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의 욕망, 조진웅의 몸과 이제훈의 머리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경찰이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지극히 당연한 대사지만 이 대사가 주는 울림은 너무나 크다. 상식보다 권력이 앞서는 법 정의 현실에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조진웅) 경사라는 캐릭터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어떤 권력의 협박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할 일을 실천해 가는 그런 인물.

 


'시그널(사진출처:tvN)'

이재한 경사는 지금의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대의 형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도사건 수사에서는 제보만으로 엉뚱한 인물을 체포함으로써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몸이 앞서지만 그가 여느 형사들과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소신이다. 그의 대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는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심지어 잘 아는 사람이라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와는 정반대의 형사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총을 쏜 안치수(정해균) 같은 형사다. 그는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상관인 김범주(장현성)와 같은 배에 타게 된다. 이재한 경사처럼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진 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권력과 결탁해 제 배를 채우는 김범주나 안치수 같은 인물은 현재까지도 잘 살아간다. 이 부조리한 현실은 시청자들이 분노하게 되는 이유다.

 

이재한 경사가 몸으로 뛰는 형사라면 그와 무전기로 연결되어 있는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은 머리로 승부하는 형사다. 그는 프로파일러답게 모든 정황들을 사건현장의 작은 단서에서도 찾아낸다. 재벌가 자제로서 대도사건의 진범이자 이와 관련해 살인을 저지른 변호사 한세규(이동하)를 두뇌싸움으로 증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사이다 같은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법을 잘 알고 그래서 법망을 이용하거나 빠져나가는 점점 지능화되는 범죄에서 박해영처럼 머리를 쓰는 형사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전기라는 판타지로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의 형사 이재한 경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의 조합은 그래서 완벽하다. 이재한은 몸으로 뛰고 박해영은 머리로 분석한다. <시그널>이 타임 리프라는 설정으로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를 각각 우직한 행동파와 과학수사의 상징처럼 엮어놓은 건 흥미롭다. 이 과거와 현재의 중첩이 그저 시간을 뛰어넘는 신기함만이 아니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어딘지 과학수사는 아니더라도 몸으로 더 뛰어 범인을 잡으려는 과거의 형사와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과학수사를 해나가는 현재의 프로파일러의 조합을 이상적인 형사상으로 그려내는 것.

 

물론 이 상이한 성향의 두 사람이라도 같은 점은 있다. 그것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다. 과거 이재한의 상사였고 현재는 박해영의 상사인 김범주의 그 긴 세월동안 해온 권력과의 결탁과 압력에도 두 사람은 모두 소신 있는 수사를 해나간다. 결국 <시그널>의 공적으로서 한세규나 김범주 같은 인물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악의 고리이고 이재한과 박해영 두 사람 모두가 대결해야할 적이 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만큼 법 집행이 오래도록 권력과 결탁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형사. 한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끝없이 두뇌를 사용하지만 모두 정의 실현에 갈증을 가진 그들의 조합은 이상적이다. 그 이상적인 조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부조리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안치수, 김범주와 대결하는 이야기. <시그널>은 이 대결구도를 통해 지금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의 연원이 꽤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그 뿌리 깊은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 그것이 이 두 시대의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형사들을 이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오마비>, 아름다움이 산업이 된 시대의 사랑이란

 

KBS <오 마이 비너스>에서 남자 주인공 영호(소지섭>은 세계적인 헬스 트레이너이자 가홍 의료 재단의 후계자 물망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과 재벌가 후계자라는 위치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조합이 굳이 만들어진 건 이 직업과 조합이 우리 시대에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부유함이야 이미 멜로드라마의 고정적인 남성 주인공 레퍼토리였으니 굳이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을 게다. 즉 부라는 요소는 <오 마이 비너스>가 새로운 로망으로 자리하고 있는 미를 어떤 면에서는 보완해주는 로망 정도일 것이다. 사실상 <오 마이 비너스>가 다루려고 하는 건 그 제목에도 이미 들어가 있듯이 미, 즉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미는 두 인물로 표상된다. 하나는 역변해 뚱뚱한 몸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자신만만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 강주은(신민아)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를 질시해 살을 쪽 빼고 몸짱으로 거듭났지만 어딘지 속내는 과거와 다름없이 배배 꼬여있고 여전히 자신도 없어 보이는 오수진(유인영)이다. 드라마가 이 두 인물을 통해 하려는 얘기는 명백하다. 살이 쪘는가 아니면 살을 뺐는가와 상관없이 마음의 문제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의식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여성들만의 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여성 시청자들을 이 드라마에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보다 사실 더 흥미로운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인 영호다. 그는 이제 가홍을 물려받아 사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업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몸을 관리하는 영역에 특화된 사업이다.

