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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불을 붙이는 밑그림 전문 허준호의 존재감

이 정도면 허준호는 작품의 ‘밑그림 전문’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허준호는 드라마든 영화든 주인공 역할로 등장한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악역이나 중요한 조연이 그가 연기해온 전문분야다. 하지만 그의 악역과 조연 역할은 그저 보조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나 분위기 혹은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그의 연기로부터 부여된다는 점에서 그는 작품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숨은 주인공이 아닐까. 

'군주(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서의 허준호가 그렇다. 사실 이 사극에서 편수회라는 조직이 갖는 존재감은 전체 이야기의 모티브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왕의 뒤편에 서서 사실상 비선실세 역할을 하는 편수회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파탄 나는 국가와 핍박받는 백성들이라는 이야기의 동기가 없다면, 이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진정한 왕으로 돌아오는 세자 이선(유승호)의 모험담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편수회의 수장으로서 대목을 연기하는 허준호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편수회라는 조직의 비정함을 거의 혼자서 만들어내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김명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듯싶지만 실상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여기는 인물.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된 왕을 잔인하게 죽여 버리는 인물이 바로 대목이다. 

하지만 <군주>에서 대목이 더 살벌한 존재로 여겨지는 건 그가 돈과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가짜 세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려던 걸 군권을 쥐고 있는 대비가 막고 수렴첨정을 하자 대목은 돈줄을 죄어 군권마저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편수회가 이끄는 양수청은 그래서 백성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줬다가 일시에 회수함으로서 나라의 돈 가뭄을 만들어 버리려 한다. 결국 돈이 없으면 군사들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한 것. 

<군주>의 이야기는 한편의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다. 왕세자로 있던 이선은 부모를 모두 잃고 또 충신이었던 한규호(전노민)마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결국 죽을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지만 세자의 신분은 이제 저잣거리의 장사꾼 막내가 되어버린다.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자신의 신분을 되찾는 이야기가 바로 <군주>다. 그런데 그 모든 이선의 이야기의 근거가 바로 편수회의 대목 때문에 비롯된 것들이다. 

허준호의 이런 존재감을 우리는 과거 사극 <주몽>에서 일찍이 발견한 바 있다. 주몽의 탄생 이전에 그의 길고 긴 모험담의 전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허준호가 연기한 해모수였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해모수의 존재감은 그래서 <주몽>이라는 사극의 초반 동력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극뿐만이 아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불한당>에서 허준호는 정통파 주먹의 보스 역할로 등장해 처연함마저 느끼게 하는 최후를 보여준 바 있다. 결국 그 장면을 통해 주인공들의 브로맨스가 시작된다는 점을 두고 보면 역시 허준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뒤편에 서서 실제 작품의 동력을 만드는 연기자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옆에 서거나 아니면 반대편에 서서 빛나는 역할을 하는 것보다 중심에 서서 빛나는 건 어쩌면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빛을 받는 주인공이 더 빛나는 순간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림자가 더 깊어질 때다. 허준호라는 연기자는 바로 그 깊어진 그림자다. 그것이 작품 전체에 드리워져 있어 힘을 만든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할.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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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완, 아이돌에서 연기돌, 연기돌에서 연기자로

이제 임시완에게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지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 어린 허염 역할로 잠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곱상한 외모가 연기보다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불한당>

하지만 2013년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할로 분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청년을 연기하는 임시완에게서 아이돌의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그 아픔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그는 진우의 그 처연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기했다. 텅 비어버린 듯한 눈빛은 바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연기자라는 호칭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2014년은 그래서 임시완에게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상승하는 연기의 진폭을 보여준 해였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는 과장되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말 <미생>이 다시금 그의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 때론 안으로 감정을 누르고 때론 밖으로 터트려내며 임시완은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가 되어갔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잘 맞는 옷이어서 그에게 넘어서야할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장그래의 잔상이 그에게서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불한당>의 현수라는 인물은 이 장그래라는 옷을 벗고 임시완이 또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은 키에 어딘지 가녀리게까지 느껴지는 임시완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반전효과를 만들어냈다. 저렇게 예쁘장한 외모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력이 나오는가가 놀라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영화 도입 부분에 감옥에서 현수가 거구의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며 “어 저 놈 봐라”하며 짜릿한 쾌감과 끌림을 느끼는 재호(설경구)의 시선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감옥을 나와 패거리들과 싸울 때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연약한 이미지의 임시완은 사라져버렸다. 

