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슬전’,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의학드라마의 진심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여기서 키도 제일 작고 몸무게도 제일 조금 나가요. 여기서 꼴찌예요.”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에서 엄재일(강유석)은 신생아실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홍도(배현성)에게 자신이 처음 탯줄을 자른 아기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초음파 시절부터 인연이 있다는 그 아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내는 엄재일의 이야기는 언뜻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제 새내기 병아리인데다 하는 일마다 실수 투성이라 선생님들에게 꾸중 듣는 일이 일상인 엄재일이다. 

 

내원한 산모들의 초음파를 볼 때면 자신이 본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레지던트 2년차 선생인 차다혜(홍나현) 같은 선배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해 확인을 하는 엄재일이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4년차 구도원(정준원)은 그건 책임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행동이라며, 그렇게 차다혜 같은 선배들의 시간을 뺏는 건 그들에게도 다른 환자들에게도 민페가 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려줬다. 

 

사실 <언슬전>에서 엄재일은 종로율제 산부인과에 들어온 1년차 레지던트 중에서도 가장 적응을 잘 못하는 인물이다. 의과에서 배웠던 기본적인 내용조차 기억을 못해 선배들의 지적을 당하기 일쑤고, 산모가 변비로 생긴 변을 종양 같은 문제로 의심해 선배들의 시간을 뺏기 일쑤다. 그러니 자존감이 있을리 없다. 칭찬보다는 늘 꾸중이 일상인 전공의 생활이니 말이다. 

 

그런데 엄재일에게도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난다. 민폐를 주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부르지 않아 시간이 상대적으로 나는 엄재일은 산모의 초음파 보는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천천히 자세히 보려 하고 산모의 입장이 되어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을 한다. 아기가 너무 걱정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초음파를 보러 오는 산모를 담당의인 차다혜는 힘겨워 하지만, 대충 보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그 산모에게 “나라도 괜찮겠냐”며 천천히 초음파를 봐주는 엄재일의 모습은 이 인물이 거북이 스타일일뿐, 영 재능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엄재일의 이 천천히 자세히 보는 초음파 검사는 잘 찾아내기 어려운 산모의 자궁파열을 초기에 발견해내는 의외의 성과를 해낸다. 결국 의술이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실수나 잘못은 이들 병아리 의사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엄재일이라는 인물은 말해준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산모와 아기를 지켜내려는 그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진짜 의사는 탄생한다고 이 의학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언슬전>은 마치 엄재일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시선을 확 끄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보다 보면 점점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구도원 같은 인물도 그렇다. 굉장한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늘 후배들을 챙기려 하고 환자들의 입장이 되어 보려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물론 명은원(김혜인) 같은 여우 의사에게 이용당해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호구 도원’이라고 말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대신 욕을 해주는 오이영(고윤정)과 어쩐지 잘 어울리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진다. 

 

“꼴찌면 어때? 지금 꼴찌인게 뭐가 중요해. 나갈 때 1등으로 나가면 돼지. 인생 1일차잖아. 이제 시작인데 뭐,” 신생아실 앞에서 ‘꼴찌인 아기’ 이야기를 할 때 장홍도가 하는 말은 <언슬전>이라는 새내기 의사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대한 격려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또한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구도원도 엄재일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해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걸 이들이 겪는 병원에서의 좌충우돌이 보여준다. 아직 능숙하진 않지만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산모의 위급할 수 있었던 상황을 찾아낸 엄재일처럼, 촘촘히 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의학드라마가 바로 <언슬전>이다. (사진:tvN)

‘조립식 가족’으로 새로운 가족상, 아빠상 보여준 최원영

조립식 가족

“어떤 부모가 자식을 키워 줘? 키우는 거지. 잘 먹고, 잘 자고, 재밌게 살고 그러라고 키우는 거지. 돈 내놓으라고 키우는 거야? 갚으라고 키우는 거냐고?” 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윤정재(최원영)는 강해준(배현성)에게 그렇게 말한다. 윤정재와 강해준. 벌써 성이 다르다. 그런데 이 윤정재는 자신이 강해준의 아빠라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윤정재는 우연히 선을 보게 된 강서현(백은혜)의 아들 강해준을 집으로 데려왔다. 해준의 엄마는 서울로 돈 벌러 간다고 떠난 후 소식이 끊겼다. 이모 강이현(민지아)의 집에 맡겨진 해준은 이 아빠는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어린 해준이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아빠하면 좋겠어요.‘라고 하자, 정재는 아이를 받아들인다. ”그래. 그럼 여기 있을 동안은 아빠 해.“ 

 

그렇게 윤정재의 아들로 10년 간이나 살아왔지만 강해준에게는 이 아빠에 대한 부채감 같은 게 있다. 자신을 아들로 키워준 것을 은혜로 생각하고 갚고 싶어한다. 친아빠가 나타나 미국 농구 유학을 떠났지만 발목을 다쳐 돌아온 강해준은 그간 패션 모델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 8억이 든 통장을 윤정재에게 내민다. 하지만 기뻐할 줄 알았던 이 아빠는 불같이 화를 낸다. “누가 그래 갚으라고? 너 아빠가 그런 거 하라고 미국 보냈어?”

