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다. 흔히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빛의 마술사’라고 표현하지만, 필자에게는 ‘날씨의 마술사’로 더 각인되어 있다. 그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날씨의 정경들을 보다보면 세상이 어떤 표정을 갖고 있다고 느껴진다. 때론 환한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만, 때론 한없이 처연한 눈물을 흘리고,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로 그 날씨의 정경들이 전해주곤 해서다. ‘언어의 정원’은 그 날씨들 중 특히 비의 다양한 표정들이 담긴 작품이다.
비오는 날이면 오전 수업을 빼먹고 도심의 정원에 있는 정자에서 구두 스케치를 하는 고등학생 다카오. 그런데 어느 날 그 곳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유키노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어쩌다 말을 걸게 되고 비오는 날마다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언어의 정원’은 이 일련의 과정들 속에 두 사람의 감정변화를 내리는 비로 표현한 작품이다. 갑자기 맞닥뜨린 비에 쫄닥 젖어 유키노의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간 두 사람이 그 곳에서 옷을 말리고 함께 밥과 차를 마시는 고즈넉한 장면이 흘러갈 때 두 사람의 생각이 교차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여태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창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지만 창안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그 풍경은 아주 짧게 스쳐가지만 그것이 마치 우리네 삶의 진짜 행복을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디든 나가기만 하면 험한 현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온기. 장맛비 속을 뚫고 왔지만 쫄닥 젖은 우리들을 넉넉히 안아주는 그 온기가 있어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글:동아일보, 사진: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JTBC 예능 <히든싱어6>의 관전 포인트는 갈수록 놀라온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이다. 첫 회에 출연한 김연자만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모두 모창능력자들이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 시즌들에 진짜 가수들이 모창능력자들에게 지는 풍경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화제가 되는 '희귀한 일'이었지만, 이번 시즌은 상황이 역전됐다. 진짜 가수가 모창능력자들을 이기는 것이 특별한 일처럼 여겨질 정도로.
비가 원조가수로 출연한 5회는 <히든싱어6>가 가진 모창능력자들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먼저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예 비를 빼고 첫 라운드를 시작한 것. 연예인 판정단들은 저마다 그 목소리를 추리하며 투표를 했지만, 놀랍게도 비는 그 커튼 뒤가 아닌 객석 뒤에서 나타났다. 어려서부터 성장사를 함께 해오며 누구보다 진짜 비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자신했던 god 박준형은 "사기 방송"이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비가 아예 첫 라운드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이 충분했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첫 라운드에서 1,2번은 실제 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창법과 목소리로 노래해 모두를 혼돈에 빠뜨렸다. 비 역시 객석에서 노래를 들으며 1번이 부를 때 자신이 부르는 줄 착각할 정도라고 했을 정도였다.
첫 라운드에서 아예 비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2라운드에서 두 명이 탈락한다는 사실은 비의 긴장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6위는 확연하게 누구인지가 드러났지만 5위는 헷갈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3라운드를 통과한 비는 애초에 보였던 자신감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와 창법은 흉내낼 수 없다 자신했지만 라운드를 거듭하며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창능력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히든싱어>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 중 하나인 전현무의 '가수를 쥐락펴락하는 진행'의 묘미도 더 커졌다. 바로 탈락자를 알려주지 않고 한없이 뜸을 들이며 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과정은 당사자들은 힘겨워도 보는 이들에게는 더 큰 몰입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최종 라운드. '러브스토리'를 갖고 치른 그 라운드는 실로 누가 진짜 비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을 보여줬다. 최종 우승자가 된 김현우는 100표 중 무려 54표를 받아 비를 무릎 꿇렸다. 비가 받은 25표의 두 배가 넘는 표를 받은 것.
<히든싱어6>는 이제 원조가수의 우승이 아닌 실력이 좋아진 모창능력자들의 우승으로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깝게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못한 비가 기꺼이 우승자를 축하해주는 장면은, 그 우승자인 김현우가 비를 롤모델 삼은 팬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오히려 비를 기쁘게 만들었다.
