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연인>, 무게감 주는 이준기와 강하늘의 존재감

 

이준기와 강하늘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는 사극이지만 청춘 로맨스의 가벼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여주인공 해수(이지은)는 현대에서 고려 시대로 넘어간 인물이다. 그러니 그 옛 시대의 감성들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황궁에서의 말투는 물론이고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사진출처:SBS)'

그래서 해수는 현대인의 자유로움을 통해 이 무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낸다. 황자들은 그런 그녀의 자유분방함에 시선을 빼앗긴다. 청춘 로맨스는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사극의 진지함을 깨고 들어오는 가벼움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너무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태조 왕건이 나오는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너무 장난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 같은 사극은 그래서 그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가벼움으로 흘러버리면 사극 특유의 진지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다고 그 진지함을 고수하다 보면 청춘 로맨스의 달달함과 코믹함이 주는 웃음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에서 가벼움을 주는 존재들은 해수를 비롯해 10황자 왕은(백현) 14황자 왕정(지수) 같은 인물들이다. 여기에 13황자 왕욱(남주혁)도 한 몫을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딘지 숨겨진 슬픔 같은 게 묻어난다.

 

<달의 연인>이 초반부에 가벼움을 먼저 보여준 건 전략적인 실패로 보인다. 갑자기 황자들 속에 뚝 떨어진 해수의 이야기부터 <달의 연인>은 너무 사극 같지 않은 가벼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가벼움을 드러내는 존재들인 해수나 왕은, 왕정, 왕욱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딘지 사극에 잘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건 이 사극의 초반 약점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이 가벼움 속에서 사극 특유의 어떤 진지함과 무게감을 세운 건 4황자 왕소(이준기)8황자 왕욱(강하늘)이었다. 이 두 사람이 있어 <달의 연인>은 사극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왕소가 일찍이 어머니인 황후 유씨(박지영)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채 황궁 밖으로 내쳐져 신주 강씨 집안의 양자로 자라온 인물. 그는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늑대개의 거친 삶을 살았다. 3황자 왕요(홍종현)가 정윤 왕무(김산호)를 살해하려는 걸 막아내면서 왕소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왕욱은 왕소와는 상반되게 차분하고 자상한 인물이다. 고려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해수를 돕고 또 보호해주는 인물. 그 특유의 차분함은 사극이 가지는 진지함을 잡아내면서 또한 조금씩 해수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사극에서의 멜로도 해수를 사이에 두고 왕욱과 왕소가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연기력에 있어서도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건 바로 이 왕소와 왕욱 역할을 연기하는 이준기와 강하늘이다. 이준기와 본래 사극연기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까지 모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지만, 강하늘의 안정감 있는 연기 역시 돋보인다.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노려보는 이준기의 눈빛과 부드럽고 자애로워 보이지만 한층 무게감이 느껴지는 강하늘의 눈빛. <달의 연인>이 그래도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두 인물 덕분이다.

 

<달의 연인>은 첫 단추가 잘 꿰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어떤 반전의 기회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준기와 강하늘, 이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존재감과 매력이 아닐까. 작품이 가진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충분히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갈 만큼 매력적이다.

<W>, 웹툰 속이라 가능해진 것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 혹은 여자이런 외모와 이미지를 가진 이들을 만찢남혹은 만찢녀라고 부른다. 아마도 MBC 수목드라마 <W>의 상상은 바로 이 용어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와 만화 속으로 들어간 여자가 엮어가는 멜로와 스릴러. 여기서 만찢남 강철과 만찢녀 오연주 역할에 이종석과 한효주 캐스팅은 맞춤이다. 드라마의 성격상 실사와 만화를 오가는 장면들 속에서 이들만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배우들도 없을 게다.

 

'W(사진출처:MBC)'

만화 속 인물과의 모험과 로맨스라는 단순한 상상에서부터 시작한 드라마일 수 있으나, 막상 그 세계로 들어가니 의외로 모든 것들이 다 허용되는 거침없는 전개가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W>의 멜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멜로드라마의 과정 같은 것들이 불필요해졌다. 사실 강철이라는 캐릭터를 이상형으로 꿈꾸고 만든 인물이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오연주다. 그러니 뭘 숨기고 잴 것인가.

 

자신이 만화 속 주인공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는 절망, 한강에 투신한 강철을 다시 구해낸 오연주에게 오히려 강철이 왜 구했냐며 화를 내자 오연주는 대뜸 사랑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돌직구에 강철의 마음이 흔들리고 그녀가 원하는 로맨스를 대놓고 선택하라며 여러 선택지들을 늘어놓고는 마치 숙제라도 하듯 그걸 하나하나 실행한다.

