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진 PD의 몰카는 왜 특별할까

 

<12> 유호진 PD가 또 멤버들에게 당했다. 1주년을 맞아 미스에이 수지를 데려오라는 미션에 엉뚱하게도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 이수지를 부른 출연자들은 그녀에게 유호진 PD를 전화로 속여달라고 요청했다. ‘황해에서 보이스피싱을 했던 그 경험(?)이라면 충분히 그를 속일 수 있을 거라는 것. 실제로 그녀는 수지의 소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 매니저를 사칭해 유호진 PD에게 항의전화를 했고 거기에 그는 깜박 속아 넘어갔다.

 

'1박2일(사진출처:KBS)'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해 그 날의 미션을 정산하면서 차태현을 통해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게된 유호진 PD는 특유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황당해했다. 출연자들은 유호진 PD가 당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12>은 이명한 PD부터 나영석 PD 그리고 최재형 PD 등을 거치면서 PD들이 출연자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여러 번 연출해왔다. 그런데 역시 당하는 PD로서의 백미는 유호진 PD. 이상한 일이지만 그가 당할 때면 오히려 그만의 매력이 묻어난다.

 

사실 유호진 PD라는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도 <12> 시즌1에서 신입PD로 들어온 그가 강호동에게 몰래카메라를 당했던 순간부터였다. 마치 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한 강호동과 다른 출연자들 사이에서 유호진 PD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여줘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간 <12> 시즌3PD로서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는 소식에 시청자들이 반색한 건 그 때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유호진 PD의 무엇이 그가 당하는 일종의 몰래카메라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몰래카메라를 통해 그에게서 보이는 어떤 빈 구석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PD라는 위치는 무언가를 지시내리는 의 입장에 서기 마련이다. 따라서 출연자에게 더 집중하고 애정을 갖기 마련인 시청자들에게 자칫 잘못하면 그 갑의 지시는 탐탁찮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다르다. 물론 PD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미션의 결과에 따라 복불복 벌칙을 수행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몰래카메라를 통해 드러나는 모습은 그런 단호함과는 사뭇 다른 인간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또한 그가 프로그램을 걱정하고 출연자들을 걱정하는 그 마음이 묻어난다. 1주년을 맞아 출연자들끼리 촬영하라고 카메라를 건네주고도 마치 강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듯 그것이 못내 불안해 미행을 붙이는 것에서도 그런 마음은 묻어난다.

 

유호진 PD<12>의 수장으로 앉힌 서수민 PDPD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성이라고 말하며 유호진 PD의 따뜻한 성품을 얘기한 적이 있다. 독하게 PD로서 뭔가를 밀어붙여도 그에게서는 인간미가 묻어난다는 것이다. 서수민 PD의 이 말은 현재의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얘기해준다.

 

요즘처럼 제작진들까지 드러날 정도의 리얼로 가는 예능 환경에서 PD의 성품이나 성향은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콘텐츠에 대한 호감은 바로 그걸 만드는 이의 성품에서 비롯되는 일일 수 있다. 나영석 PD표 예능에 그의 깐족대길 좋아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속내가 드러나듯, 유호진 PD<12>에도 그만의 소시민적이면서도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왠지 모르겠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유호진 PD의 그 성품. 바로 그것이 어쩌면 <12> 새로운 시즌의 1주년을 부활로서 받아들이게 한 진짜 요인인지도 모른다.

 

김태원, 이젠 말보다 음악에 집중해야할 때

 

최근 부활의 김태원은 예능중단을 선언했다. 그간 <남자의 자격>에서 국민할매로, <위대한 탄생>에서는 국민멘토로까지 불렸던 그였다. 그는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예능에서도 발군의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끔 참여한 토크쇼들에서도 그는 큰 웃음을 주는 한 마디 한 마디와 함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촌철살인의 말들로 단연 돋보이는 게스트였다. 토크쇼, 리얼 버라이어티쇼, 오디션 프로그램, 관찰예능까지. 실로 김태원은 최근 몇 년 동안 예능이 발견해낸 대단한 가능성 중의 하나가 분명했다.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그런데 그가 돌연 예능중단을 선언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서란다. 새로운 앨범 작업에 오롯이 몰두하겠다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했을 때 딸 서현 양이 같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사실 그에게는 음악적인 이유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예능은 그에게 현실적인 것들을 제공해주었지만 그는 결국 아티스트다. 음악이 아닌 예능으로 이름을 떨치고 돈을 버는 것이 성에 찰 리가 없다.

