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다 이순신>, 짜증나는 엄마들 공감가지 않는 이유

 

<최고다 이순신>은 할 이야기가 이상하고 짜증나는 엄마들밖에 없나. ‘출생의 비밀’ 코드가 전면에 깔린 이 드라마는 이순신(아이유)을 길러준 엄마인 김정애(고두심)와 그녀를 낳은 엄마 송미령(이미숙) 사이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점화시켰다. 두 엄마가 한 자식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저 솔로몬의 선택에도 나올 정도로 고전적인 모티브를 가진 이야기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아이를 나눠가지라는 솔로몬의 판결에 아이를 살리려고 포기하는 친모의 이야기. 드라마는 길러준 엄마보다 더 비정한 낳은 엄마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자식이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 이순신을 친모인 송미령에게 보내는 김정애가 진정한 모성임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긍정적인 엄마의 상은 딱 거기까지다. 하긴 김정애라는 엄마도 이 드라마의 초반부에는 이순신이 친 자식이 아님을 알고 그녀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던 엄마였다. 평생을 믿어온 만큼 남편에 대한 배신감도 컸을 것이니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다른 엄마들의 모습은 좀체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송미령은 과연 모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의심이 갈 정도다. 여전히 김정애를 찾아가는 딸 이순신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그녀는 이순신의 아버지 역시 친 아버지가 아님을 폭로한다. 제 아무리 이기적인 엄마라고 해도 자기 욕심 차리려고 자식에게 이토록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주는 막장 엄마가 있을까.

 

이 드라마의 엄마들이 이상한 것은 ‘출생의 비밀’ 코드 속에 활용된 엄마들의 모습만이 아니다. 두 차례나 걸친 ‘출생의 비밀’ 코드가 펼쳐지면서 이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건 이른바 ‘혼사장애(결혼하려는 연인들과 그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라고 불리는 드라마의 식상한 코드 속에 등장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들이다.

 

이순신의 언니인 이유신(유인나)과 그녀를 좋아하는 박찬우(고주원)의 결혼을 반대하는 장길자(김동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아들이 그를 따라다니는 병원장 딸 신이정(배그린)을 마다하고 이유신과 결혼하겠다는 걸 ‘절대 불가’라며 반대하고 나선다. 이유는? 흔한 설정이지만 “내가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자기 자식만 잘났다는 이기주의다.

 

심지어 장길자는 이 문제로 절친한 친구인 이유신의 엄마 김정애에게 못할 말을 마구 쏟아낸다. 자기 자식이 귀하다면 다른 사람의 자식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이 비뚤어진 모성은 자기 욕심에만 가득 차 있다. 그것도 겉으로 보이는 빈부의 격차나 직업의 귀천 따위가 그 이유다.

 

아직 전면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순신과 신준호(조정석) 사이에 생겨날 멜로 전선에도 신준호의 모친인 윤수정(이응경)이 결혼 반대를 들고 나올 것이라는 복선은 이미 조금씩 깔리고 있다. 아마도 이 이순신과 신준호의 결혼을 두고 윤수정과 벌이는 ‘혼사장애’ 코드 역시 꽤 오래도록 드라마를 질질 끌고 갈 것이 뻔하다.

 

물론 ‘혼사장애’라는 드라마의 코드가 ‘출생의 비밀’만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공식인 것은 분명하다. 실로 식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이 코드를 활용하면 어느 정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을 끌어도 ‘혼사장애’ 코드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극강의 시월드를 만들어내는 시어머니의 결혼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결혼의 개념이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물론 결혼이 두 가족의 결합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혼사장애’라는 코드는 공감 없는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는 공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주말극인데다, 그것도 KBS라는 막강한 간판을 달고 있으니 대충의 ‘출생의 비밀’과 대충의 ‘혼사장애’만으로도 시청률은 보장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 시청률이 공감을 바탕으로 지지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이 나더라도 그저 관성적인 시청에 의지하기 시작할 때 KBS 주말극이라는 철옹성도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상하고 짜증나는 엄마들만 가득한 데는 그 얄팍한 방식으로 시청률만 가져가겠다는 제작진의 불성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볼 것이라 여기는 제작진의 교만이 보인다.

