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로 또다시 청춘의 날개 편 완생의 배우

소년시대

“14살 된 내 아이가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함을 보일 때 짠한 마음이 있는데 임시완에게서 그런 연민을 느낀다.”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작가가 한 매체와 인터뷰 중 했던 이 말은 임시완이라는 배우에게 왜 대중들이 마음을 빼앗기고야 마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그에게서는 어딘가 이면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내력 같은 게 풍겨나온다. 세월을 거꾸로 먹는 듯한 초절정의 동안이지만, 끝없는 노력을 통해 그 안에 쌓인 만만찮은 내공이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그것이다. 일찍이 세상의 어려움을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갖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가 이번에는 <소년시대>라는 작품에서 1989년 충청도 출신 고등학생 장병태라는 인물로 분했다. 폭력이 일상이던 시대, 장병태는 매일 안 맞고 지나는 날을 꼽을만큼 두들겨 맞던 온양 찌질이다. 하지만 부여농고로 전학오면서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산 백호라는 전설의 싸움꾼으로 오인받는다. 16대1 전설의 싸움꾼이 왔다는 소식에 부산농고 일진들의 무조건적인 추앙을 받지만, 진짜 아산백호 정경태(이시우)가 같은 반으로 전학오면서 화려했던 봄날은 가고 처절한 응징을 당하는 겨울을 맞이한다. 결국 자신이 좋아했던 부여 소피마르소 강선화(강혜원)를 정경태에게 빼앗기고, 가족까지 해코지를 당하게 되자 각성한 장병태가 죽을 각오로 복수혈전을 치르는 이야기다. 

 

학원 액션물로서 시원시원한 액션은 기본이고, 부여 흑거미로 불리는 여고 짱이지만 장병태를 좋아하는 박지영(이선빈)과의 달달한 멜로도 들어있다. 또 부여 농고의 대표 찌질이인 조호석(이상진)과의 티격태격하는 우정스토리에, 춤바람난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엄마와의 훈훈한 가족서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압권은 코미디다. 충청도 사투리 자체가 주는 정감 가득한 해학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데, 임시완은 찰떡같이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특유의 찌질이 캐릭터를 너무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게 표현해냈다. 

 

여기서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라는 표현이 중요한데, 그것이 이 작품을 연출한 이명우 감독이 원했던 <소년시대>의 톤 앤 매너이기 때문이다. <소년시대>는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고 그래서 멍이 들고 피가 튀며 뼈가 부러지는 참혹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키득키득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웃음이 묻어난다. “하나도 안아프다니께. 어차피 지난주에도 맞고 저번 달에도 맞고 맨날 맞고 사는 인생인디 뭐가 별다를 게 있겄어?” 장병태의 이 대사처럼 맞는데 이력이 나 포기한 듯한 동네북 아이들이 늘 멍을 달고 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는 웃음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이력이 다 나버린 이 청춘들의, 속으로 타버린 내면이 느껴져 짠해진다. 그래서 마치 무협지 활극을 우리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학원물로 옮겨놓은 듯한 <소년시대>에서는 희비극이 겹쳐진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임시완이 풍기는 ‘연민’의 정서는 그래서 이 장병태라는 웃기면서도 짠하고 찌질하면서도 어딘가 신뢰가 생기는 캐릭터를 제대로 빚어낸다. 그러면서 <해를 품은 달(2012)>로 데뷔해 연기자로서 어언 10년의 내공을 다져온 임시완의 또 다른 스펙트럼으로 자리한다. 그 사이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고, 그만한 삶의 경험치들로 더 단단해진 내면을 갖게 됐지만 여전히 고등학생 얼굴로 등장하니 저 윤태호 작가가 얘기한 연민의 강도 또한 짙어졌다. 