 

병원은 아프면 가는 곳이 아니라 이제는 건강을 유지하고 몸을 가꿔주는 의료서비스의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병원과 피트니스 센터는 그래서 몸 관리와 아름다움이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어진 시대를 표상하는 공간이 되었다. 영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철저히 자기의 몸 관리를 하는 인물이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도 못하고 힘들어도 죽을 듯이 트레이닝을 한다.

 

물론 건강을 위해 몸 관리를 한다는 것이야 당연한 것일게다. 하지만 영호가 그런 것처럼 빨래판 복근을 만들고 얼굴 윤곽의 가름한 선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굶듯이 살아가는 건 어딘지 과도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건 지금 현재 우리에게 마치 강박처럼 강요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몸꽝은 몸이 망가진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그 사람이 어딘지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까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좋고 아름다운 몸을 갖는 것이야 누구나의 욕망이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사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은 어딘지 의심스럽다. 영호가 가홍 그룹의 후계 역할을 두고 고심하는 건 어쩌면 이런 아름다움을 위해 끝없이 관리하고 돈을 쓰게 된 삶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강주은은 얼굴 살이 쏙 빠진 기념으로 영호와 그 동료들에게 하루 동안 자신처럼 살아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어본다. 영호는 그동안 살아왔던 그 관리된 삶 때문에 그렇게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을 의심한다. 크림 가득 얹은 커피를 떠올리고 무엇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강박적으로 몸에 집착하는가를 의심한다.

 

<오 마이 비너스>는 물론 강주은이라는 인물이 영호라는 시크릿 트레이너를 통해 살을 빼고 사랑 또한 얻는 그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일 이 드라마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아름다움을 강박적으로 가꾸는 것이 사업화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풍경을 건드려 준다면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강주은이 갖고 있는 변호사라는 직업과도 연결되는 일이다. 번지르르 해보여도 사실을 가진 자들의 편에서 변호함으로써 약자를 짓밟는 변호사의 또 다른 얼굴과 맞서게 된 강주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거기서도 우리가 발견하는 건 진정한 아름다움의 실체일 것이다. 돈으로 화려해 보이는 커리어우먼의 번지르르함이 아니라, 진정한 변호인으로서 아름다운 모습.



멋짐과 섹시함의 정반대, <니글니글>의 반전

 

Jason Derulo‘Wiggle’이란 곡은 이제는 니글니글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개그콘서트>니글니글때문이다. 그 특유의 멜로디에 맞춰 니글니글한 송영길과 이상훈의 살들이 춤을 춘다. 어찌 보면 보기에 불편한 모습들이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이 니글니글이란 코너가 가진 반전의 웃음 포인트다. 그들은 그 불편함을 오히려 뽐내겠다는 듯 더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려 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사실 몸이란 언젠가부터 상품처럼 전시되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 많은 몸짱들이 저마다의 각선미와 복근을 드러내고 매끈한 몸이 가진 섹시미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마치 마땅히 그래야할 미의 기준이 된 것처럼 강조되는 세상이다. 몸은 관리되어야 하고, 관리되지 않는 몸은 그 사람의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판단되곤 한다.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런 관점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지금은 이것이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조각처럼 관리된 몸에 대한 선망은 그렇지 못한 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그러니 니글니글의 관리되지 않은 몸들이 아예 다 드러내겠다고 입은 듯한 딱 붙는 의상을 차려입은 채 오히려 자뻑을 하는 모습에서는 불편함과 함께 느껴지는 어떤 속 시원함이 묻어난다. 관리를 요망하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불편하지만, 그것을 비웃는 듯한 이 니글니글한 몸들의 조롱은 때로는 통쾌하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그라는 소재가 몸과 무관할 수는 없다. 몸 개그는 지켜지고 있던 자세가 어떤 상황에 의해 무너질 때 웃음을 유발하고, 외모 개그는 못생긴 얼굴과 뚱뚱한 몸만으로도 웃음을 준다. 물론 이런 몸을 과도하게 활용한(?) 개그에 대해 대중들은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외모비하 개그가 가진 양면성이다.

