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이 보여준 오디션 심사의 자격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 시즌1의 수훈 갑을 뽑으라면 단연 김태원일 게다. 물론 오디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참가자들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 심사위원이다. 그 참가자들의 가치를 발견해주는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탄>의 심사위원들은 멘토라는 또 하나의 역할도 맡고 있다.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위대한 탄생3'(사진출처:MBC)

시즌1을 온전히 김태원의 오디션으로 만든 것은 그가 오디션의 흐름을 완전히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외인부대(?)를 자신의 멘티로 뽑았지만 그들은 김태원이 그들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새롭게 가치가 매겨졌다. 결국 연변에서 온 백청강이 시즌1의 우승자가 된 데는 분명 김태원의 아우라가 일조한 부분이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김태원이 시즌3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과연 시즌1처럼 시즌3에서도 그의 진가가 대중들에게 통할 것인가. 사실 김태원의 심사평은 어찌 보면 굉장히 유려해 보이지만 어찌 보면 너무 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발성이나 음정 같은 걸 얘기하기 보다는 어떤 표현을 통해 그 심사의 느낌을 전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모호하게도 여겨질 때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즌3에 유독 실력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김태원의 어찌 보면 과한 표현처럼 보이는 심사평은 그것이 진정한 실력자를 만났을 때는 오히려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실력자의 노래에 한껏 시청자들이 느낀 감흥에 김태원의 촌철살인은 그 공감대를 더 크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래를 잘 하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 사람이 바로 그대다(리틀 임재범 한동근).” “<위대한 탄생>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이형은).” “제2의 이문세(제이슨 구라즈 구현모)” “악기 중에 가장 위대한 게 사람의 목소리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는 느낌이 든다(소울슈프림).” <위탄3>에서 김태원의 심사평은 그 표현에 걸맞는 실력자들과 만나 오디션이 갖는 묘미를 살려내고 있다.

 

여기에 김태원은 시즌1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면모도 추가시켰다. 그것은 용감한 형제와 직접적으로 의견 대립을 보이면서 서로 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이것은 오디션 외적인 요소처럼 보이지만 <위탄>이라는 멘토제를 하게 되는 형식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견해에 맞게 멘티들을 뽑을 것이고 그들을 통해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니 말이다.

 

물론 멘토제에서 심사위원 간의 대립은 그 균형감각을 잃게 되면 볼썽사나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위탄2>가 실패한 이유도 거기에 있고, <톱밴드2>가 실패한 이유도 거기서 찾아질 수 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견해를 견지하면서도 다른 음악적 성향을 가진 참가자들(결국 다른 멘티들이 될)에게도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김태원과 용감한 형제는 그런 점에서 잘 맞는 조합이다. 그들은 확실히 음악에 있어 자신들만의 고집이 분명하고 그래서 서로 부딪치는 면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그 툭탁거림 속에는 어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다.

 

김태원은 어떤 면에서는 의도적으로 용감한 형제와 밀당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오디션에서 심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태원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촌철살인 심사는 물론이고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오디션의 묘미를 잘 살려낸다는 것. <위탄3>가 부활한다면 거기에는 시즌1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 김태원의 역할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데렐라 언니', 희생과 용서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전한 감동에는 그저 '슬프다', '기쁘다' 같은 표현으로는 담지 못할 그 무언가가 있다. 누구든 바라보면서 그 몇 줄의 대사를 듣기만 하면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 못하게 만드는 그 감동의 실체는 뭘까. 대성도가의 주인 구대성(김갑수)이 거실 벽면에 붙여놓은 가훈, '역지사지(易地思之)'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를 언니의 입장에서 풀어낸 그 스토리 때문에? 물론 이것이 표면적인 '신데렐라 언니'의 이야기지만 그것만으로 심지어 영혼을 건드리는 듯한 그 눈물의 실체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는 여러 차원의 눈물들을 만들어내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단 한 명의 인물이 있다. 그것은 주인공인 은조(문근영)도 아니고 신데렐라 당사자인 효선(서우)도 아니다. 그저 제 궤도에서 살아가며 버텨내고 있던 인물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뒤흔들고는 스스로 모든 걸 떠안고 가버림으로써 그들을 다시 한 자리로 모아 놓은 인물, 바로 구대성이다. 이 드라마에서 구대성은 자상한 남편에 아버지로서 완벽한 인간의 표상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배신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고, 아들처럼 여기던 기훈(천정명)이 사실은 다른 목적을 갖고 대성도가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으로 죽어가면서도 그를 용서한다. 이것은 범인의 모습이 아니다. 차라리 성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이야기 구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모티브를 닮았다.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통해 거의 완벽한 사랑을 전하고는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구대성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해서 부활한다. 대성도가에 남은 가족들, 은조를 포함하여 효선, 아내인 송강숙(이미숙) 그리고 막내 준수는, 대성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의 사랑을 느낀다. 그의 사랑은 대성도가 구석구석에, 그가 남긴 일기장에, 준수의 스케치북 속에도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랑의 힘은 남은 가족들을 변화시킨다. 구대성의 희생은 사랑으로 부활하고, 그것은 남은 사람들을 참회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가족을 결속시킨다.

