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패러디를 패러디로 못볼까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 다소 문학적인 틀에 갇혀 있던 이러한 패러디의 고전적 의미는 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영상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기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표절과 헷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원본이 전면에 드러나느냐 아니냐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알다시피 패러디는 원본이 있다는 것을 수용자가 인지해야 가능한 기법이다. <짝>을 같은 서체로 <쨕>이라고 쓰고 그 형식을 가져오면 누구나 그것에서 <짝>이라는 원본을 떠올릴 수 있다. 따라서 패러디에서 원본은 늘 전면에 내세워진다. 반면 표절은 늘 원본을 숨긴다. 그저 가져다 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본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술을 펴는 것. 그것이 바로 표절이다.

 

아예 19금을 전면에 내세운 <SNL코리아>의 경우, 패러디는 빼놓을 수 없는 표현 기법 중 하나다. 하지만 이 <SNL코리아>의 패러디가 영 불편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최근 <짝>을 패러디한 <SNL코리아>의 <짝> 재소자 특집이 SBS로부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소송당한 데 이어, <여의도 텔레토비 리턴즈>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안건으로 오른 것.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은 국감장에서 “박근혜 후보로 등장하는 출연자가 욕을 많이 하고, 안철수 후보로 등장하는 출연자는 순하고 욕을 많이 안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이미지가 시청자들에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여의도 텔레토비>에 문제로 지목하는 것은 이 욕설과 관련한 ‘방송언어위반’ 및 ‘후보자 품위 손상’ 등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SNL코리아> 측은 “특정 후보를 비하, 비방, 폄하할 의도가 없다”며 “단순 정치 풍자”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패러디라는 것이 본래 그 기법 속에 권위에 대한 해체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 패러디의 대상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의도적인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의 목적이 정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실상 거기 등장하는 다른 후보들의 패러디 역시 비슷한 강도로 희화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텔레토비>의 목적은 예능의 목적, 즉 재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패러디가 만들어내는 권위 해체와 희화화는 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그 패러디 대상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 즉 그만큼 대중들의 정서와 문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몸 망가진들 무슨 상관이랴 하는 열린 자세를 거기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패러디는 그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그 권위를 인정받는 셈이 되기도 한다. 즉 전술한 대로 패러디는 원본을 전제하고, 그 원본이 드러나야 비로소 기능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잘 알고 있고 권위 있는 원본이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그 권위에도 차이는 있지만.

 

<SNL코리아>에서 ‘토론배틀’로 패러디 대상이 된 진중권은 패러디에 대처하는 좋은 예에 해당한다. 이 코너에서 진중건(진중권의 패러디)은 상대가 아이든 아줌마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논리를 들어 상대방을 깨는 모습을 보여준다(그래서 그의 닉네임도 ‘모두까기’다). 여기에 대해서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 ‘저 역은 원빈이 해야 하는데 섭외가 안 됐나 봐요’라는 글을 남겨 오히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패러디가 준 웃음에 웃음 하나를 덧붙인 셈이다.

 

패러디는 힘없는 서민들의 문화다. 권위 없고 힘없는 그들이 권위 있는 원본을 비틀고 풍자하는 것으로 어떤 자신들만의 새로운 재해석을 붙이는 그런 문화. 물론 어떤 패러디는 그 대상을 아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권위 있는 분들이 서민들을 위해 이 정도를 허용해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정치가 기꺼이 제 몸을 풍자와 패러디의 대상이 되어주어, 작게나마 힘겨운 서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진정 서민들에게 그만한 웃음을 준 적이나 있단 말인가.

유력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이 필요한 이유

 

박근혜와 문재인이 출연했을 때, <힐링캠프>는 마치 대선캠프나 된 것처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보통 6%에 머물던 시청률이 12%, 10%를 넘어섰다. 놀라운 수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대선 후보로 지목되던 박근혜는 그간 너무 침묵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그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대중들의 열망이 있었고, 문재인은 여기저기서 박근혜의 대항마로 지목되는 야권 후보였지만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 안철수는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대중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물론 <힐링캠프>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문재인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질문에도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낸 반면, 박근혜는 정치적인 질문에조차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힐링캠프>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정책비전을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니까. 이것은 이미 <무릎팍도사>를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사고 지지를 얻었던 안철수가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안철수는 당시 상식과 비상식을 설파하며 복지, 정의, 평화라는 3대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그의 정치적 소견과 비전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해소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박근혜, 문재인에 이어 안철수까지 연달아 출연한 <힐링캠프>는 다른 정치인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김문수 새누리당 경선 후보가 자신의 출연이 거부된 <힐링캠프>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것은 이제 방송출연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원하는 방송이 더 이상 <100분토론> 같은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토크쇼 같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

