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 시도는 참신하지만 남는 아쉬움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내놓은 영화 <창궐>과 <부산행>은 닮은 점이 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한 좀비 장르라는 점이 그 첫 번째다. <부산행>은 좀비 장르의 마니아적인 특성을 훌쩍 뛰어넘어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비슷한 건 다소 폐쇄적인 특정 공간에 집중된 좀비 장르라는 점이다. <부산행>은 영화의 대부분이 부산까지 가는 KTX와 몇몇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창궐>은 제물포항과 궁이라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더 흥미롭게 보이는 유사점은 서구의 좀비 장르와 사뭇 다른 좀비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좀비가 바로 민초라는 시선이다. <부산행>에서는 가족이 좀비로 변화해 결국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또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공격하는 좀비들을 통해, 우리네 집단주의적인 문화와(나아가 군사문화가 더해진) 그로 인해 대립과 갈등이 가족 내에서도 존재하는 우리네 상황을 에둘러 담아낸 바 있다. 

<창궐>은 좀비를 ‘들에 있다고 하는 귀신’을 뜻하는 야귀로 해석했다. 그런데 야귀떼들이 보이는 습성이 흥미롭다. 야귀떼들은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며 눈이 시뻘개지고 결국은 가족을 포함한 사람을 습격한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이 이 야귀라는 존재의 특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이들이 이렇게 된 건 영화가 처음부터 특별한 설명 없이 보여준 ‘헬조선’의 풍경들 때문이다. 왕 이조(김의성)는 힘이 없고 대신 권력을 농단하는 김자준(장동건)에 의해 휘둘린다. 그래서 그의 간계 속에서 심지어 자식마저도 역모로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왕이 관심을 갖는 건 자신의 왕좌뿐이다. 그래서 야귀떼가 창궐하고 있는 제물포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야귀가 궁으로 들어오고 왕의 측근으로 있던 조씨(서지혜)가 야귀로 변하게 되면서 궁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조씨에게 물린 왕이 조금씩 야귀로 변해가고, 또 이런 상황들을 이용하는 김자준의 눈빛이 점점 벌겋게 물들어가면서 야귀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이 만들어진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으로서의 야귀가 조선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보였지만, 알고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왕좌의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진짜 야귀들’이 궁안에 있었다는 것. 

이렇게 권력욕이 탄생시킨 야귀와 그로인해 굶주린 민초들이 변한 야귀를 구분해서 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헬조선’과 ‘국정농단’ 같은 최근 몇 년 전 우리네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청에서 돌아온 왕자 이청(현빈)이 조선 땅에 발을 딛고 민초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하고 묻는 대목은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를 더욱 명쾌하게 드러낸다. 

사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좀비라는 상징의 우리 식 해석, 게다가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좀비 장르를 엮어 보여주는 액션이라는 기획 포인트들은 이 작품이 우리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하지만 기획과 상징적 메시지만으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가 주는 재미는 이러한 시대적 정서를 이야기와 액션 속에 응축했다 폭발시키는 그런 섬세한 장치들을 통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창궐>은 이런 영화적 재미를 장르적으로 구현해내는데 있어서 많은 허점들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는 민초들의 피폐해진 삶에 대한 공감대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신 좀비 장르의 특징들인 충격적인 장면들과 액션들이 채워진다. 주인공인 이청의 성장담은 이런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본래부터 엄청난 무공을 지닌 ‘슈퍼히어로’의 밋밋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왕이 있어야 백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뒤집어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그 메시지는 결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아니지만, 이청이라는 인물이 그런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17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그리고 현빈과 장동건 캐스팅이 화제를 모았고, 조금 색다른 좀비 영화를 보겠다는 그 호기심이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입소문이 창궐할 지는 미지수다.(사진:영화'창궐')

‘미스터 션샤인’의 진짜 주역들은 아무개 민초들이므로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주연만큼 조연이나 단역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첫 회 등장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사라진 유진 초이(이병헌)의 엄마 역할을 한 이시아나, 의병활동을 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고애신(김태리)의 부모 역할을 한 김지원과 진구, 의병으로 미군과 싸우다 죽은 장승구(최무성)의 부친 역할의 윤경호는 그 짧은 출연해도 강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물론 이들이야 주인공들의 전사를 그려내는 역할이기 때문에 주목받은 면이 있지만, 그 외의 단역 혹은 조연들에 대한 반응들이 뜨거운 건 다른 이유들이 있다고 보인다. 이를 테면 과거에는 추노꾼을 했었지만 개화된 세상에서 전당포를 차려 살아가는 일식이(김병철)와 춘식이(배정남)나, 고애신의 유모로 못하는 게 없는 여걸 함안댁(이정은) 또 그와 짝패를 이뤄 고애신을 돕는 행랑아범(신정근), 유진 초이의 보좌 역할을 하는 여관 임관수(조우진) 같은 인물들이 그렇다. 

