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 설렘은 없고 경쟁만 가득한 현실이란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보며 우리는 한번쯤 생각했을 겁니다. 저런 곳에서 저런 가게를 열면 얼마나 좋을까. 인도네시아 발리, 그 곳에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있는 외딴 섬. 이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이진주 PD는 바로 그 섬에서 휴가를 보내며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죠.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잠시 짬을 내 가게 되는 휴가. 기껏 해봐야 3박4일 정도의 꿈같은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어느새 돌아가야 한다는 그 우울함. 문득 이런 곳에서 가게를 열며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그 바람이 이 프로그램을 탄생하게 했다는 거죠. 

'윤식당(사진출처:tvN)'

사실 가게를 오픈한다면 가장 먼저 중요한 건 입지조건일 것입니다. 하필이면 이진주 PD가 이 외딴 섬이 최적지로 여기게 된 건 놀랍게도 그 섬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외부에서(그것도 해외에서) 진행되는 방송 촬영에서 가장 큰 난점은 팬들이 몰리는 사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서유기> 같은 아이돌이 게스트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은 촬영 당일까지도 어느 곳으로 간다는 정보를 꼭꼭 숨길 수밖에 없다고 하죠. 만일 그게 유출되면 해외에서의 촬영은 몰리는 팬들 때문에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되죠. 

하물며 여행을 하며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한 곳에 가게를 오픈하고 정착하는 <윤식당> 같은 프로그램은 팬들이 없는 공간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죠. 나영석 PD는 그래서 <윤식당>은 국내에서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하더군요. 생각해보세요. 배우들이 개업을 했다고 하면 아마도 엄청난 팬들이 몰려 자연스러운 가게 오픈의 풍경들을 잡아내기 어려울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윤식당>이 가게를 연 섬은 호주인들과 유럽인들이 많고 가끔 중국인 관광객 정도가 있는 정도였죠. 그래서 윤여정, 신구, 이서진, 정유미 같은 배우들이 버젓이 가게를 열어도 크게 촬영에 방해가 되는 점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섬에는 한식당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니 <윤식당>의 불고기 단일 메뉴만으로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거죠. 이 점 역시 국내와는 완전히 다른 지점입니다. 국내에서 가게를 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조금만 잘 된다 소문이 나면 비슷한 레시피를 가진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결국은 자본 게임으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보다 많은 자본을 가진 가게가 처음 새로운 아이템을 내걸고 연 가게를 먹어버리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 섬에는 그런 경쟁업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불고기 단일 메뉴를 하다가, 라면, 만두, 치킨 이런 식으로 메뉴를 넓혀갈 수도 있었죠. 

방송에서 이미 화제가 된 것이지만 <윤식당>은 오픈한 지 하루 만에 철거당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만일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이건 그저 가상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철거의 문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다시 일어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윤식당>은 가까운 곳에 2호점 자리를 내고 철거된 가게에서 미리 집기와 소품들을 꺼내와 단 하루만에 2호점을 꾸며 오픈하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이 정도 되면 <윤식당>이 보여주는 해외의 외딴 섬에서의 창업이 로망으로 느껴질 만한 대목입니다. 물론 이건 방송이지 실제 창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방송이 끝나면 철수되는 곳이고, 그 곳은 또 다른 이들이 들어와 장사를 이어가겠죠.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설렘과 씁쓸함은 고스란히 우리네 창업 환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수명은 점점 길어져 퇴직한 고령층들도 갈수록 늘어갑니다. 그 많은 이들이 모두 취업을 목표로 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한 사회에 접어들고 있죠. 일본이나 유럽의 거리를 걷다보면 작지만 꽤 오래도록 전통을 이어오는 단단한 가게들이 있는 걸 보며 부러움을 느낀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작은 상점들조차 대자본이 들어와 프랜차이즈로 밀어내 사라져버리고, 그래서 작은 상점들이 당장 살아남기 위해 그들끼리 피튀기는 경쟁에 내몰리는 그런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낭만 같은 것이 거기서 느껴지기 때문이죠.

