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박창훈 PD가 보여준 각자 삶의 소중함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유재석처럼 살 것인가, 박명수처럼 살 것인가. 자타공인 1인자로 모두의 사랑을 받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야하는 유재석의 삶. 반면 2인자지만 자기 하고픈 대로 마음껏 하며 살아가는 박명수의 삶. <무한도전>은 과거 바보전쟁특집에서 살짝 나왔던 이 화두를 일종의 실험 카메라를 통해 보여줬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너무나 다른 아침 출근 길. 유재석이 거의 인사로봇처럼 행인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사진을 같이 찍어도 되냐는 요청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며 출근하는 반면, 박명수는 캐릭터 그대로 호통과 버럭을 반복하며 출근한다. 두 사람의 삶은 이토록 다르다. 그래서 유재석이 음식점에서 티슈를 세 개 쓰면 낭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반면, 박명수는 뭘 해도 그러려니 한다.

 

사실 유재석처럼 살 것인가 박명수처럼 살 것인가 하는 주제는 너무 자화자찬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볼 수 있는 것으로서 보편성 또한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특집을 준비했다는 걸 <무한도전>은 사전에 명확히 했다.

 

흥미로웠던 건 <능력자들>의 박창훈 PD를 일종의 박명수 아바타로 세워 MBC 예능 부국장인 권석 PD와 마주하게 한 장면이었다. 워낙 소심하고 선해 보이는 박창훈 PD는 박명수의 지시가 너무나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억지로 수행하려 노력했고, 그래서 권석 PD에게 반말을 하기도 하고 그가 건넨 사탕을 집어던지기도 하며 또 무릎 위에 앉기도 하는 등의 모습으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 웃음은 박창훈 PD와 박명수라는 캐릭터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다. 박명수는 독하게 선배 PD 앞에서 박창훈 PD를 몰아세웠고, PD 역시 그게 하나의 미션이기 때문에 수행을 하기는 했지만 그게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호통을 쳐도 호통 같이 느껴지지 않고, 반말을 던질 때도 어딘가 미안함과 죄송함이 가득한 박 PD의 얼굴에서 빵 터질 수밖에 없었던 것.

 

미션은 유재석 vs 박명수로 살아보기였지만 오히려 여기서 주목받은 건 그렇게 타인의 흉내를 미션으로 부여받아도 자신의 성정을 숨길 수 없는 박창훈 PD, 그런 짓궂은 미션에도 그걸 척척 잘 받아주는 권석 부국장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박창훈 PD와 권석 부국장에 대한 칭찬이 쏟아져 나온 건 그래서다. 결국 아바타 미션으로 타인의 삶을 흉내 내는 걸 해봤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드러난 건 그 자신의 삶의 방식이었다. 조금 어눌하고 어색해 보이지만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 만면에 드리우고 타인을 대하는 그 모습. 그리고 그런 일종의 짓궂을 수 있는 상황극 속에서 회사의 지위 고하를 넘어서 마치 동생처럼 부하직원을 잘 받아주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무한도전>이 이번 유재석 vs 박명수로 살아보기미션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일 게다. 타인의 삶이 항상 나아 보이고 좋아 보여도 결국은 각자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는 것. 박창훈 PD의 서글서글한 미소는 그걸 증명해주었다.

무례할 수 있는 멘트가 웃음이 될 수 있는 전제

 

김흥국은 이른바 예능 치트키(cheat key : 게임에서 제작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키)라고 불린다. 이른바 들이대는 것이 그의 예능 방식인지라 그런 별칭을 스스로 거리낌 없이 방송에서 자랑하듯 늘어놓기도 한다. 과거 <세바퀴>에서 조세호에게 던진 한 마디가 그를 다시금 예능의 대세로 만들었다. “왜 안재욱 결혼식 안 왔냐?”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그것 하나로.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물론 김흥국은 <라디오스타><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와서도 특유의 뜬금없는 이야기들로 의외의 재미요소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것이 재미있었던 건 다름 아닌 예능에 고정화된 어떤 틀을 그의 맥락 없이 들이대는 말들이 깨뜨리는 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크쇼처럼 어느 정도 양식화되어 주고받는 말들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흥국 같은 룰 브레이커는 그래서 분명 기능하는 면이 있다.