 

이 아빠에게는 친딸인 윤주원(정채원)도 있지만 또 한 명의 아들도 있다. 이웃집 김대욱(최무성)의 아들 김산하(황인엽)다. 딸 윤주원이 어려서 오빠 오빠 하며 잘 따랐던 김산하는 그 나이에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윤주원은 그것도 눈에 밟혔다. 그래서 자기 집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지내다 보니 김대욱도 김산하도 가족이 됐다. 김산하 역시 친 아빠가 있지만 윤주원에게도 아빠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이상한 아빠 윤주원은 사실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데 그 판타지를 현실감 있게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배우 최원영이다. 역시 배우인 심이영과 결혼해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이 아빠는 ’조립식 가족‘을 통해 부성애와 모성애가 결합된 이 판타지적 인물을 현실로 끄집어낸다. 칼국수집을 하는 이 인물은 그래서 요리로 그 마음을 표현한다. 정성껏 요리를 만들어내고 그걸 맛나게 먹는 가족들(성도 다르고 피도 다르지만)을 보며 흐뭇해한다. 세상 엄마들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동시에 자상한 아빠로서의 따뜻함도 보여준다. 성도 다른 아이들이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게다가 아빠 둘이 한 집에 있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동네의 시선에도 단호하게 맞선다. 김산하의 아빠 김대욱과는 오래된 친구처럼 저녁에 술 한 잔 나누는 사이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의견다툼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도 보인다. 최원영은 이 부성애와 모성애를 모두 가진 새로운 아빠상을 그려냈다. 만만찮은 연기의 내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원영은 2002년 영화 ’색즉시공‘으로 데뷔해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무수한 작품들을 소화했다. 워낙 선한 외모를 갖고 있어 드라마 ’선덕여왕‘의 계백이나 ’상속자들‘의 윤재호 같은 평범한 훈남 역할이 많았지만, ’매드독‘에서 메인 빌런인 주현기 역할로 연기 변신에 성공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후 ’닥터 프리즈너‘에서도 악역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도 ’반짝이는 워터멜론‘ 같은 작품에서 더할 나위 없는 훈훈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면모를 보여줬던 건데, 그의 연기 폭이 계속해서 확장되어 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 과정들을 거쳐 ’조립식 가족‘으로 돌아온 최원영은 이 기막힌 가족의 서사가 근거를 갖게 해주는 작품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낸다. 엄마는 없고 아빠만 둘인데다 성도 다른 말 그대로의 ’조립식‘ 같은 가족을 진짜 가족처럼 만들어내는 끈끈한 정을 부여하는 역할이다. 이 작품이 특이한 건, 보통 우리네 드라마에서의 고정되어 오기도 했던 성 역할이 뒤집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아빠들이 아이들을 버리고 가고 엄마가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드라마 속 고정된 성 역할이었지만, ’조립식 가족‘은 정반대다. 이 작품에는 엄마들이 모두 아이를 버리고 떠나가고 그 버려진 아이를 챙기는 건 이 이상한 아빠다. 이건 이 드라마의 원작이 중국드라마 ’이가인지명‘이기 때문에 생긴 판타지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아빠들이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이 일상적이다. 그건 아빠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달라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조립식 가족‘이 새롭게 보여주는 이 아빠상은 현재 우리의 달라지고 있는 가족형태 속에서 의미 있어 보인다. 가부장적 가족관과 그 속에 자리한 보수적인 아빠상은 이제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됐다. 그보다도 자상하고 집안일도 함께 챙기는 새로운 아빠상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혈연과 핏줄을 강조하던 옛 가족관은 그것이 야기하는 사회 문제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대안적 가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내 핏줄만 소중하다 여기는 그런 구시대적 가족관으로는, 지금처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다 살 수 있는 공존의 시대를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윤정재라는 아빠의 존재는 ’조립식 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조립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다. 핏줄이 아니어도 함께 밥 먹고 지내온 그들을 가족으로 보듬고 그렇게 실제로 새로운 가족이 되게 만드는 인물. 가족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해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빠라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요즘 같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그다.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연기를 해내며 스펙트럼을 넓혀온 배우 최원영이 이 이상한 아빠 역할을 통해 우리 시대의 페르소나로 떠오르는 건 그 인물이 가진 대안적 성격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어 보이지만, 이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새로운 아빠상을 그는 기막힌 연기로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JTBC)

