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남북 경계 넘는 판타지 멜로가 주는 설렘의 실체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에서 이제 헤어져야 하는 리정혁(현빈)과 윤세리(손예진). 윤세리는 혹시 선을 넘어 저기까지만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걷고 싶은 두 사람. 하지만 리정혁은 군사분계선을 가리키며 “여기선 한 걸음도 넘어갈 수 없소”라고 말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윤세리. 남과 북의 거리는 그토록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한 걸음이면 넘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만큼 먼 것은 남북으로 갈라지며 만들어진 마음의 거리다. 리정혁은 그 마음의 거리를 한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좁혀버린다. “한 걸음 정도는 괜찮겠지.” 리정혁과 윤세리는 그렇게 마주하며 이별의 키스를 나눈다.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보여준 이 키스신을 보며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재작년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났던 그 장면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김정은 위원장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분계선을 슬쩍 한 걸음 넘어갔던 그 장면. 단 한 걸음이지만 그 한 걸음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이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 넘어 들어와 윤세리와 이별을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이별 장면 그 이상의 울림을 남긴다. 남북 간의 경계 사이에 서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한 걸음’의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랑의 불시착>의 남북을 넘어서는 로맨틱 코미디는 리얼리티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현실성을 찾기가 어렵다. 물론 북한의 언어나 현실 상황들에 대한 사전 취재와 고증이 철저히 이뤄진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돌풍 때문에 북한에 불시착한 윤세리가 하필이면 북한 총정치국장 아들 리정혁과 인연이 맺어지고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은 실제로 벌어지기 어려운 하나의 판타지다. 시청자들은 그러나 남북 간의 현실로 인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개연성보다, 그 현실을 뛰어넘어 벌어졌으면 하는 판타지에 더 빠져들고 있다. 기꺼이 리정혁과 윤세리의 동화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이 판타지가 허용되면서 <사랑의 불시착>은 그간 우리가 많이 봐왔던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심지어 가족드라마의 소재들조차 새롭게 다가오게 만든다. 이를테면 리정혁의 아버지 리충렬(전국환)이 아들과 떼어놓기 위해 윤세리를 납치해 집으로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시퀀스는 전형적인 ‘예비 시부모를 만난 예비 며느리’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을 납치해온 리충렬이 리정혁의 약혼녀인 서단(서지혜)의 아버지일거라 오해한 윤세리가 상황을 설명하며 리정혁을 생각하는 마음을 전하는 대목은 리충렬과 그의 아내의 마음까지 흔들어놓는다.

 

반대하는 부모 앞에서 윤세리를 향한 마음을 토로하는 리정혁과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는 윤세리의 이야기도 또한 그렇다. 그런 상황들은 멜로나 가족드라마에서 많이 봐온 결혼 반대하는 부모와 그를 감복시키는 남녀의 시퀀스들이지만,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남북한 체제라는 사실은 이 소재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만든다. 남녀 간의 관계를 담은 사랑의 이야기지만, 그것이 남북 간의 관계에 대한 염원을 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까지 윤세리를 마중하기 위해 리정혁과 함께 나온 부대원들은 어느 빈 집에 잠시 머물며 그 곳이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남한과 가깝다는 걸 이야기한다. 몇 시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다. 그 빈 집에는 아마도 멀리 간 아들을 기다리며 어머니가 기도했던 정한수가 놓여진 자리가 그대로 있다. 그 아들은 어쩌면 남쪽으로 월남했을 지도 모른다. 잠시 떠났던 걸음이 수십 년 동안의 이별이 되었을 지도.

 

그 짧은 거리를 밤눈도 좋은 리정혁이 괜스레 길눈이 안 좋다며 빙빙 도는 그 마음에서 윤세리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이별을 그리고 있는 그 장면은 아주 오래 전 누군가 그 길을 걸어 금세 돌아올 거라 떠났다 지금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리정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 걸음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말하며 윤세리를 끌어안는 장면이 더 심쿵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사진:SBS)

‘동백꽃’이 까불이라는 사회적 공포를 활용하는 방식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에 들어와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하며 아들을 부양하는 미혼모 동백(공효진)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여러 차례 범인을 검거하며 경찰이 된 황용식(강하늘)의 멜로가 주요 스토리다. 도서관에서 본 후 첫 눈에 반해 동백을 따라다니며 구애하는 황용식을 애써 밀어내다 대책 없는 그 돈키호테식 직진에 결국 동백은 마음을 열고 이제 달달한 관계가 시작되려던 참이다.