 

김흥국의 이런 이야기 방식은 하지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과거 주병진, 노사연과 함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김흥국은 비슷한 방식으로 즉각적이고 순발력 높은 웃음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본과는 상관없는 뜬금없는 농담들을 통해 웃음을 주었다. 그러니 세월이 25년 넘게 흘렀어도 김흥국은 여전히 같은 코드를 구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하필 최근 들어 김흥국이 예능 치트키로까지 불리게 된 건 어쩌면 그 원인을 현재의 예능 트렌드에서 찾아보는 게 맞을 것이다. 토크쇼가 점점 사라져가고 대신 리얼한 상황극이나 아예 리얼리티쇼가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는 요즘,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지는 김흥국의 공격적인 말들이 주목받게 된 건 그 달라진 시대가 한 몫하고 있다는 걸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김흥국의 이른바 들이대는 멘트는 자칫 잘못 들으면 상당히 무례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를 대세로 만든 왜 안재욱 결혼식 안 왔냐?”하는 뜬금없는 공격성 멘트는 그걸 조세호가 받았기 때문에 웃음으로 전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세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동료의 경조사조차 잘 찾아다니지 않는 사람으로 갑자기 매도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김흥국의 들이댐으로 비롯해 일파만파 유행으로 번진 조세호 놀이에는 숨겨져 있는 가학피학이 있다. 슬랩스틱은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웃음으로 바꾼다. 물론 그것이 심각한 고통이라면 희극이 아닌 비극이 되겠지만. ‘조세호 놀이역시 마찬가지다. 공격적인 질문을 억울한 표정이 웃음의 코드가 되어있는 조세호가 받아줌으로써 웃음이 될 수 있었다.

 

즉 김흥국이 스스로 대세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사실 조세호처럼 받아주는 인물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조세호 없이 하는 다른 방송들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있다. 한편에는 여전히 예능 치트키라는 상찬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뜬금없는 공격적인 말들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부분은 현재 주가를 한껏 올리고 있는 김흥국이 염두에 둬야 하는 사안이다. 뜬금없는 말을 툭툭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받아주는 타인에 대한 배려 또한 따라주지 않는다면 자칫 무례한 이미지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온전히 웃음이 될 수 있으려면 타인도 진정으로 같이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위키드>가 떠올린 오디션 프로그램의 배려

 

어쩌다 우리는 경쟁을 당연한 현실로만 받아들이며 살게 된 걸까. TV만 켜면 여기 저기 쏟아져 나오는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걸 그룹이 되기 위한 <프로듀스101> 같은 오디션이 있는가 하면 힙합 뮤지션들의 <쇼 미 더 머니> 같은 오디션도 있다. 대형 기획사들이 참여하는 <K팝스타>는 시즌5가 진행 중이고 이 밖에도 <듀엣가요제>, <신의 목소리>, <복면가왕> 등등. 이제 경쟁 없이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위키드(사진출처:Mnet)'

물론 프로그램마다 성격은 다 다르다. 경쟁이라고 하지만 <복면가왕>은 다양한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장치로서 복면을 씌우고, <듀엣가요제><신의 목소리>는 기성가수들과 함께 아마추어들이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성격이 다르다고 해도 그 기반이 경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창력 경쟁을 벌이는 음악 오디션은 그래서 고음이 얼마나 올라가고 목청이 얼마 좋은가 같은 가창력만이 음악의 전부인 양 보여주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음악이 어디 그런가. 조용히 읊조리기만 해도 때론 깊은 감동을 주는 게 음악이 아니던가.

 

아마도 음악 프로그램들의 이런 경쟁 일변도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늘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온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경쟁 없는 무언가를 밋밋하게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현실 때문이었을까. Mnet의 동요 대전 <위키드>는 거꾸로 우리의 이런 경쟁적인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이들이고, 동요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제 아무리 오디션 형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의 그 순수함 앞에 심사위원도 또 이들을 이끄는 선생님들도 하다못해 무대 밑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조차 늘 배려하는 마음이 앞섰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서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부모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한없이 귀엽고 예뻐 보였다.