이들은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의병들의 투쟁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인 유진 초이나 고애신처럼 전면에 나선 역할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들 뒤편에서 보이지 않게 그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면 추노꾼이던 일식이와 춘식이는 유진 초이가 상자 속에 숨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그렇게 살아남기를 바랐던 것. 그래서 유진 초이는 미국으로 갔다가 군인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은 유진 초이와의 인연 때문에 그 전당포에 고종의 러시아 은행 비자금 문건을 보관하게 된다. 

함안댁과 행랑아범은 그저 ‘애기씨’ 고애신을 수행하는 이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밤이면 친일하는 자들을 저격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또 그걸 돕는 인물들이다. 총에 맞아 다친 고애신을 도와 상처를 치료해주고 포위망을 빠져나오는데 동행한다. 그들은 애기씨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위는 무의식중에 의병활동과 그리 다르지 않게 된다. 임관수는 유진 초이의 역관이지만, 의병 활동을 숨어서 하다 발각되어 조선을 떠나려는 여인을 도망치게 해주는데 앞장선다. 왜 그렇게 하냐는 유진 초이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이라고. 그 한 마디는 가볍게 만 보였던 임관수가 가진 조선인으로서의 마음을 드러낸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처럼 주연들만큼 조연들의 활약에 시청자들이 열광을 보낸다. 그것은 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 ‘아무개’로 불리는 의병들의 투쟁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상 전면에 드러난 이들보다 드러나지 않고 저 마다의 위치에서 싸우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스러진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장승구(최무성)는 다소 쓸쓸하게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의 모든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는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이런 의미로 보면 <미스터 션샤인>의 진짜 주역들은 살짝 뒤편으로 물러나 있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아무개로 남을 수많은 민초들.(사진:tvN)

'역적' 김상중이 미친 듯이 연기해낸 한 노비의 초상

“우리 길현 어매, 길동이는 손가락 빨렸어도 도련님한테는 젖 물렸고, 우리 길현이는 도련님 대신해 숱하게 매 맞으면서 커들 않았서라. 내는 이날 이때까지 나리 모시느라고 허리 한 번 못 펴봤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이 집에 뼈며 살이며 힘줄까지 발라 바쳤는데... 아녀 아녀 나리 잘못이 아녀. 다 내 탓이여. 나리가 뭔 잘못이 있겄어. 온통 노비들은 인간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나리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겄어... 어째서 그 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잉.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싹 다 죽여뿔고 새로 태어날 생각을 워째 못했을까잉.”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아내의 죽음에 아모개(김상중)는 드디어 사태를 깨닫고 각성한다. 자신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이 지옥 같은 노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의 주인인 조참봉(손종학)을 향해 낫을 든다. 그에게 ‘아모개’라는 이름을 지어준 조참봉에게 그는 “이름을 고 따위로 지어 놓으니께 아모개는 아무케나 살아도 되는 줄 알았냐”며 끝내 분노를 터트린다. 

남다른 힘을 가지고 태어난 길동이(이로운)에게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하는 아모개는 결국 자신 역시 화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왔던 그 힘을 꺼내 보인다. 그는 길동에게 애기 장수 이야기를 해주며 천인이 힘을 보이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모두 죽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억누르고 누르며 살아왔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노비를 아모개라 이름지어버리고 아무렇게나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역적>이 그리고 있는 세상은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노비들을 착취하고 수탈하며 심지어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목숨을 거둬가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 양반들의 세계다. 그들은 노비들이 가진 것들을 죄다 빼앗는 도적들이지만 이 이상한 세상에서는 그것이 전혀 죄가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 양반들은 좀 더 높은 신분에 오르기 위해 수탈한 것들을 더 높은 이들에게 상납한다. 이 수직적 수탈 체계의 끝은 왕이다. 왕의 뒤에 서서 권세를 잡기 위한 줄서기는 그래서 끝없이 아래쪽을 착취하는 일로 이뤄진다. 

다른 한 세계는 양반들에게 재물을 눈앞에서 빼앗겨도 그게 전부 “주인님 것”이라고 피눈물을 토하며 얘기해야 하는 세계다. 아모개 역시 양반들의 재물을 도적질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도적질이 된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도 분노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어떤 힘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온 가족이 죽을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는 이 이상한 세상. <역적>은 이 두 개의 세계가 부딪치며 누가 진짜 도적이고 역적인가를 묻는 드라마다. 