‘조립식 가족’, 이 얼기설기 가족을 단단히 조립시킨 이 아빠

조립식 가족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렇게 따뜻하게 밥을 해줄 수 있나? 그래서 제가 염치없는 짓을 너무 많이 했죠?” JTBC 수요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20년만을 돌고 돌아 아들 강해준(배현성)에게 돌아온 강서현(백은혜)은 아들을 그동안 돌봐주고 키워준 윤정재(최원영)에게 그렇게 말한다.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지만 윤정재라는 인물은 이런 말조차 서운해한다. “자꾸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서운해 합니다.”

 

윤정재는 그런 사람이다. 김산하(황인엽)도 강해준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아들처럼 키웠고 실제로 아들이라 생각한다. 윗층에 이사온 이웃이었고 그래서 아버지 김대욱(최무성)이 있지만 엄마 권정희(김혜은)가 버리고 간 김산하의 빈 자리를 채워준 건 바로 윤정재였다. 또 돈 벌러 서울 간다고 떠났다 돌아오지 않은 엄마로 인해 강해준이 느낄 빈 자리 역시 윤정재가 채워줬다. 

 

그는 강서현의 말대로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이상한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따뜻한 밥을 해주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들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식구이자 가족이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김대욱과 김산하, 강해준 그리고 친 딸인 윤주원(정채연)을 한 가족처럼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다. 그에게 주변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하고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이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가 또 아이들에게서 듣기 싫어하는 말은 ‘갚는다’는 말이다. “아빠한테 갚을라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 친아빠를 따라 미국 농구 유학을 갔다가 발목 부상으로 돌아온 강해준은 그간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8억이 든 통장을 이 아빠 앞에 꺼내놓는다. 아빠를 챙기고픈 해준의 마음이지만, 윤정재는 서운함을 느끼며 불같이 화를 낸다. 

 

“누가 그래 갚으라고? 너 아빠가 그런 거 하라고 미국 보냈어? 너 가기 전에 아빠가 뭐랬어? 딱 너 재미있는 만큼만 하고 오랬지? 설거지에 서빙? 네가 왜 손이 야무져. 아빠가 가게에서 그런 거 하라고 시킨 적 있었어?” 그러자 강해준이 울먹이며 말한다. “아니 그런게 아니고 아빠가 그래도 내를 10년 동안 키아주고...” 

 

하지만 그런 말도 이 아빠는 싫어한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키워 줘? 키우는 거지. 잘 먹고, 잘 자고, 재밌게 살고 그러라고 키우는 거지. 돈 내놓으라고 키우는 거야? 갚으라고 키우는 거냐고?” 그러면서 8억이 든 통장을 돌려주며 가져가라고 하고는 “자꾸 뭐 갚는다” 그런 소리 하지 말란다.  

 

윤정재라는 아빠의 이런 모습은 해준을 돌봐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괜스레 해준에게 “잘하라”고 하는 해준의 이모 강이현(민지아)에게 서운하다고 했던 말 속에도 담겨있다. “자식 가진 사람이 왜 몰라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거 다 내 행복이지 얘네 행복이야?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왜 해준이가 눈치를 봐야 돼?” 그러면서 “잘해라”, “은혜를 꼭 갚아라”고 하는 강이현의 말을 탐착찮아 한다. 

 

사실상 윤정재라는 아빠는 ‘조립식 가족’이라는 색다른 가족이 조립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인물이다. 핏줄이 아니어도 함께 밥 먹고 지내온 그들을 가족으로 보듬고 그렇게 실제로 새로운 가족이 되게 만드는 인물. 가족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해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빠라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요즘 같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조립식 가족’은 조금 구식의 신파적 요소도 적지 않다. 또한 권정희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의 극적 서사 같은 요소들은 다소 과하게 여겨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약점들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이 ‘이상한 아빠’ 때문이다. 너무 따뜻해서 미치겠는 이 아빠를 보다보면 모든 것들이 다 용서된다. 그리고 저런 가족이 우리 사회에도 대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가족의 재조립이 필요하다.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진 시대인 건 크게 잘못된 일이 없다. 다만 그래서 더 이상 가족은 필요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게다. 우리 시대에 맞는 대안적 가족의 재조립. 각자의 행복이 우선되면서도 서로를 보듬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지나친 혈육 지상주의로 빠지지 않는 가족의 가능성을 이 ‘이상한 아빠’가 너무나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다.(사진:JTBC)

