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이상윤의 구토에 담긴 의미는 뭘까

 

박성준(이상윤)이 누군가에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러 간다. 어느 카페 박성준이 어떤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그 상황은 SBS 월화드라마 <VIP>가 지금껏 궁금하게 만들었던 불륜녀의 정체를 드러낼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낯선 여자에게 박성준은 봉투를 꺼내 내민다. “부사장님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십니다.” 그 말은 박성준이 부사장의 내연녀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니냐며 자신은 헤어질 수 없다는 내연녀에게 박성준은 “부모님은 모르시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은근히 협박하고, 결국 내연녀는 비밀유지서약서에 사인한다. 카페 밖에서 내연녀를 보내고, 박성준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지 못한다. 골목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해댄다.

 

그의 구토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일까. 아니 그는 왜 구역질을 느낀 걸까. 그건 자신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환멸과 자괴감, 분노 같은 것들이 뒤섞여 생겨난 구토일 게다. 회사 일이 아니라 회사 상사의 더러운 뒤까지 닦아주며 살아내야 하는 자신이 못내 참기 힘들었을 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VIP>가 지금껏 그려온 이야기가 박성준 자신의 불륜 사실과 그와 관계한 불륜녀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들이다. 타인의 불륜을 처리해주며 구토감을 느낄 정도의 인물이 누군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의심하게 된다. 박성준은 과연 불륜을 저질렀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불륜을 관리해주다 앙심을 품은 이에 의해 그런 문자까지 아내가 받게 만든 것일까.

 

비밀유지서약서가 버젓이 등장한다는 건, 이 VIP와 그를 보좌하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어떤 일들에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제조건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 과연 박성준은 자신의 불륜이 아니면서도 VIP와의 관계 때문에 아내에게조차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내 나정선(장나라)에게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가 왔고, 그것이 바로 나정선의 자리에서 보내졌다는 걸 알고는 박성준이 그 날의 CCTV 자료를 빼간 것도 너무 깔끔한 일처리가 오히려 눈에 띈다. 그것 역시 VIP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조처가 아니었나 의심될 정도로.

 

물론 이건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전개 흐름 상 박성준이 불륜남이 아닐 거라는 심증이 자꾸만 생겨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고 같은 사무실에 남편 박성준과 아내 나정선을 나란히 세워놓은 건 그들이 하는 일(VIP를 관리해주는 일)과 그들의 사적인 삶이 겹쳐졌을 때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가를 보기 위해서다. VIP이기 때문에 불륜이 용인되고, 심지어 그걸 관리해주는 박성준은 그런 일이 실상 VIP 전담팀이라는 그럴 듯한 부서가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정선과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낸다. 나정선 또한 그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문자 하나가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함께 그 일을 하는 동료들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든다. 만일 박성준이 불륜이 아니었고 그것이 VIP를 관리하는 일의 하나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정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핵심은 무엇이 VIP라는 존재들에 이토록 윤리와 도덕 바깥으로 나가도 관리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그건 결국 VIP들을 위해 발급된다는 카드에 붙어 있는 번호표가 그들의 서열이 되는 것처럼, 돈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자본주의 세상 깊숙이 들어와 살다보니 돈에 의해 서열이 나뉘고 심지어 비윤리적인 것까지 관리되고 용인되는 VIP의 세계를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세계가 참으로 기이하고 부조리하다는 걸 ‘불륜’이라는 코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사진:SBS)

심상찮은 'VIP' 반응, 불륜을 통해 담아내는 사회적 의미

 

SBS 월화드라마 <VIP>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시청률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단지 불륜만은 아니라는 징후들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상황도 그렇다.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불륜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그것을 통해 색다른 사회문제나 의미를 가진 드라마들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VIP>는 분명 초반 불륜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정선(장나라)에게 온 문자 하나가 그 시작점이었다.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 그 후 나정선은 남편 박성준(이상윤)을 의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려 하기도 하고 그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또 그 ‘여자’가 누구인가 사무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하나둘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발각된 박성준은 나정선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고 하고, 고통스럽지만 나정선 역시 용서하려 노력해보겠다 말한다.

 

이런 전면에 드러난 스토리만을 두고 보면 <VIP>는 불륜을 다룬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소재만을 자극적으로 펼쳐놓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나정선과 박성준을 부부이면서 한 팀의 팀장과 차장으로 구성해놓고 있는 점이나, 또 그 팀이 다름 아닌 백화점 VIP를 전담하는 부서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VIP 전담팀이라는 구체적인 직업의 세계를 가져왔고 그 팀에 부부가 팀장과 차장으로 있는 설정을 해놓은 걸까.

