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정통 멜로 이끄는 송혜교·박보검의 섬세한 감정 연기

사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에는 극적인 사건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동화호텔 대표 차수현(송혜교)과 호텔 홍보팀 신입사원 김진혁(박보검)이 연인사이라는 게 사건이라면 가장 큰 사건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구설수에 오르고 김진혁의 그 ‘평범한 삶’이 깨지게 되는 것. 그래서 그걸 보다 못한 차수현이 잠시 동안 거리를 두자고 말하고, 그렇게 먼 거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다 속초의 어느 바닷가 앞에서 만나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이 한 회의 분량이다. 

그 다음 회도 헤어지고 만나는 그 과정이 거의 한 회 분량으로 되어 있다. 물론 차수현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직원을 시켜 잘못된 메일을 쿠바로 보내게 만드는 최진철(박성근)의 계략이 있고, 그로 인해 쿠바에 동화호텔을 세우려는 계획이 엇나가게 되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쿠바로 가는 김진혁과 차수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쿠바까지 날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보다 더 설레는 건 만나기만 해도 구설에 오르는 이 곳을 벗어나 이역만리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다. 

이건 <남자친구>라는 드라마가 갖고 있는 정통 멜로의 색깔이다. 사건들로 흘러가기보다는 김진혁과 차수현이라는 두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회사 내에서 정치적인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들보다 드라마가 더 집중하는 건 그 일을 겪는 차수현의 심경이고, 김진혁을 속초로 발령 내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것보다 드라마가 초점을 맞추는 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 더 애틋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다. 

그래서 속초의 동화호텔에서 일하는 김진혁이 유명 잡지의 기자인 줄 모르고 그 아이가 잃어버렸다는 인형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노력한 일이 미담이 되어 기사화되는 어찌 보면 드라마의 이야기로서는 소소한 사건이 이 드라마에서는 꽤 크게 느껴진다. 큰 사건은 없지만 차수현과 김진혁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커지고, 그래서 그렇게 인정받는 모습에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 

복잡하고 많은 사건을 채워 넣지 않는 대신,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시 같은 글귀가 만들어내는 감정 선이다. 속초의 바닷가 앞에서 김연수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는 장면이 그렇다. 파도가 몰려오는 그 바닷가에서 차수현을 만나 끌어안은 김진혁은 그 소설의 글귀를 속삭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널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런 장면은 내부순환로 교각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며 그 시구가 들어있는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를 읽는 대목에서도 등장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이 시구는 쿠바에서 정원의 주인을 기다리다 문득 하늘의 별들을 본 김진혁이 다시 읊조리는 대사가 된다. 그건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는 차수현과 김진혁을 에둘러 표현하는 글귀다. 

사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밋밋해질 수 있지만, <남자친구>는 그 빈 공간을 차수현과 김진혁 두 사람이 갖는 설렘과 아픔과 기쁨 같은 감정들로 채워 넣는다. 시구들은 그 감정선을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아마도 작가는 이런 감수성이 지금의 사회에서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쿠바에서 정원 주인을 만나 오해를 풀고 다시 호텔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든 건, 비행기에서 내내 안 되는 스페인어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 담긴 진심이었다. 

차수현과 김진혁 두 사람의 감정선이 드라마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력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이 작품에서 이를 연기하는 송혜교와 박보검의 진가가 보인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아니라면 이만한 설렘이 가능했을까. 과장되게 말해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찾아보게 된다는 말이 그저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알함브라’, 송재정 작가의 세심한 노력에 폐인들이 늘고 있다

