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힘들어.” 류승완 ‘베테랑2’

베테랑2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명대사로 기억되는 ‘베테랑’이 시즌2로 돌아왔다. 그 대사에 담긴 뉘앙스처럼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서민들을 대변한다. 가난해도 지킬 건 지키며 살려는 서민들의 마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천인공노할 죄를 짓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자들 앞에서 서도철은 분노한다. ‘베테랑’ 시즌1은 막강한 돈과 권력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를 끈질기게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이야기로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줬다. 그런데 시즌2는 이야기의 결이 조금 다르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도 법망을 빠져나가며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은 범죄자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해치(정해인)라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형사가 아닌 보통 서민들의 입장에서 서도철의 마음은 그 해치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특히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형사가 아닌가. 

 

‘사적 제재’는 어쩌다 보니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서로 떠올랐다. 법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민심이 불러일으킨 공분은 ‘모범택시’부터 ‘비질란테’, ‘국민사형투표’, ‘노웨이 아웃’ 등등 다양한 사적 제재를 소재로하는 콘텐츠들을 양산했다. 그리고 이 사적 제재는 실제로 범죄자의 사적 정보를 마음대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일이 됐다. 하지만 정의가 어찌 간단할까. “살인은 살인이야”라며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냐”고 묻는 서도철은 해치의 엇나간 정의를 바로잡는다. 만신창이가 되어 사건을 마무리한 후 서도철이 넋두리처럼 하는 “아이고 힘들어”라는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분노와 처단 같은 단순한 선택만으로 얘기될 수 없어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그것이 진짜 정의가 아닐까.(글:동아일보, 사진:영화 '베테랑2')

'옛글들 > 이주의 영화 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견과 나다움  (0) 2024.10.21
극한창업  (0) 2024.10.13
가을의 문턱  (0) 2024.09.30
든든한 내 편  (0) 2024.09.16
장애와 사회의 책임  (0) 2024.09.10

‘노 웨이 아웃’의 출구 없는 몰입감 부르는 배우들의 호연

노 웨이 아웃

“이 사회에는 법이란 게 있잖아요. 법원에서 법에 따라 판결을 했고 난 그 판결에 따라서 13년을 뺑이 치고 나왔고.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내가 뭘 잘못한 겁니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살인 유기까지 했다. 그런데 형기를 마치고 심지어 ‘모범수’로 출소하는 희대의 흉악범 김국호(유재명)에게서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반성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법에 따라 처벌을 받고 나왔으니 이제 자신의 죄도 다 씻어진 거라는 듯 말한다. 

 

그 말에 그를 보호해 집까지 이송해줘야 하는 형사 백중식(조진웅)은 피가 끓는다. 심지어 ‘자유’와 ‘권리’ 운운하는 그에게 분노하지만, 형사라는 그의 직업은 원하든 원치않든 이 희대의 살인범이 들끓는 민심에 의해 혹여나 벌어질 수 있는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디즈니+의 새 드라마 ‘노 웨이 아웃 : 더 룰렛(이하 노 웨이 아웃)’은 이 기막힌 딜레마 상황으로 문을 연다. 천하의 죽일 놈을 지켜야 하는 형사의 딜레마. 

 

흉악범의 집 앞을 가득 메운 인파와, 마음 놓고 아이들 학교도 못보내겠다며 그 흉악범과 함께 살 수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 익숙한 광경이다. 아동 강간범으로 1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후 출소한 조두순은 대표적이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소 반대에 대한 목소리를 냈던가. 하지만 결국 그는 출소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아마도 그를 어쩔 수 없이 보호해야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게다. 백중식 같은. 

 

‘노 웨이 아웃’은 이런 현실의 법 정의가 갖는 딜레마에 사적복수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더해 넣었다. 가면남이라 불리는 한 미스테리한 인물이 룰렛방송을 통해 바로 그 김국호의 살인을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의뢰한 것. 룰렛을 돌리면 이름과 액수 그리고 미션이 하나씩 결정되는데 그대로 미션을 수행하면 나온 액수의 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룰렛을 통해 가면남은 김국호를 살해하면 200억을 주겠다는 미션을 내건다. 

 

김국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그래서 그 목적이 불분명해진다. 겉으로는 정의를 지켜야 한다며 그 흉악범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 차원에는 200억이라는 물질적 욕망이 자리한다. 가면남이 룰렛방송을 통해 만들어내는 건 정의에 대한 명분과 돈이라는 현실 사이의 딜레마다. 

