환경이 전제되어야 먼저 접할 수 있는 장르였다. 그러니 부의 과시는 가난을 뛰어넘기 위한 기회의 의미라기보다는 물질적 욕망의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쇼미더머니777>은 본래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시즌1부터 말해주었던 것처럼, 힙합과 돈의 상관관계를 더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전 시즌과 달라진 더 중요한 특징은 이전까지는 그래도 힙합의 진정성이니, 스웨그니 하며 살짝 뒤로 밀쳐 두었던(그렇다고 그게 주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돈과 성공’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이 첫 선을 보이는 래퍼 평가전에 들어간 ‘파이트머니’ 시스템이 그것이다. 

이제 참가자들은 무대에 나와 실력을 보이고 프로듀서들은 그 참가자에게 최대 500만원까지 배팅을 할 수 있다. 물론 프로듀서가 배팅을 해도 참가자가 후에 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건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게 프로듀서들이 배팅한 금액의 합계가 그 참가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물론 <쇼미더머니777>은 1차 예선전 따위는 편집해버리고, 그 많던 논란을 통한 이슈메이킹도 모두 지워버릴 만큼 실력자들이 넘쳐났다. 이미 힙합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스내키 챈이나 슈퍼비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해외파로서의 루피와 나플라, 우승후보로 나플라와 나란히 거론되며 경쟁구도를 만들고 있는 키드 밀리, 독특한 색깔을 가진 PH-1이나 본원적인 힙합의 색깔을 거의 화석처럼 그대로 갖고 있는 듯한 차붐은 물론이고, 15살이라는 나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무서운 힙합 영재 디아크 등등, 그 출연한 무대만으로도 꽉 차는 실력자들이 가득했다. 2시간 가까이 방영되는 그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게 할 만큼 놀라운.

그래서일까. 그 즐거운 몰입감이 깊어질수록 남는 씁쓸함도 적지 않다. 논란을 통한 이슈들이 거의 사라졌고 실력자들은 넘쳐나는 <쇼미더머니777>이지만, 시즌 7을 ‘777’로 바꿔 넣어 도박의 잭팟의 의미를 강조해 넣은 건 자본의 힘이 압도하는 국내 힙합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는 신정수 국장은 래퍼들이 말하는 돈의 의미에 대해 “돈 앞에 굴복하지 말고, 돈으로 재능을 살려는 사람들한테 굴복하지 않고 나는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배팅시스템은 “현재 가장 핫한 1등을 하고 있는 래퍼가 누구인지를 돈이라는 장치로 예능적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지 도박적으로 한탕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그 시스템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 힙합 아티스트들의 수직 계열화라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게 자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재미 이면에 놓여진 자본의 미소가 꽤나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얼굴에 핑크빛 복면을 쓰고 참가했다 떨어지게 된 마미손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힙합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였다. 이미 성공한 래퍼가 복면까지 쓰고 도전한 후 탈락하는 그 과정은 오히려 전혀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777>은 그런 점에서 보면 그다지 지역을 근거로 둔 힙합씬이 별로 없는 국내에서, 돈과 성공판타지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방송 힙합씬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사진:Mnet)

망가진 자들의 연대 ‘나저씨’, 괜찮다고 진짜 괜찮은 걸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병치되어 있다. 그 한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도 서슴없이 하는 회사. 왕전무(전국환) 측이 박동훈을 상무로 올리려는 것도 반대파인 도준영(김영민) 대표 측과 대결하기 위함이다. 심사를 대비해 왕전무의 측근들은 박동훈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지안(이지은)과의 관계를 미리 추궁한다. 그들에게 사실관계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 이지안을 잘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그 관계를 설명할 그럴 듯한 스토리를 짜서 박동훈에게 대비하라고 한다.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고 대비하는 일을 하고 있는 회사지만, 이 회사의 내부는 무너질 듯 불안하다. 경영진들이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살길에만 더 몰두하고 있어서다. 도준영파와 왕전무파의 정치대결은 상대방에게 미행을 붙일 정도로 극에 달해있다.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정치 싸움 속에서 회사가 하는 안전진단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다. 건물주들의 뒷돈을 받아 대충 안전하다 서류를 만들기도 하고, 제대로 안전진단을 한 박동훈 같은 사람을 앞뒤 꽉 막힌 인간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이 세계에 가치 따위는 없다. 오로지 돈과 권력이 가치가 되는 세계다. 