 

이처럼 변함없는 동안은 그를 청춘을 대표하는 배우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미소년의 얼굴에 가녀린 몸은 <변호인(2013)>에서는 용공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고문을 당하는 대학생으로 분해 보는 이들마저 괴로울 정도로 아픈 80년대 청춘의 초상을 그려냈고, <미생>에서는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사회초년생 장그래를 통해 2010년대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는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는 극중 대사처럼 ‘혁신적인 또라이’ 역할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19년 군복무를 마치고 나와서는 이제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복귀작이었던 <타인은 지옥이다(2019)>에서는 고시원에서 사는 작가지망생 역할을, <런온(2020)>에서는 순수하고 따뜻하며 정의감 넘치는 단거리 육상선수 역할을, 또 영화 <비상선언(2022)>이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2)> 같은 작품에서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호칭을 얻은 사이코패스와 스토커 역할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손기정과 함께 마라톤 역사를 새로 쓴 서윤복의 이야기를 그린 <1947 보스톤(2023)>에서는 완벽히 빙의된 마라토너의 면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의 얼굴 이면에 단단해진 내면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임시완이 이같은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갖게 된 건 그 이면에 숨겨진 치열한 노력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는 치열함은 함께 작업을 한 감독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랄 정도로 준비되어 나타난 임시완의 이야기를 꺼내놓곤 한다. 예를 들어 <1947 보스톤>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은 처음 임시완을 마주하고는 저런 가녀린 몸으로 마라토너 서윤복을 연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몇 달도 되지 않아 나타난 임시완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완벽한 마라토너(그것도 그 가난했던 시절의)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또 <소년시대>의 이명우 감독 역시 부산 출신인 임시완이 과연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잘 구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 한 달 정도만에 나타난 임시완이 구사하는 부여 사투리는 말만이 아니라 감성, 뉘앙스까지 살려낼 정도로 실감이 나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연기자라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배우라는 것이다. 

 

실로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네 청춘들은 사회에 나오기도 전부터 치열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아픔이 있지만 안으로 꾹꾹 씹어 내공을 만들고, 밖으로는 해맑은 척한다. 아 이토록 조숙한 청춘의 처연함이라니. 임시완의 얼굴에는 끝없이 이들을 ‘미생’으로 만드는 이 시대와 공유하는 청춘의 초상이 느껴진다. 부디 완생하기를.(사진:쿠팡플레이 글: 국방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작품에 불을 붙이는 밑그림 전문 허준호의 존재감

이 정도면 허준호는 작품의 ‘밑그림 전문’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허준호는 드라마든 영화든 주인공 역할로 등장한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악역이나 중요한 조연이 그가 연기해온 전문분야다. 하지만 그의 악역과 조연 역할은 그저 보조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나 분위기 혹은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그의 연기로부터 부여된다는 점에서 그는 작품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숨은 주인공이 아닐까. 

'군주(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서의 허준호가 그렇다. 사실 이 사극에서 편수회라는 조직이 갖는 존재감은 전체 이야기의 모티브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왕의 뒤편에 서서 사실상 비선실세 역할을 하는 편수회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파탄 나는 국가와 핍박받는 백성들이라는 이야기의 동기가 없다면, 이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진정한 왕으로 돌아오는 세자 이선(유승호)의 모험담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편수회의 수장으로서 대목을 연기하는 허준호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편수회라는 조직의 비정함을 거의 혼자서 만들어내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김명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듯싶지만 실상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여기는 인물.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된 왕을 잔인하게 죽여 버리는 인물이 바로 대목이다. 

하지만 <군주>에서 대목이 더 살벌한 존재로 여겨지는 건 그가 돈과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가짜 세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려던 걸 군권을 쥐고 있는 대비가 막고 수렴첨정을 하자 대목은 돈줄을 죄어 군권마저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편수회가 이끄는 양수청은 그래서 백성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줬다가 일시에 회수함으로서 나라의 돈 가뭄을 만들어 버리려 한다. 결국 돈이 없으면 군사들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한 것. 

<군주>의 이야기는 한편의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다. 왕세자로 있던 이선은 부모를 모두 잃고 또 충신이었던 한규호(전노민)마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결국 죽을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지만 세자의 신분은 이제 저잣거리의 장사꾼 막내가 되어버린다.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자신의 신분을 되찾는 이야기가 바로 <군주>다. 그런데 그 모든 이선의 이야기의 근거가 바로 편수회의 대목 때문에 비롯된 것들이다. 

