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 동서와 이념의 대결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비극인가!

동조자

역시 박찬욱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독점 공개하는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이야기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유머가 느껴지는 영상 미학은 물론이고 ‘동조자’라는 제목에 걸맞게 양측에 걸쳐 있어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놓아 보는 이들을 쿡쿡 웃게 만드는 박찬욱표 농담의 맛까지 가득하다. 시리즈지만 단 한 편을 봐도 웃음에서부터 깊이까지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랄까.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타인 응우옌이 써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을 원작으로 가져와, 우리에게도 영화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나 시리즈 ’성난 사람들‘로 이민자 정서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만든 제작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A24가 제작했고,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극본을 쓰고 감독을 했다. 그 제작 자체에 ’동조자‘가 갖고 있는 ’반반‘ 정서가 풀풀 풍겨난다. 

 

주인공인 대위는 70년대 베트남이 치열한 남과 북의 전쟁을 치른 후, 남베트남이 패망하게 되자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남베트남에서 비밀경찰이자 장군의 부하로 활동하지만 CIA와 남베트남의 정보를 북베트남으로 빼돌리는 스파이다. 이처럼 국가나 언어, 심지어 이념의 중간에 걸쳐 스스로 ‘반반’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에 선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대의 풍경은 웃음이 터질 정도로 기괴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비극적 정조를 담고 있다. 

 

그 희비극은 시리즈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박찬욱 감독의 유머 가득한 연출로 빛을 발한다. 찰슨 브론슨 주연의 ‘데스 위시(죽음의 갈망)’ 간판이 걸린 극장에서 펼쳐지는 고문 장면이 그것이다. 영화 대신 무대에서는 한 여성이 의자에 앉혀져 고문당하고 심문을 받는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그걸 CIA요원 클로드와 대위 그리고 장군이 마치 실존주의 연극 혹은 영화라도 보듯이 관람(?)한다. 

 

“그래 관객이 오셨다고. 네 공연을 보러. 똑바로 앉아! 네 대사를 궁금해하신다.” 심문을 주도하는 만두라 불리는 인물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마치 자신도 관객이나 된 듯이 콜라를 따서 마신다. 이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비극적이다. 그 여성은 대위가 장군의 책상에서 확보한 비밀경찰 명부를 가져가려다 체포되었다. 그러니 대위가 스파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말 그대로 죽음을 갈망하듯이 자신을 고문하는 자들 앞에 침과 독설을 뱉는다. 그 광경을 속내를 숨긴 채 바라보는 대위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광경은 우스꽝스러운 농담과 풍자로 가득하다. 이념 대결로 동족끼리 죽고 죽이고 속고 속는 그 광경이 마치 한편의 실존주의 연극 같다는 은유다. 이들은 이념으로 편을 나누어 연기를 하는 중이고, 다만 누군가는 당하고 누군가는 그걸 영화를 보듯 콜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관람하는 중이다. 어느 ‘뒷구녕’에서 빼낸 정보냐고 묻는 대사는 실제로 이 여성이 정보를 숨기기 위해 그 필름을 꿀꺽 삼키자 용변을 보게 해 꺼낸 정보라는 점에서 웃음을 주고, 심문 중 만두가 두리안을 먹는 걸 두고 똥내가 극장 가득 찼다고 소리치는 장군의 모습에서는 이 광경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에 대한 풍자로 다가온다. 

 

이건 ‘동조자’가 앞으로 그려나갈 빵빵 터지면서도 눈물나고 씁쓸한 희비극의 전조를 보여준다. 이념과 국가, 동서 같은 걸로 구분지어진 세계에서 그 중간에 걸쳐진 삶을 살아가는 대위의 시선은 모든 걸 낯설게 만든다. 북베트남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장군 옆에 붙어 끝까지 스파이 일을 하게 된 대위가 미국으로 와 겪게되는 일들 또한 마찬가지다. 2회에 등장하는 교수는 동양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인물로서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식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교수는 동서양이 반반씩 겹쳐진 대위에게 자신이 가진 동양적인 면과 서양적인 면을 나누어 알려달라는 과제를 내주는데, 대위가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서양적인 면은 모순을 극복대상으로 삼지만 동양적인 면은 함께 갈 대상으로 보고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인 면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걸 겁내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자 교수는 말을 끊어 버린다. 자신이 보는 대로의 오리엔탈리즘적 식견에서 벗어나는 답변이라 그렇다. 교수의 그런 모습을 대위는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삶은 계란 같다며 농담한다.  

