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함에 대한 공감, <질투> 조정석과 <이번 주> 이선균

 

JTBC 새로운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제목이 말해주듯 아내의 바람을 의심하는 남편의 찌질한 시선이 담긴 드라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온 문자메시지에서 호텔에서 만나자는 내용을 본 도현우(이선균)는 아내 정수연(송지효)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지고 그 문자메시지에 담겨진 호텔에서 만나자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진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10년 차 별 볼일 없는 외주프로덕션 PD로 생활해오고 있는 도현우는 마침 불륜 남녀를 소재로 아이템을 기획하면서 회의에서 나오는 말들조차 참아내기 어렵게 된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기를 내 아내에게 그걸 캐묻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글로 조언을 구하게 된다.

 

2007년 후지TV에서 방영됐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어딘지 우리가 봐왔던 불륜 소재의 드라마와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내의 불륜 징후를 알게 되고 전전긍긍하는 남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륜을 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나, 또 불륜에 대한 복수나 아픔을 담는 이야기하고도 다르다. 특히 남편의 불륜이 아닌 아내의 불륜을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물론 이런 도발적인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면서 우연히 그 사연을 게시판에 올리게 되고 그걸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랑과 결혼 같은 부부관계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를 발견하는 쪽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어찌 보면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관계는 익숙해지는 만큼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배우자가 자신에게 대단한 존재인가를 깜박 잊고 살아간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여기에 일종의 위기상황을 집어넣어 그 반응을 통해 잊고 있던 관계를 다시금 확인시키고 회복시키려는 실험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이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도현우의 찌질한 반응들이다. 아내를 의심하고 괜스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흥신소를 찾아가 증거를 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 이 남자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공감이 간다. 아내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지도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이를테면 문자를 주고받는)을 보이면 괜스레 주변을 빙빙 돌며 유도 심문하듯 질문을 던지는 남자. 그러면서도 결혼기념일에 모든 걸 털어내려 선물을 준비하는 남자에게서 어떤 따뜻한 인간미 같은 게 느껴진다.

 

멋지게 포장하기 보다는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떤 면에서는 찌질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공감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갖고 왔지만 어떤 따뜻함 같은 게 느껴지고, 특히 이 남자 도현우가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는 찌질한 남자들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조정석)이나 MBC <쇼핑왕 루이>의 루이(서인국) 같은 캐릭터들이 대표적인 찌질한 남자들일 것이다. 잘난 척 하기보다는 떼쓰고 잘 삐치고 징징대는 남자. 과거 그 많던 멋진 실장님들이나 현대판 왕자님들하고는 너무 다른 남성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도현우 역시 바로 그런 캐릭터들 중 하나다.

 

그런데 도대체 그 잘난 왕자님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찌질한 남자들이 차지하게 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현실을 알게 된 시청자들에게 왕자님 같은 막연한 판타지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그보다는 조금 찌질해도 그것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나아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런 현실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커져 있다는 걸 이들 캐릭터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항>, 우연을 인연으로 엮어주는 공간의 마법

 

온 우주가 엮어주는 인연? 그들은 어떻게 그리도 우연의 만남이 반복되는 걸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와 서도우(이상윤)는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인연은 최수아의 딸 효은(김환희)과 서도우의 딸 애니(박서연)가 유학중 홈스테이 룸메이트로 지낸 데서부터 시작한다. 애니가 사고로 죽자 딸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러 가는 길에 최수아와 서도우는 만나고 마침 애니의 유품이 든 가방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걸 기다리며 두 사람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애니의 죽음은 최수아와 서도우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그것은 딸을 둔 부모로서의 공감대이면서 죽음을 애도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대이기도 하다. 그 공감대는 그래서 두 사람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이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는 걸 알게 되고 모든 일들이 뒤틀어지게 되면서 최수아는 더 이상 서도우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자신의 일탈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잘못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결국 최수아는 딸을 데리고 무작정 떠난 제주도에서 다시금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최수아와 서도우의 끊어져보였던 인연은 다시금 제주도에서 이어진다. 그것은 최수아가 막연히 꿈꾸던 공간이 바로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조용한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들을 볼 수 있는 제주도의 한 마을이었고, 마침 돌아가신 서도우의 모친이 자신의 매듭 작품이 전시됐으면 하는 공간으로 이야기한 곳이 바로 제주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 밑에는 필연이 감춰져 있다. 즉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나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최수아가 했던 제주도의 어느 바람 많지만 조용한 곳의 이야기는 어쩌면 서도우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그녀의 작품 전시 공간을 생각할 때 막연히 떠올렸을 풍경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저 마다 겪게 된 절망감(최수아는 남편과 친구 문제로 서도우는 어머니의 죽음으로)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라는 공간을 떠올렸고 찾아왔을 수 있다.