<불한당>이 보여주는 재호와 현수의 피와 눈물이 범벅되는 브로맨스는 어떤 남녀 간의 멜로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액션과 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임시완의 연기는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증오와 분노와 형제애 같은 정이 뒤범벅된 감정연기는 그래서 관객들을 그 인물 속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해내며 연기돌이라 불렸던 임시완은, 이제 사뭇 상반된 캐릭터 역시 연기해내면서 온전히 연기자라 불러도 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변호인>부터 단 4년 사이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만큼의 성장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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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현대물보다 사극에서 빛나는 이유

멜로가 사극과 바람이 났다. 전통적으로 현대물과 조우하던 멜로드라마는 좀처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멜로의 부활을 예고했던 ‘못된 사랑’은 출연진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틀에 박힌 설정과 스토리로 오히려 ‘못된 드라마’라는 오명을 쓰고있고, ‘불한당’은 애초에 기획했던 휴먼드라마보다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보이면서 여전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대물들이 성공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멜로는 오히려 사극 속에서 더 빛나고 있다. ‘이산’의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 그리고 효의왕후(박은혜)의 삼각 멜로가 그렇고,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강지환)과 허이녹(성유리) 그리고 이창휘(장근석)의 삼각 멜로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현대물에서 보여지는 멜로가 식상한 느낌을 주는 반면, 사극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멜로드라마는 왜 늘 식상하다 욕먹나
멜로드라마는 그 성격상 사랑을 중심에 두고 그 빗나감과 마주침을 연속적으로 만들어가면서 극을 발전시켜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 속에 웃음과 눈물을 교차시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감지해버린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어가거나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못된 사랑’의 처음 1,2회는 이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나인정(이요원)의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 이 2회분에는 사실상 작품 전체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단서들이 놓여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부분이 꽤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보여졌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이 예측된 흐름 위에 새로운 어떤 틀이 마련되지 않고 예측한 대로 흘러갔을 때, 드라마는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못된 사랑’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멜로가 가미된 현대물들이 안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확보한 ‘뉴하트’같은 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멜로가 이미 의학드라마 속 멜로의 전통 속에서 익숙한 구도이기 때문에 ‘뉴하트’는 긴박한 병원이야기가 돌아갈 때는 참신함을 느끼다가(물론 이것이 ‘뉴하트’의 경우는 익숙한 스토리가 많다), 멜로로 돌아올 때는 무언가 축축 쳐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멜로와 전문직의 봉합이 이루어졌을 때 ‘무늬만 전문직’이란 비아냥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전문직의 디테일을 잘 못 살려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멜로 또한 천편일률적인 구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극 속의 멜로가 다른 이유
하지만 이러한 멜로도 사극을 만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몇 가지 제한점이 생겨난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 자체로는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의 인식 자체가 사극은 역사적인 이야기의 재미를 가진 드라마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양념이 될지언정 본 재료는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이러한 사극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제한점으로 인해 사극의 멜로는 스토리와 함께 굴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산’의 성송연과 이산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가 이를 정확하게 잘 보여준다. 이 둘은 신분상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보여지는 것들은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사건 속에서 인물의 행동으로 처리된다. 이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미거한 힘이지만 그 일을 해결하려 성송연이 뛰어다닐 때 그 멜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한 성송연이 이국 땅으로 떠났을 때, 이산이 말을 달려 그녀를 쫓아간다거나, 그 먼 길을 오로지 이산만을 생각하며 걷는 성송연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사랑의 강도를 전한다. 그 둘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멜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막상 만난다 하더라도 신분상의 차이가 있기에 하는 대사 또한 우회적이다. 성송연이 돌아와 죽을 고비를 넘겨 깨어났을 때, 이산이 그녀에게 말하는 “네가 가고 나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더냐”는 대사는 직설어법이 아닌 간접어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쾌도 홍길동’에서 홍길동과 허이녹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코믹이라는 장르적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향해 애정행각을 벌이는 낯간지러운 대사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길동이 허이녹에게 ‘멍청이’이라고 말할 때, 먼 길 떠나는 길에 어머님의 무덤가 흙을 조잡하게 수놓은 주머니에 허이녹이 퍼담아 줄 때 그 사랑의 마음이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사극이 멜로를 제대로 품어줄 수 있는 것은 멜로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운명적인 사랑이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극은 그 시점을 과거로 돌려 운명적 사랑의 시대에 맞춰준다. 물론 지금의 가치에는 맞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사극이니까’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멜로, 그 진화의 길들
이러한 사극과 멜로가 만나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진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멜로드라마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운명적인 사랑에 호소하는 순전한 멜로드라마에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멜로드라마는 그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타 장르와 몸을 섞는 실험이 필요하며 그것은 사극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면 이것은 사극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멜로드라마가 현대물로서 진화의 몸부림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이른바 휴먼드라마이다. 작년 ‘고맙습니다’가 그 첫 번째 길을 열었고, 그 이후 ‘인순이는 예쁘다’가 그 계보를 이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불한당’ 역시 휴먼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그 진화의 계보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휴먼드라마가 가진 가능성은 멜로드라마의 구도가 가진 남과 여의 만남을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확장시켜나간다는 점이다. ‘고맙습니다’의 영신(공효진)과 기서, 그리고 ‘인순이는 예쁘다’의 인순이(김현주)와 상우(김민준)의 만남은 멜로드라마로서의 남녀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몰이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멜로드라마는 미스테리와 몸을 섞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사랑을 넘어 사람을 포착하는 멜로드라마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극이 끝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오는 것처럼, 장르드라마가 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는 것처럼 이제 멜로드라마도 변화하지 않으면, 실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이 장르적인 퓨전이든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식이든지 간에 분명한 점은 멜로드라마도 진화해야 산다는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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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세대 다른 드라마와 시청률