<이순신> 최고 시청률 얻었지만... 아이유 호연이 아까운 이유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말했다. KBS 주말극에 한 번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이유? KBS 주말극은 기본 시청률이 20%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당시 25%에 머물고 있던 <최고다 이순신>에 대해 누군가 한 마디 농담을 던졌다. “그럼 <최고다 이순신>은 시청률이 5%네?” 모두가 웃고 넘겼지만 그 농담이 남긴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게 남아있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한때 MBC <백년의 유산>이 30% 시청률을 내면서 주말극 경쟁에서 KBS <최고다 이순신>을 따라잡았을 때만 해도 이번 KBS 주말극은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시작부터 불거진 이순신 비하 논란은 그 신호탄처럼 보였지만, 진짜 추락의 원인은 진부한 스토리에서 비롯됐다. 딸 부잣집 이야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하고 노래할 것 같은 여주인공, 그를 구원해줄 잘 나가는 백마 탄 왕자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매들 등등.

 

하지만 이렇게 주말극이라고 해도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률이 좀체 오르지 않을 때, 슬슬 고개를 든 것이 ‘출생의 비밀’이다. 이순신(아이유)이 사실은 죽은 아버지의 숨겨둔 딸이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 김정애(고두심)가 그녀를 핍박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친모인 여배우 송미령(이미숙)이 그녀를 도와주는 척 하다가 다시 내치고 그 사실을 안 김정애와 송미령이 드잡이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드라마는 흘러갔다.

 

<최고다 이순신>이 최고 시청률을 회복하게 된 순간은 송미령이 막장 엄마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부터다. 그녀는 이순신이 자신의 딸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상처는 생각도 않고 세상에 그 사실을 공표해버린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자기 중심적인 행위에 시청자들이 드디어(?) 욕을 하며 드라마를 보았던 셈.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이 송미령을 찾아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보복 심리를 자극했다. 또한 이순신이 처한 입장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갖게 만들었다. 친 딸이 아니지만 친 딸처럼 집 나간 이순신을 찾아 헤매는 김정애의 절절함이나,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이순신이 김정애를 만나 ‘그래도 자기가 여전히 엄마 딸’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 찡한 아픔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최고다 이순신>이 지금껏 해온 이야기가 결국은 ‘출생의 비밀’ 한 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드라마들이 사용하면서 이제는 그 패턴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상투적인 코드의 반복. 무려 26회나 방영되면서 이렇게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반복하는 드라마가 있을까.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말하듯 KBS 주말극이 시청률 프리미엄을 갖는다고 해도, 과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내 딸 서영이> 같은 작품은 저마다 분명한 메시지와 차별화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최고다 이순신>은 어떤가. 과연 스스로 칭하듯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청률이 조금 떨어질 때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대체로 극악한 캐릭터 하나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는 속성이 있다. 송미령이라는 인물이 점점 막장으로 치닫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이러한 막장스럽고 상투적인 스토리를 어느 정도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송미령을 연기하는 이미숙은 그나마 어떤 품위를 지켜내고 있고, 김정애 역할의 고두심도 모성애와 분노가 뒤섞인 역할을 잘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건 애초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이유의 연기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으로 충분히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공감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스토리의 진부함이다. ‘출생의 비밀’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최고다 이순신>은 언제쯤 거기서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부터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던 걸까. KBS 주말극이 그간 쌓아놓은 고정시청층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거기에 기대 그저 그런 코드들로 꾸며진 드라마를 반복하다보면 그 고정층도 이탈할 것은 뻔한 일일 것이다.