게임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하는 데는 1차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그건 게임을 잘 아는 이들과 잘 모르는 이들 사이의 확연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세계에 있어서 너무 초보적인 이야기를 다루면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게임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시시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우면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마니아들은 열광해도 보통사람들은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점에서 보면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신기한 드라마다. 증강현실이라는 낯설 수 있는 게임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지만 어찌된 일인지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어느새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든 자신을 발견한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싶지만, 그간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 작품이 그 게임이라는 낯선 세계에 조금씩 우리를 빠져들게 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활용한 방법은 충분한 튜토리얼과 여행, 멜로 같은 당의정을 더해 최대한 친숙한 느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전혀 게임과는 무관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현빈과 박신혜가 주인공들이니 누가 봐도 달달한 멜로가 떠오른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풍광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좋은 그림이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편안하게(?) 시청자들을 유입시켰다. 유진우(현빈)와 정희주(박신혜)가 그라나다의 보니따 호스텔에서 만나 툭탁거리며 조금씩 케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실제로 이 멜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유진우는 IT투자회사인 제이원 홀딩스 대표가 아닌가. 누가 봐도 이 구도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접근시켜놓고 갑자기 유진우는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나가 증강현실 게임을 시작한다. 나사르 전사의 석상이 살아 움직이고 어느 카페에서 얻을 수 있는 녹슨 철검으로 밤새도록 그 전사와 싸움을 반복하는 장면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 코믹한 시퀀스는 사실상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는 튜토리얼의 역할을 해준다. 증강현실의 게임 세계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거기서는 레벨을 높여나가야 하며, 그래서 더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룰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차츰 이 세계가 익숙해질 즈음 게임 안에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들과의 대결만이 아니라 다른 유저와의 대결 또한 가능하다는 걸 유진우의 라이벌 차형석(박훈)의 등장을 통해 보여준다. 이처럼 게임의 세계에 발을 조금씩 깊게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시청자들이 본래 기대했던 유진우와 정희주 사이의 케미 역시 이어간다. 보니따 호스텔을 100억에 팔라는 유진우의 제안과 조금씩 호감을 갖기 시작하는 정희주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사랑의 메신저처럼 이어주는 귀여운 여동생 정민주(이레)가 낯설 수 있는 이 게임 속 모험 속에서도 편안한 느낌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게임 속에서 유진우의 칼에 맞아 죽은 차형석이 진짜 죽은 사체로 발견되고, 그가 그 후에도 유진우에게 계속 게임 속 캐릭터로 나타나는 상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 놀랍고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미 이 단계가 되면 시청자들은 그 세계 깊숙이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유진우에 몰입하게 된 시청자들은 사이버 좀비가 되어 그를 공격해오는 차형석에게 죽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대변하듯 정희주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차형석을 가로막아 유진우를 구한다. 증강현실의 게임 이야기와 멜로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순간이다. 

송재정 작가의 작품이 가진 특징인 것처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어느 가상(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과감하게 전개하고 있지만 여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럽고 세심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게임 자체를 잘 모르는 이들도 빠져들 수 있게 적절한 멜로 코드와 캐릭터들의 매력을 당의정처럼 끼워 넣고 그 힘이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세계의 낯설음조차 익숙해지게 만들어낸다. 

굳이 스페인 그라나다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점과, 거기서 주인공 남녀가 만나 관계를 시작하는 건, 그래서 게임이라는 마법 같은 공간을 좀더 친숙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까지 여겨진다. 여행이든 연애든 빠져들수록 비현실도 현실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게임의 세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처럼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충분한 튜토리얼을 마친 드라마는 이제 서울로 돌아와 그 환상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나간다. 아들인 차형석이 제이원 홀딩스를 나갈 때도 또 그라나다에서 사체로 그가 발견됐을 때도 냉철한 모습을 보인 차병준(김의성)은 마치 유진우를 아들처럼 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제이원 홀딩스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이사로 있는 그는 알고 보면 자식을 내치거나 그 죽음도 선선히 받아들일 정도로 무서운 사업가다. 유진우를 아들처럼 대한 것도 그 사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사업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증강현실 게임에 엄청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고 이를 파헤치며 해결하기 위해 게임 출시를 막고 있는 유진우를 이제 그는 대놓고 끌어내리려 한다. 이는 향후 유진우와 차병준의 회사경영을 놓고 벌어질 한 판 대결을 예감하게 만든다. 