 

그건 우리네 관계가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정선과 박성준이 어느 VIP 고객과 자연스런 인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사적인 부부의 저녁을 가장해 앉아 있을 때, 그 고객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걸 발견한 부부의 시선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적인 일은 VIP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사적인 불륜 같은 것들조차 숨기고 감춰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 된다.

 

그래서 공적인 일로서는 그걸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불륜일 뿐이다. 이미 박성준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 나정선은 그래서 그 VIP의 불륜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저들의 불륜은 넘어가면서 내게 닥친 불륜을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차이는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돈으로 얽혀져 있어 불륜마저 그 힘에 의해 덮여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계 구조가 들어가 있다.

 

이런 일들은 이 VIP 전담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모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온유리(표예진)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가난을 넘어서려 하는 인물이다. 공적인 위치를 사적인 관계를 통해 넘어서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이현아(이청아)는 정선과 입사동기이고 친구였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휴직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와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역시 무언가 회사 내 위계구조 안에서 일을 겪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정선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바꿔놓고 있는 것.

 

송미나(곽선영)는 육아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워킹맘으로 사적인 문제로 공적인 위치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사에서 승진해 정당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하지만 두 아이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하면서 승진이 누락되어 6년째 사원이다. 훨씬 더 절실해진 그는 그래서 공적 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결국 그는 집을 나가겠다 선언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설정한 건, 이런 돈과 지위로 결정되는 위계가 심지어 윤리적인 부분까지 넘어서는 걸 가장 잘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VIP라는 이유로 저들은 군림하고 뭐든 하대하며 누리려 한다. 저들은 선을 넘는 일조차 당연하듯 행하고 거기에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지만, 이들을 대하는 전담팀은 다르다. 그들은 VIP를 응대하는 일이 자신의 업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저들을 목격한 이들의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VIP>는 그래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건 우리가 그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다. 돈 있는 이들이 결국 VIP로 불리고 군림하는 사회. 하지만 VIP의 의미 그대로 진정으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런 부분들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SBS)

‘배드파파’, 장혁은 공감 가는데 어째 손여은은 영

한 때는 존경받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협회에서조차 영구제명 된 권투선수 유지철(장혁).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이 인물은 그 약물이 가진 괴력을 도박 격투기장에서 경험한다. 부작용 때문에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이겨낸 유일한 그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다시 격투기 선수로 링 위에 오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는 몇 가지 이야기 코드들이 합쳐져 있다. 하나는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빠라는 ‘가장’의 무게감을 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격투기 소재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24>처럼, 약물 투여를 통해 변신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이미 헤밍웨이가 매료됐던 것처럼, 사각의 링은 하루하루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장들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 위에 선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두드려 맞아도 결코 쓰러질 수 없다.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욕을 먹어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족의 행복은 딸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또 아내가 그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벌기 위해 야설을 쓰는데 소모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 ‘가장 판타지’다. 돈이 좋은 가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두되는 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들 중 하나인 친구에게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가 망했고, 딸은 이미 연예인급으로 알려진 친구와 다투다 그를 다치게 해 그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옛 친구이자 자신의 라이벌인 성공한 격투기 선수 이민우(허준)가 자서전을 미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지철을 둘러싼 이 모든 불운들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지철은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부정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해서는 안 될 신약을 복용한 후 그 힘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 무슨 일인지 종합격투기 프로모터인 주국성(정만식)은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7번의 경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치 유지철 앞에 나타난 구세주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딘가 유지철의 뒤통수를 칠만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 약의 부작용을 유지철이 이겨냈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돈에 의해 불운해지고, 그 돈을 벌어 다시금 행복을 찾으려 링 위에 오르는 유지철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마도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들이라면 이 유지철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선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바로 이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대한 짠한 공감을 위해 희생되는 주변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변인이 바로 그의 아내인 최선주(손여은)다. 다시 시작하려는 남편을 말리는 최선주가 이민우의 자서전을 빌미로 강릉까지 함께 가고, 바닷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까르르 웃는 장면은 이 인물이 유지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세우는 건, 유지철과 이민우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함이다. 