가게를 연다는 건 설레는 일이 아닐까요. 그것은 단지 장사의 차원을 넘어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한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네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확고한 뜻과 꿈이 있다면 그것을 창업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윤식당> 같은 예능 프로그램 속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 낭만을 꿈꾸는 사회는 어째서 요원하기만 한 일일까요.

‘추리의 여왕’ 최강희 안에 아줌마·소년·여자가 보인다

이 정도면 최강희를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최강희라는 배우를 떼놓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결들이 공존한다. 설옥(최강희)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복합적인 결이 그렇다. 그녀에게서는 아줌마의 모습이 보이다가도 추리하는 소년의 모습이 연상되고 그러다가 또 어떤 설렘을 만들어내는 여자의 모습도 겹쳐진다. 실로 이런 다양한 이미지를 동시에 껴안고 있는 최강희에게는 맞춤옷 같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다시 생각해보면 <추리의 여왕>이라는 형사물이지만 어딘지 생활밀착형의 추리물 느낌이 나는 드라마가 가능해진 건 다 이 설옥이라는 캐릭터 덕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일찍이 결혼해 남편을 검사가 되기까지 뒷바라지한 전형적인 아줌마다. 남편을 위해 학업도 포기해 고졸이지만, 그런 헌신적인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삶을 친구인 김경미(박현숙) 외에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놀라운 추리의 능력을 갖고 있고, 또한 무고한 이들을 해하는 범인을 잡고자 하는 사명감도 남다르지만, 그럴듯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닌 그녀는 그저 범행현장을 기웃대는 동네 아줌마 취급을 받기 일쑤다. 도움을 주고파서 자신이 추리한 내용들을 알려 주려 하는 것이지만 돌아오는 말은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말이다. 그녀는 친구 김경미에게 “난 고졸에 살림도 똑바로 못하는 아줌마”라고 자조한다. 

그녀를 그렇게 무시하는 이는 다름 아닌 범인은 몸으로 뛰어야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열혈형사 완승(권상우)이다.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나면 공무집행방해로 집어넣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그는 어째 그녀가 한 추리들이 딱딱 들어맞는 걸 보고는 조금씩 그녀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나쁜 놈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건 아니다”라고 한 그 말에서 그녀의 진심을 느낀다. 

그래서 이미 시청자들이 눈치 챘듯이 이 수상한 추리물은 완승과 설옥이 공조해 범인을 잡아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인물은 역시 설옥이다. 형사물이라고 하면 어딘지 쳐다보기도 섬뜩할 정도의 범죄들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설옥이라는 아줌마 탐정이 캐릭터로 들어오면서 이런 부분들은 상당부분 상쇄된다. 게다가 이 인물은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줌마들의 로망을 담고 있다. 

일터로 나가는 이들은 무시할지 모르지만, 아줌마들의 눈썰미나 사람들과 쉽게 교감하는 그 소통능력 같은 것은 의외로 놀라운 면들이 있다. 설옥은 바로 그런 아줌마의 장점을 십분 살려 사건을 수사해간다. 남자로서는, 그것도 범인은 몸으로 뛰어서 잡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마초형 남자 완승 같은 인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추리의 능력을 보여준다. 자잘한 것들의 조합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아줌마 탐정의 탄생이다. 

흥미로운 건 이 설옥이라는 캐릭터가 아줌마들의 로망을 담는 인물이면서 때론 소년 탐정 같은 아이의 보이시하면서도 똘망똘망한 면을 드러내고 때론 전형적인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완승의 눈을 통해서 매력적인 여자로서의 면까지 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복합적인 캐릭터의 면면은 <추리의 여왕>이라는 드라마의 시청층을 아줌마들만이 아닌 남녀노소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보면 역시 이런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낼 만한 인물로 최강희만한 배우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워낙 독특한 4차원 매력을 가진 배우가 아닌가. 추리하는 모습이 보여주는 묘미는 물론이고 그러면서 고졸 출신 아줌마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성장과정을 보여주며 동시에 완승과의 미묘한 멜로 관계까지를 담아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최강희가 해내고 있다.

