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드림'이 꿈꾸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드림'이 꿈꾸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

D.H.Jung 2009. 8. 1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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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이 전하는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

헤밍웨이가 권투에 매료된 것은 그것이 대결하는 세상을 그대로 압축해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림'은 바로 그 대결이 벌어지는 사각의 링을 드라마로 끌어들였다. 외형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저 '제리 맥과이어'의 이종격투기 버전으로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록키'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비정한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와 볼거리로서의 이종격투기, 그리고 쓰레기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은 한 마이너리티의 성장스토리가 이 드라마에는 잘 엮어져 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에이전트 회사인 슈퍼스타코프 사장 강경탁(박상원)은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힘을 갖춘 CEO. 그는 청춘을 바쳐 일 해왔지만 자신의 충실한 개가 되지 못한 남제일(주진모)을 바닥으로 내친다. 남제일은 아버지 때문에 소매치기 전과까지 갖게 된 길거리 파이터 이장석(김범)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저마다의 재기의 꿈을 꾼다. 남제일은 강경탁을 무너뜨리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다시 서려하고, 이장석은 쓰레기 인생에서 벗어나 자신도 인간임을 증명하려 한다.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의 스토리 구조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대결구도가 흥미롭다. 강경탁을 대척점으로 하여, 그에게 쫓겨나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남제일과, 그에게 자식처럼 키워온 맹도필(김웅)을 빼앗긴 박병삼(이기영)과 그 가족들, 그리고 바로 그 맹도필과 대결을 벌이는 이장석. 이렇게 그려진 구도 속에는 승자 독식의 비정한 사회가 투영되어 있다.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에이전트 회사가 지방의 작은 체육관에 있는 선수를 돈으로 빼내오는 모습은 우리네 대기업들의 싹쓸이 행태를 축소해보는 것만 같다. 자신의 잘못을 부하직원에게 뒤집어씌우고 비정하게 버리는 행위도 그렇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는 사실 좀 더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스카우트되고 키워지고 때론 버려지기도 한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가 극명하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선수가 인간이면서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양념처럼 등장하는 꽃미남 격투단은 바로 이런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격투라는 본질과 멀어져 외관만으로 상품성이 포장되는 현실은, 우리가 이미 상품의 세계에서 충분히 경험해왔던 일들이다.

인간과 상품. 강경탁과 남제일이 선수를 보는 궁극적인 관점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강경탁은 선수들을 철저히 상품으로 관리하고, 남제일도 그렇게 배워왔지만 이장석을 만나면서 차츰 인간으로서 선수를 대하게 된다. 강경탁이 서 있는 곳이 주로 회사라는 공적 공간인데 반해, 남제일이 있는 등대체육관의 풍경이 가족적인 공간인 점은 이 관점의 차이를 공간적으로 잘 표현해낸다.

'드림'은 이처럼 단순히 스포츠에이전트의 세계를 그리거나, 이종격투기의 볼거리를 제공하기만 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스포츠에이전트로 대변되는 인간과 상품의 문제를 바탕에 깔고서 그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링 위에서 부딪치는 드라마다. 강경탁과 남제일의 대결, 그리고 이장석과 맹도필 같은 선수의 대결은 그 밑에 이런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어쩌면 살과 살이 부딪치는 이종격투기의 세계가 주는 처절함은 그 자체로 이 세계의 비정함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대결은 삶을 사는 이들의 숙명인 것을. '드림'이 꿈꾸는 세상은 그러니 대결 없는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 대접받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