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효리가 껴안은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런 강도 보고 저런 산도 보고 들판도 보고 이러면서 힐링이 되는 거야. 여행이라는 건.” 이효리의 엄마 전기순씨가 그렇게 말할 때 그에게서는 순간 소녀 같은 설렘이 느껴졌다. “저런 산만 쳐다보면 산이 너무 좋은거야 엄마는. 저런 데서 막 누비고 다니며 버섯도 따고 고사리도 꺾고 도라지도 캐고...” 엄마는 그런 산 같은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모양이었다. 

 

JTBC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통해 함께 경주로 여행을 떠난 이효리와 엄마는 어딘가 그런 일이 낯설고 어색해 보였다. 그런 여행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취향도 너무나 달라 이효리가 뭘 하자고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싫다고 말하는 엄마였다. 야경이 좋다며 보러가자고 하면 잠을 자야 한다고 하고, 찜질방에 가자고 하니 머리가 망가진다고 안된다고 한다. 네일아트라도 해보자고 하니 집에 가면 밭일할 걸 뭐하러 그걸 하냐고 하신다. 

 

대릉원에 관심이 있다고 가서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무관심해 보이고, 경주에 가면 봐야 한다며 첨성대 앞에 가서도 사진 몇 장 찍고는 다 했다고 돌아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효리는 우스우면서도 왜 그런 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특히 여행 오면 남는 게 사진인데, 엄마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싫어한다. 왜 찍느냐며 손사래를 치고, 애써 찍으려 하면 어색해한다. 

 

교복을 입고 소녀처럼 변신해 찍은 사진들 중에서 잘 나온 걸 고를 때도 엄마는 이효리에게 “너 사진빨 잘 받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은 보기 싫다 하신다. 귀엽다, 예쁘다, 잘 나왔다고 이효리가 계속 말하지만, 엄마는 부정한다. “늙어가지고 잘 나온 게 어딨어. 다 꼴보기 싫구만.”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이효리의 말에도 “웃는 것보다 그냥 다물고 찍는 게 자연스럽다”고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이효리가 농담처럼 슬쩍 말을 얹는다.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요? 사랑하도록 해봐요. 전여사님 우리 모두가 다 늙잖아요.”

 

이효리의 엄마지만 보다보니 자꾸만 우리네 엄마들이 겹쳐진다. 어렵게 살았고 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여유도 없이 일하며 살아오면서, 이제 좀 여유가 생겼어도 여전히 과거처럼 ‘실용적인 선택’이 삶의 습관이 되어 살아가시는 엄마들. 그래서 나이들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하는 일들을, 애써 숨기면서 살고픈 마음이 더 많은 엄마들이다. 캠코더로 엄마를 찍던 이효리가 “엄마 팔자걸음이다”라고 말하자 금세 ‘일자걸음’으로 고쳐 걷는 모습에서 엄마들의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으면서도 “눈가 주름도 쫙 펴졌으면 좋겠어. 쫙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이라고 딸이 말하자 엄마는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며 그걸로 만족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슬쩍 딸 자랑을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난리들인데 뭐. 예쁘고 착하고 얼마나 너그럽고 착한 딸이냐 엄마한테 그래.” 그러면서 “한번 겪어봐라. 한번 부딪쳐봐라.”라는 말로 남들 이야기가 기쁘면서도 자신에게는 좀 소원한 것 같은 마음의 아쉬움도 드러낸다. 

 

가난했던 삶. 당신이 어려서 사랑을 못받아 자식들에게는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우려 했지만 막상 아빠를 만나고 나서 여유도 틈도 없었다는 말을 꺼내며 엄마는 슬쩍 눈물을 훔친다. “울어?”하고 묻는 이효리에게 “뜨거운 거 먹으니까 눈물이 난다”고 했지만 아마도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을 테다. 이효리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지금도 약간 긴장이 계속 되는 거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하도 일이 벌어지니까. 둘이 따로따로 있으면은 괜찮은데 같이만 있으면...”

 

“그런 점에서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엄마로서.”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이효리는 엄마가 사과할 건 없다며 늘 아빠가 먼저 시작했고 그래서 자신이 신랑을 순한 사람으로 골랐다는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이효리는 자꾸만 그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하지만 엄마는 그걸 꺼내놓고 싶지 않다. 그 과거를 부정하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엄마가 “좋은 얘기만 하자”고 할 때 이효리가 하는 답변이 가슴에 와닿는다. “좋은 얘기 나쁜 얘기가 어딨어? 다 지난 얘기지.”