 

그 딜레마를 온 몸으로 겪는 이는 다름 아닌 백중식이다. 그는 형사지만 잘못 투자했다가 돈을 홀랑 날려버려 이제 가족 모두가 길바닥에 앉게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 그에게 유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귀가 잘린 채 발견된 도축업자 윤창재(이광수)를 수사하다가 그를 병원에 데려다놓고 간 임지홍(현봉식)의 차적 조회를 통해 그 집을 찾아갔던 백중식은 거기서 10억이 든 돈가방을 발견한다. 마침 집으로 돌아온 임지홍이 백중식을 보고 무조건 도망치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사망하자, 백중식은 그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챙긴다. 

 

결국 이 선택은 백중식을 곤경에 빠뜨리는 계기가 된다. 룰렛에 지목되어 귀를 잘리면 10억을 얻을 수 있다는 가면남의 미션 때문에 임지홍에 의해 귀가 잘렸지만 돈을 나누겠다는 약속을 믿고 찾아온 윤창재는 임지홍이 사망하고 돈가방을 백중식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돈을 찾기 위해 나선다. 결국 백중식과 어떤 식으로든 대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노 웨이 아웃’이 그리는 흉악범과 사적 복수에 대한 서사는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모범택시’부터 ‘비질란테’에 이르기까지 사적 복수라는 소재는 범죄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웨이 아웃’은 여기에 가면남, 룰렛방송 같은 설정을 더해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딜레마를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적 요소들을 가미했다. 

 

특히 딜레마 상황을 더할 나위 없이 리얼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조진웅은 물론이고 극한의 악역들을 소화해냄으로써 안재홍 이후 또 다른 ‘은퇴설’을 예고하는 유재명, 이광수 같은 배우들의 호연은 이 리얼과 판타지를 오가는 작품에 깊은 실감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앞으로 등장할 염정아, 김무열 그리고 ‘상견니’로 국내에서도 팬덤을 가진 허광한까지, 캐스팅이 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과연 ‘노 웨이 아웃’은 제목처럼 출구없는 몰입감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사진:디즈니+)

‘수사반장 1958’, 순수한 청년 형사라는 서민 영웅의 탄생

수사반장 1958

“파하-” 이제훈이 그렇게 웃는 모습에 최불암의 모습이 겹쳐진다. MBC ‘수사반장 1958’의 한 장면이다. 1971년부터 89년까지 방영됐던 레전드 드라마 ‘수사반장’. ‘수사반장 1958’은 그 리메이크작으로 극중 최불암이 연기했던 박영한 반장 역할을 이제훈이 맡았다. 당시 ‘수사반장’에 첫 출연했던 최불암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지만, 박반장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극중 연령은 좀더 많은 40세로 설정되어 있었다. 원작을 그대로 배경으로 가져왔다고 하면 이제훈이 맡아서 연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배역의 연령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간을 과거로 더 되돌렸다. 1958년. 박영한 반장의 이십대 시절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인물이 반장이 되었는가 하는 걸 다루는 프리퀄이다. 

 

그런데 1958년으로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건, 이제훈에 걸맞는 이미지의 연령대를 찾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 시대상과 그것 때문에 도드라지는 이제훈의 돈키호테 같은 순수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가 그 자체로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불의에 굴복하거나 방관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시대라면, 순수함이란 그 자체로 ‘반항’의 의미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되지도 않은 1958년은 대혼돈의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범죄와 불의가 일상이던 치안 부재의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상권을 폭력으로 접수해 돈을 뜯어가는 깡패들이 심지어 공권력과도 결탁해 돈과 권력을 구가하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전국에서 소도둑을 가장 많이 때려잡은 형사로 알려진 황천시의 촌놈 형사 박영한이 서장마저 깡패의 눈치를 보는 서울 종남경찰서의 꼴통 형사로 떠오르게 되는 건 그저 형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려하는 것 때문이다.

 

최불암의 젊은 모습이 좀체 연상되지는 않지만 이제훈에게서 훗날 인간적인 수사반장의 씨앗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건 이 배우가 가진 순수한 청년 같은 이미지다. 이제훈은 ‘파수꾼’이라는 영화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함으로써 ‘충무로의 신데렐라’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특유의 표현이 서투르고 그래서 반항기 가득한 아웃사이더 같은 청년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제훈의 순수한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확고해진 건 영화 ‘건축학 개론’이다. 이 작품으로 상대역할이었던 수지가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것처럼 이제훈 역시 순수한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유의 동안에 무해함이 느껴지는 눈빛과 미소는 수지와 10살이나 많았지만 이제훈을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동갑내기 대학생으로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훈은 그 후에도 ‘파파로티’ 같은 영화나 ‘비밀의 문’ 같은 드라마로 새로운 영역의 역할들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거쳐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로 또다시 주목받았다. 미제전담팀의 프로파일러 역할로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 자체를 믿게 만들어주는 진지하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여기서도 이제훈 특유의 순수한 이미지는 미제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형사라는 배역과 맞물려 효과를 발휘했다. 이 캐릭터가 가진 간절함을 보다 절절하게 시청자들이 느끼게 해준 것이다. 