 

몸에 대한 이러한 양가적 관점은 <개그콘서트>가 몸 개그를 쓰는 관점과 일치한다. <개그콘서트>에는 나미와 붐붐이나 크레이지 러브처럼 오나미나 박지선의 외모를 내세운 개그를 선보이고, 김준현이나 유민상 같은 뚱뚱한 몸을 내세워 돼지캐릭터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라스트 헬스보이처럼 망가진 몸을 갱생하는 과정을 개그로 담기도 한다.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이 양면은 둘 다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그대로 담아낸다. 몸은 어쨌든 관리될 대상이다. 그래서 관리되지 않는 몸을 비웃거나 혹은 관리하는 몸에 대한 상찬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니글니글은 이러한 몸에 대한 시선들을 상당부분 도발하는 면이 있다. 이들은 뚱뚱하게 관리되지 않은 몸을 자랑하듯 과한 춤을 선보이고, 심지어 송중기와 자신들을 비교하며 자신들이 더 낫다는 얘기를 건네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웃음을 유발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대한 이런 도발이 과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뿐일까. 물론 보기에 스스로도 얘기하듯 니글니글함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그들의 몸 역시 상품의 전시대에 올려질 수 있다는 자신감은 거꾸로 저 전시대를 비웃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과거에 여성들의 몸이 성 상품화 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볼 때 느껴지던 씁쓸함은, 그래서 이 니글니글한몸들이 그 여성들이 취하곤 했던 과한 섹시한 동작들을 선보일 때 여지없이 통쾌해지는 면을 만들어낸다.

 

멋짐과 섹시함의 정반대로만 보여주는 니글니글의 도발. 그것은 불편함 속에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된다. 송영길과 이상훈은 이런 개그에 최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비로소 니글니글을 통해 자신들만의 개그영역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멜로가 된 <순수의 시대>, 왜 시대를 담지 못했나

 

신하균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새로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는 사극이다. 조선 초기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소재로 다뤘다. 역사적 사실이야 사극을 조금 봤다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것일 게다. KBS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 같은 사극이 다뤘던 그 시대.

 

사진출처:영화 <순수의 시대>

하지만 <순수의 시대>는 그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이방원(장혁)의 왕자의 난에서 오히려 역적으로 몰린 김민재(신하균)가 기녀 가희(강한나)에게 보내는 절절한 순애보를 다루고 있다. 19금 영화이니 당연히 노출수위가 높고 정사신도 많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렇게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그런 정사신이 이 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영화가 충분히 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장에서 수없이 죽음을 넘어서고 누군가를 죽게 한 이 강인한 김민재가 한 여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한 면이 있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울림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이 가희라는 여인의 삶이 좀 더 민초들의 삶으로 확장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그 핍박받는 삶에 대해 지금의 대중들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그런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주는 김민재라는 캐릭터 역시 특별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수의 시대>는 그 이야기 구조 상으로 보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그 사이에 낀 서민들은 이들 권력자들의 손에 핍박받다 아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기록에서조차 삭제된다. 이 얼마나 지금의 현실과 조응하는 면이 많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순수의 시대>는 이런 폭넓은 의미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김민재와 가희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에만 집중함으로써 이야기를 그저 멜로에 머물게 만든다. 물론 모든 사극이 역사를 빌어와 어떤 의미를 찾아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 멜로를 그리기 위해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끌어왔다면, 그 사적 멜로가 공적인 사건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는 영화가 얘기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가 나무랄 데가 없다. 신하균은 그 단단하고 신경질적인 근육의 몸만으로도 영화에 비장미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장혁은 이방원을 허허실실과 잔인함을 겸비한 인물로 해석해낸다. 그저 섹시 스타로만 이미지화되어 있던 강한나는 의외로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미생>에서 장백기라는 스펙남을 연기했던 강하늘은 놀라운 악역 변신을 보여준다.

 

이들 각각의 호연은 대단히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영화에 하나로 묶여지지 않아 힘이 생기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순수의 시대>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영화는 그 시대적 의미를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힘은 신하균의 그 몸에서 나온다. 그 몸과 표정 하나가 전해주는 절절함과 긴장감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지리멸렬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상처투성이의 몸을 쓰다듬는 가희의 손길에 좀 더 민초의 의식을 담아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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