 

누구나 가족사에 아픔 하나쯤은 다 있게 마련이다. 특히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부모님들과 겪어온 현 세대들이라면 이효리와 엄마의 이런 여행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게다. 하지만 그런 아픈 과거들은 애써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을까. 이효리는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려 한다. 나이들어 잔주름이 생기면 생기는 거고, 본래 팔자걸음을 걷는 건 숨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픈 가족사 역시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이효리는 말하고 있다.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힘들 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평생 가슴에 남아 있고, 그래서 더 잘해야 됐는데 반대로 이상하게 그것 때문에 더 엄마를 피하게 되는 안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게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마음을 좀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마음들이 엄마하고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 마음들을 용감하게 물리쳐 보고 싶어요.”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같은 제목에는 사실 부모와 조금 소원해진 자식들에게는 필요한 ‘용기’ 같은 게 느껴진다. ‘단둘’이 여행을 가는 일은 가족의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고, 그래서 한 걸음 떨어져 그 살아왔던 삶을 좀더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효리와 그 엄마의 지극히 사적인 여행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그들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한때는 피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꺼내놓고 마주하는 이효리의 용감한 마음은, 우리도 갖고 싶고 또 가져야될 것 같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진:JTBC)

'녹두꽃', 아베정권에게 전봉준 사진의 의미를 전해주고 싶다

 

“모두 고개를 드시오! 고개를 들고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시오. 그대들 눈에 눈물 대신 우리를 담으란 말이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란 말이외다. 우리를 기억하는 한 두 번 지진 않을 것이요!”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최무성)은 슬퍼하는 민초들에게 그렇게 외쳤다. 이제 죽어야할 길을 걸어가는 그는 끝까지 의연했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는 그 말은 어쩌면 <녹두꽃>이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였을 게다. 이미 역사 속에서 실패한 혁명으로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굳이 드라마로 재연하려 했던 뜻이 그것이었다. 그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전봉준은 우금티 전투에서의 참패에 대해서도 “실패했지만 틀리진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미 문명이라는 화려한 가면을 쓴 야만의 실체를 가진 일제를 꿰뚫어보고 있었고, 끝까지 자신을 회유하려던 매국노 백이현(윤시윤)에게 오히려 “넌 속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제의 행보를 ‘개항’이라 생각했던 백이현에게 다케다(이기찬)는 “왜 그리 순진하냐”며 그것이 결국은 영토 확장이었다는 걸 털어놓았다.

 

또한 전봉준이 백이강(조정석)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나 백이강 나아가 동학군들 모두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켰다. “장군헌티 녹두꽃이 만개한 시상을 보여드려야 허는디...”라는 백이강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전봉준은 이렇게 말했다. “녹두꽃은 내 이미 숱하게 보았다”고. 고부서부터 우금티까지 함께 했던 민초들이 이미 활짝 피어났던 녹두꽃이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녹두꽃>으로 다뤄지기 전까지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우리네 드라마들은 그다지 깊게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사책에 살짝 언급되어 있었지만 그 몇 줄의 기록이 어떤 의미들인지를 실감하게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동학농민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건 역사책에 담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결박되어 끌려가면서 찍은 사진.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보이던 그 의연하고 결연한 전봉준의 모습.

 

<녹두꽃>은 그 사진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사형 판결을 받고 돌아가는 전봉준의 모습을 송자인(한예인)이 사진 한 장으로 남기는 대목을 통해서였다. “전주에서 그러셨지요.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고요. 이제 모두가 장군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것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것은 백성이고 후손으로 태어날 자들이다.” 그 사진 한 장은 그래서 슬픔의 역사를 기록을 통해 기억하게 하는 역사로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아베정권의 행태는 이런 포장된 야만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걸 말해준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전봉준의 말과 사진 한 장의 의미가 더 남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이유다. 물론 근대로 회귀하려는 듯한 시대착오적 야만의 행태들은 역사가 말해주듯이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스스로의 목을 죄게 될 것이지만.(사진:SBS)

‘나 혼자 산다’, 한혜진의 사진을 통해 공감하는 실제

한혜진은 왜 그간의 20년 이야기를 꺼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치솟았을까.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모델 생활 20주년을 기념해 김원경과 함께 하와이로 즐거운 셀프 화보 촬영을 한 한혜진이 인터뷰를 하다 갑자기 울컥해버릴 줄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20년 간 함께 모델 일을 하며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으며 또 서로를 다독이고 때로는 자극을 주는 경쟁자 역할을 해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김원경의 눈시울은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한혜진이 함께 지낸 20년 동안 늘 “자극을 주는 존재”였다고 했다. 그래서 힘든 일이지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혜진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며 결코 즐길 수만은 없었던 그 20년을 되짚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을 “껍데기로 일을 해내는 직업”이라고 인정하며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라고 했다. 얼굴이 알려져 “어떻게 저런 얼굴로, 조건으로 모델 일을 해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다며,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나를 이렇게 잘 낳아줬는데, 여자로서, 딸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여자친구로서” 힘든 점이 있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말했다.