 

그런데 드라마 첫 장면에 들어가 어딘지 불안감을 만들었던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마의 그림자가 달달한 멜로에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다. 까멜리아의 벽에 낙서로 쓰인 ‘까불지 마라’는 글귀가 어떤 불안감을 주더니 이제 벽면에 커다란 글씨로 ‘까불지 말라고 했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를 매일 보고 있다’고 쓰인 경고 메시지에 동백은 애써 강한 척 했던 그 면모마저 무너져 내렸다. 자신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 버텼지만 아들 필구(김강훈)마저 위험해질까 두려운 동백은 “옹산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까불이라는 존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는 달달한 멜로에서 소름끼치는 스릴러가 덧씌워졌다. 물론 까불이를 잡겠다고 옹산 사람들을 만나 탐문수사를 하는 황용식과 마을사람들의 엉뚱함은 여전히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이제 공개적으로 경고를 해대는 까불이의 섬뜩한 메시지는 시청자들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임상춘 작가는 동백과 황용식의 구수하고 달달한 멜로에 까불이라는 섬뜩한 존재를 끼워 넣었을까. 그건 먼저 멜로가 갖는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드라마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황용식이 경찰이라는 사실과 동백이 까불이의 연쇄살인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멜로가 이 사건 해결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지점이다.

 

사실 황용식이 동백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졸졸 따라다닌 것도 바로 그 까불이라는 공포의 존재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 황용식은 두려움에 옹산을 떠나려는 동백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까불이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멜로에 이만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까불이라는 설정은 그만큼 효과적이었다는 것.

 

또한 그간 친근했던 마을 사람들 중 까불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누가 까불이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미 시청자들은 다양한 저마다의 추리를 내놓고 있다. 동백의 가게에서 일하는 향미(손담비)가 까불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향미가 다른 의도로 실제 까불이를 흉내내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오랜만에 갑자기 돌아온 동백의 엄마(이정은)도 의심스럽고, 까멜리아에 CCTV를 달아주었던 철물점을 운영하는 흥식(이규성)도 시청자들의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까불이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런 관심과 궁금증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까불이라는 존재를 끼워 넣은 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만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던 뜻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까불이가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그 정감 넘치던 옹산 사람들을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은 보는 대상을 이토록 다르게 보게 만든다. 이것은 <동백꽃 필 무렵>이 동백과 황용식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공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려서는 고아로, 나이 들어서는 미혼모에 술집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동백은 한 평생을 편견과 선입견의 굴레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잔뜩 주눅 든 채 살아가는 동백에게 다가온 황용식의 사랑은 그저 사적인 사랑을 넘어 그 편견과 선입견을 깨주는 공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신과 달리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보내는 걸까. 그건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까불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구체화해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불안의 근거일 수 있는 까불이만 사라지면 사라져버릴 비뚤어진 시선들인 셈이다. 그래서 모두가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가운데 황용식이 그 까불이를 잡겠다 나서는 그 대목은 동백에 대한 사랑이면서, 그 불안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편견, 선입견에 맞서는 공적 정의의 의미를 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과 황용식의 사랑이야기를 여타의 멜로와 달리 절절하게 보게 된 건, 그 사적 멜로에 공적 의미들이 담겨 있어서였다. 편견 때문에 자신의 소중함을 폄하하며 근근이 버텨내며 살아가던 동백에게 그 소중함과 귀함을 일깨워주는 사랑. 이 작품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절묘한 작가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사진:KBS)

‘배가본드’ 제작진, 여성 캐릭터를 이렇게밖에 쓰지 못한다는 건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는 굉장히 새롭다고 보긴 어려운 드라마다. 비행기 폭파 테러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무기상들의 이권다툼과 여기 연루된 권력자들. 그리고 이들과 대적하는 차달건(이승기)이라는 서민형 액션 영웅의 이야기가 그다지 참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이른바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드라마에는 항상 등장하는 코드가 국정원 요원, 테러, 권력, 무기상, 로비스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본드>가 나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액션 때문이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그 과정을 담는 액션의 볼거리는 흥미롭다. 특히 금토 저녁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편안하게 액션을 즐기고 싶은 시청자들이라면 <배가본드>는 딱 그 정도의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몸 사리지 않는 이승기의 액션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가진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여러모로 심각한 수준이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여주인공인 수지의 연기력 논란이 터져 나왔던 건 물론 국정원 요원과 어울리지 않는 대사톤이나 표정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보면 이 작품이 여성 캐릭터를 쓰는 방식의 문제가 더 크다.

