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가능성 있지만 보완해야할 것들

 

MBC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정작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중국에서 그네들 버전으로 만들어져 계속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같은 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떠올리면 여전히 생각나는 무대와 가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첫 무대에 올랐던 이소라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 조용히 바람이 분다를 불렀을 때의 그 감동, 백지영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 절절한 목소리, 김건모의 애절하면서도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파워풀 했던 무대. 돌아온 임재범이 마치 짐승처럼 불러댄 남진의 빈 잔은 물론이고 비주얼 가수로 자리매김한 김범수의 님과 함께’, <나는 가수다>의 요정으로 등극했던 박정현이 부른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등등. 우리는 여전히 한때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냈던 그 무대들을 하나의 추억처럼 얘기한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한 것도 바로 그런 무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무대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나마 효린이 애절하게 불러낸 박선주의 귀로<나는 가수다> 무대에 최적화된 더 원이 부른 백지영의 잊지말아요가 약간의 감흥을 만들었을 뿐, 다른 무대들은 그다지 임팩트가 보이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렇게 된 이유를 가수에서 찾는다. <나는 가수다>를 부활시키려면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이소라 같은 가수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이 프로그램의 당장의 가능성은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임시처방이 될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특정 가수들의 전유물이 된다는 건 특정한 무대에 묶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좀 더 많은 가수들이 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가 예전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출 구성이 너무 밋밋했던 탓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갖는 가수들의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무대 역시 그만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내려오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여타의 추석특집 음악방송과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된 것은 편성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보여주려는 무대는 너무 많았던 것에서 비롯된 일이다. 7명의 가수가 한 곡씩 부르는 시간도 빡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먼저 자신들의 곡을 부르고 그 순위에 따라 메인 무대의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경연방식을 구성했다. 이렇게 되자 두 곡씩 그 짧은 시간에 담아내느라 보다 압축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앞부분은 마치 사족처럼 보였고 오히려 긴장감을 흩트리는 시간이 되었던 것.

 

또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경연은 노래에 대한 집중력을 그만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 무대의 공연은 현장에서 봤을 때 훨씬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집에서 TV로 볼 때는 그 감흥이 그만큼 느껴지기가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는 야외에서 리액션이 중요한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면 좀 더 음 하나하나의 묘미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회적인 이벤트다. 그러니 그저 추석에 하는 쇼의 하나거니 하면서 넘겨도 될 문제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깊게 남게 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다시 정규화해도 될 만한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MBC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8.2%(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그만큼 대중들에게는 그 기대감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는 다양성 영화로 100만 관객을 넘기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기적이 가능했던 건 거기 음악이 있었고 그 음악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그렇게 음악이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다변화할 수는 없는 일일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정규화해도 충분히 <비긴 어게인>이 보여준 음악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SNL 코리아', 콩트를 살린 라이브의 힘

'SNL코리아'(사진출처:tvN)

