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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경쟁적인 소비가 낳은 트렌디한 스토리의 문제

지금 드라마들은 장르가 가진 트렌디한 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시의 세계를 들고 온 스포츠 드라마, '드림'은 이종격투기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는 스포츠 드라마가 갖는 전형적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심에서 벗어난 남자들의 성공을 향한 질주, 권력을 쥔 자와의 대결구도 그리고 적절한 멜로구도가 반복된다. 새롭게 시작한 '공주가 돌아왔다'는 줌마렐라를 내세운 전형적인 트렌디 멜로드라마다. 발레라는 소재를 집어넣었지만,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는 이 트렌디 멜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선덕여왕'이라는 발군의 사극과 경쟁하고 있지만,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드림'이나 6%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공주가 돌아왔다'는 자체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딘지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 기획에 지나치게 트렌디한 드라마 스토리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캐릭터들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애초부터 답이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다. 화제성은 어느 정도 갖고 있으나 드라마 내적으로 보면 트렌디한 장르 그 이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러한 드라마들의 문제는 수목 드라마에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새로이 시작한 '맨땅의 헤딩'은 축구를 소재로 한 청춘드라마지만, 드라마는 소재만큼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봉군(유노윤호)의 성장 스토리에 사각관계로서의 트렌디 청춘 멜로를 엮어놓았을 뿐, 축구라는 소재의 디테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갖는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 연기에 도전하면서 부족해도 열심히 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유노윤호의 노력이 아까울 정도로, 스토리는 캐릭터를 살려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률은 6%대. 스토리 없이 젊은 배우들의 맨땅의 헤딩만으로는 시청률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가씨를 부탁해'는 초반 윤상현과 윤은혜가 출연하고 '꽃보다 남자'가 갖는 판타지 드라마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차츰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미 봐왔던 트렌디한 설정들과 상투적인 멜로로 인해 시청률은 점점 가라앉고 있다. 이제 13%대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이 드라마는 기획 단계부터 트렌디 판타지 멜로를 예고했고, 그것은 또한 이 드라마의 한계를 애초부터 지어버린 격이 되었다.

후반으로 오면서 시청률이 반등하고 있는 '태양을 삼켜라'는 이 수목드라마의 공백이 주는 반사이익을 가장 많이 본 드라마다. 아프리카와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제주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스케일에 제작비를 감안해 보면 이 드라마가 현재 갖고 있는 17%대의 시청률은 오히려 초라하다고 봐야 할 정도다. 완성도 높은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부재한 까닭이다. 이미 많이 봐왔던 전형적인 남성드라마의 성공, 복수를 전형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결국 '출생의 비밀'이라는 카드를 내세웠다. 스스로 드라마 스토리가 가진 문제를 자인한 셈이다.

주말드라마로 오면 스토리의 트렌디함은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느낌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애초에 훈훈한 드라마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와 트렌디한 시어머니를 내세우는 등,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38%에 가까운 시청률을 일궈냈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 스토리의 성공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청률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호평 받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비정상적인 스토리진행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제목처럼 스타일은 있었지만 스토리는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이서정(이지아)은 그 캐릭터가 매력이 없었고, 따라서 그 자리에 박기자(김혜수)가 서게 되었다. 본래 박기자 같은 캐릭터의 역할은 이서정 같은 캐릭터를 세워주고 성장시키는 것이지, 그 자신이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다. 시청률이 점점 떨어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주말에 아쉬운 드라마는 '탐나는도다'다. 이 드라마는 물론 실험적이기는 하지만 아기자기한 스토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탐나는 드라마를 아깝게 만드는 것은 편성이다. 이 드라마는 주말이라는 시간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말에 편성됨으로써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지금의 수목드라마에 배치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더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선덕여왕'을 빼고 현재 드라마들은 지리멸렬하게 장르라는 틀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어떨까. 이 사극은 장르의 틀을 벗어나고 또 다양한 장르를 끌어들임으로써 어떤 통합장르의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에피소드별로 구성되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성격에 전체를 꿰뚫고 나가는 시리즈극이 적절히 균형을 맞춘 이 사극 속에서 우리는 추리극을 발견하기도 하고, 멜로드라마를 발견하기도 하며,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의 문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 어떤 면에서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가족드라마 특유의 코드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신라시대를 다루는 미션사극의 새로움과 가족드라마나 멜로드라마의 코드를 숨겨놓는 익숙함이 적절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들이 얼마나 대중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 드라마들은 화제성 있는 소재에 이른바 장르화된 성공 코드를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손쉽게 시청률을 끌어 모으려는 안이한 방식에 젖어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 코드들은 대중들이 보기에도 쉽게 인지되고 있고, 따라서 장르 자체가 급속히 소비되면서 피곤해진 상황이다. 늘 될 만한 장르들만 반복해서 경쟁적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온 탓이다. 이 시점에서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통합장르의 가능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르와 장르들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또는 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스토리를 모색하는 것은 현 위기로 인식되는 드라마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 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드림', '친구', '태삼', 그들은 도대체 왜 싸우는 걸까