 

<배가본드>는 수지가 연기하는 고해리라는 여성 캐릭터를 국정원 요원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기보다는 드라마들이 여성을 소비하곤 하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요원이라기보다는 멜로가 준비되어 있는 여성으로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차달건이 죽도록 몸을 날려 진상을 파헤치려 뛰고 또 뛸 때 고해리는 민폐가 되거나 혹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만 처한다.

 

게다가 뜬금없이 술에 취해 “너 내거 해”라고 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은 여성이 나서서 먼저 남성에게 키스한다는 능동성(?)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여성을 멜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 드라마 제작진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러니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 속에서 고해리만 혼자 멜로드라마를 찍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 생긴다. 이런 캐릭터라면 수지가 아니라 그 어떤 베테랑 배우가 해도 연기력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 제작진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다 여겨지는 건 드라마 전체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해리는 멜로에 방점이 찍혀 있고, 제시카 리(문정희)는 무기 거래를 하기 위해 무고한 이들을 비행기 폭파 사고로 죽게 만드는 악녀다. 제시카 리가 고용하는 살인청부업자 릴리(박아인)도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 청부업자의 이미지 그대로이고, 공화숙(황보라)은 주인공 옆에 늘 서브로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다.

 

그나마 제시카 리가 나름의 능동성을 가진 캐릭터로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남성들의 세계가 치열한 전장과 두뇌싸움으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들의 세계는 상투적인 면들이 강하다. 물론 굳이 남성 여성을 나눠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 고해리를 요원 역할로 쓰기보다는 멜로의 존재로 더 세워놓은 것처럼 여성 캐릭터들이 전형화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어째서 <배가본드>는 액션 드라마에서 멜로가 아닌 액션과 스릴러에 더 집중하는 여성 캐릭터를 그리지 않은 걸까. 이를테면 tvN <시그널>에서 차수현(김혜수) 같은 캐릭터나 tvN <비밀의 숲>에서 한여진(배두나)이나 영은수(신혜선) 같은 캐릭터 같은 직능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는 매력이 없다 여기는 걸까. 연기가 어색하다고 수지를 비판하기 전에 <배가본드>의 여성 캐릭터가 가진 한계를 먼저 곱씹어봐야 한다.(사진:SBS)

‘의사요한’ 지성과 이세영의 해피엔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때론 해피엔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지금껏 드라마가 달려온 주제의식이 엔딩에 이르러 흔한 ‘사랑타령’으로 끝나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이 딱 그렇다. 통증의학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와 고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들을 그려왔던 <의사요한>이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차요한(지성)과 강시영(이세영)의 흔한 멜로드라마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사요한>의 마지막회는 사족에 가까웠다. 통증에 대한 임상실험 참가자이자 연구자로서 미국에 간 차요한의 바이탈 기록을 매일 같이 체크하며 기다리는 강시영의 헤어질 듯 다시 만나는 뻔한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차요한과 사랑을 확인하는 강시영의 이야기. 거기에 <의사요한>이 지금껏 다뤘던 주제의식은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요한은 자신이 내리는 고통에 대한 마지막 처방전으로서 의사의 역할이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닌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이라는 걸 드러냈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통은 우리 안에 살고, 우리 삶은 고통과 함께 저문다. 그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고통의 무게는 줄고 고통을 끌어안는 용기는 더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 이것이 삶이 끝나야 사라질 고통에 대한 나의 마지막 처방이다.”

 

즉 고통뿐인 삶 앞에서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던진 질문에 이 드라마는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답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치료는 완치만이 목적이 아니고 완화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그래서 의사는 환자 옆에서 그 고통을 들여다보며 고칠 수 없다면 그것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해주는 것이 응당한 역할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요한>은 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의식적으로 멜로 라인을 통해 그 무거움을 덜어내려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 라인이 그렇고, 이유준(황희)과 강미래(정민아)의 멜로 라인 또한 그렇다. 게다가 통증의학과 레지던트들은 상당부분 희화화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적인 구성이고 연출이다.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요한>이 지나치게 멜로로 기운 건 오히려 한계로 지목된다. 차요한이라는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아내며 잘 살아난 데 비해, 강시영은 의사로서는 너무 감정적이고 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도 이런 드라마의 한계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에 비하면 너무 아쉬운 캐릭터의 면면이 아닐 수 없다.

 

의학드라마는 이제 너무 많아져 특별한 소재나 주제의식 혹은 형식실험을 가져오지 않으면 뻔한 드라마라는 인식을 갖게 될 정도다. 그러니 의학드라마가 뾰족한 주제를 가져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건 그만큼 중요해졌다. <의사요한>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다. 뾰족한 주제의식을 갖고 오고도 뭉툭한 멜로의 결말로 끝내버렸다는 점에서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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