허준호의 이런 존재감을 우리는 과거 사극 <주몽>에서 일찍이 발견한 바 있다. 주몽의 탄생 이전에 그의 길고 긴 모험담의 전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허준호가 연기한 해모수였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해모수의 존재감은 그래서 <주몽>이라는 사극의 초반 동력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극뿐만이 아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불한당>에서 허준호는 정통파 주먹의 보스 역할로 등장해 처연함마저 느끼게 하는 최후를 보여준 바 있다. 결국 그 장면을 통해 주인공들의 브로맨스가 시작된다는 점을 두고 보면 역시 허준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뒤편에 서서 실제 작품의 동력을 만드는 연기자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옆에 서거나 아니면 반대편에 서서 빛나는 역할을 하는 것보다 중심에 서서 빛나는 건 어쩌면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빛을 받는 주인공이 더 빛나는 순간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림자가 더 깊어질 때다. 허준호라는 연기자는 바로 그 깊어진 그림자다. 그것이 작품 전체에 드리워져 있어 힘을 만든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할.

임시완, 아이돌에서 연기돌, 연기돌에서 연기자로

이제 임시완에게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지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 어린 허염 역할로 잠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곱상한 외모가 연기보다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불한당>

하지만 2013년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할로 분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청년을 연기하는 임시완에게서 아이돌의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그 아픔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그는 진우의 그 처연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기했다. 텅 비어버린 듯한 눈빛은 바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연기자라는 호칭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2014년은 그래서 임시완에게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상승하는 연기의 진폭을 보여준 해였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는 과장되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말 <미생>이 다시금 그의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 때론 안으로 감정을 누르고 때론 밖으로 터트려내며 임시완은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가 되어갔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잘 맞는 옷이어서 그에게 넘어서야할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장그래의 잔상이 그에게서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불한당>의 현수라는 인물은 이 장그래라는 옷을 벗고 임시완이 또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은 키에 어딘지 가녀리게까지 느껴지는 임시완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반전효과를 만들어냈다. 저렇게 예쁘장한 외모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력이 나오는가가 놀라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영화 도입 부분에 감옥에서 현수가 거구의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며 “어 저 놈 봐라”하며 짜릿한 쾌감과 끌림을 느끼는 재호(설경구)의 시선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감옥을 나와 패거리들과 싸울 때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연약한 이미지의 임시완은 사라져버렸다. 

<불한당>이 보여주는 재호와 현수의 피와 눈물이 범벅되는 브로맨스는 어떤 남녀 간의 멜로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액션과 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임시완의 연기는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증오와 분노와 형제애 같은 정이 뒤범벅된 감정연기는 그래서 관객들을 그 인물 속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해내며 연기돌이라 불렸던 임시완은, 이제 사뭇 상반된 캐릭터 역시 연기해내면서 온전히 연기자라 불러도 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변호인>부터 단 4년 사이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만큼의 성장이다.