 

이러한 간절함은 영화 ‘박열’이나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불의의 시대에 목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펼쳐졌다. 이제훈의 순수한 청년 이미지는 이제 불의한 시대에 저항하는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내 육체는 자네들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며 일제 앞에서 일갈하는 박열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옥분 할머니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민재를 통해 이제훈은 시대에 저항하고 싸워나가는 청년의 이미지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확장은 ‘모범택시’의 김도기라는 인물과 만남으로써 부정한 정의가 심판하지 않는 이들을 처단하는 서민영웅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모범택시’가 특히 이제훈에게 새겨넣은 정의의 페르소나가 강렬할 수 있었던 건, 그 판타지적 캐릭터의 밑그림으로 제공된 실제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사건들이 있어서였다. 신안염전노예사건, 위디스크에서 벌어진 갖가지 엽기적인 사건들, 김명철 실종사건,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등 실제 신문 사회면에 나왔던 사건들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했다. 현실에서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를 사적 보복이라는 판타지로 처리하는 김도기라는 인물에 대한 열광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제훈은 저 ‘건축학개론’의 그 풋풋하기만 했던 청년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는 서민 영웅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가 연기해온 역할들을 이처럼 하나씩 꿰어 들여다 보면, ‘수사반장 1958’의 박영한 형사 같은 레전드 캐릭터에 왜 그가 캐스팅되었는가가 이해된다. 당대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박영한 형사는 마치 의적 홍길동 같은 서민 영웅에, 돈키호테 같은 타협없는 이상주의자, 게다가 형사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우직한 순수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이미지가 이제훈이 그간 해왔던 필모 안에서 발견된다. ‘모범택시’의 김도기가 가진 서민 영웅적 면모에, ‘박열’의 주인공 같은 이상주의자가 더해지고 ‘시그널’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어떤 이미지의 결합체랄까. 

 

이 모든 이제훈이 가진 페르소나의 가장 밑그림으로 놓여진 것은 결국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다. 조금 서툴러도 올바르다 믿는 것을 순수하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청년의 모습. 어쩌면 이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첫 걸음은 다 그 청년의 모습이었을게다. 세파에 흘러가다 보니 조금씩 변하게 되었을 뿐. 어느 날 문득 너무 멀리 왔다 느껴질 때 순간 얼굴을 보여주는 저마다의 청년들이 있을 게다. 때론 그 순수한 청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도 복잡한 세상을 뚫고 나가는 길이라고 이제훈의 페르소나는 말해주는 듯하다. (글:국방일보, 사진:MBC)

‘악마판사’의 통쾌함과 불편함은 어디서 오나

악마판사

또 다른 다크히어로의 탄생이다.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는 대놓고 주인공에 ‘악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모범택시>, <빈센조>에 이어 <악마판사>까지. 도대체 다크히어로들은 어쩌다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 걸까.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판사 작품 맞아?

사실 <미스 함무라비>를 쓴 문유석 작가는 우리에게는 ‘판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건 그가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 전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통해 전 부장판사였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바 있고, 무엇보다 <미스 함무라비>가 바로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새로 쓴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 역시 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적어도 <악마판사>를 기점으로 문유석은 ‘판사’보다는 ‘작가’라는 직함이 더 어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법정의 현실을 담은 <미스 함무라비>와는 사뭇 다른,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판사로서의 현실 경험보다는 작가로서의 상상이 더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악마판사>다. 

 

본래 작품의 판타지는 현실의 결핍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가상의 설정을 갖고 있지만 거기에는 현실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라이브 법정 쇼’에 처음 서게 된 JU케미컬 회장 주일도(정재성)는 독성폐수를 무단 방출해 한 마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물이다. 우리네 현실에서도 이런 유사한 사건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모티브가 됐던 91년에 있었던 낙동강 페놀 방류사건이나, 여전히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야기한 가해 책임자들은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악마판사>에서 라이브 법정 쇼를 통해 강요한(지성) 재판장은 주일도 회장에게 금고 235년이라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놓는다. 또 두 번째로 열린 라이브 법정쇼에서 엄마가 법무부장관이라는 사실 때문에 안하무인 갑질을 일삼아온 피고는 ‘태형(때리는 형벌)’ 30대를 선고하고 그 과정을 생중계한다.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을 가상의 국가와 라이브 법정쇼 같은 설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잠시간의 ‘사이다’를 안기는 것. 

