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이름으로 아빠를 용서하겠습니다” 이환경 ‘7번방의 선물’

7번방의 선물

“정의의 이름으로 아빠를 용서하겠습니다.” 이환경 감독의 2013년도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성장해 변호사가 된 예승이(박신혜)는 모의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아빠 용구(류승룡)의 재심을 변론하며 그렇게 말한다. 유아 강간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으로 흉악범들이 수용된 7번방에 들어온 용구는 6살 지능의 딸바보다. 죄목만 보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인물이고 그래서 심지어 흉악범들조차 사람 취급을 안하지만, 용구의 지극한 딸 사랑을 옆에서 본 재소자들은(심지어 보안과장도) 그가 누명을 썼다는 걸 알게 된다. 감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웃음과 눈물의 롤러코스터로 기억되는 이 작품은 당시 무려 1천2백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래서 코미디와 휴먼드라마 정도로 기억되지만 이 작품이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정의에 대한 질문이다. 

 

딸을 잃은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은 경찰청장의 협박 때문에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고 사형당하게 된 용구는 어린 예승과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절규한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미안해요.” 그런데 이 절규는 울림이 크다. 잘못한 게 없고 죽을 죄를 짓지도 않았으며 미안해할 필요도 없는 이가 구하는 용서가 담겨 있어서다. 그저 딸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는 죄에도 용서를 구할만큼 절절하다. 이 장면은 감정을 파고들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진짜 잘못한 이들과 죽을 죄를 지은 자들과 미안해야 하는 이들, 즉 용서를 구할 이들은 따로 있지 않냐고.

 

잘못하고도 진실을 부정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건 용구처럼 죄없는 이들을 고통 속에 가두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잘못한 게 있다면 서둘러 용서를 구할 일이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승리하기 마련이니.(글:동아일보, 사진:영화'7번방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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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판사’의 박신혜, 러블리한 악마 캐릭터의 탄생

지옥에서 온 판사

“이게 진짜 재판이야.” SBS 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강빛나(박신혜)는 지옥에 가는 게 마땅한 가해자들을 처단하며 그렇게 말한다. 그는 지옥에서 온 악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한 판사 강빛나의 몸으로 들어왔다. 지옥의 총책임자인 악마 바엘(신성록)에 의해 인간세상으로 보내졌고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이 내려졌다. 세계관 설정부터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지옥에 악마에 판사라니.

 

하지만 그런 이유로 지상에 내려와 판사로서 활동하게 된 악마 강빛나가 벌이는 가해자 처단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 이유는 가해자들이 너무나 잔혹한데 그들이 저지른 벌에 비해 처벌이 솜방망이인 현실 때문이다. 첫 번째 가해자로 등장한 인물은 심각한 교제 폭력을 저지르고도 300만 원의 벌금형만 받고 나와 또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끔찍한 폭행을 저지른 자다. 강빛나는 그에게 나타나 그가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대로 고스란히 당하며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결국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게 되면 “그럼 죽어”라며 지옥으로 보낸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둘이나 살해한 후에도 아이까지 상습적으로 학대해온 범죄자나 일가족을 살해한 범죄자 같은 끔찍한 사건들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가해자들을 시원하게 처단하는 악마 판사의 모습이 보여주는 카타르시스에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악마가 하는 처단이라 그런지, 판타지가 섞여 있지만 그래도 잔혹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잔혹함이 자칫 지나친 폭력성과 자극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장본인이 바로 박신혜다. 그는 ‘러블리’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배우이니 말이다. ‘천국의 계단’에서 여주인공인 한정서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박신혜는 그 후에도 주말드라마 ‘깍두기’, ‘미남이시네요’, ‘넌 내게 반했어’, ‘상속자들’, ‘피노키오’, ‘닥터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리고 최근에 방영된 ‘닥터 슬럼프’까지 러블리한 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러블리한 아우라의 원천은 건강한 에너지다. 과거 드라마 ‘닥터스’를 함께 했던 고 김영애 선생님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신혜에 대해 한 말이 그 단서를 알려준다. “신혜는 발이 땅을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아요. 땅을 튼튼하게 짚고 서 있는 참 밝고 건강한 아이. 이쪽 일하다 보면 땅에서 붕 떠 있는 아이들이 많은데 신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고, 좋은 여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함께 호흡 맞추는 게 예뻤어요.”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은 건강함에서 나오는 러블리함. 그런데 그 러블리함은 지옥에서 온 판사 같은 하늘에 붕붕 띄워진 캐릭터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눈빛이 악마로 변할 때는 섬뜩한 면을 주지만, 그 처단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천진한 아이 같은 깨발랄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 건강하고 발랄한 러블리한 면모들이 있어 자칫 과도한 잔혹함으로 흐를 수 있는 장면들이 중화된다. 박신혜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신혜는 애초부터 이 길을 꿈꿨던 배우가 아니다. 그의 데뷔 과정을 보면 독특한 면이 있는데, 잘 알려진 이승환과의 인연이 그것이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다니던 교회에 이승환 팬이니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박신혜의 사진을 당시 이승환이 운영하는 회사 드림팩토리 클럽(지금은 이승환 1인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에서 공고한 뮤직비디오 배우 오디션에 보낸 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지만 다음 앨범인 이승환의 ‘꽃’ 뮤직비디오에 발탁됐다. 그래서 박신혜의 본래 꿈은 가수였지만 노래를 표현하기 위해 연기수업을 받던 중 배우가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천국의 계단’의 아역오디션을 보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오게 됐다. 당시 이승환의 드림팩토리가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되면서 박신혜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게 됐지만 그 때의 경험들은 아마도 밴드 이야기를 소재로 담은 ‘미남이시네요’에서도 좋은 자양분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박신혜가 남장여자 고미남 캐릭터로 나온 이 작품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정용화와 ‘넌 내게 반했어’를 이어서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남장여자 캐릭터로서 남자들 사이에서 털털한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박신혜의 특유의 건강한 러블리함으로 그들 사이에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을 하면서 그는 드디어 ‘한류퀸’으로서 떠올랐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아시아권까지 월드투어 팬미팅을 한 첫 국내 여자 배우가 됐다. 