30% 넘긴 <백년의 유산>이 남기는 씁쓸함

 

지난 주 MBC <백년의 유산>은 30% 시청률을 넘겼다. 이 수치는 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KBS 주말극을 앞질렀다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의미부여가 되었다. 드라마 제목은 <최고다 이순신>이지만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최고가 아니었던 셈이다. <백년의 유산>의 시청률이 30%를 넘기자, 그간 막장 논란을 줄곧 제기했던 언론들 중에서도 과연 이 드라마가 막장인가 하는 의문 제기를 하고 나섰다. 시청률만 높으면 막장도 좋은 드라마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우리네 드라마의 현실이다.

 

 

'백년의 유산(사진출처:MBC)'

먼저 이른바 어떤 드라마를 막장으로 부를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듯싶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크게 그 정의는 두 가지로 압축되곤 한다. 하나는 완성도가 떨어져 개연성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도무지 TV 드라마로서는 다뤄지기 어려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들이 자극적으로 배치되는 경우다. 두 가지 정의가 복잡하다면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도 있다. 그것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상투적으로 자극적인 코드를 반복하는 경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백년의 유산>은 위에서 제기한 것들 중 적어도 두 가지 경우에는 해당된다. <백년의 유산>이 그나마 갖추고 있다고 보이는 것은 개연성이다. 물론 이것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주인공 채원(유진)의 캐릭터가 초반에는 능동적이었다가 어느 순간 늘 당하는 수동성을 보이는 등 그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완전하다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간 막장드라마들의 전개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인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는 <백년의 유산>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주요 요인이다. 아들에게 집착하면서 거의 엽기 수준으로 며느리를 괴롭히는 방영자(박원숙)가 그 주인공이다. 심지어 정신병원에 며느리를 집어넣는 건 거의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물론 이러한 방영자의 악행은 다분히 시청자들의 공분을 이끌어내려는 계산이다. 드라마가 어떤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고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시청률을 목표로 할 때 그 드라마는 막장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른바 시청률로 성공한 드라마들의 공식들을 가져와 얼기설기 엮어놓은 상투성이다. 지독한 시월드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마마보이 아들의 갈등 관계는 전가의 보도처럼 가족드라마들이 사용했던 공식이고, 여기에 복수극의 구조와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성장드라마 미션 구조가 뒤섞여 있다. 물론 출생의 비밀도 빠지지 않는다. 만일 이 다양한 코드들을 섞어서 창의적인 이야기를 뽑아냈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구조만 봐도 떠오르는 몇몇 드라마들이 있을 정도다.

 

이 드라마의 구조는 같은 방송사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었던 <신들의 만찬>과 거의 유사하다. 음식이 메인소재이고 그 음식을 다루는 가문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그 대를 이어가기 위한 후계자 경쟁이 들어간다. 물론 거기에는 과거에 라이벌이었던 주인공 윗세대들의 갈등과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 <신들의 만찬> 역시 과거 성공드라마로 지목되었던 <제빵왕 김탁구>의 공식들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그러니 반복된 구조를 답습하는 <백년의 유산>을 과연 창의적인 드라마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백년의 유산>이 내세우고 있는 백년을 이어온 국수집의 이야기도 과도한 PPL로 인해 그 진정성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오뚜기 브랜드의 제품은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지경이고, 심지어 채원이 입사한 회사이자 그녀의 연인인 세윤(이정진)의 회사 이름도 ‘오뚜기’다. 여기에 채원 가족이 이끌어온 국수집 이름은 ‘옛날 국수’. 드라마는 채원이 세윤의 회사의 국수 공모에서 ‘옛날 국수’를 제안해 채택되는 과정을 그리지만, 실상은 오뚜기 ‘옛날 국수’의 노골적인 광고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청률 30%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자들은 이를 가리켜 진화된 막장이라 하지만 그 말만큼 슬픈 건 없을 게다. 오죽 진화할 것이 없으면 막장을 진화시킬 것인가. 그렇다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퇴행일까. 이것 역시 슬픈 얘기다. 드라마가 가진 자극적인 면들만 소비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 테니.