멜로, 현대물보다 사극에서 빛나는 이유

멜로가 사극과 바람이 났다. 전통적으로 현대물과 조우하던 멜로드라마는 좀처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멜로의 부활을 예고했던 ‘못된 사랑’은 출연진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틀에 박힌 설정과 스토리로 오히려 ‘못된 드라마’라는 오명을 쓰고있고, ‘불한당’은 애초에 기획했던 휴먼드라마보다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보이면서 여전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대물들이 성공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멜로는 오히려 사극 속에서 더 빛나고 있다. ‘이산’의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 그리고 효의왕후(박은혜)의 삼각 멜로가 그렇고,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강지환)과 허이녹(성유리) 그리고 이창휘(장근석)의 삼각 멜로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현대물에서 보여지는 멜로가 식상한 느낌을 주는 반면, 사극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멜로드라마는 왜 늘 식상하다 욕먹나
멜로드라마는 그 성격상 사랑을 중심에 두고 그 빗나감과 마주침을 연속적으로 만들어가면서 극을 발전시켜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 속에 웃음과 눈물을 교차시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감지해버린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어가거나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못된 사랑’의 처음 1,2회는 이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나인정(이요원)의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 이 2회분에는 사실상 작품 전체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단서들이 놓여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부분이 꽤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보여졌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이 예측된 흐름 위에 새로운 어떤 틀이 마련되지 않고 예측한 대로 흘러갔을 때, 드라마는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못된 사랑’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멜로가 가미된 현대물들이 안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확보한 ‘뉴하트’같은 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멜로가 이미 의학드라마 속 멜로의 전통 속에서 익숙한 구도이기 때문에 ‘뉴하트’는 긴박한 병원이야기가 돌아갈 때는 참신함을 느끼다가(물론 이것이 ‘뉴하트’의 경우는 익숙한 스토리가 많다), 멜로로 돌아올 때는 무언가 축축 쳐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멜로와 전문직의 봉합이 이루어졌을 때 ‘무늬만 전문직’이란 비아냥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전문직의 디테일을 잘 못 살려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멜로 또한 천편일률적인 구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극 속의 멜로가 다른 이유
하지만 이러한 멜로도 사극을 만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몇 가지 제한점이 생겨난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 자체로는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의 인식 자체가 사극은 역사적인 이야기의 재미를 가진 드라마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양념이 될지언정 본 재료는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이러한 사극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제한점으로 인해 사극의 멜로는 스토리와 함께 굴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산’의 성송연과 이산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가 이를 정확하게 잘 보여준다. 이 둘은 신분상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보여지는 것들은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사건 속에서 인물의 행동으로 처리된다. 이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미거한 힘이지만 그 일을 해결하려 성송연이 뛰어다닐 때 그 멜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한 성송연이 이국 땅으로 떠났을 때, 이산이 말을 달려 그녀를 쫓아간다거나, 그 먼 길을 오로지 이산만을 생각하며 걷는 성송연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사랑의 강도를 전한다. 그 둘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멜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막상 만난다 하더라도 신분상의 차이가 있기에 하는 대사 또한 우회적이다. 성송연이 돌아와 죽을 고비를 넘겨 깨어났을 때, 이산이 그녀에게 말하는 “네가 가고 나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더냐”는 대사는 직설어법이 아닌 간접어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쾌도 홍길동’에서 홍길동과 허이녹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코믹이라는 장르적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향해 애정행각을 벌이는 낯간지러운 대사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길동이 허이녹에게 ‘멍청이’이라고 말할 때, 먼 길 떠나는 길에 어머님의 무덤가 흙을 조잡하게 수놓은 주머니에 허이녹이 퍼담아 줄 때 그 사랑의 마음이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사극이 멜로를 제대로 품어줄 수 있는 것은 멜로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운명적인 사랑이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극은 그 시점을 과거로 돌려 운명적 사랑의 시대에 맞춰준다. 물론 지금의 가치에는 맞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사극이니까’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멜로, 그 진화의 길들
이러한 사극과 멜로가 만나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진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멜로드라마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운명적인 사랑에 호소하는 순전한 멜로드라마에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멜로드라마는 그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타 장르와 몸을 섞는 실험이 필요하며 그것은 사극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면 이것은 사극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멜로드라마가 현대물로서 진화의 몸부림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이른바 휴먼드라마이다. 작년 ‘고맙습니다’가 그 첫 번째 길을 열었고, 그 이후 ‘인순이는 예쁘다’가 그 계보를 이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불한당’ 역시 휴먼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그 진화의 계보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휴먼드라마가 가진 가능성은 멜로드라마의 구도가 가진 남과 여의 만남을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확장시켜나간다는 점이다. ‘고맙습니다’의 영신(공효진)과 기서, 그리고 ‘인순이는 예쁘다’의 인순이(김현주)와 상우(김민준)의 만남은 멜로드라마로서의 남녀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몰이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멜로드라마는 미스테리와 몸을 섞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사랑을 넘어 사람을 포착하는 멜로드라마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극이 끝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오는 것처럼, 장르드라마가 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는 것처럼 이제 멜로드라마도 변화하지 않으면, 실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이 장르적인 퓨전이든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식이든지 간에 분명한 점은 멜로드라마도 진화해야 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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