 

이유는 대중 정치의 시대에 대중들과의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들의 언어로 "새우와 고래가 누가 세냐"며 "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다"라는 식의 농담도 준비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자신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가 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일반인으로서의 소통일 뿐이다. 그 진솔한 태도는 물론 중요하겠지만 정치인의 소통이란 정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일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다. <힐링캠프>가 보여준 소통이란 어쩌면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소통하는 이미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그 힘이 지대하다는 것은 이들 세 인물이 향후 대선의 3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부터 중요한 건, 이들이 TV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좀 더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하는 자리다. 대선이 가까워오고 있고 TV만 켜면 여전히 대선후보들의 행보를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정작 이들이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최근 KBS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유력 대선 후보 3인의 순차토론을 준비해오다 무산됐다고 한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참석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박근혜 후보쪽은 세 후보의 토론 순서를 추첨으로 정하도록 한 KBS의 제안이 불공평하다며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 심기가 불편한 것은 이해할만 하다. 그것은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단일화 문제에 더 관심이 집중될 수도 있고, 3자 토론을 할 경우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KBS가 제안한 건 3명을 연달아 불러 진행하는 개별 토론이다. 결국 KBS는 박근혜 후보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공정성에 위배될 수 있다며 토론 자체를 취소해버렸다. 공영방송으로서 여당 후보의 눈치 보기를 했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대중들이 이제 40여일을 앞두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정치인으로서의 진면목을 보고 소통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그 어느 선거운동보다 뜨거운 것이 바로 TV토론이다. 그 날 그 날의 이슈에 대한 후보들의 정책 대결과 토론은 연일 TV를 통해 미국 전역에 보여지고 그로 인해 지지율이 등락하는 모습은 우리로서는 심지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TV라는 대중매체가 가진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쓸모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대체 우리네 후보들은 언제쯤 대중들에게 TV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비전을 보여줄 것인가. <힐링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족 얘기를 하거나, 뉴스를 통해 재래시장을 다니며 악수나 하는 그런 모습 말고 말이다.

<힐링캠프>는 대선캠프가 아니다

 

안철수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을 두고 여야 대선주자들이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거다. 하긴 긴장할만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후 8%대였던 지지율이 두 배 가까이 올랐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은 국민적 지지도에 있어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안 원장에게 차별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안 원장의 방송은 형평성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인 김문수 경기지사와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가 <힐링캠프> 출연을 타진했다가 거절당했던 사실은 형평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조 본부장은 "안 원장이 범야권에 속해 있으니 야권에서 2명이 나왔다면 여권에서도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 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쯤 되면 <힐링캠프>는 마치 대선캠프가 된 모양새다. 도대체 이 10% 시청률을 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그 무엇이 이토록 정치권을 들썩이게 만드는 걸까. <힐링캠프>가 그런 정치적인 상징성이라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일까. 언제부터 <힐링캠프>의 영향력이 이토록 커진 걸까.

 

<힐링캠프>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을 섭외했을 때 그 목적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게스트 풀을 발굴하는 차원이 더 큰 목적이었다. 예능이 웃음만을 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예능은 재미와 함께 의미와 감동도 찾는 시대가 아닌가. 토크쇼라고 늘 연예인만 나오라는 법은 없어졌다. 그래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두 사람 중 만일 한 사람이 출연하지 않는다면 둘 다 출연시키지 않겠다는 게 방침이었다고 하니, 정치인 게스트를 출연시키는 문제가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방송이 나온 후,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았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간 정치인하면 으레 생각했던 모습을 탈피해, 그저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자 국민적 지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에 대한 문의가 방송가에 점점 많아졌다. 실제로 <SNL코리아>에는 이재오 의원과 정세균 의원이 출연해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니 안철수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은 대선주자들에게는 공평하지 않다고 여겨졌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발표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안철수 원장은 이전에도 자주 방송 출연을 해왔던 터다. 그런 그가 방송에 나온다는 것이 왜 새삼스러울까. 안철수 원장은 이미 <무릎팍 도사>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다.

 

이것은 <힐링캠프>라는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시기가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그만큼 민감해진 문제다. 게다가 안철수 원장의 행보가 기존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애매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힐링캠프>는 예능이지 대선 방송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모두 <힐링캠프> 같은 예능에 출연한다고 해서 지지도가 올라갈 거라는 것은 착각이라는 점이다. 물론 유리한 지점은 있겠지만, 아마도 박근혜 의원이나 문재인 의원이 효과를 본 것은 그들이 방송 출연 이전부터 갖고 있던 대중 친화적 이미지(이것은 물론 이미지일 뿐이지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방송에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들도 미끄러지기도 하는 곳이 예능이라는 정글 아닌가.

