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무도'에서도 느껴지는 이경규의 아우라

 

역시 <이경규가 간다>의 아우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인가. 월드컵 시즌을 맞아 예능 프로그램들이 응원전을 저마다 펼쳐 보이고 있지만 과거 <이경규가 간다>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두 팀으로 나뉘어 브라질로 먼저 날아간 노홍철, 정형돈, 정준하는 한국과 러시아전을 경기장 안팎에서 취재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재석의 부재를 채워준 건 노홍철. 그는 경기를 중계하는 김성주, 안정환, 송종국을 만나 첫 경기를 중계하는 소회를 듣기도 했고, 멀리서나마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와 응원으로 이어지는 그 형식은 <이경규가 간다>가 이미 2002년부터 2006년 그리고 최근에는 <힐링캠프>로 재연하고 있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경규가 <무한도전>으로 바뀐 양상.

 

<무한도전>에서 살짝 보여진 김수로와 김제동은 다름 아닌 <힐링캠프> 브라질편의 출연자들이다. 즉 이경규가 직접 뛰고 있는 <힐링캠프> 역시 <이경규가 간다>의 형식을 거의 비슷하게 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시청자들로서는 계속 돼서 반복되는 <이경규가 간다> 형식을 보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어쩌면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갖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이벤트라는 것이 이미 치러진 경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고, 그 경기를 보는 출연자들의 리액션이 주요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다. 또 경기 전후로 선수들의 면면을 슬쩍 보는 것이 관심거리가 된다.

 

과거 <우리동네 예체능>이 소치 동계올림픽에 가서 보여준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이경규가 간다>가 가진 형식의 큰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브라질 특집에서는 어떨까. 과연 <우리동네 예체능>은 이 이경규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있을까.

 

워낙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그램 형식이 강력하기 때문일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우리 팀의 경기는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은 장면들이었다. 그러니 이를 예능 형식을 통해 또 한 번 즐길 수 있게 해준 <이경규가 간다>가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박수를 받은 건 당연한 일이다.

 

<무한도전>이 보여준 브라질 응원전도 바로 그 재미 포인트를 거의 비슷하게 잡아내고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형식이 <이경규가 간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경규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있는 참신하고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도><1>이 여전히 최고인 이유

 

MBC <무한도전>은 떨어지는 시청률과 음주운전으로 인한 길의 하차 등으로 위기론이 대두된 적이 있다. 물론 <무한도전>의 위기론은 늘 조금씩 있어왔다. 팬덤의 힘에 의한 마니아 예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 때마다 <무한도전>은 마치 화답하듯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나와 건재함을 과시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번 선거특집<무한도전>에 한꺼번에 쏟아진 위기론을 일거에 불식시키고 명불허전’ <무한도전>의 위용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그저 그런 순위 아이템으로 생각했던 선거특집에는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고 선거만 되면 보여주던 정치인들의 백태가 날선 풍자로 다뤄져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실제와 거의 같게 진행된 투표는 지방선거와 맞물려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45만 여명의 투표를 받은 <무한도전>은 대중들의 변하지 않은 사랑까지 확인하게 된 셈이었다.

 

선거특집이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를 뽑는 과정을 통해 강조한 것은 <무한도전>의 초심이었다. 늘 시청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준엄한 꾸짖음조차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차세대 리더로 뽑힌 유재석은 곤장을 맞는 퍼포먼스로 보여주기도 했다. 논란을 만들었던 노홍철 장가가기프로젝트는 김태호 PD가 직접 곤장을 맞는 모습을 통해 앞으로도 책임지는 <무한도전>이 될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선거 특집에 이어 방영되는 배고픈 특집역시 <무한도전>의 초심에 가까운 프로젝트로 여겨진다. 아마존에서 온 원주민으로 분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서울이라는 도심에서 벌이는 생존의 이야기는 독한 미션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아이템은 그 상황이 주는 큰 웃음은 물론이고 서울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12>은 유호진 PD가 새 사령탑이 되면서 부활했지만 갑자기 터진 세월호 참사로 인해 다시금 위기상황에 놓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12>의 선택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과거 7년 전 첫 여행을 떠났던 영동으로 똑같은 콘셉트를 갖고 떠난 여행에서는 현재의 <12>이 있기까지 있었던 7년 간의 행적이 추억처럼 묻어났다.

