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이방인>, 권력에 미친 남한, 막연한 괴물 북한

 

이 드라마 참 낯설다. <닥터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주는 복합 장르적 뉘앙스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은 의학드라마와 남북 관계를 엮은 스파이 장르물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장르의 혼재는 이제 대중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닥터 이방인(사진출처:SBS)'

문제는 이 드라마가 드러내고 있는 남한과 북한에 대한 낯선 시선이다. <닥터 이방인>은 명우대 병원이라는 공간을 폐쇄적으로 다룬다. 드라마는 이 명우대 병원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병원이 수상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던 병원과 사뭇 다르고, 또 의학드라마가 보여주던 병원과도 다르다.

 

어찌된 일인지 이 병원에서 환자들은 총리(사실은 대통령)를 수술할 팀을 뽑기 위한 테스트용으로 수술대 위에 눕혀진다. 박훈(이종석)이 이끄는 팀과 한재준(박해진)이 이끄는 팀은 끝없는 수술대결을 벌인다. 총리 수술 팀을 뽑기 위한 그 수술에서 환자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환자 가족들의 반발과 고마움이 표현되지만 그것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수술대결의 연장처럼 보여진다.

 

물론 이러한 수술대결이 과거 의학드라마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하얀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이라는 외과의사는 마치 예술작업을 하듯 수술을 한다. 또 외국에서 온 노민국(차인표)과 수술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이 미학화된 수술은 인간을 예술의 소재로 만들어내는 불편함을 연출한다. 결국 <하얀거탑>의 이야기는 이 욕망덩어리의 문제적 인간 장준혁의 몰락을 다루었다.

 

하지만 <닥터 이방인>에서 수술 대결을 벌이는 박훈과 한재준의 이야기가 이러한 문제적 인간을 다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비인간적인 수술대결에 대해 북에서 온 의사 박훈이 수술대결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메시지를 담는다. 즉 돈과 권력욕에 눈먼 남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박훈이라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명우대 병원은 우리사회를 상징하는 폐쇄적 공간이 된다.

 

총리가 대통령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국정을 제 손아귀에 쥐기 위해 북한과 손잡고 특별한 수술 팀을 꾸린다는 <닥터 이방인>의 설정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그런 수술팀을 꾸리기 위해 한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대결을 벌이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즉 이 드라마는 본격 의학드라마가 아니다. 다만 명우대 병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끄집어내는 사회극에 가깝다.

 

이처럼 <닥터 이방인>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이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이 마치 실험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고 권력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자본과 권력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극화해 병원 수술대마저 경합의 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는 낯설음을 넘어서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다루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김대중 정권 이후에 <쉬리><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같은 남북한의 화해를 다루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북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막연한 살상용 무기처럼 그려지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용의자> 같은 영화를 보라. 남파 공작원이나 탈북자는 무시무시한 살인기술을 가진 존재들로 다뤄진다.

 

흥미로운 건 이 살인기술자(?)들이 남한에서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활약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로서의 북한 이미지를 가져와 해소시키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다. 남한으로 들어온 이 북한의 슈퍼히어로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비리들을 해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것은 <닥터 이방인>도 마찬가지다. 박훈이라는 이방인은 초인적인 외과수술 능력으로 우리사회의 병폐들에 메스를 대는 슈퍼히어로다.

 

<닥터 이방인>이 담아내는 남북한의 이미지는 양측이 모두 낯설다. 남한은 권력에 미쳐 병원의 환자들마저 도구화하고 수단화하는 비정한 공간이고, 북한은 막연한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괴물과 슈퍼히어로를 양산하는 공간이다. 물론 이 극화된 이야기가 남북으로 갈라진 불안한 우리 사회가 가진 두려움과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극화되다 보면 그 자체로 등장인물조차 메시지를 위한 도구가 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닥터 이방인>의 낯설음은 그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도한 극화가 인물들을 도구화하는 듯한 불편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마치 박훈이 이건 수술대결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강변하면서도 결국은 그 수술대결의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서영이>, 최윤영과 박정아 주조연이 바뀌었나

 

<내 딸 서영이>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호정(최윤영)이다. 상우(박해진)가 본래 진지하게 사귀었던 인물이 호정이 아니라 미경(박정아)이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갑작스런 변화는 당혹스러울 정도다. 한 회 분의 방송분량으로만 비교해 봐도 호정과 미경이란 캐릭터는 이제 주조연이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우와 사귀던 시절만 해도 미경의 분량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호정은 그저 한 때 스쳐 지나는 한 조연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미경의 존재감을 거의 지워버릴 만큼 그 방송분량이 많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딸 서영이'(사진출처:KBS)

물론 사랑과 결혼이라는 것이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개연성이라는 것을 따라야 하는 게 사실이다. 상우와 미경은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고,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상우의 누이가 미경의 오빠인 우재(이상윤)와 거짓 결혼을 했다는 사실뿐이다. 누이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지는 결심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상우가 호정과 결혼까지 하는 건 과하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미경은 아무런 죄도 없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인물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그렇게 결혼한 상우가 미경을 쉽게 잊어버리고 호정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 역시 그 진정성에 의심을 가게 만든다. 과연 상우는 호정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 없는 결혼이지만 호정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그저 받아주고만 있는 것일까. 아니 상우는 벌써 미경을 잊어버린 것일까. 어느 쪽으로 봐도 상우와 미경 그리고 호정은 엇나간 관계 속에서 시작한 불행한 인물들일 수밖에 없다. 상우는 본래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하지 못했고, 호정은 결혼은 했으나 사랑을 얻지는 못했으며, 미경은 사랑했던 이를 다른 이에게 빼앗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새롭게 상우와 호정 커플이 주목을 받는 것은. 여기에는 약간의 착시현상이 들어가 있다. 즉 호정이 남편인 상우와 시아버지인 이삼재(천호진)에게 너무 잘한다는 점이다. 시아버지에게 깍듯이 대하고 상우에게 사랑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호정이 부모 세대들에게는 흐뭇함을 안겨줄 수 있다. 며느리로서 호정은 부모 세대들에게 판타지적인 존재다.

 

여기에 최근 들어 <내 딸 서영이>에서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는 비밀들로 끊임없이 멘탈붕괴에 이르는 인물들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알콩달콩함을 보여주는 커플이 상우와 호정이다. 우재의 가족은 강성재(이정신)의 출생의 비밀이 터진 후 곧바로 서영이의 비밀도 폭로되면서 거의 붕괴직전의 가족을 보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러니 이 극적인 긴장감 속에서 그 긴장을 풀어주는 커플로서 상우와 호정이 유일하게 돋보이게 되는 셈이다.

 

물론 호정 같은 인물은 결혼이 반드시 사랑을 전제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캐릭터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과거 세대들에게 이 이야기는 공감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우와 호정 커플이 급진전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미경의 캐릭터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라면 그 아무 죄도 없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미경의 상황을 좀 더 납득되게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작가가 갖고 있는 고민이 묻어난다. 미경이란 캐릭터를 다시 집중하게 되면 그 피해자라는 존재 자체가 자칫 서영이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한 것도 모자라, 동생의 사랑까지 뒤틀어버린(물론 그건 그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지라도) 서영이는 어쩌면 용서받지 못할 인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를 극적으로 몰다 보니 너무 많은 일들이 겹쳐져버렸다. 이제 서영이가 모든 비밀을 털어내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지만, 너무 멀리 간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캐릭터들은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있다. 결국 서영이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이들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모습을 자꾸만 보여주는 건,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래의 주조연이 바뀌어버리는 것은 너무 과한 의도가 아닐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