 

현실적인 멜로드라마라면 두 사람이 밀고 당기며 속내를 드러낼 듯 드러내지 않는 그 과정들을 거쳐야 이른바 개연성이라는 것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웹툰 속 만화 세상에 들어간 오연주에게는 오히려 그런 밀당 없이 바로 속내를 털어놓고 직진으로 달려가는 멜로가 더 개연성이 있다. 이른바 만화 속에서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만화 같아야 더 리얼한 셈이니까.

 

이 드라마가 멜로적인 달달한 시퀀스에서 다시 긴장감을 높이는 스릴러로 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거침이 없다. 갑자기 들려오는 괴한의 목소리가 화면 위에 글자로 찍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드라마는 다시 쫄깃해진다. 강철의 온 가족을 죽였던 괴한이 이제는 오연주마저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자 순식간에 드라마는 스릴러와 멜로가 동시에 팽팽하게 된다.

 

<W>라는 만찢남 만찢녀의 세계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가 어떤 공감대를 대중들에게 주기만 한다면 얼마나 거침없이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만화 속에 들어가 본 이들은 없다. 그러니 그 리얼리티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대신 그 안에 존재하는 개연성의 법칙들을 작가가 그럴 듯하게 제시해주는 것만으로 이 상상의 세계는 언제든 어디로든 전개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들을 봐왔고 또 그 드라마의 법칙이라는 것들을 꿰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W>를 보면서 묘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틀을 벗어나 거침없이 이야기를 달려가는데서 나오는 즐거움이다. 만화 속으로 들어가자 <W>는 함부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함부로는 기꺼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들이다.

잘나가는 로맨스, 무얼 말하는 걸까

 

한때는 tvN <시그널> 같은 스릴러 장르가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뤘다면 KBS <태양의 후예> 이후로 현재의 tvN <또 오해영>에 이르기까지 달달한 로맨스 장르가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미녀 공심이>MBC <운빨로맨스>는 물론이고, 앞으로 방영될 KBS <함부로 애틋하게>,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SBS <보보경심려>도 결국 로맨스물이다. 김우빈과 수지, 박보검과 김유정 그리고 이준기와 아이유. 그 캐스팅만 봐도 달달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미녀 공심이(사진출처:SBS)'

스릴러물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우리네 사회 현실과 법 정의의 문제를 이들 드라마들이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시그널>은 여러 미제사건들을 건드렸지만 마지막에 가면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가진 자들은 위법한 행위를 하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못 가진 자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진실조차 규명 받지 못한다. 끝까지 진실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에 대한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스릴러물이 끄집어내는 현실이란 제 아무리 판타지적인 해결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제시되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현실이 견딜 수 없도록 갑갑해지는 상황이라면 굳이 그런 현실을 드라마를 통해서 또 확인하는 것이 못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들에 대한 갈증이다. 물론 사이다 드라마라고 해서 판타지만 나오는 게 아니다. 거기에도 현실이 들어가지만(또 꼭 그래야 공감대를 가져간다) 그 고구마 현실의 답답함의 분량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그걸 통쾌하게 해결하는 사이다 판타지 분량이 늘어나는 게 요즘 드라마의 추세다.

 

과거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린 tvN <미생>이 큰 화제가 되었지만, 어언 1년이 지난 후 그 직장의 문제를 다룬 JTBC <욱씨남정기>가 이것을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걸 상기해보라. 현실적인 문제들은 두 드라마가 모두 진중하게 소재로서 다루었지만 지나친 무거움보다는 시원스런 판타지가 <욱씨남정기>에 보다 전면에 깔려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청자들의 달라진 요구사항에 따라 최근 주목받는 로맨틱 코미디들은 과거와 어떤 다른 점들을 보이고 있을까. 그것은 <욱씨남정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판타지와 현실을 섞고 있다. 즉 최근 방영되고 있는 <미녀 공심이>는 정반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지만 그 안에 현실적인 코드들을 집어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심이(민아)는 단태(남궁민)와 준수(온주완)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달달한 멜로를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 하다가 갑질 하는 사모님에게 구타당하기도 하고, 비서로 채용됐다가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단태를 찾아와 그가 주었던 씨앗에 자신이 그토록 물을 열심히 주는데도 왜 자라지 않냐고 토로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미녀 공심이>의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든든히 안아주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로맨스를 엮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또 오해영>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이야기 구조다. 사회생활에서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비교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인 그냥 오해영(서현진)은 도경(에릭)을 통해 이해받는다.