 

뿌리 찾기 여행이라고 지칭한 것처럼 <12>은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복불복을 그대로 재연하면서 느낀 그 초심은 아마도 새로운 멤버들이나 제작진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7년 간이나 <12>을 봐온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소회를 안겨주었다.

 

9년차 <무한도전>7년차 <12>.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간 무수히 많은 위기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건 최근 초심 찾기에 나선 이들 프로그램들의 그 한결같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늘 정상의 위치에서도 첫 발의 그 느낌을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그 초심으로 돌아갈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그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무한도전><12>이 여전히 최고인 이유일 것이다.

<꽃누나>에서 <밀회>, <무도>까지 김희애 특급행보의 비결

 

백상예술대상에서 김희애는 단연 화제였다. 유재석이 <무한도전>에서 <밀회>를 패러디했던 물회에 대해 사과를 하며 김영철씨 만나면 꼭 특급칭찬 해달라고 농담을 하자 김희애는 특유의 새침한 포즈로 유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좌중을 폭소케 만들었다. 또 시상자로 나선 자리에서 손현주가 칭찬받고 싶다고 하자, 김희애가 볼을 꼬집으며 이건 특급칭찬이야라고 말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지금 특급칭찬<밀회>가 종영한 후에도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SBS <내 남자의 여자>에서 화영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김희애가 <마이더스>에서 살짝 부진함을 보이다가 JTBC <아내의 자격>으로 다시 주목받고 올해 <밀회>로 다시 최고의 배우임을 증명하는 그 과정은 실로 드라마틱하다. 무려 스무 살 차이의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연기는 결코 쉬울 수 없는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비난 받을 소지도 크다. 하지만 김희애는 그 논란의 소지조차 연기력으로 불식시켰다.

 

최근 들어 그녀의 행보는 독특하다. 물론 안판석 감독과의 인연으로 <아내의 자격>에 이어 <밀회>까지 JTBC 드라마를 하게 된 것이지만 지상파 바깥에서 오히려 이런 화제를 끌고 온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처음으로 선택한 예능 역시 tvN이라는 케이블이었다. <꽃보다 누나>는 김희애라는 배우의 또 다른 인간적인 결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는 여배우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또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따뜻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위기에 처한(?) 이승기를 뒤에서 살짝 도와주는 모습은 센스 있는 누나의 모습과 마치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모습이 비춰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유지하고 때로는 털털하고 살갑다가도 감수성 많은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역시 다양한 결을 내면에 갖고 있는 여배우였다.

 

케이블의 예능 프로그램과 종편의 드라마를 통해 그녀는 드라마와 예능 양 분야에서 모두 특급대우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패러디 물회가 화제가 되면서 <무한도전>과 맺게 된 인연은 백상예술대상을 거쳐 <무한도전> 출연으로까지 이어졌다. “특급칭찬이야라는 유행어가 <밀회>에서는 하나의 진지한 대사였다가 예능으로 와서는 웃음을 주는 패러디가 된 것은 김희애의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드는 여유를 엿보게 한다.

 

이 특별한 여배우는 이미지를 무너뜨리기 마련인 예능에서조차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은 그녀가 예능을 하면서도 예능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의 정체성은 배우다. 웃음을 줘도 곧바로 제 자리로 돌아올 줄 아는 배우. 그녀의 예능이라는 분야에서조차 보이는 편안함은 많은 걸 겪어낸 여배우의 여유처럼 읽혀진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방영되었던 <꽃보다 누나>와 올해 화제를 만든 <밀회>는 그래서 김희애의 연기 인생에서 기억에 날만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특히 케이블과 종편 프로그램의 약진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그녀의 작품 위주의 특급행보가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이 다시 완벽히 제 자리로 돌아와 예능과 드라마 양편에서 주목받는 그녀가 특급 칭찬받는 이유다.

