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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가 땅에 떨어진 현실, <객주>의 시사점

 

장사에도 상도가 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장사꾼의 첫 번째 도리다.’ KBS 드라마 <객주>의 천봉삼(장혁)이 말하는 장사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건네는 천봉삼에게 길소개(유오성)는 장사에 상도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그는 장사는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두 관점의 부딪침. 이것은 아마도 <객주>가 현재에 전하려는 메시지의 대부분일 것이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상도를 지키려는 천봉삼의 길은 험난하다. 그는 화적들에 의해 막혀있던 북관대로를 뚫고 그 길을 막아놓은 것이 육의전 대행수인 신석주(이덕화)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수로를 이용한 유통망을 독점하고 있는 신석주가 육로를 일부러 막아 엄청난 이문을 남기고 있었던 것. 하지만 한달음에 찾아와 상도를 얘기하는 천봉삼에게 신선주는 오히려 달콤한 제안을 한다. 북관대로를 놔두면 자신이 육의전 어물전을 내주겠다는 것. 하지만 천봉삼은 이를 거부하고 전국의 보부상들에게 이제 북관대로가 열렸다는 사발통문을 돌린다.

 

그렇다면 상도는커녕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가까운 이들조차 죽음으로 몰아넣는 길소개나 신석주의 길은 어떨까.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매점매석하는 것이 이들이 돈을 쉽게 버는 방식이다. 북관대로가 열려 보부상들에 의해 장삿길이 열리자 이들은 대신 물화를 꽉 움켜쥐고 내놓지 않음으로써 보부상들의 뒤통수를 친다.

 

육의전과 보부상. 육의전을 표상하는 인물이 신석주와 길소개라면 보부상을 대표하는 인물은 천봉삼이다. <객주>는 결국 천봉삼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국가에 의해 독점적인 권리가 부여된 육의전의 폐해를 알리고 대신 보부상들이 열어갔던 그 험난해도 가치 있는 장삿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육의전은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장삿길을 막음으로써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고, 보부상은 그렇게 막혀있는 장삿길을 맨몸으로 뚫고 나간다.

 

<객주>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통쾌함을 주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이 달라졌고 시대도 많이 흘렀으며 먹고 사는 문제도 조선시대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현재이지만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고 어떤 면에서도 더 나빠진 것도 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한 정경유착의 육의전들이 대자본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작은 장삿길들이 막혀 고사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상도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니 <객주>의 천봉삼 같은 인물이 육의전 대행수와 맞서 막혀있던 북관대로를 뚫고 달콤한 유혹을 거부한 채 전국의 보부상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대목이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객주>가 다루는 길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들을 내포한다. 그것은 장사꾼들에게는 자신은 물론이고 식구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목숨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장사꾼들만이 살기 위한 길은 아니다. 그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객주>의 천봉삼이 육의전의 독점적 상권과 맞서 자유로운 상업의 길을 주창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방임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상도는 그 안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상도가 지켜져야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천봉삼은 말한다. 장삿길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몸에 돌고 있는 혈관처럼 비유된다. 그 길이 막히면 누구 하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쓰러질 수밖에 없다.

 

<객주>는 그래서 단순히 천봉삼이라는 민초들이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의 영웅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의 모색이다. 원작자인 김주영 작가는 <객주>라는 작품에 대해 환난상구십시일반의 정신을 얘기한 적이 있다. 환난상구란 곤란에 빠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정신이고 십시일반은 완전히 망한 동료에게 한 푼씩 모아 최소한의 밑천을 만들어주던 정신이다. 지금 우리네 경제에는 환난상구십시일반의 정신이 남아있는가. 오히려 저 누군가 막아놓고 독점적 이득을 취하는 북관대로와 작은 장삿길들을 막아버리는 자본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것을 <객주>의 그 장삿길이 보여주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객주> 장혁의 등장, 그 기대감과 불안감

 

과거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고 최인호의 원작을 드라마화 했던 <상도>IMF 이후 제기된 상도덕과 기업 윤리에 대한 대중정서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었던 바 있다. <객주2015>는 여러모로 <상도>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사실은 소설가 김주영이 쓴 <객주(1979년 작)>는 최인호 원작 <상도(2000년 작)>보다 훨씬 앞서는 작품이다.

 


'객주2015(사진출처:KBS)'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객주>를 통해 <상도>를 떠올리게 된 까닭은 드라마로서 <상도>가 그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는 작품의 선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품의 성공과 그로 인한 화제성이다. <상도>가 얘기하는 기업가 정신이나 기업 윤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객주>의 초반부를 장식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천가객주 천오수(김승수)의 곧은 삶을 통해 다시금 환기된다.

