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꼭 잡고’가 말하려는 것, 불륜보다 불안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불안하게 하는 걸까. MBC 수목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어딘가 불안함을 느끼는 중년들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가족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뇌종양은 아닐까 불안감을 느끼는 남현주(한혜진). 한 때는 ‘아시아의 가우디’, 천재적인 건축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생산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7년 간이나 일거리 없이 직원 월급도 못주고 살아왔던 김도영(윤상현)이 그들이다. 

첫 회에서 남현주는 병원에서 뛰어나오며 너무 기뻐 넘어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검사에서 종양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것. 하지만 지나치게 기뻐하는 그 모습 자체가 어딘가 불안감을 만들었다. 그것은 김도영도 마찬가지다. 그는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건축설계 제안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제 어려웠던 시절을 다 끝났다며 아내 남현주에게 그 기쁨을 전한다. 결혼기념일에 종양이 아니라는 판정도 받고, 사업 제안까지 받게 된 이 부부는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를 불안감이 조금씩 그들 사이에서 피어난다.

결국 불안은 현실로 다가온다. 남현주는 김도영을 예전부터 좋아했던 신다혜(유인영)가 나타나 이제 남편을 빼앗겠다는 선전포고를 듣고, 병원에서 자신을 검사한 장석준(김태훈)으로부터 자신이 오진을 했다며 종양이 있을 수 있다고 다시 검사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김도영은 계약이 파기될까 노심초사 하던 차에 결국 계약하는 당사자가 신다혜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그 계약이 자신들 부부에게 위기로 다가올 거라는 걸 직감하기 때문이다.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그래서 그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중년부부에게 닥친 위기와 함께 이들에게 불안감을 야기하는 불륜 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신다혜가 선전포고를 했던 것처럼 그는 일을 빙자해 김도영에게 접근할 것이고, 종양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에 떠는 남현주는 그가 치료를 거부하자 집까지 찾아온 장석준과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런 중년의 불륜이라기보다는 중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의 불안에 더 가깝다. 젊은 시절에는 몰랐던 것들이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차츰 피어오르는 불안감들. 그것은 건강의 문제일 수 있고, 또 사업이나 생계의 문제일 수 있다. 남현주가 가진 종양은 단지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몸에 반응을 일으켜 매사에 감정적으로 예민해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남현주의 모습은 때론 지나치게 기뻐하다가 때론 지나치게 침울해지고 때론 과도하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변하는 자신이 그래서 더더욱 불안해진다.

김도영이 하는 일은 단지 사업의 성패를 떠나서 건축가라는 그 직업인으로서 인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로 다가온다. 젊은 나이라면 그런 성패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겠지만 중년의 나이라면 그것이 마치 그 사람의 삶 자체를 규정해버리는 듯한 느낌 때문에 더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불안해진다. 잘 되는 일도 그것이 순식간에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라는 제목은 꽤 문학적인 수사로 다가온다. 중년의 부부가 마주하게 되는 죽음은 마치 저 지는 석양과 같다. 그걸 바라본다는 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불안한 중년의 삶을 지탱해지는 건 옆에 ‘손 꼭 잡아줄’ 사람이 있어서다.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불안한 그 현실 앞에서 오히려 그 부부의 마지막을 함께 바라보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담는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바쁘게 살다보니 그 소중함을 잠깐 잊고 있던 그 존재가 이제 저 끝을 바라보면서 더 없이 소중해지는 그 순간. 중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사진:MBC)

