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 배종옥, 드라마를 살리는 독특한 악역의 힘

 

MBN 수목드라마 <우아한 가>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부감으로 보여지는 거대한 MC 가문의 풍경은 겉보기에 우아해 보인다. 화려하고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으며 준비되어 있는 곳.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 가문이 ‘우아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드라마 시작부터 신호무시하고 도심에서 차를 질주하는 모완수(이규한)가 그 집안의 장남이고, 사람보기를 벌레 보듯 하는 특권의식에 쩔어있는 모완준(김진우)이 그 집안의 차남이다. 게다가 이제 열 네 살인 이 집의 막내 모서진(전진서)은 모철희(정원중) 회장의 내연녀였던 연예인 최나리(오승은)가 낳은 아들이다.

 

모철희는 첫 번째 아내인 모석희(임수향)의 엄마 안재림(박혜나)이 사망하고 아버지인 모왕표(전국환)가 교통사고로 눕게 되자 두 번째 아내인 하영서(문희경)와 MC 가문을 장악한 인물이다. 안재림이 사망하고 모왕표가 교통사고로 눕게 되자 모석희는 해외로 쫓겨간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사실 MC 그룹의 ‘오너리스크 관리팀’을 운영하고 있는 한제국(배종옥)의 기획에서 나온 것이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부분은 바로 이 한제국이라는 독특한 악역 덕분이다. <우아한 가>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전혀 우아하지 않은 재벌가의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다룬다. 하지만 그 사건사고들이 묻히거나 덮여지는 건 바로 이 한제국이 운영하고 있는 TOP팀 덕분이다. TOP팀은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팀으로 전직 국정원, 검찰, 언론사, 군 출신 인물들을 판사 출신이었던 한제국이 이끈다.

 

대쪽 같던 판사였지만 한제국이 MC 그룹으로 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오너리스크를 관리하고 때로는 무고한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희생시키기도 하는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그 능력을 자본과 권력을 위해 쓸 때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한제국이라는 인물은 그저 재벌가의 명령에 따라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던 차원을 넘어서 점점 ‘킹 메이커’로서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실상 MC 그룹을 뒤에서 배후 조종하는 인물이 된다. 모철희가 회장으로 있지만 같은 층에 자신의 사무실을 차려놓고 있는 한제국은 그래서 이름처럼 하나의 자신만의 제국을 만든다.

 

<우아한 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재벌가의 추악한 민낯을 꺼내놓는 통렬함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정보와 돈을 거머쥔 한제국 같은 인물이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힘이라는 걸 드러낸다. 이들과 맞서게 되는 MC그룹에서 밀려난 모석희와 그의 어머니 살해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엄마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변호사가 된 허윤도(이장우)의 공조는 그래서 더 기대를 만드는 대목이다.

 

한제국이 정보와 돈을 이용해 정계조차 쥐락펴락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며, 힘없는 이들을 이용할 때, 모석희는 그 힘없는 이들을 돕기 위해 엉뚱한 방법을 쓰기도 하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저들이 우아한 탈을 쓰고 있다면 모석희는 전혀 우아하게 행동하지 않는 모습으로 통쾌한 사이다를 선사하는 인물이다.

 

물론 <우아한 가>는 현실적이라 보기 힘든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만, 그 판타지의 힘이 적지 않다. 우아한 척 해도 그 백조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발을 젖고 있는 TOP팀이 있다는 사실은 저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고, 그들을 사실상 한제국 같은 인물이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은근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물론 전혀 힘이 없어 보이는 모석희와 그를 돕는 허윤도가 저들과 정반대의 덕목, 이를 테면 선함이나 정의 같은 걸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모든 힘의 중심은 결국 한제국이라는 독특한 악역에서 나온다. 한 때 대쪽 같던 판사였으나 변심해 재벌가로 들어오고, 재벌가를 관리하면서 차츰 자신만의 제국을 만들어낸 악역. 그 악역이 만만찮기 때문에 모석희와 허윤도의 정의구현 과정이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악역이 만들어낸다고 하던가. 우리 시대의 힘이 정보와 돈에 있다는 걸 한제국이라는 악역이 드러내고 있고, 그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질문을 모석희와 허윤도라는 캐릭터가 던지고 있다.(사진:MBN)

‘60일, 지정생존자’, 지진희가 보여주는 성장하는 강력한 리더십

 

어설픈 이상이 아니다. 뼈 때리는 현실감이다. 최근 정치를 다루는 드라마가 내세우는 리더십의 조건은 이렇게 바뀌었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얼떨결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 그렇다.