 

물론 초반의 이야기는 천오수의 아들 천봉삼(장혁)이 어떤 배경을 갖고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밑그림이다. 그래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6% 남짓에 머물러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객주>는 결코 이야기성에 있어서 약하지 않다. <상도>가 임상옥이라는 인물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성장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면 <객주>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수호지><삼국지> 같은 말 그대로의 대하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

 

한 인물의 성취나 성장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 부를 쥐려는 욕망들이 꿈틀대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갈등은 드라마를 더 긴박감 넘치게 만들어낼 수 있고, 무엇보다 선악의 단순 대결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실 부를 갖게 된다는 것은 개인적 노력만큼 중요한 게 어떤 우연적 계기다. 그것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우연히 생겨나는 것들이다. <객주>가 부의 성취를 다루는 관점이 <상도>보다 낫게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점이다. 어디 돈을 버는 일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되는 일인가. 대하드라마는 이것을 인간군상의 조감도로 그려냄으로써 부의 성취를 좀더 겸허하게 바라보는 시점을 제공한다.

 

아역을 지나 성인역으로 들어오면서 천봉삼의 역할을 맡게 된 장혁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결국 드라마의 중심축으로서 장혁이 그려낼 천봉삼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객주>라는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혁에게서 여전히 저 <추노>의 대길이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찌 된 일일까. 치켜뜨는 눈이나 비아냥대는 목소리 그리고 특유의 제스처까지 <객주>의 장혁은 <추노>의 장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야 <객주> 특유의 개성적인 색채를 만들어내기가 어렵게 된다. 아역 봉삼이가 보여줬던 캐릭터를 떠올려보라. 장사에는 관심도 없고 심지어 장사가 두렵다는 그 여리디 여린 인물이 바로 아역 봉삼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10년이 지나고 이 봉삼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물론 성장과정을 통해 성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본바탕으로서의 여리고 섬세한 봉삼이의 캐릭터는 깔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객주>는 원작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성이 탄탄하고 캐릭터들 또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다. <객주><상도>의 이미지를 벗어내야 하고, 장혁은 <추노>의 이미지를 떨쳐내야 한다는 점이다. 장혁의 등장으로 기대감도 커졌지만 불안감도 커진 게 사실이다. 이 불안을 떨구고 그것을 기대로 채우는 일. 그것이 <객주>가 제 색깔로 훨훨 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화정>의 새로움, MBC 사극 되살릴까

 

어느 입장 하나 공감가지 않는 게 없다. MBC 월화 사극 <화정>이 그리는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먼저 이 사극의 중심에 서 있는 광해군(차승원)을 떠올려보라. 역사가 기록한 폭군의 시각을 벗어나 이 사극은 왜 광해군이 그렇게 냉혹한 결정들(친족들을 제거한 일)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박영규)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세워졌으나 끝내 인정을 받지 못한 왕. 그로 인해 그를 따르는 대신들도 없는 상황에 지지 없는 왕좌 위에서 어린 영창대군을 앞세워 시시각각 용상을 넘보는 이들을 보며 서운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왕. 영창대군과 정명공주가 잠시 궁을 빠져나간 일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다는 누명까지 쓰는 왕. 광해군이 왜 냉혹해졌는가 하는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광해군과 맞서 있는 영창대군의 모친 인목대비(신은정)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선택들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다. 광해군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이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창대군의 안위다. 그래서 선조가 독살 당하던 날 영창대군을 제거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로 하여금 광해군을 믿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이 시도를 한 주범인 임해(최종환)를 내침으로써 광해군은 비로소 인목대비로부터 왕위의 재가받을 수 있게 된 것.

 

그렇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인목대비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끝없이 그 불안감을 부추기며 영창대군을 왕위에 세우려는 외척들은 그녀가 왕좌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모성애만큼 잔인한 게 없다고 하던가. 인목대비의 선택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욕망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어린 시절 광해군을 세자라 부르기 보다는 줄곧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자라났던 정명공주(정찬비)는 광해군과 인목대비 사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광해군이 임해를 살해하고 자신과 영창대군까지 죽이려 할 것이라는 백성들의 이야기에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정명공주가 광해군을 오라버니가 아닌 전하라고 부르자 광해군은 그녀의 변화를 직감하고는 쓸쓸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는 길, 정명공주가 오라버니라 부르며 대보름날 더위를 사가라고 하자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렇게 오래오래 매년 더위를 사가라는 정명공주의 이야기에 두 사람이 모두 눈물을 글썽이게 된 건 그들의 애틋한 오빠 동생 관계를 확인하는 동시에 그들이 처한 외적인 상황들이 겹쳐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찔한 성벽 위에서 발을 헛디딜 뻔한 영창대군의 손을 잡아주며 광해군은 너무 위험한 곳에 올라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괜스레 두려운 영창대군이 뒷걸음질을 치자 광해군은 내가 두려우냐?”고 물으며 자신도 네가 두렵다고 고백한다.