방송 3사 드라마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물론 각 방송사별로 성공하는 드라마를 만든 주력 세대가 누구냐는 질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세대를 나눌 수는 없지만 대체로 MBC는 3,40대가 주 시청세대이며, SBS는 4,50대로 그보다 시청세대가 높다. 반면 KBS는 3,40대에서부터 5,60대까지 고른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방송사의 드라마이건 10대와 20대는 이제 TV 시청률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닥본사’보다는 TV 이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현재 방송사별 드라마들의 나이에 따라 주중과 주말에서 시청률의 희비쌍곡선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주로 3,40대의 시청층이 드라마 시청률을 좌우하고 있는 반면, 주말에는 그 보다는 윗세대인 4,50대의 시청층이 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 ‘이산’이나 ‘뉴하트’ 같은 MBC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반면 주말에는 SBS ‘황금신부’나 KBS ‘대왕 세종’같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중 드라마 3,40대가 좌우
주중 드라마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MBC 드라마들의 최근 특징은 그 타깃을 3,40대 여성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AGB 닐슨의 세대별 시청률 백분율 자료(1월1일∼1월20일)에 의하면 주중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이산’과 ‘뉴하트’ 모두 3,40대 여성의 분포도가 가장 높았다. ‘이산’은 3,40대 여성이 30%(30대 16%, 40대 14%)였고, ‘뉴하트’는 31%(30대 17%, 40대 14%)였다. 여기에 같은 세대 남성들까지 포함하면 ‘이산’은 총 51%(30대 남성 11%, 40대 남성 10% = 21%), 즉 반 이상의 시청자가 3,40대라는 얘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뉴하트’도 총 48%(30대 남성 9%, 40대 남성 8% = 17%)로 반 수에 육박한다.