 

물론 이건 추정이지만 이야기는 독자들의 추정을 하나의 개연성으로 삼기도 한다. <공항 가는 길>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만남이 그저 우연의 남발이 아니라 어딘지 신비로운 인연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런 만남은 사실 굉장히 확률이 낮은 것이지만, 공항이나 제주도 같은 특정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매개로 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욕망과 그들이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했던 이야기들 같은 것들이 얹어지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는 만남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것은 공간의 마법이다. 우리는 공간을 그저 물리적인 위치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간이 머금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우연히 아는 사람을 어떤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어떤 경우에는 두 사람이 똑같이 떠올리는 어떤 공통의 기억이 그들의 발길을 그 곳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

 

<공항 가는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주로 공항에서 만나게 되는 건 그 공간이 주는 상징(일탈의 설렘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곳이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굉장히 확률이 낮은 일이지만, 그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그들의 발길을 어느 한 공간(그것도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으로 향하게 하고 그래서 거기서 우연히 그들이 만나게 되는 일은 그래도 가능할 것 같은 일이다.

 

<공항 가는 길>의 이 공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만남과 헤어짐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만남과 헤어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하늘 위에서 공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헤어진 사람들이 그들이 나누었던 어떤 작은 이야기나 기억 같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는 그 과정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관조적 관점은 우리가 인연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신비함을 드러내면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준다. 마음 아픈 이별을 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만날 사람은 그 공유된 기억을 통해 발길이 이끌린 어떤 공간에서 결국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 가는 길> 김하늘에 대한 깊은 공감이 말해주는 것

 

어쩌다 그녀는 모든 걸 잃어버렸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에게 남편 박진석(신성록)당신이 생각하는 방식, 움직이는 소리도 싫다.”는 막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침착하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싫다는 소리 직접 듣는데 진상 손님 같아. 아무 느낌이 없어.”라고 말한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남편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그녀는 박진석이 자신의 절친인 송미진(최여진)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데 그 절망은 남편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보다 더 오래 알아왔던 송미진이 자신에게 그녀와 남편 사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 숨겨왔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다. 송미진은 박진석이란 인간이 자신과 동거하면서도 최수아를 만나는 나쁜 인간이라는 걸 숨겼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최수아와 송미진의 그 끈끈했던 우정은 금이 가 버린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 때문에 딸 효은(김환희)이 방치되는 걸 새삼 깨닫고 왜 이렇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껴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러니 이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기댈 곳은 자신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서도우(이상윤)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때문에 그에게도 이별통보를 한다. 망쳐진 모든 관계들이 마치 자신이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 것 때문인 것처럼 여겨져서다.

 

<공항 가는 길>은 애초부터 최수아의 비극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남편은 그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젊은 여자들이나 힐끔거리며 심지어 그녀를 멀리 보내려고만 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의 절친이었던 송미진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딸 효은을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면서, 일하면 일한다고 구박하고 일 그만두면 그만뒀다고 뭐라 하는 시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서도우라는 인물은 위안이자 위로일 수밖에.