 

이처럼 ‘동조자’는 베트남 혼혈 대위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넘어가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 중간에 걸쳐져 있는 경계인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이지만 우스꽝스런 현실들을 꺼내놓는다. 제목인 ‘동조자’란 ‘어떤 의견에 대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일 수 있지만, 이 시리즈에서 중간에 걸쳐진 동조자인 대위는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이념이나 동서 갈등 속에서 스파이로 취급되어 고통받는 인물이 된다. 

 

70년대 베트남과 미국을 배경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것이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우리도 비슷한 경험들을 했고 지금도 그 형태의 정쟁들이 우리네 현실 깊숙이 상흔처럼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지역으로 나뉘고 이념으로 진영을 갈라 내편과 적이 되어 어떤 각각의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의견들조차 스파이처럼 매도되는 현실이 아닌가. ‘동조자’를 보며 때론 낄낄 웃다가 때론 씁쓸해지는 감정들을 의외로 깊게 ‘동조’하게 되는 건 그래서일게다. (사진:쿠팡플레이)

맨발로 생고생 하는 <맨친>, 왜 안볼까

 

<맨발의 친구들>은 생고생 버라이어티를 자처하며 시작했다. 해외에 나가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들과 소통하겠다는 좋은 의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일단 해외라는 공간이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그다지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런닝맨>이 아주 가끔씩 이벤트 성격으로 해외에 나가 한류 팬들을 확인하고 올 때만 해도 뿌듯했던 그 느낌은 <맨발의 친구들>에서 느끼기가 어려웠다. 마치 한류를 의도한 듯한 출연진과 연출이 의외성과 반전의 효과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맨발의 친구들(사진출처:SBS)'

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간 <맨발의 친구들>이 숨고르기를 하며, 이효리와 함께하는 엠티 특집을 한 것 역시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고정 멤버가 아닌 이효리 혼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멤버들과 좌충우돌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강호동이 하는 <패밀리가 떴다>를 다시 보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아침에 갑자기 산행을 하면서 폭포의 물을 맞고 입수하는 장면들은 영락없는 <1박2일>이었다. 그리고 또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다이빙 대회 참가라는 전혀 새로운 소재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출발 드림팀>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맨발의 친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콘셉트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외 체험에서 엠티를 가고 다시 다이빙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붙여져 있다. 즉 엠티는 <맨발의 친구들>이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 하는 일종의 단합대회인 셈이고, 다이빙도 애초에 ‘단점 극복 프로젝트’라고 제목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의 이유가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맨발의 친구들>이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한 마디로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문화 소통인지, 멤버들 간의 여행인지, 아니면 스포츠 버라이어티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아이템이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프로그램의 이득으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이번 다이빙 프로젝트가 성공한다고 해도 다이빙을 주제로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다른 스포츠에 도전을 한다면 그것은 너무 기존 프로그램과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출발 드림팀> 같은.

 

<일요일이 좋다>의 다른 짝인 <런닝맨>이 초창기 부진을 딛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한 가지 콘셉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특히 주말 예능은 그 걸어온 길이 하나의 자산이 되는 셈이다. <런닝맨>은 단순한 게임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스파이가 투입되고 제작진과의 심리게임이 부가되면서 흥미로워졌다. 이제는 박지성이나 에브라 같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차근 차근 하나의 콘셉트를 일관되게 밀어붙인 덕이다.

 

<맨발의 친구들>의 멤버들이나 제작진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맨발로 땀만 열심히 흘린다고 프로그램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맨발의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관되고 줄기차게 밀어붙일 수 있는 한 가지 콘셉트를 정하는 일이다. <무한도전>도 <1박2일>도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도전과 여행이라는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맨발의 친구들>의 색깔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먼저 고민되어야 맨발의 노력이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먹방의 전설? 풍요의 시대, 배고픔의 향수

 

<진짜 사나이> 2회에 등장한 군대리아(패티와 잼을 함께 넣어 먹는 군대식 햄버거)를 먹으며 샘 해밍턴은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호주에 가면 그 몇 배는 큰 패티와 베이컨, 야채를 쌓아올린 수제 햄버거가 동네마다 널렸다. 그런데도 샘 해밍턴은 이 이상한 조합의 햄버거를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군대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식욕, 새로운 먹방의 탄생.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 향수로만 존재하던 군대리아는 이제 일반인들의 뇌리에 남겨진 먹방의 전설에 오르게 되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진짜 사나이> 3회에서는 자판기로 뽑아먹는 얼음 띄운 ‘바나나라떼’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서경석과 샘 해밍턴은 그 중독성 있는 맛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편 류수영은 야전 훈련 이후 지급된 전투식량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며 <SNL 코리아>의 신동엽이 하는 이엉돈 PD를 흉내 내며 즉석에서 데운 비빔밥에 갖가지 햄과 김치 등을 얹어 맛있게 먹었다.

