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일수록 더 빛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존재감

 

사회 정의를 위해 그렇게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조명한 주차요원을 무릎 꿇게 한 이른바 백화점 모녀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 정의라는 말이 이렇게 엉뚱하게도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녀에게 사회 정의란 결국 돈이었다. 하루에 7백만 원을 백화점에서 쓸 수 있다는 그 금력이 그녀들에게는 권력이자 정의였던 것.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무릎 꿇으라고 무릎을 꿇었던 주차 아르바이트 요원들의 이야기를 접한 대중들은 청년의 패기를 얘기하며 거부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그 청년의 당장 내야할 등록금 걱정을 들어보니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순순히 무릎을 꿇은 것은 백화점 모녀가 아니라 돈이었다. 한 사람은 돈이 없어 무릎을 꿇고 다른 사람은 돈이 있어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사회 정의라 생각하는 세상. 이건 정상이 아니다.

 

백화점 모녀는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돈의 힘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오래도록 살다보면 그 관성의 힘조차 둔감하게 되는 불감증의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돈 쓰고 이런 모욕을 왜 당해야 하냐고 하는 말은 그렇게 불감증에 이른 상황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이 갑질모녀로 지탄받게 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돈까지 그렇게 많이 썼는데 그런 지적을 받는 것을 오히려 억울하게 생각한다. 자본의 중독이 만들어낸 새로운 병리현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이야기로 문을 연 후, 최근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의 전말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한공의 전 현직 승무원들은 놀라운 증언을 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잘못된 행위가 전혀 놀랄 일이 아닌 일상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놀란 것은 오히려 지금껏 그런 일들이 오너 가족을 통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지만 이번만큼은 이렇게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이었다.

 

그 증언 중에 가장 황당한 건 오너의 가족이 사무장에게 여승무원의 외모를 지적하며 저런 호박같이 생긴 애를 서비스 시키냐고 하자 사무장이 그 여승무원에게 사과를 드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그 여승무원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릎을 꿇고 사과를 드렸다고 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그 비행기의 절대권력 그 자체였다. 이번 땅콩 회항 사건에서 매뉴얼까지 보여주며 승무원의 응대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설득하려 했던 박창진 사무장까지 무릎을 꿇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비행기에서의 매뉴얼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말이지 그런 규정 따위가 아니었다.

 

국토부 증언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스스로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증언한 것은 회사측의 회유와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증언한 후 자신에 관한 루머가 찌라시를 통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심경의 변화를 갖게 됐다고 했다.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걸 굳게 믿는 어머니 앞에서 진실을 알리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만일 진실이 덮였다면 자본의 중독이 만들어낸 이런 비정상적인 회사의 일상은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금껏 일어난 대기업 일가의 사건들을 통해 왜 이런 몰상식이 통용되는 불감증의 사회가 생겨났는가를 들여다본다. 그 사건들은 대부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판결을 받은 채 대기업 일가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건을 무마시킨 법조계 인사들은 어느 새 해당 대기업의 임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즉 잘못을 저질러도 돈만 있으면 풀려나는 유전무죄의 현실이 거기 있었고, 그런 잘못을 덮는 대가로 대기업에 들어와 그 후에도 벌어지는 일가의 사건들을 무마해주는 법조계의 부조리가 있었다는 것. 사회의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법은 무시되었고, 돈이 곧 법이 되었다. ‘땅콩회항의 비행기 안이나 밖이나 똑같은 세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백화점 모녀 사건과 땅콩 회항을 한 아이템으로 다룬 것은 그것이 크건 작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권력이 되고 그것이 심지어 정의라 주장되는 세상이 그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 따위는 무릎 꿇려져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결국 이렇게 부조리하게 묻히던 사건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은 세상에 그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말해준다. 많은 대중들이 사안의 진실을 아는 것과 모르고 덮여지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의 지향점이자 존재 근거다. 알아야 바뀔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새해 벽두부터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개콘> ‘10년 후’, 채무관계를 인간관계로 바꾸는 훈훈함

