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용과 박원순의 올바른 선거 문화 독려

 

<무한도전> 선거특집에 <100분토론> 진행자인 정관용은 왜 출연했을까. 시사평론가인 정관용과 예능 프로그램은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한도전>만의 절묘한 한 수가 되었다. ‘선택 2014’ TV 최종 토론회의 진행자로 깜짝 등장한 정관용은 그 웃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참고 진지한 모습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려 애썼다. 바로 그 진지한 모습은 그래서 오히려 큰 웃음을 주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정관용의 진지한 진행은 순간적으로 <무한도전><100분토론>처럼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일으켰고,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 진짜 같은 토론회 분위기에서 어처구니없는 토론을 보여주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토론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의 이러한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웃음 속에서 정관용은 때때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선거가 고작 아이템 선정이나 회의할 때 무게가 실리는 권한을 위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런 선거 꼭 해야 하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관용의 출연은 이번 선거특집이 가진 정치 풍자와 무관하지 않다. 현실성 없는 자극적인 공약으로 시선을 끌려는 노홍철 후보나 자신이 당선될 가능성이 없자 이 쪽 저 쪽에 달라붙으며 자기 이득만을 취하려는 철새 정치인 박명수 후보, 공약이 아니라 의리만을 내세우는 하하 후보나 소탈한 모습을 강조하며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정형돈 후보의 모습은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그 안에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네 선거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TV 토론회에서도 공약을 얘기하기보다는 타인을 깎아내리는 폭로와 비방을 우리는 흔히 봐오지 않았던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한도전>이 이렇게 대담한 풍자를 하는 이유는 그 웃음 속에 담긴 씁쓸함으로 제대로 된 선거문화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다소 부담일 수 있었을 정관용의 예능 출연은 그 자체로 <무한도전>과 뜻을 같이 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또한 정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선거에 대해서도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이번 선거 특집을 통해 조금은 선거에 대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예능이지만 현실에도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박원순 시장이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사전투표소를 찾아 <무한도전> 사전투표에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원순 시장은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며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투표를 독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달리 말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해야 하는 투표에 대해 직접 몸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정관용 시사평론가와 박원순 시장의 <무한도전> 출연이 박수 받는 이유는 이번 지방선거의 올바른 선거 문화를 독려하는 이 선거특집에 자신들도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뜻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보여진 그들의 소탈한 모습 또한 대중들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예능이지만 그 어떤 선거 관련 프로그램보다 더 신랄한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 <무한도전> 선거특집. 정관용과 박원순의 참여는 이 어찌 보면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에 진중한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

MBC, 대중들의 편에 설 수는 없는 걸까

 

최근 <무한도전>은 향후 10년을 책임질 리더를 뽑는 선거특집을 방영했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아이템이고,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미래를 얘기하는 소재이지만, 그것은 또한 MBC라는 방송사나 나아가 정부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멤버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관료주의 타파투명성 확보등의 공약 문구는 그래서 지금의 MBC와 정부를 겨냥한 듯한 뉘앙스마저 풍겼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결국 <무한도전>이 이러한 선거특집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들과의 소통이다. 시청자들 편에서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들어주기 위함이고,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 위함이다. <무한도전>에 대한 지지층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자신의 편의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청자 지상주의를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수목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개과천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차영우펌의 변호사 김석주(김명민)가 어느 날 사고로 기억상실을 겪게 되고 자신이 변호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추악한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고 말 그대로 개과천선하는 드라마다. 김석주는 태안반도에 벌어진 기름유출 사건에서 사건을 일으킨 기업측에 서서 고통받는 어민들의 보상을 가로막았고, 승소하기 위해 한 여자 연예인의 치부까지 드러내 결국 그녀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게 만들었다.

 

자신이 자신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구조를 가진 이 드라마는 결국 김석주가 어민들 입장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또 자신이 궁지에까지 몰았던 여자 연예인을 위해 변호를 맡는 극적인 반전을 다룬다. 가해자인 자본과 대기업의 더러운 입으로만 살아왔던 그가 거꾸로 서민들과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 무엇보다 변호사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그가 기업이 아닌 서민들 편으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MBC라는 방송사의 현 상황에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최근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단 몇 년만에 MBC는 너무나 다른 방송국이 되어버렸다. 지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MBC는 대중들의 눈과 입을 대변해주는 방송국이었다. <PD수첩>이나 <뉴스데스크> 같은 뉴스 시사프로그램은 사회가 가진 부조리를 콕콕 집어내었고, 드라마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드라마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었다.

 

하지만 그 몇 년 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뉴스 시사 프로그램은 더 이상 대중들의 눈과 입이 되어주지 못했고 드라마들 역시 막장드라마의 일일과 주말 편성은 물론이고 역사왜곡의 위험성이 있는 사극을 버젓이 강행했으며 최근에는 일선 PD들의 자율성을 깨는 PD 교체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기자와 아나운서들의 인사이동이 진행 중이고, 능력 있는 PD들은 견디지 못하고 방송국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 중이다.

 

항간에는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MBC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처럼 다시 대중을 위한 방송을 위해 쇄신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무한도전>의 외침을 귀 기울일 수는 없는 일일까. 그 좋은 제작 능력으로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기보다는 서민들의 편에 서는 개과천선은 불가능한 일일까. MBC는 지금 대중들을 외면하고 침몰하느냐, 아니면 다시 대중들의 편으로 돌아와 생존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방송사의 근간은 자본과 권력이 아니라 대중들의 지지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무도>, 개념 예능이란 이런 것

 

믿을 수 없는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에 무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분들과 그리고 실종자 분들 또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힘들게 버티고 계실 가족 분들에게 더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을 담아 머리 숙여 위로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저희 무한도전 멤버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마치 조문을 온 듯 모두 검정 양복을 입은 채 MBC <무한도전>은 이렇게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로 잠시 멈춰서 있던 예능 프로그램을 재개하면서 먼저 이번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희생자 분들, 실종자 분들 또 가족 분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예능 재개를 한다는 것이 역시 쉽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충분한 예의를 표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무한도전>은 알고 있었다.