하지만 박동훈의 앞에는 또 다른 한 세계가 있다. 그건 정희네 선술집이다. 그 곳에는 ‘망가진 자들’ 혹은 ‘끝난 자들’이 모여든다. 그 술집을 운영하는 정희(오나라)가 그렇다. 그는 스님이 된 겸덕(박해준)과 연인 사이였지만, 이젠 그렇게 홀로 남아 선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매일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고, 모두가 돌아갈 집이 있지만 자신은 그 일터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괜스레 퇴근을 해보기도 하고, 빨래와 세수를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아직은 “괜찮은 삶”이라고 말한다. 

그 곳을 찾는 아저씨들은 한 때 그래도 번듯한 직장에 지위까지 있었던 인물들이지만 지금은 한 마디로 ‘망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그 망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 술판을 벌이는 그 곳은 왠지 따뜻하고 훈훈하다. 세상에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연대가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그런 세상 밖에 세상이다. 연기력이 없어 늘 구박받고 살아가는 최유라(나라)가 그 곳을 찾아 아저씨들이 “망가진 게 너무 좋다”거나 “끝난 사람들이라 부럽다”거나 하는 건 그래서다. 망가졌어도 끝났어도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그 망가진 자들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저 이전투구의 세상에 발을 디딘 자다. 세상의 더러운 일들이 벌어져도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아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도저히 희생이라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아내 윤희(이지아)가 도준영 대표와 바람을 피운 일이다. 그는 친구인 겸덕을 찾아가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겸덕은 말한다. 희생 말고 좀 이기적이라도 먼저 행복해지라고. 

박동훈이 힘겨운 건 모두가 포기하며 살아가는 가치를 지켜내며 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적당히 타협하고 가진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면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에게는 ‘정희네’ 사람들이 가진 그 ‘망가진 자들’을 이해하고 때론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춘대(이영석)가 이지안을 보살펴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존경합니다”라고 말하고, 이지안이 할머니 봉애(손숙)를 보살피며 사는 모습을 보고는 “착하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받는 불이익들을 그는 감수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해고하라고 하지만 박동훈은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런데 과연 현실에서 그 누가 이렇게 홀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알아봐 줄까. 또 망가진 자들이 한 때는 저마다 빛나는 존재였다는 걸 그 누가 말해줄까.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세상이 버린 가치를 지키다 망가져간 이들을 위한 헌사를 담고 있다. 이지안에게 봉애가 박동훈은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그는 박동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윤희가 한 불륜이 “넌 이런 대접 받아도 싼 인간”이며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박동훈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지안의 눈물은 그들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담고 있다. 왜 우냐는 봉애의 질문에 이지안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 갑질 세상 속에서 그 가치를 봐주는 이가 있다는 위로만큼 큰 게 있을까.(사진:tvN)

배우는 게 더 많았던 ‘윤식당2’, 우리도 이들처럼 살려면

저들의 아름답고 여유 넘치는 삶을 바라보다 보면 자꾸만 우리네 삶이 눈에 밟힌다. 우리는 어째서 저들처럼 살지 못할까. tvN 예능 <윤식당2>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는 건 바로 이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만 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볼 뽀뽀를 나누는 모습에서는 이들이 남이 아니라 마치 가족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서로 잘 알고 있는 이웃이라서가 아니다. 그건 타인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달라서다. ‘윤식당’이라는 음식점이나 거기서 일하는 출연자들은 모두 그들에게는 완전한 타인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식당’을 찾아온 그들에게서 배타적인 시선은 거의 느낄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반가운 얼굴들이고, 타국의 새로운 음식을 맛본다는 것에 설레는 모습들이다.