 

이제 겨우 30대지만 10대부터 연기를 해온 박신혜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할들을 소화했다. 멜로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피노키오’나 ‘닥터스’처럼 전문직 장르물도 소화했고, 게임과 현실이 오버랩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실제 전직 기타리스트인 호스텔 주인과 게임 속 신비로운 NPC 캐릭터 엠마의 1인2역을 연기했다. 어려서부터 무용이나 서핑 같은 다양한 스포츠를 해왔던 그는 액션 연기도 잘 소화해 ‘#살아있다’ 같은 좀비 영화나 ‘콜’ 같은 액션이 많은 스릴러, ‘시지프스:the myth’ 같은 SF 판타지에서도 이물감 없는 연기를 펼쳤다. 

 

‘지옥에서 온 판사’가 큰 인기를 끄는 건 이 작품의 강빛나 캐릭터가 가진 전복적인 요소들이 그 자체로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범죄물에서 여성들이 피해자로 등장하고 심지어 그 피해자가 당한 범죄의 판결도 주로 남성 판사들이 함으로써 억울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성별 구도를 뒤집어 놨다. 여성이 늘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가 아닌 처단자의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이 인물 자체의 매력도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박신혜가 가진 특유의 건강함이 주는 매력이 더해짐으로써 악마조차 발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변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고 김영애 선생님이 표현한 것처럼 그 건강함은 허공으로 붕붕 띄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건강함, 이건 박신혜만이 아닌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글:국방일보, 사진:SBS)

‘닥터 슬럼프’,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주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닥터 슬럼프

“아유 니가 애면 좋겠다. 목마나 한번 태워주고 저 문방구 가 가지고 문제집이나 몇 권 사 주고 이라믄 입이 귀에 걸렸는데. 그 때야 니 기분 풀어 주는 거 쉬웠지. 아휴 지금은 우째야 니 기분 풀리는지도 모르겠고.. 이 삼촌이 해줄 게 없어 가지고 여가 애리.”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슬럼프>에서 태선(현봉식)은 울적해하는 조카 하늘(박신혜)의 울적해진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 하지만 뭘 해줘야 할지 또 자신이 뭘 해줄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털어 놓는다. 

 

“니 병원 그만 두고 삼촌이 몇 번이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왜 그만뒀니, 응? 뭣이 그래 힘들었는가, 아니 뭐 우리가 도와줄 건 없는가 해가. 이 삼촌이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니한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니가 기댈 어깨를 내 주는 거뿌이 더 있겠나. 근데 또 니가 뭣이 모자라 가지고 이 보잘 것 없는 삼촌 어깨에 기대겠노.” 

 

해줄 게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지만 태선의 그 말에 하늘의 울적했던 마음은 한껏 누그러진다. 태선은 일부러 옥상에 심어진 양배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늘의 엄마 월선(장혜진)이 바로 갖다 심은 거라며, “느그 엄마가 이래 양배추 갖다 심는 거 말고는 니한테 해 줄 게 뭐 있겠냐”고 그 마음을 에둘러 전한다. 마침 선 자리라는 걸 속인 엄마 때문에 그 자리에 나갔다 봉변을 당하고 돌아와 엄마에게 “내가 창피하냐”고 쏘아댔던 하늘에게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과연 우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뭘까. 그건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는 그런 능력만이 아니고, 그저 힘들 때 옆에서 바라봐주고 어깨를 내주고 토닥여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닥터 슬럼프>가 태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무나 평범해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하지만, 바로 그 해주고 싶은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버텨내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걸 태선은 보여준다. 