 

먹방이 대유행이다. <진짜 사나이>에서 패러디를 할 정도로 <SNL 코리아>에서는 매회 신동엽이 이엉돈 PD로 나와 ‘먹거리 X파일’을 진행한다. 콩트 중간에 갑자기 음악이 흐르며 이엉돈 PD가 등장해서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는 대사와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참 맛있네요.” 몇 마디만 던지면 그 자체로 빵빵 터진다. 도대체 먹방의 무슨 매력이 예능을 장악해버린 걸까.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방은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아빠 어디가>에서 김성주가 만들고 윤후가 완성시킨 짜빠구리는 그 면을 생산하는 회사의 매출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그들은 광고에도 출연했고, 그 광고비를 김성주는 기부하기도 했다. 먹방에서 <1박2일>은 이미 선구적인 프로그램이다. 저녁 복불복으로 대표되는 <1박2일>의 먹방은 누구는 먹고 누구는 그걸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비교체험으로 그 강도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편은 ‘먹방 특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한 먹방을 선보였다. 거대한 흑전복을 장작불에 구워먹고, 웨카라는 날지 못하는 새와 물고기, 거대한 장어는 물론이고, 이젠 웨타라고 하는 청정지역에 사는 곱등이(?)를 날 것으로 씹어 먹으며 그 땅콩버터 맛(?)을 즐긴다.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편은 이제 다음 회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이 될 정도로 먹방이 화제의 중심으로 오르고 있다.

 

새롭게 시작한 <맨발의 친구들> 역시 강호동이 출연하는 만큼 먹방이 빠질 수는 없었다. 강호동과 김현중은 베트남에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쌀국수집에 들러 족발 쌀국수를 먹으며 그 맛에 감탄했다.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어요!”하고 외치는 강호동은 결국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한편 하루벌이를 위해 베트남식 빈대떡 반세오를 팔며 맛을 보는 장면도 이국 음식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뭐니뭐니 해도 먹방의 전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이 하와이에 갔을 때 정준하는 어마어마한 팬 케익을 혼자 먹는 도전(?)을 보여주었고, 택시 특집을 할 때는 기사식당의 돼지불백을 무려 11인분이나 먹어치워 화제가 되었다. 8주년 특집으로 내보낸 무한상사에서도 정리해고 대상이 된 정준하는 최후의 만찬(?)으로 초밥을 수십 그릇 흡입하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한편 <나 혼자 산다>의 나 홀로 여행 편에서는 제주도로 떠난 데프콘이 고기국수, 핫도그, 해물뚝배기, 흑돼지, 갈치구이 등 무려 1일7식의 먹방을 보여주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해피투게더>는 아예 먹방 특집을 통해 김준현의 놀랍고도 나름 과학적인(?) 음식에 대한 탐닉을 선보이며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먹방이 유행하는 이유는 과거보다 풍족해진 먹거리의 시대를 그 배경으로 깔고 있다. 이제 새롭고 맛있는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예능만한 것이 있을까. 먹방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배고픈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던 과거 그 시절, 밥 한 그릇에 김치 한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던 그 때의 감성을 오히려 풍족해진 지금은 느끼기 어려워진 탓이다.

 

또한 먹방이 보여주는 날 것의 본능은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강화시켜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배고픔이나 포만감 같은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방송 프로그램을 그저 시청각적인 자극에 머물던 것에서 촉각적인 자극으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점이다. 먹방 없는 예능은 이제 패티 없는 햄버거처럼 밍밍해져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방이 그저 향락에 머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없던 시절 작고 소박했던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기도 하니까. 한편에서는 1일1식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먹방이 대유행인 이 이색적인 풍경. 그것은 이 시대의 폭발적인 먹거리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아시아 프린스, 광수의 매력에 대한 짧은 탐구

 

“베트남에서는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고 리액션 해야 하는 지 몰랐어요. 너무 감사한데 말로는 제가 베트남어를 모르니 표현도 안 되고... 또 <런닝맨>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미션 수행도 해야 해서 너무 얼떨떨했죠.” - 아시아 프린스(?)로 돌아온 이광수

 

도대체 이 갑작스런 환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몰려드는 인파에 빠져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런닝맨들의 풍경. 최근 <런닝맨> 아시아 레이스에서 마카오에 이어 베트남에서받은 열광적인 환대는 오히려 당사자들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런닝맨> 출연자 모두가 그 주인공들이었지만, 특히 플랜카드를 들고 연실 이광수를 연호하는 현지 팬들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는데. 이 놀라운 이광수의 매력은 어디서 생긴 걸까. 우리에게 멱PD로 더 잘 알려진 김주형 PD는 그 이유를 캐릭터에서 찾았다.