 

하지만 어쩌면 이 둘 다가 아니고 다만 시청률 추산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게다. 지금의 TV 본방사수로만 계산되는 시청률 추산으로 잡히는 시청자들은 결국 특정 세대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젊은 시청자들과 나이 든 시청자들의 시각차가 극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백년의 유산> 같은 드라마는 지금의 잘못된 시청률 추산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슬픈 이야기다.

<세계의 끝>, 종편이라 안 봐? 그렇다면 지상파는?

 

사실 종편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이것은 그간 종편의 모체인 보수 언론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인지되는 한, 또 그 언론과 종편 채널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는 한 바뀌기 어려운 정서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편에서 방영되기 때문에 무조건 안 본다는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정서를 빼놓고 콘텐츠만 놓고 볼 때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생각이 무색해질 때가 있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가 그렇다.

 

'세계의 끝'(사진출처:jtbc)

<하얀거탑> 같은 명품 드라마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의 작품답게 <세계의 끝>은 지금껏 드라마들이 다루지 않았던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흔히 재난영화에서나 봐왔던 장르적 요소들을 드라마로 끌어온 <세계의 끝>은 그래서 그 자체가 도전이다. 아마도 미드나 일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촘촘한 스토리와 구성,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연출은 어딘지 낯선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 늘 우리네 드라마하면 떠오르는 식상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코드들이나 장치들이 전무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의 잣대로 보면 무모하게까지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실험작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끝>은 조금도 서두르는 기미가 없다. 재난장르가 가진 특성에 맞게 아주 서서히 조금씩 긴장감을 높여가면서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만들어낼 요소들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질병관리본부의 셜록 홈즈로 불리는 강주헌(윤제문)의 탐정 뺨치는 치밀한 캐릭터를 세우고, 일단 감염되는 순간 누구든 포기되고 격리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직업적 특징이 소개된다.

 

또 감염된 본인에겐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치명적인 존재로서의 장티푸스 메리의 등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장티푸스 메리라는 존재가 갖는 심리까지 설명된다. 즉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의식을 갖기 마련인 장티푸스 메리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그 죄책감을 자기 또한 피해자라는 자기 연민으로 넘어선다는 것. 즉 그만큼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2회 분량은 이 장치들을 설명하고 깔아놓는 단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하얀거탑>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세계의 끝>은 본격적인 대결구도와 극적 긴장감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적어도 이 작품에는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새로운 드라마적 시도를 한다는 것 그 자체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신문 한 귀퉁이에서 봤음직한 바이러스가 앞으로 일으킬 대혼란에 대한 공포감이 이 드라마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낯선 소재와 연출 때문에, 또 어쩌면 조금은 실험작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이 드라마는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가 지금껏 늘 반복된 코드들만을 보여주던 드라마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요소들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의 끝>은 늘 반복적으로 때우듯이 먹어왔던 음식이 아니라 새롭기 때문에 낯설고 또한 설레는 음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 지상파의 드라마들은 어떨까.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시청률에 목매고 있는 건 아닐까.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복수극(야왕), 한 때 새롭게 여겨졌지만 무한히 반복되면서 이젠 지겨워져 버린 미션 구조의 성장드라마(마의), 매번 출연자만 달라지는 듯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최고다 이순신), 볼거리에만 치중해 내용이 부실한 블록버스터(아이리스)... 그 밖에도 지상파 드라마라면 어디든 존재하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공식이나 신데렐라의 변종 혹은 캔디형 캐릭터 같은 흔해빠진 지상파 드라마의 코드까지. 스타급 연기자를 캐스팅하고 거기에 맞춰 비슷한 코드의 무한 반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작금의 지상파 드라마들의 현주소가 아닌지.

 

이런 지극히 보수적인 덫에 걸려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종편이기 때문에 안 본다는 그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 앞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뭐가 더 보수적인가라는 회의. 지상파는 왜 <세계의 끝> 같은 드라마를 시도하지 못하는가. 그저 기존 시청률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존 시청층에 안주해 언제까지 비슷비슷한 드라마의 무한 반복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그렇게 안주해버리는 지상파 세계의 끝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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