 

다만 씁쓸한 것은 그간 대중친화적인 삶을 잘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이 대선이 가까이 오면서 너도 나도 예능에 줄을 대는 모습이다. 예능은 서민들의 여가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표밭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예능에 나와 친 서민적인 모습을 연출한다고 해도 거기에 진심이 묻어나지 않으면(이것은 평상시의 생활에서 묻어나기 마련이다) 대중들은 외면할 것이다. 대중들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생각하지 말자.


정치인의 예능출연 왜 많아질까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작년 '나는 꼼수다'가 보여준 건, 정치와 대중문화가 엮어졌을 때 어떤 파괴력이 생기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인과 언론인이 출연했지만 '나는 꼼수다'는 전형적인 대중문화의 형식과 틀을 유지했다. 이 재미의 차원이 갖는 힘은 정치가 늘상 드리우고 있던 무거운 엉덩이를 걷어 차버렸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식상해진) 내용이 아니라 그 태도와 형식이었다.

정치의 전선이 새롭게 꾸며졌다. 과거 보수와 혁신으로 나뉘던 정당 중심의 정치 전선은 극도의 혐오를 일으키는 정치꾼들의 집단과 정치 바깥에 서 있으나 대중들에게 깊은 소통과 공감을 주는 인물들로 나뉘어졌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철수 교수 같은 비정치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운동가들이 주목받은 건 그 때문이다. 이들이 친 대중문화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는 건 기성정치인들이 그동안 소홀해온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발등의 불'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힐링캠프'라는 예능 토크쇼에 나온 건 이런 의미다. 또 이 프로그램의 다음 출연자로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출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방송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작년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강용석 의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케이블 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고발 집착남으로 출연했다. 내용이 선정적이고 논란의 소지도 많지만 어쨌든 그는 방송에 고개를 내밀고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 또한 허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태도와 형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100분토론'이 아니라 '힐링캠프'에 출연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던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종종 있었다. 주로 '일밤'이나 '느낌표' 같은 공익형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홍준표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 같은 정치인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힐링캠프'는 이들 공익형 예능과는 확실히 다르다. 또 박근혜 위원장,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가진 무게감도 다르다. 이들은 차기 여권과 야권의 대선주자로 지목되는 인물들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연초의 예능 행보는 예사롭게 여겨진다.

이들이 예능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과거처럼 어떤 지도자적인 사회적 지침 같은 것이 아니다. 박근혜 위원장이 '힐링캠프'에 출연해 처음으로 한 말은 '공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재미없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었다. 즉 박근혜 위원장의 출연 목적은 무엇을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목적에 걸 맞는 재미를 주기 위함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새우와 고래가 누가 세냐"며 "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다"라는 준비해온 농담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의미보다는 재미를 먼저 던져줌으로써 대중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려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의 목적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나 지지를 호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중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제 대중들은 높은 위치에서 가르치려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거꾸로 대중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해주는 이를 심정적으로 지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달라진 정치 전선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보수 혁신으로 가름하던 정당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 다양한 공감할 사안들을 갖고 있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생명력과 같은 말이다.

한편 정치인들의 이러한 대중들과의 소통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 한편, 대중문화 역시 작년 말부터 지금껏 잘 다루지 않았던 시사, 정치 소재가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최효종을 중심으로 시사풍자 개그가 주목을 끌었고, tvN의 'SNL코리아'는 정치 사안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풍자를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방송 트렌드는 올해 치러질 총선, 대선과 맞물려 더 거세질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정치인들의 예능과의 결합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인이 그토록 원하는 '소통과 공감'이 방송 출연을 한다고 그저 얻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건 출연해서 어떻게 하느냐다. 소통과 공감이란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중대하고 진지한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르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와 안건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은 그 어떤 거대담론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거대한 틀을 바꿈으로써 그 틀에 일상을 꿰맞추던 시대는 갔다. 이제 작은 일상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변화해나갈 때 큰 것도 바뀌어질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닌가.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방송만큼 지금껏 갖고 있던 완고한 이미지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매체도 없다. 따라서 잘만 적응한다면 방송 출연은 어떤 선거 유세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방송에서의 가식적인 모습은 금세 들통 나기 마련이다. 진정성은 그래서 이제 방송인은 물론이고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진정성만이 대중들과의 진짜 소통과 공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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