한편 유진우가 더더욱 게임에 빠져 들어가는 과정은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보다 좋은 무기를 얻어야 계속 나타나는 차형석 좀비를 이겨낼 수 있다는 설정 속에서 유진우는 계속 업그레이드된다. 또한 비서인 서정훈(민진웅)이 그와 동맹을 맺게 되면서 차형석이 그에게도 보이고 그 또한 공격받게 된다는 새로운 룰이 등장하는 점도 그렇고, 레벨 90에 도달하면서 나타난 시타델의 매가 마스터인 세주의 메시지를 갖고 오는 장면도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시킬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레벨을 높이려는 그 의도가 사라진 정희주의 동생 정세주(찬열)를 찾기 위함이라는 설정은 게임을 모르는 이들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다. 동생이 실종된 걸 알고 무슨 일이든 하려는 정희주와 유진우가 함께 동생을 찾아가는 긴장감 넘치면서도 로맨틱한 모험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치밀하고 세심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송재정 작가의 파격적인 세계가 보편적인 열광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이유다. 한 주를 기다리기가 힘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폐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사진:tvN)

멜로 틀 뒤집기, ‘남자친구’ 박보검과 송혜교 역할이 바뀌었다는 건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첫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진혁(박보검)을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하다 보게 된 대표 차수현(송혜교)이 보고는 차를 돌린다. 그냥 지나치려다 멈춰서 경적을 울리자 깜짝 놀라 깨어난 진혁이 술에 취해 꼬인 혀로 대표를 반가워한다. 대표는 차에 진혁을 태워 데려다주는데, 술 취한 진혁은 혼자 가는데 졸릴 것 같다고 주머니에서 안주로 가져왔던 오징어를 꺼내 굳이 대표의 입에 물려주고 차에서 내린다. 혼자 차를 몰고 가던 대표는 입에 오징어를 문 채 미소를 짓는다.

평범한 시퀀스지만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의 이 장면은 익숙한 듯 낯설다. 익숙한 건 우리가 그토록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던 신데렐라, 캔디와 실장님, 대표님의 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낯설기도 한 건 그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어서다. 이 드라마에서는 진혁이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면서도 밝고 건강한 캔디이고, 수현은 호텔체인의 오너로서 모든 걸 가진 듯한 특별한 삶을 살지만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대표님이다. 

<남자친구>는 단지 성 역할 설정만 바꿔놓은 게 아니라, 그 클리셰들이 그려내던 풍경까지 모두 바꿔놓았다. 이를 테면 신입사원들에게 환영사를 하는 자리에서 진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수현이 비서에게 신입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달라고 하고, 이를 통해 진혁의 자기소개서를 읽은 후 거기 등장하는 오래된 놀이터에 갔다가 거기서 진혁을 만나는 장면 같은 것도 우리가 많이 봐왔던 신데렐라 이야기의 남녀를 바꿔놓은 버전이다. 

인형 뽑기를 하는 장면도 그렇고, 술 취해 진혁이 실수한 대목을 계속 물고 늘어지며 장난을 치는 수현의 모습이나, 주말에 휴게소에 가서 라면이나 먹자고 제안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 주말 데이트에 멋진 차를 끌고 나와 진혁을 태우고 가는 장면도 그렇고. 이런 세세한 대목들까지 모두 기존의 여성 신데렐라 클리셰를 뒤집고 있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늘 힘 있고 능력 있으며 심지어 지위까지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남성이 리드하고 힘은 없어도 밝고 맑고 건강한 여성캐릭터가 따르곤 하던 연애방식을 이 드라마는 정반대로 담아낸다. 

그러고 보면 <남자친구>라는 제목 또한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과거의 흔한 멜로드라마의 틀이었다면 ‘여자친구’라는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게다. 연애의 대상으로서 여성을 지목하는 우리네 성 고정관념이 그런 제목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게 했던 시대였으니.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정반대로 ‘남자친구’라는 제목을 달고 연애의 대상으로서 남성을 지목하고 있다. 주체는 당연히 여성이 된다. 

이렇게 보면 단순히 이 드라마를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성 역할을 바꿔놓은 대목만을 통해 이 드라마가 남성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재연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 흔한 신데렐라의 멜로를 통한 신분상승을 담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성공한 삶이 갖는 화려함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 큰 가치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그래서 수현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자신이 하는 일에서의 성취와 성공이 아니다. 데드 마스크처럼 공식적인 일정 속에서 살아가다 잠시라도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일상의 틈입 속에서 비로소 수현은 잊고 있었던 듯한 웃음과 표정이 살아난다. 그 일상의 틈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물이 바로 진혁이다. 