SBS의 ‘왕과 나’는 이에 비해 시청층이 더 높은데, 최근 들어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청률이 14% 내외를 유지하는 비결은 이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점도 있지만 장년층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SBS의 ‘불한당’ 역시 주 시청층이 4,5,60대 여성으로 이 시청세대가 41%(남성까지 포함하면 무려 61%다)나 되는 반면, 30대는 10%(남성 포함해도 16%)에 불과했다. 역시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주 시청층이 3,40대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주중 드라마로서 MBC의 아성을 공략하는 유일한 드라마는 KBS의 ‘쾌도 홍길동’이다. 이 사극의 세대별 시청률은 특이한데, 남성 시청층은 적은 반면(40대 10%가 최고치), 여성 시청층은 3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30대 12%, 40대 12%, 50대 9%, 60대 9%)하고 있다. 여러 모로 사극의 진화와 맞물려 시청층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주말 드라마 4, 50대 이상이 좌우
주중 드라마에서 3,40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수위를 차지한 MBC 드라마. 하지만 주말 드라마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무한도전’이 드라마만큼의 시청률을 얻고 있는 것에 반해, 정작 드라마는 시청률 경쟁에서 멀어져 있다. 과거에 주말 드라마 하면 MBC를 떠올릴 정도로 강세였지만 그것은 옛말이 되었다. ‘깍두기’가 종영한 ‘며느리 전성시대’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고, ‘겨울새’는 조기종영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반면 주중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SBS는 주말 드라마에서 활짝 웃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황금신부’.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4,5,60대(전체의 38%)여성으로 이 세대의 남성 시청자까지 합치면 59%나 된다. 한편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KBS 대하사극 ‘대왕 세종’은 주 시청층이 40대 이상 남성(33%)으로 여성 시청층까지 합치면 61%를 차지하고 있다. ‘대왕 세종’ 의 특이한 점은 시청률의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60대 시청자들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남 11%, 여 10%)이다.

시청률과 달라진 생활 패턴의 상관관계
이처럼 주중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의 선호 세대가 다르고, 각 방송사별 드라마의 나이가 다른데서 현재의 시청률 등락을 이해할 수 있다.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3,40대 시청층과 잘 맞아떨어진 주중 MBC 드라마들의 나이는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게 하는 힘이며, 상대적으로 드라마 나이가 높은 주중 SBS 드라마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된다. 반면 이런 상황은 주말에 와서는 역전된다. 그만큼 달라진 주말 생활 패턴과 맞물려 주말 드라마 시청층의 주 세대가 장년층이 되었다는 걸, SBS 드라마나 KBS 사극이 말해준다.

방송사의 드라마 성격이 특정 세대를 공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방송사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한 세대에 국한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특정 세대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깃 세대가 고정되면 당장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향후에는 비슷비슷한 톤의 드라마들이 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 방송사에서도 여러 세대들이 향유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다양하게 포진되길 기대한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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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하트’ vs ‘쾌도 홍길동’ vs ‘불한당’

작년부터 유난히 뜨거웠던 수목 드라마 경쟁은 올해 새해 벽두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MBC는 일찌감치 ‘태왕사신기’의 여파를 몰아 ‘뉴하트’를 20%대의 시청률로 올려놓은 상태다. 여기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미는 KBS와 SBS는 각각 퓨전사극 ‘쾌도 홍길동’과 휴먼드라마를 표방하는 ‘불한당’을 내놓았다. 그 강점과 약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뉴하트’, 의드불패 혹은 의드도 식상
작년 ‘하얀거탑’의 뜨거운 반응을 이어 ‘뉴하트’는 시작부터 관심을 끌어 모으면서 일각에서는 ‘의드불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확실히 의학드라마는 여러 모로 보나 유리한 점이 많다. 먼저 인간의 생과 사가 오가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다이내믹함이 드라마의 극적인 전개를 쉽게 만들어낸다.

게다가 ‘하얀거탑’에서 시청자들을 열광케 만들었던 병원 내의 권력다툼은 ‘뉴하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최강국(조재현)이란 캐릭터는 바로 그 권력다툼의 재미를 끄집어내게 만드는 천재의사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김없이 멜로가 등장한다. ‘뉴하트’는 현재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멜로 라인에 이동권(이지훈)이 끼여들면서 본격 삼각 구도가 만들어진 상태이다.

이렇게 요소 요소들을 보면 ‘뉴하트’의 ‘의드불패’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속단하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단순한 조합으로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요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면 ‘하얀거탑’류의 권력다툼과, ‘외과의사 봉달희’가 보여준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의사의 모습에, ‘그레이 아나토미’류의 애정라인이 뒤섞여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의드불패’라는 말은 이제 우리의 의학드라마도 하나의 장르로서 특정한 시추에이션과 요소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장르는 그 자체에 충실할 때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너무나 뻔한 설정으로 반복될 때 식상함을 주기도 한다. ‘뉴하트’가 가진 강점이자 약점은 바로 이 장르화 되어가는 의학드라마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쾌도 홍길동’, 신선한 시도 혹은 낯선 실험
‘쾌도 홍길동’은 작년부터 내내 주중드라마에서 고배를 마셨던 KBS로서는 절치부심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KBS가 전통적인 강점으로 가진 사극을 선택했다는 점은(‘황진이’나 ‘한성별곡’ 같은) 특이할만한 사항은 아니지만, 그 스타일 면에서 퓨전 사극 그 이상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파격이다.