은조는 뒤늦게 대성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는 차마 부르지 못했던 이름, "아버지"를 부르며 목 놓아 운다. 독하디 독한 계모 송강숙(이미숙)은 스스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뜯어먹을 게 있어 좋다"던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 구대성(김갑수)의 무차별적인 사랑 앞에 세파에 말라버렸던 그녀의 눈은 결국 눈물을 흘린다. 구대성이 전한 '대가없는 사랑'은 그대로 효선에게 똑같이 이어지고, 막내 준수의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심지어 자신으로 인해 구대성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죄의식을 가진 기훈은 이제 그 희생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대성도가 사람들을 살리려 한다.

이 우리의 가슴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희생과 용서에 관한 원형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 '신데렐라 언니'는 그런 의미에서 희생과 용서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구대성이 희생을 통해 전한 사랑으로 인해, 남은 이들은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송강숙이 친구의 딸이 자신의 엄마 때문에 우는 모습을 보고 "그게 그렇게 속상해? 미안해. 그게 그렇게 속이 상하는 줄. 어린 것이 그렇게 피눈물 흘리는 줄 어떻게 알았겠냐. 미안해. 미안해."하고 말할 때, 그녀의 앞에는 또한 은조가 서 있었을 것이다.

툭하면 "마귀할멈!"이라고 독한 소리를 해대는 준수의 스케치북에서 가족들 그림 속에 자신만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쩌면 은조는 준수의 독한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늘 웃고만 있는 기훈의 눈물을 보고는 "이제 나한테 기대"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은조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락바락 소리를 치면서도 절대 기대려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대성이 남긴 가훈, '역지사지'처럼,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될 때, 그들은 드디어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딸이며 누구의 자매이고 누구의 애인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껴안게 된다.

구대성의 희생적인 사랑이 남은 사람들을 서로 용서하게 만들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게 하는 이 드라마는, 은조의 표현대로, "뭔가 딱딱하게 뭉쳐져 있었던" 것을 녹작지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무기력할 정도로 약하디 약한 우리네 인간이 살 수 있는 힘은 어쩌면 그 거대한 사랑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 속에서 타인을 자신처럼 이해하면서 똑같은 가녀린 존재로서 서로를 기대는 일일 것이다. 비록 신데렐라 이야기의 모티브를 빌려왔지만,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깊은 울림을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이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문학 같은 드라마가 주는 울림을 온전히 시청자들에게 전한 건 이른바 진정성으로 무장한 연기자들의 연기 덕분이다. 우리는 문근영을 통해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던 은조를 이해하게 됐고, 서우를 통해 미움조차 이겨내지 못하던 사랑만 알던 효선의 성장을 보게 됐고, 이미숙을 통해 처절한 삶 속에서 사랑 없이 살아오다 덜컥 사랑을 알아버린 송강숙을 바라보게 됐고, 김갑수를 통해 자신이 부정당하면서도 결국은 모두를 끌어안은 그 큰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다. 또한 천정명의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와 택연의 마음까지 밝게 만드는 웃음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빙의된 연기가 있어 가능했다. '신데렐라 언니'가 전하는 결코 범상치 않은 큰 사랑의 이야기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