<꽃청춘>의 로망, 좋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란

 

마치 바보 삼형제 같다. 어딘지 모자라고 세상 물정 몰라 강가에 내놓은 아이들처럼 보여도 그들은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즐거워하는. 돌아온 <꽃보다 청춘>에 출연하게 된 조정석, 정우, 정상훈은 평소 잘 알던 사이인 만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사실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행의 가장 중요한 것이 어디를 어떻게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라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 tvN)'

조정석과 정우는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함께 출연하면서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고, 조정석과 정상훈은 뮤지컬할 때 잘 알던 사이였으며, 정우와 정상훈은 엎어진 영화에 함께 출연하며 가까운 형 동생 사이였다. 평소 잘 되면 같이 여행이라도 떠나자고 했다는 그들이니 이제 그 꿈이 실현되는 순간에 들뜨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식당에 모여 몇 시간 후 아이슬란드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멘붕 상황에서도 그들은 한없이 즐거운 얼굴이었다.

 

청춘의 여행이 그러하듯이 대책 없음은 그 여행의 곤란함이 아니라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미리 숙소를 잡아 놓는다는 것이 2인용 방을 잡아 이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떠듬떠듬 안 되는 영어로 사정을 하는 조정석을 정상훈은 형답게 농담을 툭툭 던져 웃게 만들었다. 영어 실력이 영 없어 스스로를 돌대가리라고 표현한 이 세 사람은 핫도그를 하나 시켜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돈을 냈지만 정작 주방에 주문을 하지 않아 무작정 기다리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친절한 핫도그집 직원이 있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먹는 핫도그 한 개에 감탄하는 그들이었다.

 

무려 하루를 꼬박 넘겨 도착한 숙소에서는 그토록 조정석이 걱정했던 2인용 방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다. 주인이 취소된 3인용 방을 내준 것. 방을 잡고 슈퍼에 음식 재료를 사러가는 그들은 그 한 밤 중에도 거리를 뛰어가며 여행 기분을 만끽했다. 레시피 따위는 무시한다는 식으로 뚝딱 만들어낸 음식을 기가 막히다며 맛있게 먹고, 다음날 렌터카를 빌려 무작정 어디든 달려보는 그들에게 걱정 따위는 없어 보였다.

 

사실 액면으로 보면 이들의 여행은 결코 편안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난 지 몇 시간만에 비행기를 탄 데다 숙소도 정해지지 않아 난항을 겪었고, 영어가 신통치 않아 언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이 무려 세 끼를 핫도그를 먹었다는 사실은 먹는 것도 그리 풍족하지는 못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뒤늦게 영어회화 앱을 찾아 돌려 핫도그 세 개 주세요라고 하자 핫도그 월드가 번역되어 나오는 소리에 웃을 수 있으니 이 모든 어려움은 그들에겐 하나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아이슬란드라는 곳은 북극에 가까운 차갑게 얼어붙은 땅이다. 그런데 그 차가운 곳이 그 곳을 살아낸 이들에 의해 온기가 넘치고 그럼으로써 그 어느 곳보다 낭만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차가운 눈보라 속을 대책 없이 달려 나가는 세 사람이 문득 두려움을 느끼다가도 서로를 의지하고 달리는 걸 멈추지 않으며 심지어 그 낯선 두려움을 즐길 수 있는 그 모습은 그래서 아이슬란드라는 땅에 내려진 따뜻한 온기와 낭만적인 사람냄새를 그대로 닮았다.