 

그는 환경부장관으로 있을 때도 자신을 ‘과학자’라고 불렀다.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계산을 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러한 팩트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그런 권력을 기반으로 해야 비로소 이상도 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야당 대표 윤찬경(배종옥)이 박무진 권한대행이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 해임됐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아 언론 인터뷰에서 기습적으로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을 때, 그는 정치적 선택이 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그대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던 것. 결국 그 한 마디는 박무진 대행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을 만든다.

 

이전에도 박무진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초유의 국회의사당 폭탄테러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강경론자들의 주장과 마침 사라진 북한 잠수함으로 인해 데프콘 2호를 발령하라는 목소리들이 높았지만, 그는 데이터 분석으로 그것이 북한 잠수함의 침투가 아닌 표류라는 걸 밝혀냄으로써 위기를 넘긴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더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탈북자들에 대한 보복성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이를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려는 강상구(안내상) 서울시장이 ‘특별감찰구역 선포’를 했을 때도 권한대행으로서 정치적 선택들을 해야 하는 박무진은 여전히 60일을 지키다 돌아가려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하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결국 박무진은 한주승(허준호) 비서실장을 해임하면서까지 대통령령을 발령함으로써 자신이 권력 행사를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북한의 전직 고위급 인사가 스스로를 테러범이라 주장하는 동영상으로 이관묵(최재성) 합참의장이 박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수행하려 하자, 박무진은 그를 해임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껏 수동적이 위치에만 서 있던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건, 그 역시 이제 점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차영진(손석구) 선임 행정관이 국가 기밀에 해당되던 북한 전직 고위급 인사의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게 되자, 박무진이 차영진을 해임이 아닌 비서실장에 앉히는 대목은 박무진 권한대행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항상 이상적인 바른 길만을 고집하던 그가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60일, 지정생존자>의 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을 통해 요구하는 리더십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한때 정치 드라마에서도 종종 보였던 이상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감보다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리더십을 보이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대의명분이나 소신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대중들은 말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소신은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순진해서는 안 되는.(사진:tvN)

‘라이브’, 미투·약자·적폐 현실 담은 노희경 작가의 저력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경찰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낯선 직업은 아니다. 흔한 형사물들 속에서 늘 등장했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tvN 금토드라마 <라이브>에서 경찰은 우리에게 드디어 진짜 얼굴을 드러낸 느낌이다. 때론 딜레마에 빠지고, 매뉴얼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억울하게 당하며, 심지어는 올바르게 경찰 일을 해왔다는 것 때문에 중징계를 받기도 하는 경찰들.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리경찰만 있는 것도 아닌,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라이브>는 담았다. 

노희경 작가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건, 경찰이라는 특정 직업을 깊이 있게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들을 포착해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성범죄를 다루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미투 운동의 한 자락이 포착되고, 국회의원들의 음주운전 거부 사건 같은 걸 다루며 역시 사회적 사안으로 떠오르는 갑질 행태가 담겨지는 식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염상수(이광수)가 오양촌(배성우)을 구하기 위해 총기를 사용한 것 때문에 오히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사건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일선 경찰의 문제가 담겼다. 그 사건에서 보이는 건 검경의 수뇌부들이 저지르는 적폐청산의 문제와, 진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균형을 잃은 언론의 문제다. 결국 약자들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도 늘 힘 있는 자들이 빠져나가는 구실이 되는 현실을 맞이하기도 한다.

‘최고의 경찰 부부’라고 자임하는 오양촌과 안장미(배종옥)가 둘 다 중징계를 받는 대목도 그렇다. 특히 안장미는 연쇄 성범죄자를 붙잡은 장본인이면서도 오히려 ‘늦게 잡았다’며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수뇌부를 차지한 남성 권력들은 비겁하게도 안장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로 숨어버린다. 이것이 <라이브>를 통해 노희경 작가가 전하려는 경찰의 진면목이었다. 