‘부암동 복수자들’, 세상은 넓고 복수할 일들은 넘쳐난다

이 통쾌함과 훈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복수’라는 장르적 틀을 충실하게 따르는 드라마다.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있고 그들에게 당한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 피해자들이 모여 ‘복수자 클럽’을 만든다. 그리고 응징한다. 전형적인 복수 장르의 틀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그런데 <부암동 복수자들>이 주는 ‘복수’의 양태는 그 정서적 느낌이 다르다. 그것은 이 복수자가 된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이 환기시키는 현실 때문이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아들을 들인 남편 때문에 분노하는 정혜(이요원), 서민으로서 자식을 위해 갑질 앞에서도 눈물을 참고 무릎을 기꺼이 꿇는 도희(라미란)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점잖은 교수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 고통 받는 미숙(명세빈)은 각각 외도와 갑질과 폭력이라는 사회적 사안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특히 공분할 수 있는 사안들이지만 크게 보면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이 주는 분노라는 점에서 보면 딱히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이들이 저마다 가진 사안들이 환기시키는 현실들은 이 복수가 사적인 차원의 것 이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복수 자체가 현실에 대한 강력한 풍자이며 비판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복수자 클럽에 이수겸(준)이라는 유일한 남성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물론 이수겸은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미성년으로서 그 자체가 사회적 약자다. 그런 점에서 이 여성들과의 연대가 그리 이질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미성년의 인물이 복수하려는 대상이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을 낳아준 부모들. 이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낳아주기만 하면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자신을 온전히 키워준 할머니가 그에게는 유일한 부모다. 그래서 자신을 낳고는 사실상 버린 부모들은 복수 대상이 된다. 그 부모들이 이수겸을 현재 원하는 이유는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인 이병수(최병모)는 대를 이어 재벌가에서의 입지를 가지려는 것이 목적이고, 생모인 수지(신동미)는 아들을 통해 한 몫 잡으려는 속셈이다. 심지어 수지는 할머니가 있는 산소 땅과 집마저 팔아버리려 한다. 자본의 힘은 자식마저 이용하는 비정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수겸의 복수가 말해주는 건 자본화된 비뚤어진 세상에서 잘못된 어른들에 대한 응징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 네 명의 복수자 클럽이 완성되는 걸 보여주는 첫 복수전으로서 성추행을 일상으로 아는 교장을 그 대상으로 세웠다. 물론 그 복수의 방식은 엉뚱한 면이 있다. 교장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 처벌을 받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자에 접착제를 붙이고 설사약을 먹여 곤혹스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건 이 복수자 클럽이 던지는 경고 메시지였지만 그래도 진정한 복수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몇몇 소극적인 복수의 장면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라도 어떤 응분의 대가를 받는 이들이 현실에서는 보기가 더 힘드니 말이다. 또한 복수와 함께 이 복수자클럽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그 연대의 모습이 주는 훈훈함을 빼놓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복수 그 자체보다도 <부암동 복수자들>에 시청자들이 매료되는 지점은 바로 그들 간의 연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현실화되기 쉽지 않은 복수보다 서로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그 힘은 어쩌면 그 복수를 현실화시킬 수도 있으니.

김원해에 이어 정상훈, ‘SNL’의 숨겨진 배우들

우리에게 그저 tvN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양꼬치 앤 칭타오’로 알려진 코미디 배우 정도로 여겨져 왔던 정상훈.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는 그의 배우로서의 새로운 면면이 있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줬다. 코미디 연기에도 어떤 수준 이상의 레벨이 있다는 걸.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우아진(김희선)의 남편, 안재석이라는 역할은 사실상 국민비호감이 될 만한 캐릭터다. 딸의 미술선생과 바람이 나고 결국은 그 사실을 들켜버렸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은 그 내연녀와 헤어질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아내인 우아진과 이혼할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인물. 그래서 우아진을 복장 터지게 하는 그런 인물이다. 

