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의 놀라운 캐릭터 활용법

 

<육룡이 나르샤>에 박혁권이란 배우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이 사극이 박혁권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육룡이 나르샤>의 초반부의 힘은 다름 아닌 백성들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없이 개인적인 권력과 치부에만 몰두하는 도당 3인방, 이인겸(최종원), 길태미(박혁권), 홍인방(전노민)이라는 인물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공적을 세워두자 육룡들(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이방지, 무휼, 분이)’이 행동하는 대의명분이 생겨났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그 속에서 길태미는 삼한제일검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자못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짙은 화장과 행동거지는 칼을 집어 들면 돌변하는 그 잔혹함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반전을 이루며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유발했던 것. 한 평생 이룰 건 다 이뤘다는 말로 자신의 최후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는 무술의 고수다운 풍모가 묻어났지만, 피칠갑을 한 채 저잣거리에서 관군들을 도륙하는 장면은 마치 괴물 같은 살벌함을 그려냈다.

 

하지만 길태미가 이방지(변요한)에 의해 최후를 맞는 그 순간, 이를 구경하는 저 뒤편 백성들 틈에는 또 다른 존재인 길선미(박혁권)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길태미의 최후로 박혁권이란 배우는 이제 하차하는가 싶었는데 길선미의 등장으로 계속 이어졌던 것. 길선미는 자못 길태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로 읽혀졌다. 이방지가 어렸던 시절에 그를 구해 중국으로부터 온 무술 고수에게 넘겨줘 그가 무술을 배울 수 있게 한 인물이다. 또 무명이라는 조직에 의해 사라져버린 이방지의 어머니의 소식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길선미는 그 이름(가운데 선이 들어가 있어)에서도 언뜻 묻어나듯 악행을 일삼은 길태미와는 사뭇 다른 존재라고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캐릭터도 길태미와는 전혀 다른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어딘지 육룡들과 함께 신조선을 도모하려는 인물처럼 보였지만 그것 역시 겉모습에 불과했다. 길선미는 갈수록 미스테리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무명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조직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며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조선 건국의 역사를 대부분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역사적인 이야기를 극화해 보여주었던 초반부의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명이라는 가상의 조직을 극 속에 깔아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역사적 사실의 재현만이 아니라 무명이란 조직과의 밀고 당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무명이란 조직의 한 꺼풀을 보여주는 존재가 다름 아닌 길선미다. 그는 이방지와 분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엄마 연향(전미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지금껏 이 드라마의 흐름을 놓고 보면 길태미에서 그저 선한 고수로 보였던 길선미로, 또 나아가 무명이라는 비밀스런 조직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이는 길선미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일 이 세 명(사실은 둘이지만 셋이라고도 볼 수 있는)의 캐릭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는 박혁권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실로 칭찬이 아깝지 않은 연기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박혁권이 연기한 길태미와 길선미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는 건 이 사극이 가진 놀라운 캐릭터 활용법이다. 50부작의 긴 호흡을 끌고 가면서도 이토록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긴박감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적재적소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닌 박혁권의 활용을 보면 이 사극의 매력이 바로 그 변화무쌍한 캐릭터들의 끝없는 등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육룡><리멤버>, 멜로에 대한 기대와 우려

 

SBS <육룡이 나르샤> 도화전에서 벌어진 이성계파와 조민수파의 혈투는 약 20분간 숨 가쁠 정도로 휘몰아쳤다. 이성계와 그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조민수는 수많은 살수들을 세워놓았지만 삼한제일검 이방지(변요한)와 각성한 무휼(윤균상)의 칼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이방원(유아인)과 가별초들이 들이닥치면서 조민수의 암살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그런데 이 한 편의 액션 활극을 본 것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연희(정유미)를 겁탈했던 사내의 뒤를 따라간다. 그를 쫓는 이방지와 분이(신세경)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연희. 연희와 이방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굴욕을 안겼던 그 사내는 결국 이 두 사람의 손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깨뜨려 놓았던 사내의 죽음으로 인해 새록새록 피어나는 건 향후 연희와 이방지가 다시 사랑하는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그 촘촘한 이야기와 긴박감 넘치는 대결구도가 압권이지만 상대적으로 멜로는 별로 없는 드라마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멜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방지와 연희 그리고 이방원과 분이의 멜로가 이 사극에서는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굳이 멜로가 필요한가 하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온다. 어설픈 멜로는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흐트러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고려 말 혼돈기를 깨치고 나와 조선을 건국하는 여섯 용의 영웅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는 것.