조립식 가족

“자식 가진 사람이 왜 몰라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거 다 내 행복이지 얘네 행복이야?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왜 해준이가 눈치를 봐야 돼?” JTBC 수요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윤정재(최원영)은 자꾸만 강해준(배현성)에게 잘하라고 하는 그의 이모 강이현(민지아)의 말이 거슬려 술기운을 빌어 그렇게 말한다. 어려서 해준이 엄마는 서울에 돈 벌러 간다며 이모에게 아이를 맡겼고, 윤정재는 바쁜 이모 때문에 혼자 집을 지키는 해준이 눈에 밟혀 잠깐 봐주겠다며 데려와 키운 것이 한 세월이 됐다. 이제 해준은 정재를 아빠라고 부르고 정재 역시 해준을 자식이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해준에게 “잘해라”, “은혜를 꼭 갚아라”라고 하는 이모의 말들이 정재에게 탐탁찮은 이유다.   

 

이 장면은 이 제목부터 심상찮은 ‘조립식 가족’이 담고 있는 가족의 특별함을 잘 드러낸다. 윤정재와 강해준은 성도 다르지만 함께 살면서 부자 관계가 된다. 그렇게 살면서 가족이 된 건 강해준만이 아니다. 윗층 사는 김산하(황인엽) 역시 윤정재를 가족으로 생각한다. 그 역시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아런 나이에 동생이 사고로 죽었고 그 비극으로 그의 엄마는 심지어 어린 산하를 원망할 정도로 피폐해지다가 이혼했다. 아빠 김대욱(최무성)과 함께 살지만 아래층 윤정재 역시 엄마 없는 산하를 아들처럼 대했다. 그리고 윤정재의 친딸인 윤주원(정채연) 역시 이들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독특한 가족관계가 형성됐다. 윤정재와 김대욱이 티격태격하며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부부 같은 관계가 되고, 김산하와 윤주원 그리고 강해준이 남매 같은 관계가 된다. 엄마도 없고 성도 다르지만 가족이 된 그들. 그래서 ‘조립식 가족’이다. 

 

‘조립식 가족’은 그래서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담아내는 가족드라마지만, 그 갈등양상은 과거의 가족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가족이 최고’라는 거였다. 그래서 바깥에서는 남들이 힘겹게 해도 귀가해 함께 저녁을 먹는 그 정경으로 모든 것들이 풀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가족 내에도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다시 넉넉한 가족의 품에 안기는 결말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이런 최후의 보루로서의 가족의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좋은 것이지만, ‘가족만이 최고’로 나가는 혈육에 대한 집착이 당연한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그 많은 ‘출생의 비밀’ 코드들이 등장해 “너는 내 핏줄”이라며 함께 살아보지도 않았던 부모가 부자가 되어 나타나 자식의 팔자를 한 순간에 고쳐버리는 판타지가 그려지곤 했다. 과거 가족주의 시대의 엇나간 풍경이다. 

 

‘조립식 가족’은 정반대 구도로 과거식의 가족주의에 선을 긋는다. 엄마도 없고 성도 다르지만 가족이라 말하는 이들 앞에 유전적인 친부모들이 등장한다. 강해준에게 나타난 부자 친아버지는 당연한 듯 그를 아들이라 부르며 미국 유학을 시켜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또 김산하에게도 어린 시절 떠났던 엄마 권정희(김혜은)가 나타나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하지만 그 역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두 사람 모두 진짜 가족은 단지 핏줄이어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비록 ‘조립식 가족’처럼 보일지라도.

‘조립식 가족’은 중국 후난TV에서 방영됐던 중국드라마 ‘이가인지명’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특유의 신파적 감성과 반복적인 갈등 상황이 전개되는 면이 있다. 이들 ‘조립식 가족’을 위협하는 친부모들의 모습이 다소 작위적으로 위악을 부리는 장면들과 그럼에도 끈끈한 가족애를 보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립식 가족’이 공감을 주는 건, 이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상이 우리에게도 의미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 같은 혈연 중심의 ‘가족이 최고’를 그리는 가족드라마는 거의 사라졌다. 삶이 바뀌었고 가족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드라마들이 최근 들어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리메이크작이지만 ‘조립식 가족’이 묻고 있는 ‘진짜 가족’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글:일간스포츠,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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