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

한겨울 눈길을 헤치고 혜원(김태리)은 고향의 빈 집으로 내려온다. 차디 찬 그 집에 혜원은 난로를 피우고 눈밭을 헤쳐 실해 보이는 배추를 뽑아와, 팔팔 끓인 배추 된장국에 밥을 지어 맛있게 먹는다. 그 순간 차가운 집도, 그 집처럼 몸도 마음도 추웠던 혜원도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첫 도입부를 채우는 이 장면은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담아놓는다. 

 

시험에도 떨어지고 남자친구와도 소원해진 혜원은 그 현실이 겨울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삶의 온도는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에게 초등학교 동창이자 절친이었던 은숙(진기주)이 왜 돌아왔냐고 묻는다. 그러자 혜원은 말한다. “배가 고파서.” 눈길을 헤치고 돌아온 그가 먼저 따뜻한 밥 한 끼부터 챙겨먹은 이유다. 그런데 혜원이 고픈 건 허기 뿐일까. 돌아온 혜원을 환대해주는 절친 재하(류준열) 역시 지방대를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했지만 상사의 폭언이 일상인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영농후계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혜원에게 지나가듯 한 마디를 던진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그 말에 혜원은 정작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 때 그 때 열심히 사는 척 해온 자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열심히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도 어째서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바쁘게 열심히 사는 ‘속도’의 삶이 우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건 아닐 수 있다. 한겨울 눈길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와 배추 된장국에 밥 한 그릇 챙겨먹고 온기를 느끼는 혜원의 모습이 새삼스러워지는 도시의 계절이다. (글:동아일보, 사진: 영화'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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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시청률로 함부로 실격이라 부를 수 없는 드라마

인간실격

“산에요.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음 집에 갔죠.” 한밤중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서 철길을 하릴없이 걸으며 마지막으로 타본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부정(전도연)이 그 때 “기차를 타고 어딜 갔냐?”고 묻자 강재(류준열)는 그렇게 말한다.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집에 갔다고.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라고 강재가 말하곤 잠시 뜸을 들일 때 부정은 살짝 긴장했다. 그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본 게 아버지 장례 치르고 화장한 날 엄마와 함께 그 곳에 왔을 때였다는 강재의 말 때문이다. 어딘가 쉽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테니 그가 갔다는 산과 바다가 마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그러고는 “집에 갔다”는 강재의 말에 안심한다.  

 

부정이 강재의 말을 들으며 걱정하고 안도하는 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도 죽은 정우(나현우)의 사연이 있는 그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 저수지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절망적이었을 것이고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게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허함과 절망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같은 감정을 가졌지만 그 때 저수지를 찾았던 걸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강재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부정이 똑같은 안도감을 느낀 이유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이 그린 어느 저수지와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강재와 부정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천문대에 오르고 어쩌다 한 텐트 안에서 같이 밤을 지새게 되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위로의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아픈 아들을 위해 호스트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비싼 병원비를 충당해오다 결국 아들이 저세상으로 떠나고 절망감에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우. 정우와 저수지는 그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상실한 듯한 절망을 은유하는 인간과 공간으로 그려진다. 

 

정우의 죽음은 아마도 부정과 정우가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 터다. 정신없이 살아내기 위해 살았지만 알 수 없는 ‘허한 마음’. 정우는 ‘역할 대행’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채 살아가고 있었고, 부정은 아란(박지영)의 책을 대필한 후 그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출판사에서도 쫓겨났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숨을 쉬며 살아가곤 있지만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존재가 지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곤 느끼게 되는 허한 마음. 

 

그래서 부정과 강재는 그 정우가 풍덩 뛰어들었던 저수지를 통해 다시 만난다. 우연히 저수지 근처를 지나다 부정은 그 곳에 마음이 이끌렸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은 모습에 누군가 신고해 파출소에 가게 됐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자신을 데리고 가줄 보호자 한 명을 찾기 힘든 부정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강재에게 ‘보호자 역할 대행’을 요청했고, 놀랍게도 그 먼 길을 강재가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절망의 공간에서 <인간실격>은 부정과 강재를 통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위로를 건넨다. 아무 것도 아닌 관계처럼 보였고, 마치 돈을 주면 역할을 대행하는 그런 관계처럼 보였던 두 사람은 서로가 겪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금 끄집어낸다. 과거 아버지를 화장된 날 어머니와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가게 된 그 길을 이야기해준 강재는 부정에게 문득 이렇게 묻는다. “어디 집 말고 가보고 싶은데 있어요?” 모르겠다는 부정의 말에 강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산에 갔다가 바다 갔다가 그리고 집으로 갈까요?”