 

멜로에 대한 이런 상반된 입장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가 어떤 과도기에 놓여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 지상파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든 어떤 장르든 항상 멜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통적인 지상파 시청층은 드라마는 멜로라는 어떤 공식화된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미생>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되게 된 것도 결국이 멜로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멜로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여전히 유효할까.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복합장르 드라마다. 변호사가 나오는 법정극 장르에 사회극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거기에는 또한 조폭물의 흔적들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 복합장르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멜로다. 주인공인 서진우(유승호)와 이인아(박민영)가 그 멜로의 대상이다. 이 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서진우 부친의 무고함을 풀어내기 위해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다분히 멜로 구도를 예감케 하는 서진우와 이인아의 관계설정에 대해 굳이 멜로가 필요한가를 묻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공분을 일으키는 갑질 재벌 후계자를 응징하는 복수극이자 사회극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작품의 몰입도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5년 만에 서진우를 만난 이인아가 달라진 그의 모습에 실망하고 술에 취해 그를 불러내는 에피소드는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검사와 변호사가 그런 식으로 만나는 것이 비현실적이지만 그건 다분히 두 사람의 멜로를 위한 설정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드라마 하면 무조건 멜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멜로에 대한 기대는 어떤 순간에서도 불쑥불쑥 수면 위로 피어오르지만 그만큼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아예 멜로드라마거나 아니면 반드시 필요한 멜로가 아니라면 그것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시청자들도 몰입감의 차이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육룡>, 김명민부터 유아인까지 꽉 채워진 연기

 

SBS <육룡이 나르샤>는 여섯 명의 용이 고려를 깨치고 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다.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 서로 관계를 맺고 저마다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결코 쉽지 않은 전개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여섯 명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이합집산하는 걸 따라가야 한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명쾌한 여섯 캐릭터는 그래서 중요하다. 만일에 한 캐릭터라도 처지거나 약하게 그려지면 그것은 그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인물의 조합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는 사극이니 그렇다. 그래서 이 사극은 먼저 이성계(천호진)라는 묵직한 산 같은 캐릭터를 중심에 세워두고, 그 산을 말 몇 마디로 움직여 민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정도전(김명민)을 덧붙였다. 이인겸(최종원) 같은 희대의 악당 앞에 과거의 약점이 잡혀 무릎을 꿇는 이성계를 잔트가르라 믿었으나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아프게도 목도한 이방원(유아인)이란 캐릭터도 세워졌다.

 

세상을 바꾸려면 이성계 같은 힘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정도전 같은 머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행동에 옮기는 이방원의 실행력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가 필요하다. 이성계 대신 실행에 옮기는 이방원도 있어야 하고, 정도전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이성계라는 상징화된 존재도 필요하다. 물론 이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리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걸 실현해가는 정도전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는 여기에 민초들을 넣었다. 이 새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들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강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민초들 없는 나라가 나라일 수 없다. 분이(신세경)는 그래서 민초들의 대변자가 되었고, 그녀의 오빠인 이방지(변요한)는 음지에서 정도전을 돕는 무술의 고수가 되었으며, 무휼(윤균상)은 이방원의 호위무사가 된다.