 

태선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건 그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민경민(오동민) 같은 인물과의 대비 때문이다. 처음 마취과에 와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하늘을 선배로 다가와 도와주며 든든한 기댈 어깨처럼 보였던 그는 사실 거짓으로 속이고 하늘을 이용하기만 하다 버린 인물이었다. 해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은 힘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오히려 거짓으로 이용만 하려 하고 그래서 더 큰 배신감을 안기기도 하는 냉혹한 현실을 이 인물은 표상한다. 

 

태선과 경민의 대비가 보여주듯이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해주고픈 마음이다. 마음 없는 능력은 이용하는 것으로 상대를 더 무너뜨릴 수 있는 반면, 능력이 없어도 진실된 마음은 그 따뜻함만으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그리고 이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1등을 받은 성적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늘 한결같은 월선 같은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공부하느라 아버지가 죽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졌던 하늘에게 월선은 말한다. “하늘아 괘않다. 죄책감 내리 놔라.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니 아빠여서 행복했다더라. 우리는 진짜 니 부모라서 억수로 행복했다.” 

 

<닥터 슬럼프>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고 그래서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진 않는다고 정우와 하늘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들이 갖게 된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마음의 병은 그 성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넘어졌을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 역시 그런 대단한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어도 서로를 걱정해 기댈 어깨를 내주는 그런 마음을 통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태선이나 월선 같은 늘 가까이 있어 당연한 듯 여겼던 사람들이 진짜 기댈 어깨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정우가 성형외과 의사이고 하늘이 마취과 의사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부분에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하늘이 하려고 했던 마취과 의사는 어찌 보면 수술을 하는 의사의 든든한 기댈 어깨 같은 존재였을 테니 말이다. 외상후 스테레스 장애로 수술방에서 공황을 겪는 정우 옆에 마취과 의사로 나타난 하늘의 존재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기에는 하늘의 능력만이 아닌 마음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JTBC)

‘닥터슬럼프’, 자존감 바닥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멜로

닥터 슬럼프

“너 잘못 산 적 없어. 네 잘못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보다 위로와 응원은 아니었을까. 정우(박형식)가 하늘(박신혜)에게 건네는 말은 갈수록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말 같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슬럼프>가 건드리는 감정의 실체도 바로 그것일 게다. 겉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있지만 속은 밑바닥에 떨어져 울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드라마는 말한다. 네 잘못 아니라고. 

 

멜로드라마가 사랑 타령에 머무는 것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멀어진 건 그것이 현실과 너무나 유리되어 있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멜로는 별로’라는 이야기가 나올 즈음, 멜로드라마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뒷면을 들여다보면 현실에 지쳐 힘겨워 하는 우리들에 대한 응원과 위로의 목소리들이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닥터슬럼프>의 전작이었던 <웰컴투삼달리>를 떠올려 보라. 그 멜로드라마는 조삼달(신혜선)과 조용필(지창욱)의 멜로를 그렸지만, 드라마를 가득 채운 건 누명을 쓰고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제주도 삼달리로 내려온 조삼달이 변함없는 고향 같은 따뜻함을 지닌 조용필과 삼달리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을 받고 회복해가는 이야기였다. 

 

tvN에서 방영됐던 <무인도의 디바>는 어떤가. 그 드라마 역시 목하(박은빈)와 기호(채종협)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 안을 가득 채운 건 가정폭력 피해자 혹은 세상이 소외시킨 이들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었다. 목하의 노래와 사랑이 특히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건 거기서 무인도 같은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져서다. 

 

<닥터슬럼프>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노력해 성공했고 유명해졌지만 의료사고가 터지면서 억울하게 그 사고의 책임까지 떠안고 모든 걸 잃게 된 정우에게 술에 취한 하늘이 “누명”이라고 말해주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그에 대해서도 “너가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나쁜 짓하고 뻔뻔하게 우길 놈은 아니니까”라고 말해주는 대목에서도 우리의 가슴은 촉촉해진다. 잘 나갈 땐 모두가 친구처럼 다가오지만, 한번 미끄러지면 모두가 등돌리는 현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마주하던가.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변치않는 마음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건 각종 갑질들을 견디다 못해 선배를 들이받고 병원을 나오게 된 하늘이, 그 사실 때문에 어떤 병원에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자 “잘못 산 것 같다”고 말하자 “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정우의 대사에서도 느껴진다. 어려움에 봉착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어딘가 내가 잘못 산 거 같다고 여기곤 하지만, 그럴 때 잘못된 건 네가 아니라 비틀어진 현실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가. 

 

<닥터슬럼프>와 더불어 최근의 멜로드라마들의 경향을 들여다 보면, 확실히 사랑보다 우리가 더 원하는 건 위로와 응원인 것 같다. 저마다의 이유로 인생 슬럼프에 빠져버린 정우와 하늘이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울며 때론 무너지는 그 서로의 어깨를 지지해주고,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하는 하소연들을 들어주는 장면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설레고 흡족해지니 말이다. 물론 그 위로와 응원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할 테지만.(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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