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일까. <히든싱어>는 본래 팬과 스타 사이의 유대관계를 가장 핵심으로 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팬으로서 참여한 모창능력자들이 원조 가수를 이긴다는 건 그만큼 큰 애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실력이 좋아진 모창능력자들로 인해 이제 첫 라운드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반전 무대가 가능해졌고, 더 아슬아슬한 진행으로 몰입도도 높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조가수들이 최종우승을 하기가 쉽지 않아진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 모창능력자들의 도전이 아닌 원조가수들의 도전이 될 정도로.(사진:JTBC)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가 일단락됐다. 워낙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별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비룡(비)은 유두래곤(유재석), 린다G(이효리)를 위해 직접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요리왕 비룡'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장난기 많은 형과 누나인 유두래곤과 린다G는 다소 감성적으로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빠져들어가는 비룡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일부러 쿨한 이별을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래서 비룡이 준비한 편지나 선물 그리고 요리에 '타임캡슐'까지 일부러 진저리를 치는 모습을 보여줘 큰 웃음을 줬다.
하지만 갑자기 끝난 것 같은 이별에 대해 이들은 그것이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게 하는 '여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린다G의 말대로 모든 걸 다 쏟아 부었다면 굳이 다음을 기약할 일이 없을 수도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헤어지는 와중에도 겨울에 다시 만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제작진이 마련한 마지막 선물은 팬들이 보내 준 응원의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적어 방 한 가득 붙여 이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쿨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별을 하려 했던 이들이지만, 그 방에 들어가서는 울컥하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재석은 무언가 한 가지 허전함이 느껴진 이유를 거기서 발견했다. 그 팬분들과 직접 만났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게 그 허전함의 이유였다.
싹쓰리 열풍은 방송은 물론이고 가요계 그리고 연예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무엇보다 '놀면 뭐하니?'의 새로운 문 하나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유재석이 홀로 도전하는 다양한 '부캐'들로 채워졌던 프로젝트가 비룡과 린다G 같은 참여자 이상의 캐릭터들과 함께 진행됐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이제 '놀면 뭐하니?'의 공식적인 출연자에 유재석 이외에 비룡과 린다G가 오르게 됐다. 비룡이 팬분들이 올린 '어벤져스'를 패러디한 유두언맨, 비토르용, 린다위도우를 이야기하며 또 다른 캐릭터들을 물음표로 해놓은 부분을 콕 집어 얘기한 부분은 '무한도전' 시절부터 김태호 PD가 꿈꾸던 '유니버스'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마블 유니버스처럼 자신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하나의 유니버스로 확장되게 하고픈 욕망이 그것이었다.
린다G와 비룡이 싹쓰리 프로젝트를 통해 그 유니버스에 들어오고, 이제 린다G가 거론함으로써 성사된 엄정화, 제시, 화사와 함께 하는 '환불원정대'도 그 유니버스(Yooniverse)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 유재석 홀로 서 있던 '놀면 뭐하니?'의 유니버스는 다른 멤버들이 프로젝트별로 합류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확장되게 됐다.