첫 회를 통해 보여진 바로는 이 사극은 역사적인 시점을 다룬다기보다는 ‘홍길동’이라는 텍스트 자체를 지금의 시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보여진다. 따라서 거기 등장하는 시대가 과거인 것은 ‘홍길동’의 본래 텍스트가 그렇기 때문이지 그것이 역사적인 어떤 의미를 갖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극 속의 배경은 역사가 아닌 한 가상의 시공간을 연상케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홍길동’이라는 고전을 똑같이 드라마로 구성하는 것은 이 시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나 아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는’ 홍길동의 이야기는 따라서 누가 봐도 다른 새 옷을 입을 필요가 생긴다. 이 퓨전사극이 무협과 코믹을 모두 끌어안고 현대적인 연출을 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사극의 강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서 다가갈 것이 자명하다. 아직까지 역사 자체를 탈피한 퓨전 사극은 시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낯설음이 또한 이 사극의 약점이 된다. 과거 KBS 드라마들 중 많은 것들이 호평을 받았으나 시청률은 낮았던 마니아 드라마가 된 것은 바로 그 낯설음의 강약조절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만화 같은 설정의 퓨전사극에 전통적인 사극의 주시청층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가 이 사극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불한당’, 참신한 휴먼드라마 혹은 똑같은 멜로드라마
‘불한당’은 겉으로만 보면 여자 등이나 치며 살아가는 천하의 잡놈, 불한당인 권오준(장혁)과 싱글맘이지만 밝게 살아가는 진달래(이다해)의 사랑이야기로 읽힌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표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휴먼드라마다. 멜로드라마가 남녀간의 사랑타령에 머무른다면, 휴먼드라마는 그 이상을 넘어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다. 작년 한 해 우리를 따뜻한 훈풍에 휩싸이게 했던 ‘고맙습니다’나 ‘인순이는 예쁘다’ 같은 드라마가 그 예이다.

실제로 진달래의 뒤에는 모녀처럼 지내는 시어머니인 이순섬(김해숙)과 그녀의 딸의 이야기가 있고, 권오준의 뒤에는 그의 누이인 권오순(윤유선)과의 사연이 숨겨져 있다. 사랑이야기 뒤편에 사람의 이야기가 포진되어 있는 셈이다. 부잣집 아들인 김진구(김정태)가 끼어 들지만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로 간다기보다는 오히려 부자가 알게되는 진달래의 진심에 더 무게중심이 쏠리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휴먼드라마로 가기 위해서는 권오준과 진달래의 앞모습이 아니라 그 뒷모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거기서 어떤 진정성을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사회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이냐는 것이다. ‘고맙습니다’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건드렸고, ‘인순이는 예쁘다’가 우리네 냄비근성에서 기인되는 사회적 편견과 허영을 꼬집었던 것처럼, ‘불한당’이 어떤 부분을 조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남녀 간의 틀을 넘어 사람에 대한 사랑을 그리는데 있어서 사회적인 이야기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춥게만 느껴지는 세상에 따뜻한 훈풍을 전해줄 수 있는 휴먼드라마라는데 강점이 있지만, 또한 거기서 어떤 사회적 공감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그저 비슷한 멜로드라마에 머물 수도 있다는데 약점이 있다.

방송 3사가 연초부터 각자의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며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것은 이제 우리네 드라마가 그만큼 풍성해졌다는 방증이다. 또한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새로운 분야를 노리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높게 사야할 대목이다. 모쪼록 그 초심이 드라마 끝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그 초심이 또한 올 한 해 동안 방송 3사 드라마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희망한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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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4 00:35 BlogIcon BL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중에 하나로 대하자면 결국 초점은 하나에 집중 되는것 같습니다. 본 이야기 전개면에서 구도상 익숙함을 답습하느냐. 아니면 정말 집중 하도록 새로운 접근을 하느냐.

    아무리 도입부가 신선해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에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느낌을 받게 된다면 그냥 스토리만 알아도 만족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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