또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름만 올라와도 구설에 시달리는 아빠 때문에 발레를 포기했지만, 댄서의 꿈을 꾸고 있는 딸 유영선(신은수)도 마찬가지다. 명품가방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딸의 이야기는 사실상 유지철이라는 가장을 위한 에피소드로만 처리된다. 모든 이야기가 ‘배드파파’ 유지철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주변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비되는 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을 만든다. 

시청자들이 장혁 때문에 보긴 보는데, 불륜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에 영 공감하지 못하는 건 그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작위성의 문제 때문이다. 최선주라는 인물이 능동적인 선택으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지철의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이리저리 동원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의 이야기라 반가운 면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남는 아쉬움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링 위의 극적인 이야기로 담겠다는 그 의도는 좋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그 가장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주변인물들을 거기에 맞춰 배치하는 건 전체적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공감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이다.(사진:MBC)

'흉부외과' 고수의 질문, 당신의 심장은 누구 위해 뛰고 있나

당신의 심장은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가. 또 누구를 위해. SBS 수목드라마 <흉부외과>는 그 소재를 다름 아닌 흉부외과에서 가져왔다는 점에서 다소 이런 문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JTBC <라이프> 같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소개되었듯이, 병원은 그저 환자를 돌보는 곳만이 아니라, 하나의 기업체가 되었다. 그러니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의료행위는 모든 환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흐름이 어느새 병원까지 깃들어, 이제는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하나의 무서운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똑같이 하나씩 갖고 있는 심장으로 유지되는 생명이지만, 돈과 권력의 차등에 따라 누군가는 계속 뛸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그렇다면 그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의사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느 쪽으로 심장이 뛸 것인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힘없고 가난한 환자와 당장 하지 않아도 되지만 명령에 의해 당장 수술을 해주면 권력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환자. 응당 의사라면 전자에 심장이 뛰어야하겠지만, 막상 그런 선택으로 겪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혹독하다. 

실력은 있지만 지방의대를 나와 스펙이 없는 박태수(고수)는 자신이 펠로우하는 의사 황진철(조재윤)의 잘못된 수술을 눈감지 못한다. 그래서 황진철을 징계 받게 하지만, 바로 그 일은 박태수에게 주홍글씨로 남아 어느 병원으로 가도 지워지지 않는 흠집으로 남는다.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 노예처럼 병원의 펠로우 생활을 하지만 그가 버티는 이유는 식당 일을 하는 홀어머니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머니가 쓰러져 당장 수술 받지 않으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의사는 태산병원에서 역시 자신처럼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지만 실력 하나로 버티고 있는 최석한(엄기준)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어머니를 살리긴 했지만 확장성 심근증으로 심장이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박태수는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는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태산대 출신이 아니라 해원대 출신이고, 그래서 태산대 출신으로 이뤄진 병원의 성골 의사들에 의해 배척받으며 그들이 꺼리는 수술을 떠맡아 한다는 점에서 박태수는 최석한을 닮아간다. 워낙 수술 중 사망 건수가 많아 그것이 의사들의 생명 줄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위험한 환자는 받지 않으려는 구희동(안내상) 같은 의사들이 그 성골이다. 당장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을 돌려보내는 그들의 심장은 권력을 향해 뛴다. 병원장 윤현일(정보석)은 대권후보의 심장수술을 하면서 그 수술이 성공하면 “돈이 얼만데”라고 말하는 의사다. 그에게 VIP들의 심장과 가난한 서민들의 심장은 다른 가격으로 매겨진다.

<흉부외과>는 그래서 병원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병원 바깥의 우리네 현실이 담겨있다. 누구나 실력이 있다면 인정받는 것이 상식적인 세상이지만, 이 곳은 그 상식이 철저히 무너진 세상이다. 실력이 있어도 돈과 권력이 없으면 그 실력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핍박받지만, 정반대로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은 실력이 없어도 그 자리를 유지하며 실력 있는 이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극화된 이야기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흉부외과>에는 ‘심장을 훔친 의사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드라마는 그 도입부분에 대권후보에게 이식될 심장을 훔쳐 도망치는 박태수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똑같은 심장이고 똑같은 생명이지만 권력자에게만 그 심장과 생명이 가는 그 부당함을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로 심장은 훔친 의사들은 박태수 같은 이들이 아니라 저 권력 있는 자들이 아닐까. 시청자들의 심장을 훔칠 가슴 뛰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