물론 유재석은 이 세계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고, 향후에도 다양한 부캐의 확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하는 새로운 부캐 도전에 더 다양한 인물들이 부캐로서 유니버스에 합류할 거라는 건 '놀면 뭐하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 놓는다. 과연 어떤 인물들이 유재석과 함께 색다른 부캐를 갖고 시청자들을 찾아와 줄까. 올 여름을 꽉 채워준 싹쓰리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향후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는 이유다.(사진:MBC)
MBC 예능 <놀면 뭐하니?> 싹쓰리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는 누굴까. 물론 <놀면 뭐하니?>는 물론이고 유재석, 이효리 역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싹쓰리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비만큼 큰 수혜를 입은 인물은 없을 게다. 유재석은 이미 <놀면 뭐하니?>의 다양한 부캐 프로젝트를 통해 <무한도전> 시절을 넘어와 새로운 시대에도 대세를 굳혀가는 중이었고, 이효리는 결혼해 제주도 소길댁으로 살아가면서도 JTBC <효리네 민박>, <캠핑클럽>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여전히 대세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비는 최근 '깡' 신드롬이 화제가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그런 그를 메인 스트림으로 끌어 올린 건 <놀면 뭐하니?>의 공이 컸다. 방송에 나와 '깡' 신드롬에 깔린 일종의 '조롱'을 선선히 받아들이며 자신도 즐기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 신드롬은 더 활활 타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비는 '깡' 신드롬이 생겨났던 대중들에게 '구박받으며' 존재감이 올라간 그 캐릭터를 유재석과 이효리 사이에서 재연해내며 비룡이라는 부캐를 쑥쑥 키워냈다.
린다G라는 부캐를 갖게 된 이효리의 구박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가 비에게 "꼴 보기 싫어"라고 한 마디 던질 때마다 비의 캐릭터는 공고해졌다. 그런데 린다G가 그런 멘트를 그냥 던지는 건 아니었다. 비는 여전히 센터 욕심을 보이고, 춤을 출 때도 너무 팀원들보다 나서서 과하게 출 때(이를 테면 브레이크 다운 같은) 린다G와 유두래곤(유재석)은 여지없이 "꼴 보기 싫어"를 날린다.
그러자 한편으로는 멋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잘난 체 하는 듯한 비의 조금은 과도하게 느껴지는 그 모습들은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나서고 싶어 하고 또 여전히 그렇게 힘이 넘치는 막내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구박받는 캐릭터. 여기에 대해 "나 이러면 섭섭하지"라고 막내 비룡이 앙탈을 부리자 그의 캐릭터는 완성된다. 잘난 체 하는 허세가 순식간에 '잘 하지만' 구박받는 '섭서비' 캐릭터가 되는 것.
싹쓰리 프로젝트의 구심점은 누가 봐도 이효리다. 이효리가 린다G라는 부캐를 갖게 된 순간 싹쓰리 프로젝트는 확실한 동력을 갖게 됐다. 제주도 소길댁의 수더분한 모습이 아니라 마치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는 줄 알고 있던 인물이 다시 메인스트림 무대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키는 스토리라인이 만들어졌다. 린다G는 거침이 없었고 그 거침없는 언변 역시 현실에 치여 잠시 치워두고 있던 욕망을 다시금 끌어내 젊은 날의 꿈을 재현해내는 그 캐릭터의 스토리와 어울려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다시 여기 바닷가' 같은 가사에도 고스란히 그 스토리를 담아냈고 당연히 스토리와 캐릭터의 공감대를 모두 가진 이 곡은 지붕 뚫는 인기를 만들었다.
린다G가 거침없이 쏟아내고 전면에서 싹쓰리를 이끌고 나갈 때 비룡은 여기에 에너지를 더하고 춤 라인 같은 것들을 만들며 그룹으로서의 '멋'을 더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린다G나 유두래곤에 비교해 너무 에너지가 넘치거나 과하게 멋지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린다G는 이를 구박함으로써 그 캐릭터를 꾹꾹 눌러 '섭서비'로 만들어준다. 유두래곤은 린다G를 거들어 비룡 구박하기에 동참하기도 하지만, 때론 린다G의 구박을 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룡이 은근히 통쾌해하는 모습까지 연출시킨다.
이러니 비가 주목받지 않을 수가 없다. 허세나 잘난 체로 보였던 그의 과도한 에너지와 스웨그 심지어 잘 관리된 몸 노출까지 이제 팀을 위해 구박받으면서도 노력하는 막내 섭서비로 그려지게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조금 자신을 내려놓은 그 모습이 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큰 이번 싹쓰리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결실이 아닐 수 없다. 한 차례 전성기가 지나간 것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걸 비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됐다. 유재석과 이효리가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게 된 그 비결을.(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