그만큼 키워줬는데 내 뒤통수를 치려 해? 드라마 '드림'에서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인 슈퍼스타코프 사장인 강경탁(박상원)이 남제일(주진모)에게 갖는 불만이다. 한편 남제일은 입장이 다르다. 충성해서 이만큼 회사를 키워냈는데 고작 나를 이렇게 취급해? 그는 개처럼 충성하며 회사를 키워온 자신을 바닥으로 내친 강경탁과 맞선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서 있고, 분명 남제일이 선이고 강경탁이 악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대결과정에서 보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가르쳤군", 하고 강경탁은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남제일을 인정하고 남제일 역시 그 앞에 서면 어떤 선배로서의 예우 같은 것을 지켜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남제일과 강경탁의 대결은 선과 악으로 나눠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비정한 대결구도로 그려진다. 강경탁이 이기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쓰는 것처럼 남제일도 적당히 언론을 이용하고 국내종합격투기의 중계권을 쥐고 있는 장수진 PD(최여진)와도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있을 뿐, 사실은 같은 과다. 이것은 마치 링 위에 서 있는 두 명의 파이터들처럼 선악의 구분이 없다. 그들은 그저 링의 법칙에 충실할 뿐이다.

한편 남제일에 의해 파이터로 키워지게 된 이장석(김범)은 불우한 환경 탓에 소년원에도 다녀온 전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길거리의 쓰레기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링 위에 선다. 이장석을 트레이닝하는 박병삼(이기영)은 전 복싱 동양챔피언 출신의 명트레이너지만 선수를 키워줄 능력은 부족한 인물이다. 그래서 기껏 키워놓은 선수를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그 놈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위안을 삼는 인물이다.

'드림'이라는 남성들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이처럼 늘 무언가와 사투를 버리고 있지만 정작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강경탁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버지의 트라우마 속에 갇혀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제일이 성공하려 하는 것은 이미 성공했던 자의 추락이 주는 회귀욕망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성공하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강경탁이 되려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링의 법칙이 가지는 비정함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법칙과 대항하든가, 아니면 링을 떠나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 하지 않는다.

이장석은 자기존재의 증명을 위해 링 위에 서는 인물이지만, 그 과정까지 즐기는 인물인 것 같지는 않다. 즉 그는 이 드라마의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어떤 목표를 위해 현재를 감내하고 있는 인물이다. 남자들의 이런 모습들은 실제 사회생활에서도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모두가 지향하는 성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생활을 즐길 줄도 모르고,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자세를 고수하는 이런 모습들은 우리네 사회의 남자들이 갖는 대부분의 태도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이 시대에는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한다. 지금은 미래가치로 제시되는 성공보다는 현재적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다가올 현재로 볼 때,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이것은 '드림'의 불쌍한 남자들이 처한 환경이고, 실제로 '드림'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실의 남성들이 처한 환경이며, '드림' 같은 남성의 세계를 그리는 드라마들이 처한 환경이기도 하다. '드림', '친구', '태양을 삼켜라' 같은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모두 똑같은 성공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것이 주는 가치는 과거적 향수에 머물고 있다. 이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낮은 것은 대진운 탓도 크겠지만, 그 스스로 취하고 있는 가치관이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보다 큰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탓도 크다. 막연한 성공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던 남자들의 세계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가끔씩 사투를 벌이는 드라마 속의 남자들을 보면서 저들은 왜 저렇게 싸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드림'이 전하는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

헤밍웨이가 권투에 매료된 것은 그것이 대결하는 세상을 그대로 압축해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림'은 바로 그 대결이 벌어지는 사각의 링을 드라마로 끌어들였다. 외형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저 '제리 맥과이어'의 이종격투기 버전으로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록키'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비정한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와 볼거리로서의 이종격투기, 그리고 쓰레기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은 한 마이너리티의 성장스토리가 이 드라마에는 잘 엮어져 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에이전트 회사인 슈퍼스타코프 사장 강경탁(박상원)은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힘을 갖춘 CEO. 그는 청춘을 바쳐 일 해왔지만 자신의 충실한 개가 되지 못한 남제일(주진모)을 바닥으로 내친다. 남제일은 아버지 때문에 소매치기 전과까지 갖게 된 길거리 파이터 이장석(김범)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저마다의 재기의 꿈을 꾼다. 남제일은 강경탁을 무너뜨리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다시 서려하고, 이장석은 쓰레기 인생에서 벗어나 자신도 인간임을 증명하려 한다.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의 스토리 구조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대결구도가 흥미롭다. 강경탁을 대척점으로 하여, 그에게 쫓겨나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남제일과, 그에게 자식처럼 키워온 맹도필(김웅)을 빼앗긴 박병삼(이기영)과 그 가족들, 그리고 바로 그 맹도필과 대결을 벌이는 이장석. 이렇게 그려진 구도 속에는 승자 독식의 비정한 사회가 투영되어 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에이전트 회사가 지방의 작은 체육관에 있는 선수를 돈으로 빼내오는 모습은 우리네 대기업들의 싹쓸이 행태를 축소해보는 것만 같다. 자신의 잘못을 부하직원에게 뒤집어씌우고 비정하게 버리는 행위도 그렇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는 사실 좀 더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스카우트되고 키워지고 때론 버려지기도 한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가 극명하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선수가 인간이면서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양념처럼 등장하는 꽃미남 격투단은 바로 이런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격투라는 본질과 멀어져 외관만으로 상품성이 포장되는 현실은, 우리가 이미 상품의 세계에서 충분히 경험해왔던 일들이다.