 

“먼저 게임이라는 세계 공통분모가 있어서 해외 팬들도 <런닝맨>을 쉽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또 인터넷을 통한 한류가 이미 있으니까 예능도 그 길을 따라간다고 보입니다. 특히 이광수를 좋아하는 건 그 캐릭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약간 측은한 캐릭터인데 그러다 발끈하는 반전을 보여줌으로써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왠지 감싸주고 싶은 캐릭터잖아요. 근데 늘 당하는 건 아닌.”

 

'런닝맨'(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확실히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가끔은 김종국 같은 강한 캐릭터와 맞붙는 이변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린이란 별명은 그걸 잘 말해준다. 키가 190센티에 달하는 거구지만 어딘지 약해보이고, 그래도 그 장신이 가진 힘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 덩치는 큰 데 약한 모습이 주는 코믹함과 페이소스가 있다. 임형택 PD는 이광수 캐릭터가 가진 엇박자적인 요소가 그 인기의 요인이라고 꼽았다.

 

“코드가 한국적인 코드라기보다는 외국적인 것 같습니다. 마치 ‘덤 앤 더머’처럼 줄곧 바보스러운 캐릭터로만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델 출신이라는 것도 엇박자죠(웃음). 언발란스한 면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그런 캐릭터. 그래서 다방면으로 재미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런닝맨> 캐릭터에 있어서 이광수만큼 여러 결을 보여주는 캐릭터도 드물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이번 아시아에서 본 팬덤이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무실에서도 기자분들이 전화 와서 그 이유를 묻곤 한다는데 사무실 직원들도 제대로 답을 잘 못하겠던가봐요. 저한테 와서 “너도 모르겠지?” 하고 물으면 “저도 모르겠어요”라고밖에 답할 수가 없더라구요.”

 

왼쪽부터 임형택PD, 필자, 조효진PD, 이광수, 김주형PD

사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싸이가 어느 날 갑자기 국제가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수많은 기존 한류의 흐름들이 만들어놓은 길에서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난 꽃과 같다. 이광수에 대한 해외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능 한류는 <X맨>과 <무한도전>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재석에 대한 팬덤은 아마도 가장 클 것이다. 이른바 유재석 사단은 <X맨>에서 <패밀리가 떴다>로 이어져 지금의 <런닝맨>까지의 해외 팬덤의 계보를 만들고 있다. 이 꾸준히 만들어낸 예능 한류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이광수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 조효진 PD는 실제로 이광수가 더 열광적인 팬이 많았지만 출연자들에 대한 고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유재석은 말할 것도 없고 김종국, 하하, 개리, 송지효, 지석진까지 플랜카드는 다 비슷비슷한 숫자로 들어 있었어요. 다만 이광수를 연호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죠. 즉 이광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죠. 김주형 PD는 그게 놀라워 자막에 이렇게 달았더라구요. ‘이광수라는 이름이 베트남어로 다른 뜻이 있는 거 아닌가’ 하고요(웃음). 같이 갔던 같은 소속사의 이동욱은 이광수 인기에 깜짝 놀랐더라구요. 결국 이광수 에스코트까지 자청해서 했죠.”

 

이광수는 처음 CF 모델로 데뷔했고 그러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트콤에 발탁됐고 <동이>에 출연할 때 <런닝맨>을 시작했다. 이광수는 당시 <런닝맨>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그런 기회에 해보지 않으면 평생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효진 PD는 당시 이광수와의 첫 만남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유재석, 김종국, 하하는 늘 같이 했던 식구지만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 여러 명을 인터뷰했었죠. 이런 저런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왔어요. 이광수랑 송중기도 그 때 본 거죠. 처음에 딱 들어서는데 호피무늬 옷을 입고 왔더라구요. 그게 그냥 재밌었죠. 말을 하는데도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면이 있었어요. 긴장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긴장을 안 한 건데 저렇게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요즘 나오는 모습이 그 때 그 모습이었죠. 당황하면서 한 마디 할 때 빵 터지는 그런 모습. 피디나 작가가 죽 서 있는 데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죠.”