 

도대체 이 짠함과 웃음의 정체가 뭘까. <개그콘서트> ‘10년 후라는 코너에는 10년 째 빌려간 돈을 받으러 오는 사채업자 권재관이 등장한다. 그런데 돈을 빌린 가겟집 아줌마 허안나를 10년 째 찾아오는 권재관은 겉으로는 사채업자의 으름장을 보여주지만, 그 속내는 완전히 다르다. 10년 전과 후의 모습이 교차하며 전혀 다른 권재관과 허안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 코너가 갖고 있는 웃음의 원천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10년 전의 권재관은 허안나에게 아줌마. 돈 빌렸어요? 남의 돈 안 갚고 살면서 숨 쉬어져 숨쉬어지냐고?”라며 윽박지르지만 10년 후의 권재관은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마치 익숙한 듯 옷을 꺼내 신상품 딱지를 붙여 진열할 만큼 이 가게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 익숙함은 가게 주인인 허안나도 마찬가지다. “아주 이 놈의 가게를 싹 다 엎어버려!”하며 옷을 던지는 권재관에게 10년 전은 두려운 모습이었지만 10년 후는 그 옷을 척척 받아서 진열대에 정리해 놓는 능숙함을 보여준다.

 

나 여기서 돈 받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여.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알겠어?” 권재관이 던진 이 한 마디는 10년 동안 그를 이 작은 가게와 친숙하게 만든 동인이 된다. “아줌마. 오늘은 돈 갚아야지. 어떻게 사람을 여기 10년째 매일 오게 만들 수가 있어.”라는 투덜거림 속에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이 사채업자의 아줌마를 향한 연정을 엿보게 된다.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 같은 영화가 이런 식의 사랑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 바 있다. 사실 채무관계라는 것이 돈을 받아오라고 지시하면서 빚쟁이와 직접적인 대면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감정적 개입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그 돈을 받으러 가는 어찌 보면 똑같이 어려운 현실에 접한 이들에게는 때때로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10년 후의 세계는 그래서 그 10년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옆 가게와 능숙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교환하고 청바지 사이즈가 28이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그게 원래 조금 작게 나왔어라고 말하는 모습은 사채업자라기보다는 가게 주인이나 점원에 가깝다. 바지를 줄여달라면 척척 줄여주고, 그걸 던지면 종이백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는 권재관과 허안나의 모습은 그래서 채무관계를 넘어선 가족관계를 보여준다.

 

이 감상적인(?) 사채업자는 심지어 허안나의 아들까지 챙겨준다. “마 엄마 바쁠 때 나한테 전화하라고 그랬잖아! 내가.”라고 하는 말이나,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 쳤다는 사실에 애를 다그치자 애 때리지 말어! 얘 밤에 알바해.”라고 말하는 권재관에게서는 깊은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헤드폰 갖고 싶다는 아이에게 마네킹에 선물을 걸어놓고 무심한 듯 마네킹이 뭐 하나 사왔나 보지.”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숨겨진 속내가 드러난다.

 

도대체 이 웃음과 짠함이 뒤섞인 ‘10년 후의 감정적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네 사회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려움을 외면한다. 그래서 어려운 일들은 자신의 손을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앞세운다. 세상이 가난한 자들끼리의 경쟁의 장이 되는 건 바로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것을 무수한 콘텐츠를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채업자와 채무자의 관계일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연원관계도 없으면서 오로지 돈 문제 하나로 불행한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10년 후가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꿈꾸는 자그마한 반전이다. 가난한 자들이 경쟁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이제는 그들을 그런 관계로 몰아넣은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된다. ‘큰 형님은 돈 때문에 아줌마의 인생을 종치게 만들려 한다. 거기에 던지는 권재관의 한 마디. “여기서 인생 끝나고 싶어? 여기서 인생 마감하고 싶냐고?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나한테 오든가.” 부채관계가 인간관계로 넘어오는 순간이 주는 그 훈훈함. 이것이 웃기면서도 짠한 ‘10년 후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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