 

물론 이들 캐릭터도 빈틈이 없다. 분이는 똑 부러지게 민초들이 할 말을 하는 캐릭터로 지금의 시청자들이 당대와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몰입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물론 분이는 향후 이 사극의 인물들 간 관계의 밀도를 만들어낼 멜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방지는 대사보다는 액션이 더 많은 인물이다. 마치 이 사극의 그림자처럼 슬쩍 슬쩍 등장하지만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극에 액션을 통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휼은 장쾌한 액션과 함께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우직한 성격과 어딘지 아이 같은 단순함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중요해진 건 이들 여섯 캐릭터들이 빈틈없이 꽉 채워질 수 있게 연기자들이 각자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마치 이들이 저마다의 연기력을 펼쳐 보이는 무대처럼 보인다. 어느 누구하나 빈 구석 없이 채워주는 연기 덕분에 여섯 용들은 이야기에서 깨어나 살아 움직인다. 물론 이들이 대적하는 삼적, 이인겸, 길태미(박혁권) 그리고 홍인방(전노민)의 캐릭터와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섯 명의 인물이 어느 하나 처지지 않고 팽팽한 캐릭터의 힘을 유지하며 서로 엮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력 덕분이다. 김명민부터 유아인까지 꽉 채워진 연기. 그것이 <육룡이 나르샤>라는 쉽지 않은 사극을 훨훨 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육룡', 이방원만큼 무휼, 이방지가 기대되는 까닭

 

오늘 첫 방영되는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등장인물에는 반가운 이름이 들어가 있다. 바로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전작이었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 옆을 든든히 지키고 있던 무사 무휼(조진웅)이다. 세종 이도가 글을 세운 문의 힘을 보여준 캐릭터라면 그런 그를 칼을 통한 무로써 지켜주는 인물이 무휼. 무휼은 한글 창제의 이면을 다룬 <뿌리 깊은 나무>가 사변적인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액션 활극으로서 시청자들의 시각적 쾌감을 줄 수 있게 해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그 무휼이 훨씬 젊어진 얼굴(윤균상)<육룡이 나르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무휼 옆에는 또 한 명의 익숙한 이름이 있다. 바로 이 드라마에서 땅새(변요한)라고 불리는 이방지다. 이 캐릭터 역시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장혁)의 무술스승으로 출상술의 대가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 인물(우현이 연기했다)이다. 무휼의 젊은 시절이 다뤄지는 만큼 이방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역시 <육룡이 나르샤>의 중요한 스토리 중 하나가 된다.

 

이처럼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사극이다. 국내의 사극 중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연작이지만 워낙 <뿌리 깊은 나무>가 남긴 강렬한 여운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이 프리퀄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뿌리 깊은 나무>가 조선 건국 후 나라의 기틀이 마련되고 그 위에 세워진 세종 대의 찬란한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육룡이 나르샤>는 바로 그 세종이 훨훨 날 수 있었던 그 기반이 되는 여말선초의 육룡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용비어천가에서 나오는 육룡이란 조선을 개국한 세종의 여섯 선조들을 일컫는 것이지만 이 사극의 육룡은 그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룡은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이라는 실존 역사적 인물들과 무휼, 땅새, 분이(신세경)라는 가상 인물 여섯을 통칭하는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실존 인물들의 역사적 이야기와 그들과 공조하고 대결하는 그 이면의 가상 인물들의 이야기를 합쳐놓은 팩션이다.

 

역사적 사건이 있다면 그 뒤안길에 그 사건들에 의해 한 시대를 이름 없이 살아낸 민초들의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갖는 이야기 구조의 의미다. 따라서 이 사극의 재미는 젊은 이방원(유아인)과 정도전(김명민)의 권력을 향한 욕망과 백성을 위한 혁명 사이에서 부딪치는 대결에서도 찾아낼 수 있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무휼과 땅새, 분이 같은 민초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이야 이미 우리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이미 아는 사실의 재연이라고 본다면 실제로 이 사극의 새로움은 무휼 같은 가상인물에서 나온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육룡이 나르샤>에 들어간 무휼 같은 존재들은 현재의 욕망이 투영된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사극이 과거의 재현이 아니고 현재의 결핍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채워주려는 욕망이라고 본다면, 왜 무휼이나 이방지 같은 가상의 존재들이 이방원이나 정도전, 이성계 같은 실제 역사적 인물만큼 기대감을 갖게 하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왕들의 기록으로 남겨진 용비어천가의 육룡과는 다른 민초들의 기록으로서 다시 쓰는 용비어천가를 말해주는 건 아닐는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