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기대 없었던 '내안의 그놈'이 의외의 선전한다는 건

연말연시 이른바 기대작으로 불리던 한국영화들은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에 송강호가 주연으로 등장한 <마약왕>은 180만 관객(10일 현재)에 머물렀고, <과속스캔들>, <써니>의 연속 흥행으로 기대감이 높았던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도 140만 관객에 머물렀다.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에 하정우가 출연한 <PMC:더 벙커>도 160만 관객에 그침으로써 대작 한국영화들은 모두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물론 이런 작품들과 최근 개봉한 <내안의 그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작품성이나 완성도, 주제의식 등등 모든 걸 비교해도 <내안의 그놈>이 이들 대작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상업영화로서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재미에만 포인트를 맞춰 비교해본다면 조금 다를 것 같다. 전혀 기대가 없이 한국영화가 그렇지 하며 <내안의 그놈>을 봤던 관객들은 그 뻔한 소재로 빵빵 터지는 의외의 재미에 당혹감마저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안의 그놈>은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그 흔한 ‘영혼 체인지’를 소재로 삼고 있다. 왕따로 빵셔틀을 하며 살아가는 고등학생 동현(진영)과 잘 나가는 엘리트 건달 판수(박성웅)가 어느 날 추락사고로 인해 영혼이 바뀌는 설정. 너무 흔하고 뻔한 설정이라 그런지 그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바로 그렇게 기대감을 전혀 갖기 못하게 만드는 설정에서 의외로 빵빵 터지는 웃음은 강도가 더 세다.

뻔한 설정을 가져왔지만 <내안의 그놈>은 지금의 대중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억압된 정서를 그 코미디 설정 안에 콕콕 박아 넣어두었다. 이를테면 뚱뚱한 몸으로 학교에서 왕따 괴롭힘을 당하는 동현의 몸으로 건달 판수의 영혼이 들어감으로써 그간 당해왔던 그가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평정해버리고 여학생들이 하트를 보내는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그렇다. 그 통쾌함이 더해지면서 코미디의 웃음은 미소를 넘어 폭소가 된다.

또한 고등학생과 중년 남자라는 나이 차가 영혼체인지로 뒤집어지고, 그래서 툭툭 나오는 반말이나 행동거지가 주는 웃음 속에도 묘한 나이의 위계를 뒤집는 카타르시스가 담긴다. 물론 이 세대 차이는 영혼체인지로 엮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영화는 일관되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미디에 집중한다. 판수의 영혼이 들어간 동현이 학교에서 잘 나가는 모습과 거꾸로 동현의 영혼이 들어간 판수가 겁쟁이가 되는 모습의 대비 또한 웃지 않을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여기에 더 코미디적 재미를 더하는 건 고등학생 동현의 몸을 갖게 된 판수가 과거 헤어진 판수의 첫사랑 미선(라미란)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동현이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인 현정(이수민)의 엄마가 미선이었다는 설정은 그래서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복잡 미묘하게 꼬이는 관계로 인해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코미디를 완성하는 건 결국 박성웅, 라미란, 김광규와 더불어 이 영화로 연기자로서의 가치가 확실히 느껴지게 된 진영의 연기다. 이들은 뻔한 상황도(심지어 비극적 상황을) 리얼한 연기를 통해 웃음으로 바꿔내는 힘을 만들어낸다.

사실 <내안의 그놈>에 그다지 큰 주제의식이나 메시지 또는 영화적인 스타일의 성취 같은 거창한 것들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의미 과잉인 현실이 주는 피곤함을 잠시 벗어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두 시간 동안 웃고 싶다면 이만한 영화가 없다. 웃음 자체에 처음부터 끝까지 천착하는 코미디가, 어째서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사진:영화'내안의 그놈')


'SKY캐슬'의 풍자 판타지에 이토록 빠져드는 이유

도대체 무엇이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에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 이 드라마의 시청률표를 보면 그 상승곡선이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7%(닐슨 코리아)로 첫 회를 시작했지만 2회에 4.3%로 치솟았고, 10회에 11.2%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13회에는 13.2% 최고 시청률을 다시 한 번 경신했다.