 

조효진 PD는 이광수의 장점으로 습득력이 빠른 것을 꼽았다. 사실상 <런닝맨>이 예능을 처음 경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빨리 적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런 습득력 또한 이광수는 좋은 멤버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캐릭터는 그렇게 <런닝맨> 멤버들과의 케미(관계)가 일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광수는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제일 자주 만나고 전화통화 자주 하는 건 종국이형이지만 그래도 두루두루 만나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이런 일 있을 때는 재석이형, 이런 일 있을 때는 종국이형, 이런 식으로요. 주로 개인적인 일들 때문에 전화하곤 하는데요,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죠. 또 제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혼을 내주는 선배도 많지 않아요. 그게 다 저한테는 엄청 도움이 되는 일이죠.”

 

<런닝맨>에서 이광수는 특히 김종국과 기린과 사자 캐릭터로 대립구도를 만들어 큰 웃음을 주고 있다. 두 캐릭터가 만났을 때의 상승효과는 분명하다. 즉 김종국의 강한 캐릭터를 때론 배신하고 눌러주는 이광수가 중화시켜준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 김종국 같은 능력자를 때로는 어떻게 이기는지 그 비결이 궁금했다.

 

“사실 종국이형이 저를 뜯으려고 작정했다 느껴지면 포기하게 되요. 그건 마치 그냥 교통 사고 난 느낌, 그런 거죠. 피할 수가 없어요. 방심도 거의 하지 않죠. 다만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할 때가 가끔 있어요. 물론 제가 뭐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촬영에 몰입하다보면 거의 본능적인 욕구가 생기죠. 정말 이기고 싶은(웃음).”

 

<런닝맨>에서 유재석은 거의 독보적이다. 이광수가 그만큼 편하게 예능을 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가 있었다고 한다. 이광수가 생각하는 유재석이 궁금했다.

 

“사실 방송보다는 방송 아닐 때 시청자분들이 그 평소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의지 많이 하고 개인적인 고민도 많이 들어주시고. 저한테는 카메라 안에서도 큰 힘이 되지만 카메라 밖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그런 분이죠.”

 

함께 초창기에 <런닝맨>에서 뛰었던 송중기는 작년 대세가 되었지만 이광수와는 절친이다. 그래서 이광수는 같이 <착한 남자>를 찍으며 훨씬 더 몰입이 잘 되었다고 한다.

 

“평소 친해서 드라마 같이 찍을 때 편하기도 했고 몰입도 잘됐죠. 송중기는 되게 솔직해요. 남자답기도 하고 섬세한 면도 있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런닝맨>에 공효진씨가 나왔을 때 <착한 남자>에서 송중기씨는 되게 바쁜데 저는 한가하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작가 조카분들이 그걸 보고 작가님에게 전화를 해서 많이 써달라고 했나봐요. 작가님이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이번 아시아 레이스를 통해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이광수는 그 모든 것이 다른 멤버들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해외에서의 인기란 국내에서와는 달리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출연진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게 마련이지만 해외에서라면 그저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역할을 하느냐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능을 하고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멤버들과의 관계를 얘기하며 주저하는 이광수에게 느껴지는 건 <런닝맨>에 대한 무한 애정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런닝맨>으로 시작해서 형들이랑 같이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데서 다른 사람과 시작하라면 솔직히 자신은 없죠. 촬영하면서 굉장히 편한 게 아무렇게나 막 던져도 형들이 다 챙겨주니까 정말 편하고 자유로워요. <런닝맨> 안에서 그런 모습이 좋다고 말씀해주시는데 다른 데서 하는 것에 그만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 혼자 만든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사실 이광수는 연기자다. 따라서 <런닝맨>이라는 예능으로 먼저 주목받은 것은 부담이 될 수도 한다. 하지만 작년 <착한남자>로 정극연기를 통해 이광수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코믹한 이미지와 진지한 이미지를 모두 갖추는 것만큼 연기자에게 좋은 건 없다. 그래서 이광수를 보다보면 마치 영화 <인생의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같은 배우의 이미지가 기대된다. 코믹하지만 계속 쳐다보면 코끝이 찡한 그런 배우. 이광수라는 배우의 매력은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고도 여전히 수줍고 선한 미소에 있는 것은 아닌지.(사진 : 전성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