 

그 말은 절망하기도 하고 허한 마음을 갖기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지만 그럼에도 결국 집으로 간다는 위로가 섞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천문대를 향한다. 강재는 엄마와 함께 오르던 그 길을 부정과 함께 걸으며 그 때 엄마가 천문대에서 하늘 가득 채워진 별을 올려다보며 한참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 때 어린 강재는 왜 엄마가 울었는지 진짜 몰랐을 터다. 하지만 버스에 두고 온 크림빵과 우유가 아까워서 울었다고 둘러댔다는 엄마의 말을 부정에게 해주는 강재는 이제 어렴풋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늘 가득 반짝 반짝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엄마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을 인간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먼지들이 마치 저 우주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그것이 너무 작고 소소하고 가녀려서 갖게 되는 아름다운 슬픔. 엄마는 그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정과 강재도 그 엄마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같은 걸 느끼고 있었을 지도. 

 

도대체 무엇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존재들인 인간을 이토록 ‘자격 운운’하며 실격 처리하는 것일까. 어째서 돈과 지위와 성공의 기준으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것일까. <인간실격>은 그런 무례한 세상을 에둘러 일갈한다. 작디작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의 말과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안타깝게도 <인간실격>은 시청률이 낮다. 그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드라마 시청이 지나치게 당장의 사이다 같은 자극적인 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답답한 현실에 사이다 한 잔 같은 작품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실격>처럼 묵직한 밥 같은 무게감을 가진 작품을 낮은 시청률로 섣불리 ‘실격’이라 부를 순 없을 게다. 최근 들어 이만큼 진지하게 가슴을 건드리는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사진:JTBC)

 

 ‘인간실격’, 전도연의 눈물, 류준열의 허함에 공감했다면

인간실격

“안녕하세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만나고온 그 날부터 인간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은 대필작가였지만 무슨 일인지 지금은 가사 도우미가 되어 일하고 있는 부정(전도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첫 화의 부제는 ‘인간의 자격’이다. 어쩌다 대필작가가 됐는지 그러다 왜 지금은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지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부정이 처한 상황은 그 내레이션과 더해져 이 인물이 왜 절망감을 느끼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이 내레이션과 더불어 보여지는 영상은 한 여성과 모텔에 들어온 강재(류준열)의 모습이다. 본인은 역할 대행 서비스를 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 첫 장면이 말해주듯 그가 하는 일은 호스트와 그리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 동안 역할을 대행해주고 그 시급을 받는 일을 한다. 부정의 내레이션이 깔리며 강재의 일상이 겹쳐지지만, 이 서로 다른 두 삶의 겹침은 그다지 이물감이 없다. 

 

대필작가였다 그것마저 박탈된 부정의 삶이나, 진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강재의 삶이나 비슷하다. 저 부정의 내레이션처럼 그들은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도 없다 치부된다. 

 

부정은 지나(이세나)의 집을 청소하고 정리해주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러 그 아파트에 갔다가 주민들이 쓰는 사우나에 들어간 일로 다른 주민으로부터 봉변을 당한다. 직접적으로 갑질을 당한 건 아니지만, 관리인에게 ‘아무나’ 사우나 출입하는 이들을 막아달라며 은근히 ‘저질’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런데 부정이 말하는 ‘인간의 자격’, 즉 사우나도 주민들은 들어가지만 가사도우미는 들어갈 수 없고, 글을 써도 대필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게 만드는 그 자격은 무엇에 의해 주어지는 걸까. 그건 다름 아닌 자본화된 세계에서 돈의 논리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대필작가를 고용한 작가는 돈을 지불했기에 그 자격을 갖고, 역할대행을 요구한 이들도 시간 당 돈을 지불해서 그 자격을 갖는다. 나아가 사우나를 쓰는 일도 그 집을 소유해서 가능한 자격이다. 

 

자본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자격은 심지어 죽은 후에도 이어진다. 강재가 빌려준 돈을 갖고 두 달 전 사라졌다 자살한 사체로 돌아온 정우(나현우)의 죽음은, 돈이 없고 또 돈을 내줄 가족이나 친구조차 없어 떠나는 마지막 길을 쓸쓸하지 않게 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같이 동반자살한 여자는 최소한 엄마가 있어 울어주고 장례를 치러주지만, 정우는 그런 가족도 없다. 다만 그 쓸쓸한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딱이(유수빈)와 강재가 있을 뿐이다. 

 

모든 게 자본화된 세상에서 가진 자들만이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 하지만 부정도 강재도 이것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 모든 역할 대행을 다해도 장례 역할 대행은 못할 짓이라며 갖가지 장례비용을 얘기하는 강재도 차마 죽은 정우의 사체를 그냥 방관하지 못한다. 정우의 죽음이 너무 ‘허하다’고 말하는 딱이 이야기를 듣다 강재는 “비용이 얼만데?” 하고 묻는다. 돈이 없어도 최소한 저렇게 쓸쓸하게 보내는 건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강재는 결국 제 돈을 털어 장례식을 해주기로 한다. 