그 열광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풍자다. ‘SKY 캐슬’이라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사교육이 그것이다. 수 십 억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두기도 하고, 집에 아예 감금시키듯이 아이를 공부시키는 공간을 만들어놓기도 하는 이들의 사교육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100% 현실적이라고 보긴 어려운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실제로 입시 코디네이터가 존재하고 저들만의 세상처럼 여겨지는 가진 자들의 은밀한 사교육이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는 지경이 되어버린 게 우리네 교육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교육이 개천에서도 용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기 어려운 교육시스템이 되었다. 자녀들의 입시가 부모들의 재력과 무관하지 않게 된 현실이 아닌가.

그런데 <SKY 캐슬>은 이렇게 가진 자들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보여준다. 그것도 그저 대학입시에 떨어지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그런 실패다. 그 첫 번째 사례는 영재네 집안의 비극이다. 서울대 의대에 들어감으로써 이들의 사교육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부추김에 의해 영재는 가출을 하고 결국 그의 엄마 이명주(김정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코디네이터 김주영이 한서진(염정아)의 딸 예서(김혜윤)을 맡게 되면서 불안감은 계속 이어진다. 영재네가 이사를 나가고 그 집으로 들어온 이수임(이태란)은 아이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 이를 소재로 동화를 쓰려하고 그 취재과정에서 김주영의 놀라운 과거행적을 알게 된다. 영재 이전에 그가 맡은 학생도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 이수임은 김주영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한서진에게 경고하지만 그는 이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김주영이 과거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딘가 이들 기득권자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악감정’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서울대에 입학시키는 실적을 내며 유명해졌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에 모든 걸 잃게 만드는” 그의 방식은 교육이 아니라 복수에 가깝게 느껴진다.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그 기득권을 통해 성공이 대물림되는 사교육을 ‘처절한 실패’로 그려냄으로서 박탈감을 느껴온 우리네 서민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재네가 무너졌고, 예서 역시 불안한 상태이며, 차민혁(김병철)이 그토록 총애하는 하버드에 들어간 줄 알았던 딸은 사기행각으로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입주과외라는 명목으로 한서진의 집에 들어온 혜나(김보라)는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SKY 캐슬>은 우리네 교육시스템을 풍자하는 드라마지만, 동시에 현실과는 달리 저들이 파괴되어가는 걸 판타지로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른바 ‘생기부 전형’으로 불리는 입시 경쟁에서 가진 자들이 막대한 투자로 얻어가는 ‘교육과 학벌의 세습구조’ 속에서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그 박탈감을 잠시 동안의 판타지로나마 깨주고 동시에 비판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수직상승하는 시청률 수치와 열광이 말해주는 건 어찌 보면 그 박탈감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 아닐까.(사진:JTBC)

'SKY캐슬', 염정아·김서형 같은 괴물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네 비뚤어진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들이 보인다.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이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여기 등장하는 ‘SKY캐슬’이라는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이 드라마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보면 영재(송건희)네의 비극이 과연 이 SKY캐슬이라는 곳에서 벌어졌던 사건인가가 무색해질 정도로 아무 변화도 없는 이 곳의 현재에 놀라게 된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며 축하파티가 열렸지만, 그 지옥 같은 삶에 복수하듯 가출해버린 영재로 인해 그의 엄마 이명주(김정난)가 자살함으로써 한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버렸다.

가장 가까이서 이명주를 따르고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까지 이어받아 자신의 딸 예서(김혜윤) 또한 서울대로 보낼 꿈에 부풀었던 한서진(염정아)은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김주영의 뺨을 때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다시 예서의 입시 코디가 된 김주영은 보란 듯이 아이를 전교회장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이를 반대하던 한서진의 남편 강준상(정준호)까지 설득시킨다.

한 집안이 박살나는 비극을 보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불나방처럼 그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이 이야기는, 잘못된 부조리한 경쟁시스템들에 의해 그토록 많은 비극들이 벌어지고 그 때마다 큰 충격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금세 잊어버린 채 다시 그 비극을 반복하는 우리네 사회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시스템은 건재하다. 그래서 비극은 반복된다.

<SKY 캐슬>은 입시라는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려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들여다본다. 한서진의 둘째딸 강예빈(이지원)이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하는 그 증상은 그걸 입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허용하는 그 엄마 한서진이 있어서다. 한서진은 교육의 목적이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둑질은 그 과정으로서 허용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세계관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서가 전교회장이 된 걸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열린 파티에서 영재네의 비극을 소재로 이수임(이태란)이 동화를 쓰려 한다는 사실을 끄집어내자 이에 대해 보이는 반발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일그러진 얼굴들을 드러낸다. 이 곳에 사는 이들은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비극을 끄집어내는 일을 “명예가 손상되고 품위가 실추되는” 일로 여긴다. 지진희(오나라)는 이런 일이 알려지는 게 “집값부터 떨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강준상은 그래서 이수임이 하려는 일을 “남의 비극을 소재삼아 돈벌이를 하려는 짓”이라 폄하한다.