 

물론 아티스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본분인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다. 최근까지의 그의 행보를 보면 그러나 부활의 김태원보다는 예능인 김태원으로서의 존재감이 거의 압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예능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냈던 노래들은 특유의 록 발라드가 갖고 있는 감성적인 멜로디가 여전히 돋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너무 비슷비슷한 멜로디의 동어반복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항간에는 이제 몇 소절의 멜로디만 들으면 그 곡이 김태원의 곡이라는 걸 알아챌 정도라는 얘기도 나온다. 자신만의 풍이 있다는 것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김태원의 최신 곡들을 부활의 초창기 앨범들과 비교해보면 그 날카로운 면들이 많이 무뎌진 느낌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노래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전히 괜찮지만 과거 우리가 부활에서 기타치며 노래까지 하던 김태원의 아우라와 기대감에는 못 미친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태원이 아닌가.

 

여러모로 예능을 하며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그나마 김태원을 버티게 해준 건 <남자의 자격>을 하며 앞에서 이끌어주었던 이경규라는 존재 덕분이었지만 프로그램이 종영하면서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 예능 이미지로 자꾸만 굳어지면서 흐려지는 록커로서의 이미지는 부담이었을 게다. 국민 할매라는 친근한 캐릭터는 물론 좋지만 기타를 들기조차 힘들 것 같은 그 이미지는 음악에는 결코 좋을 수 없다.

 

최근 김태원은 모 라디오 방송에 나와 과거 “부활에서 보컬을 마음대로 교체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이 방송에서는 뒷담화를 하던 이승철에게 변진섭이 일침을 가해 머쓱해했다는 이야기도 내놨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나름 쿨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다. 과거 김태원이 <놀러와>나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이러한 과거 회고담을 꺼냈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사뭇 달라졌다. 공감도 있지만 비난에 가까운 악플도 적지 않게 보인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것은 김태원이 그간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출연하면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능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무에 잘못됐냐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김태원이라는 아티스트의 색깔을 없애는 쪽으로 작용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중들에게 김태원은 어느 순간 음악은 잘 들리지 않고 말만 무성해진 그런 존재로 이미지화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예능 중단을 선언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면 이제 말이 아니라 음악에 매진할 일이다. 지금은 대선배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며 젊은 세대들까지 음악으로 소통하는 시대다. 조용필의 ‘바운스’가 그렇고, 여전히 매력적인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고 있는 신승훈의 신보가 그렇다. 부활이 진정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예능이 아닌 음악으로.

<슈스케5>, 박시환의 부활을 기대하는 이유

 

‘탈락’이 적힌 편지를 받은 박시환은 진짜 탈락할 것인가. 박시환은 이번 <슈퍼스타K5>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후보자다. ‘제2의 허각’이라는 닉네임이 나올 정도의 사연을 가진 인물. 매년 <슈퍼스타K>에 도전했던 이력. 정비공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하며 노래를 놓지 않았던 그다. 첫 출연에 볼트를 쥐고 노래하는 모습은 그래서 대단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슈퍼스타K5(사진출처:mnet)'

하지만 그는 노래에 있어서 기초가 없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다. 기본기가 부족해 고음에서는 약간 불안한 느낌을 주었고 디테일들이 잘 살아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몇 차례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구제되는 걸 반복했다. 특이한 것은 그런 탈락과 구제의 과정 들을 박시환은 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번 탑10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아일랜드 미션에서도 김광진의 ‘편지’를 부르고 결국 탈락이 적힌 편지를 받게 되었던 그였지만 그는 약간의 아쉬움을 표현했을 뿐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런 담담함 혹은 체념(?)은 박시환이 그간 살아온 힘겨웠던 삶을 잘 말해준다. “그동안의 인생은 그냥 사는 거였어요. 지금은 제 의욕을 갖고 살아 보려는 거 같아요. 사는 거 같아요.” 그는 이렇게 지금 현재를 즐거워하면서도 “자격도 없는데...”라며 자신을 낮추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변방에서 잉여처럼 치부되며 살아온 이들의 자기 보호본능에서 비롯된 습관 같은 것일 게다. 무수한 상처에 익숙해지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 하지만 이 약간은 쓸쓸하고 슬픈 정조가 박시환에게 특별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족한 디테일들이 묻힐 만큼 그의 떨림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광진의 ‘편지’는 그래서 온전히 박시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기나긴 그대 침묵은 이별로 받아두겠오.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오. 이맘만 가져가오.’ 여기서 ‘그대’는 심사위원 혹은 <슈퍼스타K5>를 지칭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무나 함께 하고 싶지만 늘 떠나는 것(탈락)을 준비하고 있는 박시환은 결국 탈락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역시 그는 담담했다. 하지만 곧 이것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이번 <슈퍼스타K5>는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와의 줄다리기가 치열했던 오디션이었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적응된 시청자들에게 반전을 선사하기 위해서, “패자부활전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블랙위크’ 같은 새로운 제도를 신설했으며, 아일랜드 미션에서는 미리 합격과 탈락을 적어놓은 편지를 통해 막판에 운명을 뒤집는 오디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나왔고, 그 흐름을 이제는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는 시청자들. 그래서 <슈퍼스타K5>가 선택한 것은 마지막 한 자리를 온전히 시청자의 투표로 남겨놓는 것이었다. 과연 박시환은 이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제2의 허각’이라는 닉네임처럼 그는 이 시대에 잉여로 치부되는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체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그 얼굴이 다시 꿈을 노래할 수 있다면.