사실상 안재석 같은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신랄하게 비판해내려는 ‘도덕적 해이’의 수준이 불감증 단계에 이런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재석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안태동 회장(김용건)이 해왔던 ‘도덕적 해이’의 삶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안재석이라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품위 있는 그녀>는 이런 인물에 대한 비판을 심각한 사회극으로 담기보다는 냉소가 곁들여진 풍자극으로 담아내려 했다. 안재석은 그래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뒷골을 잡게 만드는 인물이지만, 어딘지 그 황당함과 코믹함이 웃음을 터지게 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안재석의 행태를 보며 그 황당함에 실소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부조리한 저들의 삶에 다가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정상훈이라는 배우가 이 안재석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냈다는 점이다. 미움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밉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면면까지 있는 철부지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흔히들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코미디 연기로서 세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역할의 쉽고 어려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악역과 코미디 연기 중 더 어려운 건 무엇일까. 언뜻 보기엔 악역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상 배우들은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지목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정상훈이 <품위 있는 그녀>에서 해낸 안재석 연기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tvN [SNL코리아]의 고정 크루들 중에는 정상훈처럼 의외로 단단한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김원해 같은 배우가 그렇다. 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 역할을 연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아수라>에서 작대기 역할로 놀라운 에너지를 보여준 배우. 코미디 연기로 먼저 대중들에게 다가왔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배우가 이제 김원해에 이어 장상훈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코미디 배우를 조금 낮게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편견이라는 걸 깨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김원해나 정상훈 같은 연기자들이 제대로 그 연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품위 있는 그녀>는 물론 김희선과 김선아의 연기를 보는 맛이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 그 바탕을 깔아준 정상훈의 코미디 연기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품위녀’, 진짜 품위란 김희선처럼 해야 얻어지는 것

도대체 품위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 것일까.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모든 걸 던져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박복자(김선아) 같은 인물이 마치 가시가 바짝 세워진 고슴도치처럼 모든 이들에게 공격적이지만 유독 우아진(김희선) 앞에서만은 약해지는 모습이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사무실까지 찾아와 그녀에게 칼을 들이대고 난동을 피운 죄로 안재구(한재영)가 경찰서에 수감되고 그녀는 결코 그를 꺼내줄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우아진이 나타나 그녀에게 그걸 요구하자 그녀는 선선히 받아들인다. 어찌 보면 박복자는 우아진이 자신을 찾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꺼운 마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우아진의 남편 안재석(정상훈)이 바람을 피우는 내연녀 윤성희(이태임)의 머리채를 잡은 것도 박복자였다. 그녀는 우아진을 위해 그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자신이 하겠다며 자신의 방식으로 윤성희에게 복수를 해주었다. 그건 단순히 자신의 이익으로만 행동하는 박복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어찌 보면 우아진에 대한 호의의 행동처럼 보였던 것. 

안태동 회장(김용건)의 집에서 박복자는 모두가 적이다. 물론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안 회장이 그녀의 든든한 지지자이기 때문에 그녀를 어떻게 하지 못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그녀를 곱게 바라보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들인 천방순(황효은)이나 그녀와 함께 일을 공모했던 구봉철(조성윤)까지 그녀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권력을 손에 쥐자 측근조차 밀어내는 박복자의 행보가 그들까지 변화하게 만든 것이다. 

거꾸로 우아진은 그 집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호감을 갖는 인물이다. 회사에 문제가 터졌을 때 안태동 회장이 먼저 찾은 인물은 아들이 아니라 바로 우아진이었다. 그녀가 가진 합리적인 해결 방식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복자가 그 집에 들어와 회장을 끼고 농단을 시작할 때, 그 집에서 일하는 이들은 새삼 우아진이 했던 남다른 행동들(자신들의 자식들 생일까지 챙겨주고 가족 같이 행동하던)이 얼마나 품위가 있었는가를 깨닫게 됐다. 

모두가 적인 박복자와 모두가 지지하는 우아진. 두 사람의 대결구도가 세워졌지만 이미 그 게임은 그래서 결판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는 박복자가 그 집안의 실권을 모두 장악했고, 심지어 안태동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온전히 그녀에게 넘겨주려 하고 있으며, 반면 우아진은 그 집을 나와 남편과의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박복자조차 마음이 가는 우아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권위라는 것이 가진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평상시 행동들이 축적되어 나오게 되는 진정한 품위로부터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품위는 해준 만큼 고스란히 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보이면 똑같이 그것이 그녀의 품위로 돌아온다는 것.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확장해서 생각하면 한 나라의 권력이라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얻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품위를 통해 진정한 권위로서 세워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제 아무리 권력에서 밀려났다고 해도 그가 추구하는 행위들이 어떤 품위로 다가올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지지는 분명히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 <품위 있는 그녀>의 대결구도가 그저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치정의 이야기 그 이상으로 느껴지는 건 그 상황 자체가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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