 

경쟁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다르고 또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며 좋은가를 찾아내기 위한 무대들의 연속. 하랑이의 랩은 그 나이 때의 감성을 머금고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들었고 제주소년 연준이가 <고향의 봄>을 끝까지 혼자 부르고 눈물을 쏟아냈을 때 우리 모두는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시연이의 앙증맞은 윙크에는 누구나 마음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경연의 끝. 세 팀은 모두 공평하게 상을 나눠 가졌다. 레전드 동요상, 베스트 하모니상, 창작동요상. 사실 누가 이기느냐 하는 건 이미 프로그램 중도부터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김용범 PD는 우승자를 한 팀만 뽑는 룰을 없애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연이라는 경쟁 시스템이 필요한 건 출연자들의 간절함을 쥐어 짜내기 위한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모두들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무대에 임하고 있으니 말이다.

 

<위키드>에는 경쟁은 없고 배려가 넘쳤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잘 생각해보라. 이 프로그램을 보며 알 수 없는 먹먹함 같은 것이 어쩌면 그 경쟁은 없고 배려가 넘치는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는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경쟁 따위는 지워버리고도 기꺼이 거기 아이들의 목소리에 몰입할 수 있었다.

 

왜 우리들은 이들처럼 배려할 수 없을까. 무수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경쟁이라는 현실을 내세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소리를 지르고 모욕을 주고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 다음에 이런 얘길 한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거야.” 꼭 이래야 할까. 오디션 프로그램도 그렇지만 우리 사는 현실도 꼭 이래야 잘 살 수 있는 걸까. <위키드>처럼 배려해서는 어려운 걸까. 과연?

<런닝맨>, 이토록 놀라운 유재석의 게스트 대응이라니

 

만일 유재석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 <런닝맨> ‘100100 레이스는 액션배우, 프로레슬러, 씨름선수, 유도선수, 태권도단 이렇게 다섯 부류 각 20명씩 총 100명과 <런닝맨> 출연자들이 즉석에서 93명을 섭외해 구성한 총 100명이 대결을 벌이는 아이템을 시도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기획은 실로 창대했다. 각 인물군들이 20명씩 등장해 저마다 강력한 액션을 선보이고 그걸 본 <런닝맨> 출연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심지어 경악하는 모습은 이 날의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대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곧 이 아이템이 가진 무리한 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런닝맨> 출연자들이 스스로 섭외해 속속 모여드는 그 많은 게스트들을 콘트롤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 당연한 일이지만 게스트는 한 명만 나와도 그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 스무 명이 차례차례 모이고 그 후에 계속 게스트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50명 가까운 인원이 채워지자 <런닝맨> 출연자들은 한없이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사적인 친분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방송에 나오는 시간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어떤 인물은 잠깐 얼굴을 비춘 후 병풍이 되어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유느님이 있었다. 유재석은 재차 모여 준 게스트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짧아도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단 몇 초 몇 분에 불과한 대화지만 그 속에서도 게스트들의 캐릭터 하나하나를 유재석이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배가 있는 장정구 같은 전 챔피언을 살뜰히 챙기는 건 물론이고 힙합 느낌이지만 의외로 트로트를 부르는 마아성 같은 예능 새얼굴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하하가 초대한 홍대 피플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김광규에게는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웃음을 주었다.

 

물론 난점은 계속 생겼다. 새로 온 게스트들을 소개하고 있자면 처음에 일찍 왔던 게스트들이 잊혀지게 됐던 것. 유재석은 그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처음에 왔던 유이가 뒤쪽 구석에 앉아 있는 걸 굳이 거론하고, 새로 온 게스트들이 웃음을 줄 때면 뒤쪽에 앉은 게스트들 역시 즐거워하신다며 그 분위기에 동참시켰다.

 

그러면서도 유재석은 게스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단속하는 모습으로도 웃음을 주었다. 중간에 게스트가 화장실에 가 자리가 빠져있는 걸 발견하고는 <런닝맨> 출연자들에게 감시를 시켰던 것. 물론 그건 웃음을 주기 위한 멘트였지만 아마도 게스트들은 거기 담긴 유재석의 양해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무리한 아이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재석이 있어 그 무리한 아이템이 지금껏 보지 못한 놀라운 진풍경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미 토크쇼 등에서 출연한 게스트들을 살뜰히 배려하고 캐릭터를 잡아내는 능력을 발휘해왔던 유재석이었지만 그가 이 정도의 능력자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러니 모두가 기꺼이 유재석의 게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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