 

결국 불륜이라는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공항 가는 길>이 전하고 있는 건 결코 살기가 녹록치 않은 중년의 삶에 어떤 작은 위로와 위안이다. 최수아의 표현대로 하루하루를 미친 년처럼 뛰어다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버텨내는 삶에 던지는 작은 위로. 그것은 그녀를 누군가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때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떤 것일 수도 있고, 피곤한 삶에서 잠시 비껴나 낯선 고택의 아무 것도 없는 방안에서 취하는 잠깐 동안의 낮잠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 가는 길에서 느끼는 그 감정들. 도시의 피곤과 그 속에서 관계들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상처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영혼을 잠식해가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들 같은 것들로부터 잠시 동안이지만 떠날 때 느끼는 그 위안. 물론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위안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최수아에게 공항 가는 길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다. 승무원일 때는 그것이 일터로 가는 길이지만, 거기서 서도우를 만나 새벽 내내 이야기를 나눌 때는 힘겨운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일탈의 길이 된다. 그리고 남편도 친구도 잃은 채 딸 효은과 제주도로 가는 길은 아마도 이 도저히 버티기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 그만큼의 거리를 가지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공항 가는 길>이 단순한 불륜 소재가 아니라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는 드라마라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최수아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그래서 최수아의 절망적 상황에 던져진 작은 위로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게다. 그것마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공항 가는 길>의 질문, 인연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어머님께 팥죽 드린 사람이 수아씨 맞아요?” 마지막 가는 길에 팥죽 한 그릇이 먹고 싶었나보다. 서도우(이상윤)의 모친인 매듭 장인 고은희(예수정)는 마침 그 고택에 왔던 최수아(김하늘)에게 사달라고 한 팥죽 한 그릇을 맛나게 먹었다. 아마도 자신의 끝을 그녀는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잘 모르는 최수아에게 아들에게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고까지 부탁했겠지.

 

'공항가는길(사진출처:KBS)'

고은희와 최수아가 이렇게 인연으로 엮어지는 과정은 신기할 정도로 작은 우연과 필연들이 겹쳐져 있다. 고은희의 아들인 서도우가 자신의 핸드폰에 최수아의 이름이 효은엄마라 적혀 있는 걸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서도우는 자신의 이름은 뭐라고 적혀 있냐고 최수아에게 물었고, 그녀는 공항에서 만나 공항이라 적혀 있다고 말했다. 서도우는 그녀의 이름 역시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그런 공간으로 적었다며 그 곳에서 우연히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한강이라 적은 서도우와 고택이라 여긴 최수아는 서로 엇갈리게 된다. 서도우는 어머니의 집(고택)에 간 김에 툇마루에서 쉬었다 가라 하고, 그렇게 그녀가 그 곳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바람 때문인지 문이 스르르 열리며 안에 있던 고은희와 다시 마주친다. 그래서 그녀가 가는 마지막 길에 팥죽 한 그릇을 사다 주는 인연이 만들어진 것.

 

그러고 보면 그 발단은 서도우의 아내인 김혜원(장혜진)이 그의 핸드폰에서 효은엄마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그걸 서도우에게 의심스럽게 물었던 것이 이 모든 일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개방식은 <공항 가는 길>이 전하려는 인연에 대한 메시지를 그 자체로 잘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란 작은 실타래들의 씨줄과 날줄이 마치 필연과 우연으로 엮어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 기적 같고 운명 같은 인연이 만들어내는 과정이 우리네 삶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런 인연의 실타래는 서도우와 최수아가 만나는 과정에서도 벌어진다. 그 중간 매듭을 이어준 건 다름 아닌 서도우의 딸 애니(박서연). 집이 그립고 거기 사는 가족들이 그리웠지만 무슨 일인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돌아오지 못했던 애니. 할머니의 매듭 앞에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정도로 집을 그리워했지만 교통사고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던 애니. 사고 직전 최수아와 공항에서 부딪치며 애니가 떨어뜨린 작은 구슬은 마치 애니의 분신처럼 최수아와 서도우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애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연민 죄책감 같은 감정들이 매듭이 되어 서도우와 최수아는 공항에서 만나 가까워지고 같을 또래의 딸을 둔 마음은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의 끈을 묶어준다. <공항 가는 길>이 스스로도 질문하고 있듯, ‘이런 애매한 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그저 불륜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이 드라마가 그 만남의 과정이 너무나 소소한 사건들의 중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들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 가는 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연이란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부부 사이의 인연일 수도 있고, 부모 자식 사이의 인연일 수도 있으며,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진 일탈의 인연일 수도 있다. 소재가 불륜이지만 우리가 기꺼이 <공항 가는 길>에 빠져버린 건 바로 이 드라마의 초점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