 

이런 이야기 구조는 SBS <모범택시>와도 유사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이기도 했던 박준우 연출자는 그 프로그램이 다뤘던 실제 사건을 허구의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그 가해자들에게 ‘사적 복수’를 가하는 무지개 운수팀의 사이다 액션을 그린 바 있다. 여러모로 문유석 작가는 이제 현실의 문제를 좀 더 가상을 빌어 풀어보려는 작가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인다. <악마판사>는 바로 그런 욕망의 소산이다. 

 

이 라이브 법정쇼가 겨냥하고 있는 것

<악마판사>는 그러나 라이브 법정쇼라는 ‘사이다 법 정의’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강요한(지성)이라는 주인공을 ‘악마판사’라 세우고 있는 데는 그가 과거 어떤 불행을 겪었고 그래서 절치부심 복수극을 펼쳐가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버려진 아이로 대부호의 집에 입양되어 살아온 강요한을 그의 배다른 형인 강이삭(진영)이 살뜰히 챙겨줬지만, 10년 전 그 막대한 유산을 사회적 책임재단에 전액 기부하려던 중 발생한 의문의 성당 화재로 인해 형 부부가 모두 사망하게 된 것. 강요한은 형의 딸 엘리야(전채은)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그 기부를 전면 취소했다. 당시 화재 현장에 있었던 사회적 책임재단 인사들은 그래서 마치 강요한이 그 화재를 일으키고 그 재산을 모두 강탈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 날 성당에 있던 사회적 책임재단 인사들은 아이인 엘리야를 밟으면서까지 탈출한 그런 비정한 인물들이었다. 그들 사회적 책임재단 인사들은 지금도 이 가상의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이 되어 있었다. 대통령 허중세(백현진), 법무부장관 차경희(장영남), 사회적 책임재단 이사장 서정학(정인겸), 민보그룹 회장, 사람미디어그룹 회장 등등.

 

결국 <악마판사>가 보여주고 있는 구도는 사회적 책임재단으로 불리며 마치 나라 걱정을 하는 이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적 이익에만 혈안인 이들에 대한 강요한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아직 그 실상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당시 성당의 화재와 형인 강이삭의 전 재산 기부 같은 사안의 이면에는 아마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책임재단의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요한이 하는 ‘라이브 법정 쇼’는 그래서 전 국민이 보고 참여하는 라이브 쇼라는 방식을 통해 실제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비극을 겪은 가족을 위한 복수극이 펼쳐지는 곳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악마가 판을 치는 다크히어로 전성시대

<악마판사>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선한 주인공이 아닌 다크히어로를 그리고 있다.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집이지만 텅 비어 있어 어딘지 음습하고 쓸쓸한 대저택은 거기 살고 있는 강요한이라는 다크히어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마치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을 닮았다. 고풍스런 대저택에서 살지만 고독하고, 어딘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는 어두운 인물. 그래서 드라마는 초반에 라이브 법정 쇼로 전 국민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는 강요한이라는 인물이 그 모습과는 다른 ‘악마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그의 등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십자가 모양의 커다란 화상의 흔적은 ‘요한’이라는 그의 이름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십자가를 진 채 저들 악마의 불길 속으로 뛰어든 다크히어로의 아우라를 만든다. 결국 그가 악마가 되기로 한 건, 그래야만 저 악마보다 더 한 사회적 책임재단의 가면을 쓴 어둠의 카르텔과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악마판사>에서 단박에 <모범택시>가 떠오르고, 그 어두운 인물의 면면에서 tvN <빈센조>가 떠오르는 건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다크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모범택시>의 김도기(이제훈)는 부모가 모두 살해당하는 일을 겪었지만 정작 가해자에 대한 미온적인 사법 처리 과정을 겪으며 ‘사적 복수 대행’이라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빈센조>는 이탈리아에서 온 마피아 변호사로서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고 말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인물이다. 어쩌다 지금 정의를 메시지로 담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선이 아닌 악을 선택하게 된 걸까. 그건 이 정도의 강력한 대응이 아니면 저들끼리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한’ 악을 대적할 수 없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된 일이다. 다크히어로는 그래서 어설픈 착함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악함으로 저들과 싸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러한 다크히어로 전성시대의 밑그림에 어른거리는 대중들의 정서는 사법행정에 대한 불신이다.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범법자들이 돈과 권력의 힘으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법 위에서 오히려 법을 이용하는 행태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지 않은가. 그래서 서민들의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외침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실 속에서 다크히어로는 탄생한다. 그들이 주는 사법 정의가 물론 일시적인 통쾌함을 선사할 뿐일지라도 잠시간의 사이다일 뿐일 지라도 그 시원함을 맛보고 싶어진다. 물론 그 통쾌함 뒤에 남는 건 이런 식의 가상까지 동원해야 하는 현실이 주는 불편함이지만.(글:매일신문 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