이번 여행이 셀프 화보 촬영이라는 건 우리가 모델 하면 생각하는 그 화려함과 즐거움 이면에 얼마나 치열한 노력들이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김원경은 작은 침대에서 같이 자며,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밥을 먹고, 메이크업부터 의상, 소품, 사진 촬영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하면서 “힘든 와중에 중간 중간 뭉클했다”고 했다. 그건 어쩌면 모델로서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년 경험이 쌓여 있는 두 톱 모델의 노하우가 있고,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광이 있으니 셀프 화보 촬영이라고 해도 척척 해낼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화보를 찍는 그 과정은 결코 사진처럼 우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날씨를 늘 신경 써야 하고, 풍광에 맞는 의상을 준비해야 하며 힘들거나 자칫 위험해 보여도 짐짓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모델 일은 카메라 앞에 설 때보다 어찌 보면 그러기 위해 자신을 부단히 준비시키는 과정이 더 힘든 일이었다. 한혜진의 모친은 수영복 화보 촬영이 있는데 저도 모르게 식사를 하던 한혜진이 제 손을 때리며 방으로 들어가 굶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탄탄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아픈 몸에도 운동을 빼놓지 않은 그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한혜진을 보게 되는 건 그 결과물인 사진이다. 그 사진 속에서 그는 당당하고 우아하며 때론 즐거워만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곡절들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마치 하와이 해변에서 패들 보드 위에서 찍힌 멋진 사진 뒤에는 올라서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그들의 모습이 감춰지듯이. 

한혜진과 김원경의 울컥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울컥해진 건,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일 게다. 어떤 일을 오래도록 한다는 건 그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문득 사진을 꺼내 봤을 때, 겉으로 보기엔 그저 즐거운 모습처럼만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울컥하는 치열함을 보게 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을 우리는 한혜진의 사진을 통해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사진:MBC)

‘효리네 민박’, 그 끝의 빈자리에서 우리가 발견한 건

우리가 사는 삶이 저렇지 않을까. 마지막에 가서야 그간 지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새롭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어색함이 같은 공간 같은 공기를 마시며 조금씩 풀어지고, 그래서 익숙해지고, 이제 편안해져 같이 있다는 것조차 실감이 안날 때 즈음 그 마지막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끝나는 것 같다고. 이효리와 이상순은 그러나 그 끝은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고 말해줬다. 

'효리네 민박(사진출처:JTBC)'

JTBC <효리네 민박>은 누구나의 삶의 단면들을 짧게 잘라서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삶 전체의 모습까지 발견하게 된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생각해보면 그 제주도 민박집 안에서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이지은이 함께 하고, 그들을 찾아왔다 떠난 손님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우리가 사는 모습을 압축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친해지고 그리고 헤어지며 그 과정에서 남는 기억들.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직원으로 왔던 이지은 또한 떠나자 그 왁자했던 민박집은 새삼 정적이 흐른다.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는 그 정적이 새삼스럽다. 이효리는 “시끄러운 것도 좋고 조용한 것도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은 둘만 덩그러니 남은 집이 쓸쓸해 보이고 또 삶이 그렇게 허무하게 빈자리만 남기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조용함을 조용함으로 느끼게 해주는 건 시끄럽게 왔다 간 손님들 덕분이고, 또 시끄러움을 시끄럽게 느끼게 해주는 건 아무도 없을 때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정적 덕분이다. 그들이 있던 곳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그 공간 그대로는 아니다. 공간 곳곳에 남은 왔다 간 사람들의 흔적과 온기 같은 것들이 기억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떠나며 남긴 이지은의 편지를 읽으며 굉장히 쿨한 척 하던 이효리와 이상순은 새삼 말이 없어진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들 역시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지은이 편지에 담은 ‘같은 데 다른 지은이’라는 문구가 새삼스럽다. 아마도 이지은 역시 떠날 때 짐짓 밝은 척 경쾌한 발걸음을 보였지만 어딘가에서 이 집과 그 집주인들과 그 집에 왔다 간 사람들이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모두가 떠나간 빈자리에는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남았고, 또 늘 그들 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있어줬던 반려견과 반려묘들이 남았다. 사진 속에 찍혀진 얼굴들이 이야기를 건네고 예전부터 함께 있던 개들과 고양이들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이야기까지 더해 그들의 기억을 일깨운다. 후기로 전해진 손님들도 마찬가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들은 떠나오면서 벌써부터 그곳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이 곳의 기억으로 일상을 좀 더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명절에 고향을 다녀오면 느껴지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전부가 아닐까 싶었던 그 마음이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각자 저마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힘겨움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온기를 나누었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상황도 넘어서곤 한다. 결국은 끝이 오고야 말지만, 그렇다고 허무한 건 아니다. 많은 기억들이 드리워져 있어 우리는 생각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니. <효리네 민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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