<상어>, 복수극과 멜로 사이에서 길 잃었나

 

박찬홍 감독에 김지우 작가. 드라마를 좀 봤다 싶은 시청자들에게 이 이름은 각별할 것이다. <부활>과 <마왕>이라는 이들의 전작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모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가 보였던 꽉 짜인 스토리 전개를 시청률이 따라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상어(사진출처:KBS)'

<상어>는 이들의 아우라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 전부터 김남길과 손예진의 합류로 기대감을 한껏 모았던 것도 전작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그것은 전작들이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점. 따라서 마니아 드라마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안 나와도 호평은 받는.

 

하지만 <상어>가 과연 마니아 드라마일까. 아마도 1,2년 전만 해도 그런 호칭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추적자> 같은 작품이 복수극과 사회극의 접점으로써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싸인> 같은 작품 역시 형사물이나 스릴러는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뒤집은 바 있다. 그렇다면 <상어>는 이들 작품과 비교해 과연 웰 메이드라 말할 수 있을까.

 

<상어>의 이야기 구조는 <추적자>와 유사하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이 그렇고,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갖고 있는 것이 그렇다. <상어>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오현식(정원중)이 진실을 위해 과거를 파헤치려는 검사 며느리 해우(손예진)에게 “묻어둬. 과거란 들출 때만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즉 이 드라마는 우리의 근대사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뿌리 깊은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가야호텔그룹 회장인 조상득(이정길)은 그 과거사를 덮으려 하는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이수(김남길)와 가족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조상득의 손녀 딸인 해우는 조상득의 과거사와 연관된 오현식의 아들 준영(하석진)과 결혼함으로써 복잡한 가족 내의 숨겨진 갈등이 생겨난다. 기성세대들은 과거사를 덮으려하고 이수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의 친구(이자 여전히 연인)들은 그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한다.

 

그리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전작과는 달리 주제의식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드라마의 대중적인 코드들에 더 충실해졌다. 이수가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복수극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몰라보는 이수와 해우 사이의 안타까운 멜로나, 이수와 준영 사이의 우정 또는 이수와 관계된 과거 인물들(동생, 친구 등)과의 만남 등에서 머뭇대고 있는 건 그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나는 시퀀스들이 전형적인 드라마들의 성공방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어>의 연출력은 ‘웰 메이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또 이를 연기하는 김남길이나 손예진의 호연 또한 볼만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어딘지 너무 지지부진하게 여겨진다. 이수의 말 한 마디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해우로 하여금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를 뒤흔드는 시퀀스들은 너무 반복되면서 지루해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물론 과거의 불편한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만들어낸다.

 

<상어>는 멜로와 복수극이 얽혀있는 드라마다. 복수극이 드라마의 속도감을 만들어낸다면 멜로는 감정을 덧붙인다. 이 두 가지가 잘 엮어진다면 그 힘은 의외로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어>는 멜로의 늪에 빠져 복수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파헤쳐야할 검사 해우의 혼돈과 방황에 드라마가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수의 복수극은 물론 여타의 복수극과는 다르다. 그것은 해우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에 얽혀 있는 불편한 과거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우를 사랑하는 이수 역시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진실을 그녀 앞에 내놓으면서도 “도망치라!”고 분열되는 것. 이것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비장미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감정에 드라마가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좋은 설정마저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된대.” 이것은 이수가 처한, 진실을 밝혀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해우는 상어 조각을 만들어 이수에게 주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부레도 만들어 줬어. 언제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게 하려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수에 대한 해우의 사랑을 담고 있다. <상어>가 더 속도감이 있어지려면 안타까워도 해우가 달려 하는 부레를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 상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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