인간과 상품. 강경탁과 남제일이 선수를 보는 궁극적인 관점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강경탁은 선수들을 철저히 상품으로 관리하고, 남제일도 그렇게 배워왔지만 이장석을 만나면서 차츰 인간으로서 선수를 대하게 된다. 강경탁이 서 있는 곳이 주로 회사라는 공적 공간인데 반해, 남제일이 있는 등대체육관의 풍경이 가족적인 공간인 점은 이 관점의 차이를 공간적으로 잘 표현해낸다.

'드림'은 이처럼 단순히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를 그리거나, 이종격투기의 볼거리를 제공하기만 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스포츠에이전트로 대변되는 인간과 상품의 문제를 바탕에 깔고서 그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링 위에서 부딪치는 드라마다. 강경탁과 남제일의 대결, 그리고 이장석과 맹도필 같은 선수의 대결은 그 밑에 이런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어쩌면 살과 살이 부딪치는 이종격투기의 세계가 주는 처절함은 그 자체로 이 세계의 비정함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대결은 삶을 사는 이들의 숙명인 것을. '드림'이 꿈꾸는 세상은 그러니 대결 없는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 대접받는 세상이다.

Posted by 더키앙

'선덕여왕'의 고현정, '드림'의 박상원, '스타일'의 김혜수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은 주역은 아니지만 이 사극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사극은 바로 이 미실이라는 악역 캐릭터에서부터 그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그 힘으로 굴러가며 주역은 물론이고 주변인물들까지 이 캐릭터에 의해 창출되고 움직여진다. 이 사극이 가진 미션의 목적 자체가 바로 이 절대 권력의 소유자인 미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은 어쩌면 이 사극의 가장 중요하고도 힘겨운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굳건히 버티고 있어야 극은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수 있다.

이것은 '드림'의 강경탁(박상원)이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드림'이 스포츠 에이전트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로서 그 핵심적인 틀이 복수극에 있다면, 그 틀을 쥐고 있는 인물은 강경탁이다. 비정하고 철두철미한 이 악역은 청춘을 온전히 바쳐 개처럼 일해 부와 명예를 쌓아온 남제일(주진모)을 저 바닥까지 내치는 인물이다. 이로써 남제일은 이 드라마 속에서의 미션을 부여받는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저 스스로 스포츠 에이전트로서 성공해 강경탁을 무릎 꿇려야 한다. 따라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강경탁을 연기하는 박상원은 이 드라마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주말 드라마, '스타일'의 박기자(김혜수)는 이 드라마 속에서 도무지 넘어서기가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악역이다. 직장상사의 표상처럼 과장되게 그려지는 이 박기자는 이서정(이지아)이라는 말단 직원의 캐릭터를 구축해주는 인물이다. 박기자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는 이서정은 이로써 그녀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이서정의 성장 드라마로도 볼 수 있는 이 '스타일'에서 박기자는 그 성장의 동기를 제공한다. 박기자 역할의 김혜수가 그 어떤 주역들보다 돋보이고 중심축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고현정이나 박상원, 김혜수 같은 이제는 중견이 된 연기자들이 매력적인 악역으로 돌아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악역이란 드라마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한다. 극을 만들어내고 극을 움직이게 하며 심지어 거꾸로 주역을 이끌어가기도 하는 악역이 주역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으면서도 악역이라는 이유로 자칫 꺼려할 수 있는 이 배역을 기꺼이 끌어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여전히 주역을 맡아도 빛날만한 자신들만의 아우라를 가진 연기자들이 아닌가.

연기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스타라는 허울보다는 연기자라는 실재에 더 몰입하는 것은 실로 중요하다. 이것은 중견 연기자라는 칭호를 받는 그들에게도 그렇지만, 우리네 드라마 전체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렇다. 한때 청춘스타들로 빛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연기자들은 어찌 보면 우리 드라마의 큰 손실이기도 하다. 그들이 기꺼이 스타의 스포트라이트보다 드라마의 척추 역할로 돌아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몇몇 한류스타라는 빛 속에 여전히 서서 그 언저리를 배회하는 연기자들이 외면당하는 것은 이처럼 큰 틀 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보다는 여전히 하고 싶은 역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의 드라마를 보는 시각은 그만큼 성숙해졌다. 그들은 이미 드라마 속에서 악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고, 심지어 그 악역 속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해내 기꺼이 박수를 쳐준다. 드라마의 성패가 그 드라마를 움직이는 매력적인 악역의 발굴에 있다고 볼 때, 어쩌면 이런 선택을 하는 중견 연기자들의 어깨 위에 우리네 드라마의 향방이 달려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악역의 중견들, 그 의미있는 귀환은 주목받고,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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