그래서 진혁에게 수현이 처음 제안한 데이트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소하게 보이는 휴게소에서 라면 먹기다. 그것 하나 하기가 쉽지 않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있는 그 삶에서 수현은 탈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라면을 먹는 장면을 누군가 사진에 담고, 그것이 대서특필되면서 그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수현은 알게 된다. 심지어 그건 진혁의 일상까지 파괴시킬 수 있는 일이다. 

<남자친구>는 단지 성 역할만 남자와 여자를 뒤집어 놓은 게 아니다. 그걸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도 바꿔 놓았다. 화려한 성공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부유하고 힘 있는 공적 생활보다는 가난해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적인 삶을 가치로 세웠다. 이건 그래서 ‘신데렐라’ 이야기 자체도 뒤집는다. 수직상승하는 성공의 꿈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공유하려는 행복의 꿈을 담고 있어서다.(사진:tvN)

그래서 ‘남자친구’가 박보검과 송혜교의 멜로로 말하려는 건

캐스팅만으로 드라마가 이만한 화제가 됐다는 건 박보검과 송혜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잘 말해준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는 첫 방송으로 8.7%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역대 tvN 수목극 첫 회 최고 기록을 만들었다. 

실제로 <남자친구>의 첫 회 방송은 온전히 쿠바의 이국적인 풍광과 그 속에서 돋보이는 송혜교와 박보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잡아끌었다. 워낙 햇볕이 좋고 색감이 좋은 쿠바의 말레콘 비치에서 바라보는 석양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 송혜교와 박보검의 모습은 한 장의 화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비주얼 뒤에는 이들이 엮어갈 이야기가 어떤 것인가를 예감케 하는 포석들이 존재했다. 차수현(송혜교)이 재벌가 자제와 결혼했다 이혼한 이혼녀이고 그 후 동화호텔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대표라는 사실이 짧지만 속도감 있게 이야기에 전제를 깔았다.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딸로 살았고, 재벌가에 입성한 며느리였다가, 이제는 이혼해 성공한 사업가로 살고 있는 차수현은 꽤 오랫동안 사적인 일상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가 쿠바에 호텔 사업을 하기 위해 갔다가 우연히 김진혁(박보검)을 만나 보내게 된 1박2일 간의 일들이 굉장한 ‘모험’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엽서에 담겨진 말레콘 비치의 석양에 이끌려 무작정 홀로 길을 나섰다가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고 앞서 먹었던 수면제 기운에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김진혁은 그의 어깨를 내어주었다. 

차수현이 나중에 다 돈으로 갚겠다며 김진혁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이고, 길거리에서 파는 샌들 하나를 사서 신는 것이며, 배고픔을 달래줄 한 끼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모이면 어디서든 춤을 춘다는 쿠바 사람들이 추는 살사 춤 속에 슬쩍 들어가 함께 춤을 추는 정도만 해도 그에게는 일상의 모험이 된다. 

차수현이 김진혁에게 이끌리는 건 자신이 살던 세계의 사람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김진혁은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청년이다. 차수현이 탄 차가 그가 앉아 있던 테이블을 들이받아 상처 입은 카메라를 굳이 새 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하지만 거기 담겨진 추억까지 살 수는 없다며 그걸 거부하는 인물. 사람의 손때와 흔적들이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쿠바의 풍광은 그래서 김진혁이 소중히 여기는 일상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 그 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도.

결국 <남자친구>는 차수현과 김진혁의 멜로를 그릴 게다. 그렇다면 그 멜로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과거 신데렐라 이야기를 담던 멜로들은 왕자님에 천거되어 신분상승을 이루는 신데렐라를 담곤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오히려 거꾸로 된 상황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남자친구가 갖고 있는 일상과 소소함 속으로 화려해보이지만 실상은 황량한 성공으로 치장된 삶에 지친 차수현이 빠져드는 이야기. 

하지만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소소한 일상을 세상은 가만히 놔둘까. 이미 공적인 얼굴을 갖게 된 차수현에게 이런 일상이 허락될까. 심지어 그가 다가옴으로써 김진혁의 일상까지 파괴되어 가는 건 아닐까. 이 긴장감이 <남자친구>가 멜로를 통해 담아내려는 특별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