드라마 초반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강제해산시키는 장면으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라이브>가 그리려는 건 공권력으로서의 경찰들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그 힘 있는 누군가의 잘못되고 비겁한 선택들이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경찰들까지도 모두 욕되게 하고 있다는 것. <라이브>가 비판하려는 건 그래서 그 잘못된 권력구조들, 경찰 수뇌부의 적폐에 대한 것이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염상수를 위해 그를 변호하는 오양촌이 ‘사명감’을 강조해왔던 자신을 후회한다고 말하며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일선에서 사명감이 아니라면 버텨내기 힘든 갖가지 더럽고 두려우며 때론 힘겨운 일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적어도 그 사명감 하나는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애꿎은 그들을 희생양 삼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경찰들이 진짜 접하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우리 사회가 가진 갖가지 문제들이 드러난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과 사회정의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요즘, <라이브>의 일선 경찰들을 통해 전하는 노희경 작가의 메시지는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치 우리 사회의 환부를 경찰이라는 특정 직업군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 느낌.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사진:tvN)

‘라이브’가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경찰을 담은 까닭

우리는 흔한 형사물에서 사건현장에 끔찍하게 살해된 사체를 아무런 감흥도 없이 들여다보고 심지어는 손을 넣어 만져보기까지 하는 베테랑 형사와 그걸 보는 신참 형사가 막 도망치듯 달려가 토를 하는 장면을 흔한 클리셰로 볼 수 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장면이지만 그건 현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게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다. 

바로 눈앞에서 사제총에 맞고 쓰러져 죽은 동료와, 계속해서 총을 쏴대는 범인과 대치하며 벌벌 떠는 경찰들. 그리고 가까스로 범인을 제압했지만 그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에 지구대 전체가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를 보이는 그런 모습이 진짜다. 사람의 죽음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베테랑 경찰인 오양촌(배성우) 같은 인물조차 그렇다.

그러니 신참 경찰들인 한정오(정유미)나 송혜리(이주영) 그리고 염상수(이광수) 같은 이들이 온전할 리가 없다. “우리 모두 죽는 줄 알았다”며 눈물 흘리는 한정오는 그간 자신이 사건 현장에서 봤던 끔찍한 사체들을 떠올린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건들을 눈으로 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암담하게 다가왔을 게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이 그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그래서 강남일(이시언) 같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선임 경찰 또한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났다”며 펑펑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선임들은 괜스레 그 충격을 잊고자 술이라도 마시자고 나선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순간의 기억은 내내 그들을 멍하게 만들어놓는다.

굉장히 강인해 보이는 오양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아내 안장미(배종옥)에게 가장 힘든 게 “내가 안죽어 다행이다. 우리 지구대 애들이 죽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나마 위안 삼는 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이제 퇴직을 앞둔 이삼보(이얼)에게 기한솔(성동일) 지구대장이 사건에 잘 대처한 일에 대해 “잘하셨다”며 “안 다치신 건 더더 잘 하셨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송혜리나 한정오는 아마도 자신들이 선택한 경찰 일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을 게다. 어디서도 그 실상이 보여지기 보다는 그 막연한 이미지들만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실상을 마주한 그들은 흔들린다. 계속 이 지구대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만두려고도 마음먹고 국비유학으로 해외에 나갔다 돌아와 다른 곳에서 일하고도 싶어진다. 

영화에서나 보던 액션 히어로 경찰? 그런 건 없다.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서 계속 보게 되는 이들은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삼보가 말하듯, “그래도 어쩌겠어. 경찰인데 사건 사고 나면 가야지”라고 말하며 현장으로 뛰어간다. 아기가 유기되었다는 제보를 듣고 그토록 힘들어 도망치고픈 현장을 뛰고 또 뛰는 모습을 통해 한정오는 어떤 의문을 느낀다. 그건 단지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 나오는 행동이 그 트라우마조차 이겨내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