이에 대해 이수임은 자신이 글을 쓰려는 진짜 의도를 밝힌다. “영재네에서 있었던 엄청난 비극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절망스러워서요. 입시경쟁으로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우리 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게 비통하다 못해 참담해서요.”

하지만 이들은 비극을 멈추려 하기보다는 비극 자체가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그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 그건 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촌극처럼 그려지는 우양우(조재윤)가 끊임없이 강준상의 눈치를 보며 대학병원 내 서열극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고, 이런 경쟁시스템이 만들어낸 김주영 같은 사실상 사설 불법정보원 같은 일까지 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괴물이 그렇다.

이들은 끊임없이 그 시스템이 야기하는 비극들을 보고 있고 가까이서 겪고 있지만 그걸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사건은 없는 것처럼 여기려 한다. 게다가 그 비극의 주인공들을 심지어 이 경쟁시스템의 낙오자 정도로 취급함으로써 그 부조리한 시스템을 더 공고하게 만든다. 결국 아이들은 죽어나가거나 그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괴물이 되기도 한다. 한서진이나 김주영 같은 어른들만이 괴물이라 여겨졌던 <SKY 캐슬>에 엄마가 죽은 후 자신이 강준상의 딸이었다는 걸 알게 된 혜나(김보라)가 또 다른 괴물처럼 등장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이 비극은 어째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걸까. <SKY 캐슬>에 시청자들이 집중하게 되는 건 이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를 축소판처럼 담아내고 있어서다. 경쟁시스템 안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경쟁하듯 살아가다 보니 제대로 그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들여다보지 않았던 우리들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그 축소판을 통해 새삼 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부지불식간에 모르는 것처럼 지나치곤 했던 그 현실과.(사진:JTBC)

‘이리와 안아줘’, 비극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좋아해서 미안해.”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의 채도진(장기용)은 한재이(진기주)에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진심. 어린 시절 나무와 낙원으로 서로를 부르며 바라봤던 그들이지만, 채도진은 이미 그 때부터 그의 사랑이 만들어낼 비극을 예감했던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감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낙원을 밀어내려고도 했지만 이미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그의 아버지 윤희재(허준호)에 의해 한재이의 부모가 모두 살해당했고, 나무는 낙원을 지켜내기 위해 아버지를 경찰에 넘겼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힌 윤희재가 자신이 잡힌 건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 때문이라고 밝힌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윤희재가 체포된 건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끝없이 따라붙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채도진에게 달라붙었고, 그건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윤희재는 감방에서 자서전을 내며 자신이 그런 괴물이 되게 된 것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탓이라고 변명한다. 그는 그래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피해자들에게는 비수가 된다. 살인자의 거짓 변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윤희재는 감방에 들어와 있지만 엇나간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흉기를 휘두른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그가 쓴 책과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찢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채도진은 스스로 방송사를 찾아가 자신의 얼굴을 걸고 그 책은 거짓이라고 밝히는 인터뷰를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낙원에게도 그랬지만 마치 나무처럼 버티며 아픈 이들을 지켜주려 한다. 

그렇게 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피해자 가족들이 나타나 때리면 맞고 질책하면 죄송하다 사죄하며 버티고 서 있는 채도진은 진짜 나무 같은 인물이다. 모진 바람을 맞아도 묵묵히 서 있는 그에게 역시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엄마 채옥희(서정연)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눈물조차 피해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채도진은 애써 눈물을 참는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을 때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이리와 안아줘>는 살인자의 아들 혹은 피해자의 딸이라는 굴레를 갖게 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모진 현실 앞에서 채도진 역시 어쩌면 저 살인자인 아빠가 변명하듯 악을 계승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채도진은 악이 그렇게 길러지고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변명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드라마는 앞부분에 윤희재가 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채도진의 “악은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말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채도진과 한재이의 사랑은 그래서 서로 표현도 제대로 못하며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삶이 살만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나무처럼 버텨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선택을 한 채도진과, 그 나무의 아픔을 느끼며 다가가 안아주는 한재이의 마음. 그들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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