박명수에게서 광대의 기질을 느낄 때

 

마치 찰리 채플린이 <독재자>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의 독재자들을 희화화했듯이 <무한도전> 선거특집의 박명수는 선거에 즈음해 벌어지는 온갖 정치인들의 행태들을 풍자하는 듯 보였다. 선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유재석 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네거티브 선거 운동에 대한 뾰족한 풍자를 보여주었고, 수박 한 통을 사면서도 가격을 깎는 모습이나 그걸 들고 선배 한무를 찾아 선거운동 청탁을 하는 장면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흥미로운 건 박명수가 자신을 ‘MBC의 성골로 캐릭터화 했다는 점이다. MBC의 순수혈통, MBC의 가족, MBC의 상징으로 자신을 내세운 박명수는 후배들을 챙기는 모습을 캠페인 영상으로 내보냈지만, 공개된 메이킹 필름 속에서는 후배들에게 명령하고 호통 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인들의 거짓 이미지를 에둘러 비판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별로 없어 당선 가능성이 사라지자 노홍철과 유재석을 오가며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는 철새 정치인의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TV 토론회에서는 갑자기 유재석 지지를 선언했다가 이를 철회하고 시민 논객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난데없이 스튜디오에서 전화연결을 해 토론회에 참여하다 진행자인 정관용과 대립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 그는 갑자기 정관용의 팬을 자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 특집을 통해 보여준 박명수의 모습은 한 마디로 망가짐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들의 거드름을 희화화시키기도 했고 성골을 자처하며 관계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유착을 풍자하기도 했으며, 거짓 이미지 정치와 철새 정치인들을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시민논객으로 변신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정치 풍자의 폭은 입체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유재석이 기본에 충실하자고 외치고 노홍철이 투명성을 강조하며 또 정형돈이 소탈한 서민적 이미지를 계속 보여주고 하하의 의리를 내세우는 그 일관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박명수는 당선에 대한 의지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정치인의 희화화된 모습으로 한없이 망가뜨려 풍자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박명수가 지금껏 일관되게 해왔던 캐릭터 때문이다. 그는 1인자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결코 1인자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유재석처럼 늘 긍정적이고 바른 이미지를 보여준 적도 없다. 호통치고 때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욕을 먹으며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박명수라는 것.

 

바로 이 웃음을 주기 위해 기꺼이 욕먹는 캐릭터라는 지점은 박명수가 풍자와 패러디를 소재로 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빛을 발하는 이유가 된다. 박명수의 의도적인 부정적 이미지는 정치인 풍자 같은 경우에 있어서 더 자연스럽고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박명수의 진짜 모습인지 아니면 정치인 풍자인지가 애매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질 때 풍자의 강도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박명수가 선거 후보자에서 시민의 대표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순간적으로 정치인과 보통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해체된다. 정치인이라고 특별할까. 박명수의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은 그래서 선거 후보자 같은 캐릭터 설정의 이면으로 드러날 때 일종의 폭로의 쾌감을 선사한다. 박명수는 그 희화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잘난 사람들이라고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못한 경우가 더 많다고.

 

본래 예전부터 광대가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기제는 그 낮은 자세였다. 대중들보다 더 낮은 위치를 보여줌으로써(이를 테면 바보 같은) 보는 이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주는 것. 하지만 여기서 광대가 상황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임금 흉내를 내며 희화화할 때다. 대중들은 그 순간 임금을 다른 존재로 여겨지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무너지며 광대와 동질화되는 쾌감을 느낀다. 박명수가 때로는 유재석보다 더 멋지게 느껴질 때가 바로 그 때다. 그가 광대의 기질을 드러낼 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