 

대필작가로서 아마도 선생님이라 불리는 그가 대리해준 이에게 악플을 달았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은 부정은 절망감에 빠진다. 대필작가여서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을 갖지 못했기에 누군가에 대한 항변이 ‘악플’로 치부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돼서다. 하지만 절망감에 아버지 창숙(박인환)을 찾아간 부정은, 박스를 주우러 다니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식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하는 전혀 괜찮지 않은 삶을 확인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돈’의 논리로 겨우 주어지는 ‘인간의 자격’을 실감하며 부정은 절망감을 느낀다. 부정은 애써 절망감을 숨겨왔지만, 자식은 부모보다 잘 살아야 맞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무너져 내린다. “아부지. 나는 실패한 거 같아. 나 실패한 거 같아요... 그냥 그냥 내가 너무 못났어.” 그래도 “너는 내 자랑”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부정은 애써 부인한다. “나 자랑 아냐 아버지. 자랑이라고 하지 마. 나 그냥 너무 나빠진 거 같아...” 

 

그는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자신이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한다. “아버지 나는 아무 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못됐어. 결국 아무 것도 못될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 아버지. 아버지도 있고 정수도 있는데 그냥 너무 외로워. 그냥 사는 게 너무 창피해.” 

 

부정의 눈물이 가슴을 후벼 파는 건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적어도 우리 모두는 부모 앞에서 ‘자랑’이었지 않던가. 무언가가 될 거라 믿었던 자랑. 하지만 자본화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때론 많은 걸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의 자격’조차 없는 그런 삶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지만, 세상은 그렇게 우리에게 무례하게 군다. 

 

그런 부정이 버스 안에서 우연히 손수건을 내준 강재의 옷소매를 잡는 장면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어떤 위로의 예감을 갖게 만든다. 저마다의 돈의 가치로 ‘자격’을 부여하고, 심지어 ‘인간실격’ 판정을 내리는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인간적인 그 진짜 자격을 확인해주는 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져서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 ‘실격’이라 대우받는, 사실은 결코 실격이 아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자격 있는 진짜 삶의 가치를 드러내주는 것일 수 있을 테니.(사진:JTBC)

‘봉오동전투’, 유해진이 외치는 독립에는 남다른 울림이 있다

 

영화 <봉오동전투>에 대해 주인공 유해진은 “반일감정보다 영화의 힘으로 굴러가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그렇게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영화는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대패시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걸 담는 방식에서 마치 <삼국지>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전략과 전술이 등장하고, 이를 구현해내는 액션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오동전투>는 만일 일제라는 부분을 떼놓고 보면 하나의 액션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게다. 일단 주인공 3인방이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이다. 황해철(유해진)은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총으로 공격하는 적진에 들어가 일본군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는 영웅이고,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는 빠른 발로 종횡무진 적들을 교란시키는 영웅이며, 해철의 오른팔인 마병구(조우진)는 백발백중의 저격수다.

 

그러니 이들 3인방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봉오동전투>가 보여줄 액션의 스타일들을 담아낸다. 즉 황해철이 대도를 휘두를 때는 마치 중국 무협영화를 보는 듯 하고, 이장하가 산 속을 달려 나가는 풍경은 추격 액션이 더해진다. 마병구의 저격 장면은 스나이퍼들이 대결하는 총기 액션을 보는 것만 같다.

 

이처럼 액션이 분명한 <봉오동전투>지만, 이런 3인방의 캐릭터는 그냥 설정된 건 아니다. 그것은 실제 역사에 기록된 <봉오동전투>가 어떻게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을 아군의 손실을 거의 최소화한 채 무너뜨렸는가 하는 대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봉오동전투는 화력에서도 군대의 수에 있어서도 절대 열세였던 독립군이 봉오동이라는 지형지물을 제대로 이용하는 전력과 전술을 써 대승하게 된 전투다.

 

그런데 그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방식이 이들 세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연관된다. 즉 일본군 주력부대를 항아리처럼 생긴 봉오동이라는 지역으로 유인해내는 것이 이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일이 되고, 그래서 발 빠른 이장하가 적들을 계속 자극하면서 퇴각해 그들을 봉오동으로 끌어 들이며, 그 과정에서 숨어 적을 사살하는 저격수와 결국 맞붙게 됐을 때의 백병전에서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인물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 특이한 봉오동 주변의 지역을 마치 지도처럼 찍어내 보여주며 그 능선과 협곡을 오르내리며 벌이는 전투 장면들은, 그것이 독립군이 일제에 맞서 거둔 성취라는 걸 빼놓고 봐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유해진이 “반일감정보다”라고 표현했어도, 지금의 대중들에게 이 감정을 빼놓고 영화를 보기는 어려울 게다. 영화 속에서 독립군들이 외치는 “대한독립만세!”에서 ‘독립’의 의미가 지금 상황과 겹쳐져 ‘경제 독립’으로 들리는 건 그래서다.

유해진의 말처럼 꼭 “반일감정”만으로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거기에는 충분한 액션 서사가 주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밀어 오르는 ‘반일감정’을 억누를 필요도 없을 게다. <봉오동전투>를 통해 보이듯 독립군들의 그런 숭고한 희생들이 있어 지금 대등하게 경제 전쟁을 벌이는 우리가 있는 것이니.(사진:영화'봉오동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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