 

로맨틱 코미디가 현실과 엮어지며 만들어낸 이러한 새로운 드라마 공식은 결국 현실과 싸우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일종의 사적인 사랑으로의 도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달달함의 연속이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현실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유지한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지독한 현실이든 사랑이든 어떤 식으로도 판타지를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미녀 공심이>의 공심이나 <또 오해영>의 오해영은 모두 어차피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강변한다. 심지어 오해영은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심심하다!”고 외쳐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제 사랑과 성공을 모두 쟁취하는 신데렐라 따위는 더 이상 공감 받지 못하는 시대다. 그러니 성공은 저만치 제쳐두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랑으로 위안 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사랑이라는 것도 성공만큼이나 현실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작정하고 센 <태후>의 소재들, 이러니 안 될 수가 있나

 

전쟁과 재난에 이어서 이번엔 전염병이다. 아주 작정하고 센 소재들을 총동원 하겠다 마음먹은 기색이 역력하다. 이러니 시청률이 안 오를 수가 없다.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9회에 30%를 훌쩍 넘겨버리더니 거기에 멈추지 않겠다는 듯 이제 31,6%(닐슨 코리아)로 순항중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멜로는 약하다? 극성이 약한 건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멜로의 갈등들을 통해 인물들이 겪게되는 결과란 고작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헤어지거나가 아닌가. 물론 그 사랑이 죽음을 담보로하기도 하지만. 사극 같은 장르가 극성이 강한 건, 늘 죽음을 옆에 달고 다녀서다. 알다시피 전쟁, 재난, 전염병 같은 모든 소재가 활용되는 장르가 바로 사극이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는 현대극이면서도 이 모든 소재들을 다 사용하고 있다. 이게 가능해진 건 우르크라는 가상의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르크가 아닌 어떤 현실 공간이었다면 이처럼 다양한 소재들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공간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우르크는 저 사극이 시간의 거리를 통해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처럼, 막연한 공간의 거리를 만들어 전쟁이든 재난이든 전염병이든 발생시킨다.

 

물론 그 공간에는 유시진(송중기)이나 강모연(송혜교), 서대영(진구), 윤명주(김지원) 같은 현실감을 부여하는 인물들이 들어간다. 그들이 군인 혹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건 <태양의 후예>가 하나의 가상극 같은 뉘앙스를 갖게 만든다. 마치 <헝거게임>처럼 이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갖가지 벌어지는 사건들을 마주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물론 그 사건들은 모두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저에서 게임이지만 살벌하다.

 

멜로드라마는 어디든 지뢰가 깔려 있고 누구든 총을 꺼내 들며 때론 지진이 일어나 건물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게다가 치명적인 전염병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이 살벌한 공간 위에서 피어난다. 강모연이 유시진이라는 위험한 남자에게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하지만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그녀가 우르크라는 뭐든 가능한 가상공간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공간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달콤한 유시진이라는 로맨스의 인물이 있는 곳이다.

 

위험과 로맨스. 상극인 것 같지만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다. <로맨싱 스톤>이나 <크로커다일 던디> 같은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들을 보라. 위험한 정글이나 늪지대에서 모험을 펼치는 위험한 남자 주인공과 도시에서만 살아와 그런 곳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 주인공의 로맨스는 더 달콤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안전한 도시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상상으로 꿈꾸는 거친 로맨스일 것이다.

 

<태양의 후예>의 우르크는 그래서 모든 위험한 상황들이 다 벌어지는 곳이지만 실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성들이 꿈꾸는 로맨스의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그 곳은 마치 현실에서는 유시진이라는 인물을 밀어냈던 강모연이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공간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런 장르적 설정들은 이미 많은 로맨스물에서 무수히 활용되어 왔던 장치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가 절묘하게 여겨지는 건 여기에 군인이라는 어찌 보면 우리식의 클리셰들이 가능한 인물들을 집어넣어 우리의 색깔로 채색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에 마치 강모연의 상상에 의해서 창조된 듯한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군인들. 이를 현실과 비교해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로맨스물의 판타지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늘 현실 공간에만 붙잡혀 그 상상의 한계를 스스로 지우고 있던 드라마를 우르크라는 가상공간을 세우고 그 안을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 넣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누군가 반대하고 그래서 그걸 넘어서기 위해 안타까운 안간힘을 벌이는 식의 현실의 멜로가 식상하게 느껴진 건 로맨스물 특유의 판타지가 거기에서는 더 이상 발견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적어도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우르크라는 공간은 그래서 김은숙 작가가 상상으로 구현해낸 멜로의 실험실 같은 느낌마저 준다. 뭐든 가능한 로맨스의 공간. 이러니 안 될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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