 

특히 어린 학생을 지키지 못한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서로가 건네는 진심어린 위로가 아닐까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씩 기운을 내서 서로 위로하고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서로 힘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한도전>은 이어서 어른으로서 사죄하는 마음 또한 전했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책임을 먼저 얘기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장에서 밤낮없이 구조작업에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 그리고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수고에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원칙을 지키지 않아 생기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저희 무한도전 또한 여러분께 힘이 되고자 저희가 있는 자리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이번 참사로 인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것은 또한 <무한도전> 역시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충분한 애도의 마음을 먼저 전한 후, <무한도전>은 본연의 웃음으로 돌아갔다. 애도하면서도 웃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마침 <무한도전>이 그간 9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선거 특집을 통해 보여준 것은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지 않게 여겨졌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패러디 성격이 강했고, 선거철이 되면 벌어지곤 하는 남발되는 선심성 공약에 대한 비판적인 풍자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이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대로 된 선거뿐이 아니던가.

 

선거 공약 발표와 토론에서 낯설지 않은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관료주의’, ‘시청률 재난본부’, ‘늑장대처’, ‘위기극복시스템등이 그것이다. 이 풍자의 과정에서 소통소똥이 되었다. 그리고 유재석은 시청률을 빌어 위기에 대해 말했다.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며 더 큰 위기위기인 걸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 혼자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자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시청률에 대해 얘기합니다. 어떤 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무한도전> 시청률 하락에 대한 셀프 디스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또 유재석의 이 말에 갈증이 나는지 연실 생수를 들이키는 박명수를 지칭한 듯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또한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우리의 목표는 시청률이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웃음입니다. 이것이 무도가 지켜야할 기본입니다.” 그래서일까. 유재석이 던진 이 마지막멘트 역시 다양한 뉘앙스로 들려왔다. OECD가 어떻고 경제 몇 위가 어떻고 하는 그런 숫자가 무슨 소용일까. 결국 지켜져야 할 것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이 기본이 아닌가.

 

<무한도전>선거 특집하나로 보여준 것은 웃음이 결코 그저 오락거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국민 전체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애도와 책임과 예의가 전제 되었고, 또 예능으로서 충분히 웃음을 담보하면서도 잘못된 현실에 대한 날선 풍자가 들어 있었다. 개념 예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웃기면서도 눈물 나고 감동적이면서도 현실 인식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무한도전>은 역시 향후 10년을 책임질 예능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쉽지 않은 <무도> 카레이싱, 그래도 지지하는 이유

 

제 아무리 <무한도전>이라도 이번 스피드 레이서특집은 결코 쉽지 않다. 박명수가 몰던 차가 레인을 빠져나와 가드 레일에 부딪쳐 반파되는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카 레이싱은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미션이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 위험이 따르고 심지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어찌 생각해보면 이것이 예능 프로그램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은 지금 상황극도 아니고 그저 한번 체험해보는 것도 아닌 진짜 카레이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올해 송도에서 벌어지는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에 참가한다. 지금껏 어느 예능 프로그램이 이런 부상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하는 도전을 했던가.

 

그나마 <무한도전>이니 이런 미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간 불가능해보였던 도전들을 이미 하나하나 수행했던 모습을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봅슬레이나 조정, 프로레슬링 같은 도무지 무모해보였던 도전도 이들이 하니 현실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 <무한도전>의 도전 과제는 카 레이싱 정도는 되어야 주목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스피드 레이서특집이 어려운 건 단지 그 미션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이 특집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예능적인 포인트, 즉 웃음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의 출전권을 놓고 벌인 출연진들 간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웃음을 주기 위해 차를 타러 나가는 출연자들의 몸 개그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스에 들어가면 모두가 심각해졌다.

 

자동차를 모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봅슬레이나 조정, 프로레슬링 같은 도전이 갖고 있는 몸 개그의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이전의 장기 프로젝트 도전 과제들이 눈에 보이는 땀과 몸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었다면 카레이싱은 감동과 스릴은 줄 수 있어도 웃음을 주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카레이싱이라는 종목 자체가 대중들에게 그다지 친숙하지가 않다. 물론 그 묘미를 아는 사람들이야 <무한도전>이 다루는 카레이싱에 더 환호할 것이지만, 이 종목을 잘 모르는 대중들은 이 도전 자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자동차가 질주하고 또 서로 앞으로 나가기 위해 경쟁하며 때로는 사고가 나기도 하는 장면들은 물론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거의 자동차 안의 앵글에만 비춰지게 된다) 실제 하는 사람들과 그걸 보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실감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즉 카레이싱이라는 도전 과제는 결코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대중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도전 과제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김태호 PD가 말했던 것처럼 다카르랠리 같은 최종목표를 위한 사전 포석이기 때문이다. 이 도전을 통해 자동차 경주라는 한 분야를 출연자들이 체득하게 되면 그 위에 다른 도전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최근 <무한도전>이 응원단 도전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면모이기도 하다. 연대와 고대의 응원전을 통해 응원을 체득했기 때문에 <무한도전>은 월드컵 응원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 결국 하나의 도전은 거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무한도전> 카레이싱, 당장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모한 도전의 과정을 거쳐 <무한도전>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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