떠나는 길에 꽃집 아주머니가 말했듯, 어느새 ‘윤식당’ 사람들은 가라치코의 이웃이 되어 있었다. 걸어서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에 있는 식당 사람들은 ‘윤식당’에서 회식을 한 후 친구처럼 스스럼없어졌고, 헤어질 때는 한국에 꼭 놀러가겠다는 말을 건넸다. 동네 카페 주인분도, 정육점 사장님도 모두가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들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따뜻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아이를 살뜰하게도 챙기고 아내에게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가정의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돈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마지막 날 윤식당을 찾은 한 손님의 이야기에서 그 이유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손님은 한국이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손님은 “말도 안돼. 완전 끔찍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대기업에 다들 들어가고 싶어 하고 그 곳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거든”이라는 그의 말에서 새삼 느껴지는 건 우리가 얼마나 경쟁적인 삶에 내몰려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는 가라치코 사람들의 행복이 가능한 건 우리와는 달리 ‘경쟁적이지 않은 삶’을 그들이 살아가고 있어서다. 당장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삶의 환경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여유 있는 삶을 꿈꿀 수 있을까. 그리고 다름 아닌 그러한 경쟁적인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이미 충분하다고 해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박차에 박차를 가하는 이른바 글로벌 기업들이다. 일이 그걸 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 하지 않으면 더 불행해질 것 같은 경쟁적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서 가라치코 같은 삶을 어떻게 꿈꿀 수 있을까.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분노와 갈등들이 어떤 해결점이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분노와 갈등이 더 첨예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경쟁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윤식당2>는 물론 가라치코 마을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그들이 한식을 즐기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행복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저런 삶을 현실이 아닌 하나의 판타지로서만 봐야할까.(사진:tvN)

‘품위녀’, 김선아는 왜 돈을 얻고도 허망해진 걸까

“박복자씨,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난 처음부터 그걸 알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서 우아진(김희선)은 박복자(김선아)에게 그렇게 말한다. 마침 박복자는 과거 호텔에서 우아진을 처음 봤을 때 그녀가 입었던 하얀 원피스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말하던 참이었다. 도대체 왜 박복자는 그 하얀 원피스에 집착하고, 우아진은 그런 그녀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 JTBC)'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색색의 원피스가 아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우아진. 아마도 박복자는 그런 우아진의 모습을 처음 접하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품위’를 자신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모 없이 자라 버림받는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그것. 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치.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내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 바로 거기서부터였다면 박복자의 욕망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게다.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박복자는 그 품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오해했을 게다. 거기서부터 비뚤어진 욕망이 비롯된다. 안태동을 유혹하고 그의 진심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안태동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이 그토록 그녀가 원했던 우아진에게서 보이는 그 품위를 얻게 했을까. 

부유층의 동태를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청함으로써 파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풍숙정의 오풍숙(소희정)은 절대로 박복자가 그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하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박복자 스스로도 넘치는 돈을 가졌지만 자신이 본래 얻으려 했던 그 ‘품위’는 얻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우아진을 찾아와 그녀처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애원한다.

우아진은 처음부터 박복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우아진을 만났을 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알아보고 예술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걸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돈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개인적 성취나 성장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내 돈에 대한 욕망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아진이 다시 박복자의 마음을 돌리는 순간에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언급하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애초에 박복자가 가졌던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품위 있는 그녀>는 첫 회에 박복자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런 장치를 만든 건 이 드라마가 그녀의 폭주 끝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있었고, 그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 장치가 가진 의미심장함은 ‘죽음’을 이 욕망에 대한 폭주 직전에 슬쩍 꺼내 보여줬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우아진이 함께 하는 마음공부 모임에서는 저마다 유서를 써와 읽는 시간을 가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바라보면 박복자가 가진 그 욕망의 허망함이 공감된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얻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삶의 ‘품위’가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의 품위란 죽음을 전제로 바라볼 때 그 삶이 얼마나 자신에게 진심어린 삶이었는가를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안태동 회장의 집은 그런 점에서 보면 욕망의 허위로 가득 채워진 곳이다. 그 곳에는 주인들도 혹은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 욕망의 수레바퀴 안에서 휘둘린다. 박복자는 그 부유함이 삶의 품위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것은 욕망의 수레바퀴에 휘둘리는 일일 뿐이라는 걸 엄청난 재산을 얻은 후에 돌아오는 허망함 속에서 깨닫는다. 우아진은 그 세계 속에서 그나마 자신을 지키며 살아오던 인물이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그런 삶이 그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탈출하는 인물이다. 결국 우아진은 홀로서고 그 누구와 비교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에 충만함을 느낌으로써 품위를 얻는다. 

<품위 있는 그녀>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 이 안태동 회장의 집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진정한 삶 사이의 긴장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갈등 상황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강남의 부유층들이 살아가는 삶을 막연히 동경하고 그래서 그렇게 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이 과연 동경할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 품위라는 것이 돈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막바지에 이른 <품위 있는 그녀>에서 궁금해지는 건 박복자를 누가 살해했는가 하는 그 의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박복자가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끼는 감정의 동요와 변화들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끝에서 그녀는 과연 진정한 삶의 품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까. 그래서 그녀가 동경하던 우아진의 삶이 사실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될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동경하던 그 마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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