단 2회를 보여준 것뿐이지만 <역적>이 갖고 있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온 몸으로 연기해 보여준 김상중의 존재감은 칭찬 받을 만하다. 사실상 그의 역할은 <역적>에서 힘을 갖고 있지만 힘을 드러내지 못하는 길동이 그의 비극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각성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극이 앞으로 나가는데 있어서 그 밑바탕이 되는 민초들의 분노 같은 정서를 깔아두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역할이 중요했던 건 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이야기를 왜 지금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미친 듯이 연기해낸 아모개라는 한 노비의 초상은, 가족들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들끼리 벌이는 ‘도적질’에 의해 나라는 갈수록 피폐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더욱 힘들어진 현재에 더 큰 울림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실을 각성한 아모개의 절규는 이름 없이 묵묵히 성실하게만 살아왔던 많은 대중들을 공감시킨다. 바로 이 아모개의 연기를 통해 김상중은 단 2회 만에 <역적>을 기대작으로 만들었다.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 어떤 정서를 건드리고 있나

 

시간과 공간,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 같은 경계들을 모두 뛰어넘었다. 고려시대 무신 김신(공유)은 자신이 지키던 주군의 칼날에 쓰러지지만 그를 지지하는 민초들의 염원에 의해 되살아나 영원히 살아가는 축복이자 저주를 받게 된다. 완전한 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도깨비 신부가 그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야 한다는 신탁을 받은 채.

 

'도깨비(사진출처:tvN)'

tvN <쓸쓸하고 찬란하-도깨비(이하 도깨비)>는 우리네 전설과 야담에 등장하는 도깨비라는 특이한 존재를 소재로 담았다. 신성성을 가진 존재로서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던 도깨비는 민담 형태로 구전되면서 인간적인 면면들이 깃든 존재로 그려져 왔다. 신앙의 대상인 신에서부터 인간에게 당하기도 하는 모습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그런 존재.

 

<도깨비>는 그래서 그 특이한 존재적 특성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고, 죽음을 뛰어넘어 불사하는 존재로서 그려졌으며, 서울의 한 복판에서 문 하나를 열고 캐나다의 거리로 나가는 공간적 한계도 뛰어넘는 존재이다. 드라마가 이런 주인공을 세운다는 건 그간 복작복작대던 드라마 특유의 이야기의 한계 또한 뛰어넘어야 함을 뜻한다.

 

<도깨비>는 그래서 동서를 뛰어넘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안았다. 사극에서부터 전형적인 신데렐라 구성의 가족이야기, 마치 <전설의 고향>을 현대식으로 해석한 듯한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이야기와 북유럽 하이랜더의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에 대한 판타지 장르까지 이 한 작품에 담겨졌다. 김은숙 작가 같은 베테랑이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 중심구도는 김은숙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가 자리했다. 도깨비 김신과 그에 의해 죽지 않고 태어나 자라게 된 지은탁(김고은)의 사랑이야기가 그것이다. 불사의 존재인 김신은 드라마 제목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쓸쓸하고 찬란한인물이다. 그가 바라는 지향점이 결국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쓸쓸하다. 그런 그가 귀신을 보는 것 때문에 왕따 당하는 지은탁이라는 소녀를 만난다. 스스로가 도깨비 신부라는 그녀는 스스럼없이 김신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다.

 

드라마는 인물의 욕망에 의해 굴러가기 마련이란 점에서 보면 도깨비라는 존재가 가진 무()에 대한 욕망은 인간적인 욕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현재의 시청자들의 욕망을 이끌어내는 존재는 지은탁이라는 소녀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김신이 특이하게도 그녀에게서 미래가 읽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던지고, 그녀가 다름 아닌 김신에 의해 되살려져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걸 확인해주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엄마와 그 죽기 직전 간절한 기도를 하라고 얘기해줬던 삼신할매(이엘), 그래서 도깨비에 의해 살 수 있게 되어 얹혀 지내며 구박 받는 신데렐라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 어찌 보면 절망적일 수 있는 청춘이지만 그녀에게도 어느 한 순간의 찬란한 빛처럼 신이 깃든다. 바다 앞에서 절망적인 그녀가 읊조리듯 소원을 비는 그 순간에 신과 조우하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민간 설화의 이야기를 통해 구전되며 만들어진 도깨비라는 존재는 어쩌면 당대의 힘겨웠던 민초들의 절망의 끝에서 기대게 되는 구복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깨비>가 가진 이야기는 단지 남녀 간의 판타지 멜로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에 억눌린 어떤 정서 같은 것들이 절망적인 순간 기대게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시간과 공간, 이승과 저승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 결국 그건 실체가 없는 판타지로서 쓸쓸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그 판타지가 누군가를 살아가게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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