많은 사람들이 콩트 코미디는 이제 한 물 갔다고들 말한다. 리얼리티 예능이 대세가 된 시대에, 어딘지 대본에 의해 짜여진 설정 코미디가 구식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저 최고의 예능 시청률을 자랑하는 '개그콘서트'가 콩트 코미디라는 사실은 이러한 생각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다만 콩트 코미디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 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개그콘서트'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편집의 칼날 위에 경쟁하는 시스템을 통해 선별되어 보여지기 때문에 재미있다. 과거처럼 경쟁 없이 짜여진 대본대로 한 코너 한 코너 세트에서 촬영되어 보여주었다면 재미는 상당히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즉 같은 콩트 코미디라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고 경쟁력 있게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따라 재미는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tvN에서 새롭게 시작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이하 SNL 코리아)'는 그 유명한 NBC의 대표 코미디쇼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한국 버전이다. 아마도 AFKN 세대들이 토요일 밤이면 그 낯선 영어에도 불구하고 짧은 코미디가 주는 재미에 빠져 봤을 그 프로그램이다. 그 날의 게스트가 나와 이 프로그램의 고정 크루(고정출연자들)와 함께 여러 콩트 코미디를 보여준다. 버라이어티쇼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간간히 초대 가수의 노래가 이어지고 콩트 영상물이 들어가며 특유의 시사 코미디도 덧붙여진다. 물론 원조 SNL은 야한 농담과 설정들도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특유의 재즈적인 배경음악이 주는 뉴요커 스타일은 이 프로그램의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 날의 게스트가 있기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콩트 코미디에 대한 집중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SNL 코리아'의 첫 회가 성공적이었던 데는 김주혁이라는 연기자의 전혀 다른 결(한없이 망가지는)을 이 콩트 코미디 속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주혁은 공포에 질려버리는 정신과 의사에서부터, 화장실이 급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 여장 남자, 전장에서 간접광고를 진지하게 하는 배우, 스티브 잡스를 흉내 낸 휴대폰 대리점 사장 등등 다양한 역할로의 변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버라이어티쇼가 '라이브'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즉시성은 마치 연극에서 그 순간에 휘발되는 시간에 더 몰입되는 것처럼, 시청자들의 시선을 더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게다가 이 특별한 쇼의 카메라는 무대 위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무대 바깥과 세트를 그대로 다 보여주고, 때로는 이쪽 세트에서 저쪽 세트로 넘어가는 김주혁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해 보여준다. 라이브의 느낌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이 라이브의 힘은 그래서 그 안에 이뤄지는 콩트 코미디에 더 깊은 집중도를 살려준다. 콩트 코미디는 물론 짜여진 대본이 있지만, 그것이 연기되는 것은 연극처럼 즉시성의 리얼리티를 갖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라이브의 특징인 실수와 의외의 상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향후 그런 일들은 오히려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결과적으로 'SNL 코리아'가 콩트 코미디를 살린 것은 바로 그 특유의 연출 스타일과 게스트가 참여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라이브라는 효과 덕분으로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점점 사라져가는 콩트 코미디물을 생각해보면 이를 성공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 'SNL 코리아'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콩트 코미디는 죽지 않았다. 다만 시대에 맞는 옷을 입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가수다', 가수의 진심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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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이소라, 정엽, 백지영, 김범수, 윤도현, 박정현 그리고 김건모. 오롯이 이렇게 7명의 가수들을 TV에서 그것도 한 무대에서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MBC '우리들의 일밤'에서 새롭게 시작한 '나는 가수다'에 대한 우려는 오랜만에 TV 무대에 선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를 열창하면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서바이버 형식으로 기성가수들을 서열화한다는 비판적인 시선이 있었지만, 우려와 달리 '나는 가수다'가 보여준 무대는 제목처럼 가수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일일이 인터뷰를 통해 "가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저마다 갖고 있는 그 생각대로 무대를 펼쳐나갔다.

서바이버라는 형식은 이제 무대가 익숙해져 관성화된 프로 가수들에게 오히려 긴장감과 설렘을 부여했다. 마치 첫무대에 선 것처럼 그들은 한 음, 한 구절에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 진정성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졌고, 프로그램의 카메라는 그 장면들을 포착했다.

카메라는 그 라이브로 전해진 생생한 감동과, 가수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를 어떻게든 영상으로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래 중간 중간에 인터뷰를 끼워 넣었는데 대중들의 노래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그 편집 자체를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다. 노래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얘기다. 첫 방에 대한 부담감이 과도한 편집을 낳았던 셈이다.

관객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서바이버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세대별로 나뉘어진 관객들의 호불호가 투표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서베이 형식을 닮아있다. 어떤 가수가 어떤 세대에 더 호감을 주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서바이버 형식이 갖는 서열화의 느낌은 이 같은 서베이 형식들을 다양하게 부가함으로써 다양한 취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 해야 할 숙제처럼 보인다.

사실 이처럼 가창력이 월등한 가수들이 프라임타임대의 TV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만큼 대형기획사 중심의 아이돌과 비주얼에 편중된 음악 프로그램들의 획일성을 말해주는 이 비극적인 상황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가수의 본질이 자꾸만 잊혀지고 있는 현 세태에, '가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조금 시간을 갖고 남은 숙제와 해나가야 할 과제들을 풀어나간다면 분명 보상은 있을 것이다. 이런 예측을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서바이버라는 조금은 당혹스런 형식에도 불구하고 선뜻 출연에 응한 가수들의 진정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바이버 형식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원하는 방식'임으로, 그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최고의 무대가 자신들의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무대가 아니라, 대중들을 위해 당혹스러움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서는 무대라는 진심을 담을 때, 대중들은 반응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 프로그램이 가요계의 변해가는 제반 상황들 속에서 희석되어가고 있는 가수의 진심을 담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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