 

결국 인간이 위대한 것은 혹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살을 부비며 즐겁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 혹독한 환경조차 낭만으로 바꿀 수 있는 힘. 아이슬란드로 떠난 <꽃보다 청춘>은 아마도 우리에게 그런 로망을 던져주고 있을 것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현실에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훈훈해진다는 것. 차가운 겨울이 겨울왕국이 될 수 있다는 것. <꽃보다 청춘>은 바보 삼형제의 대책없는 동화 같은 여행을 통해 그걸 보여주고 있다



<오마비>, 소지섭, 신민아 아니었으면 어쩔 뻔

 

예뻐지고픈 욕망, 잘 빠진 몸매, 멋진 훈남들. KBS <오 마이 비너스>가 포인트로 잡고 있는 건 여성들의 로망이다. 강주은(신민아)은 거기에 딱 맞는 캐릭터. 한 때는 대구비너스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고대의 비너스처럼 살이 쪄버려 오래도록 사귀어온 남자친구에게 차이기까지 한 인물. 게다가 가족도 영 그녀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아이를 가졌다며 살림을 차리려는 남동생에게 가게라도 차리라며 통장을 내미는 그녀다. 요즘의 시청자들이 완벽한 스펙과 외모와 직업을 갖고 있는 인물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는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어 한다면, 그녀는 거기에 어느 정도 부합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역변한 몸 때문에 모든 걸 잃어버린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시청자들의 로망이 분명하다. 그녀는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다는 시대에 변호사씩이나 되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다. 게다가 살이 쪘다고는 해도 한 때 대구비너스의 본판이 어디 갈 것인가. 아마도 신민아라는 배우가 그걸 연기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살이 쪄 이중 턱이 된 얼굴에서도 귀염성이 묻어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로망이 되는 건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훈남들 때문이다. 세계적인 헬스 트레이너 김영호(소지섭)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 선망하는 요소들을 거의 다 갖춘 인물이다. 훈훈한 외모에 잘빠진 몸매, 알고 보면 재벌2세이고 그러면서도 약자를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물론 그 따뜻한 마음을 짐짓 아닌 척 차갑게 포장하는 차게 굴기의 면까지 가졌으니 완벽하지 않은가. 이런 인물이 강주은 옆에서 헬스 트레이너를 빙자해 먹는 것에서부터 생활습관, 운동까지 모든 걸 관리해준다... 이런 로망이 어디에 있을까.

 

김영호만이 아니다. 그를 보좌하는(?) 장준성(성훈) 같은 격투기 선수는 그 잘 빠진 몸과 저돌적인 동작만으로는 시선을 사로잡고, 김지웅(헨리)은 늘 유쾌하고 친절해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인물이다. 게다가 전 남자친구인 임우식(정겨운)은 수영선수 출신에 잘 나가는 가홍 VIP센터장이다. 그는 잠깐 강주은의 친구였던 오수진(유인영)에게 한눈을 팔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강주은 쪽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러니 이런 우글우글한 훈남들 속에서 집중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강주은이란 캐릭터가 로망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알다시피 이런 인물 캐릭터 설정과 관계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때로는 너무 상투적이라 유치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강주은의 아래 층에 사는 그녀의 스토커 남자는 사실 이런 상투성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스토커가 그녀를 따라다니고 심지어 집안까지 들어오는 상황은 긴박감을 만들어주지만 그 설정은 누구나 다 알 듯 김영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일회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그것도 너무 상투적인.

 

또한 세계적인 헬스 트레이너인데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재벌 2세 김영호가 어째서 강주은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점점 마음을 빼앗기는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드라마는 그저 그가 약자를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퉁치고 넘어가지만 아무리 봐도 개연성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개가 허용되는 건 그것이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강주은에게 시청자들이 어떤 동질감과 몰입감을 갖고 빙의된다면 개연성과 상관없이 김영호 같은 멋진 남자와의 로맨스를 꿈꿀 수도 있을 게다. 물론 현실성은 없다. 그러니 한 발 물러나 바라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허점들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래서 이렇게 한 발 물러나지 못하게 계속 몰입하게 만드는 일인데, <오 마이 비너스>는 적어도 거기에서는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름 아닌 소지섭과 신민아다. 이 배우들이 주는 로망과 판타지는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어내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기 때문에 개연성 부족 정도는 넘어서 푹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그러고 보면 <오 마이 비너스>는 캐스팅이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 자리에 소지섭과 신민아가 아니었다고 상상해보라. 이런 판타지에 몰입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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