 

고립무원 광해군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 이해되는 반면, 인목대비의 모성애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한 정명공주의 갈등 역시 공감이 간다.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캐릭터들이 이렇게 저마다의 입장을 설득하고 있다는 건 <화정>이라는 사극의 새로운 면모다.

 

사극이라고 하면 역사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의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구시대적 관점이다.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들이 공유되는 시대다. 그러니 <화정>이 제시하는 이 다각적인 입장들의 충돌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로서 다가온다.

 

MBC 사극은 지금껏 1인칭 시점의 이야기들을 풀어온 바 있다. <대장금>이나 <상도>, <허준>, <선덕여왕>, <이산> 등등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사극은 그들의 관점으로 일대기를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극의 관점은 이제는 조금 패턴화된 면이 있다. 따라서 이 문법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화정>의 시도는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MBC 사극. <화정>은 그 MBC 사극을 되살릴 수 있을까.

 

Posted by 더키앙

<마의>, 이병훈 사극의 리트머스 시험지

 

<마의>는 전형적인 이병훈 PD표 사극이다. 이미 MBC 사극의 한 틀을 만들어낸 이병훈 PD가 지금껏 보여준 사극의 정점을 <마의>는 보여준다. 거기에는 운명에 의해 변방으로 내쳐지는 아이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선한 의지로 노력해 차츰 차츰 중심으로 돌아오는 영웅의 서사가 있다. 마치 옛 이야기에서 문제가 주어지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듯, 하나하나의 주인공에게 주어진 미션을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 하다.

 

그리고 그렇게 미션을 푼 주인공은 이른바 포상을 받는다. 이 포상을 통해 인물은 성장한다. 동물을 돌보는 마의라는 당대의 비천한 수의사가 어의가 되는 그 성장 과정을 담는 그 이야기 구조는 이미 이병훈 사극을 통해 여러 차례 봐왔던 것들이다. <허준>이 그렇고, <상도>가 그러하며 <대장금>이 그렇다. 다만 그 각각의 작품 속 인물들의 직업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일 뿐, 그 구조는 다르지 않다.

 

<마의>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신분은 다르지만 같이 의술을 공부하며 동무가 되었던 이명환(손창민)과 강도준(전노민). 하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강도준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이명환과 그로 인해 아이가 뒤바뀌고 버려지게 되는 운명. 그렇게 뒤바뀐 운명을 가진 백광현(조승우)과 강지녕(이요원) 사이에 만들어지는 애틋한 사랑. 이렇게 몇 가지 요소들을 두고 보면 <마의>만의 독특한 색깔이 분명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을 보면 결국 백광현이 성장해 이명환과 맞서는 이야기로서 그 구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 구조는 이병훈표라고 꼬리표를 달았지만, 어찌 보면 고전적이고 인간 본원의 욕망을 담은 구조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전형적인 영웅 서사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그 표현만 달리했을 뿐 계속 반복되어온 서사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의>가 여전히 작금의 대중들에게 먹힐 것인가의 문제는 이 이야기 구조가 본원적인 것인가, 아니면 트렌드에 움직이는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마의>는 작품으로만 보면 연출이나 대본이나 연기, 그 어느 것에 있어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결국 대중정서가 이병훈표 사극의 구조를 여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얘기다.

 

가장 큰 변수는 이제 성인역으로 돌아올 백광현과 강지녕을 연기할 조승우와 이요원에게 있을 수 있다. 비슷한 스토리구조와 캐릭터일 때(그것이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의 역량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승우와 이요원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검증된 배우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연기자와 작품은 그 궁합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또 필요한 것이 이병훈 PD의 손길이다. 과연 이병훈 PD는 여전히 건재한 자신의 왕국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마의>는 사극으로서 한 왕국을 건설한 이병훈 사극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사극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정통에서 퓨전으로 퓨전에서 판타지로 이제는 각종 장르물과 뒤섞이면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사극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움’을 기대하게 하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한때 정통사극의 반복으로 지루해진 사극의 틀을 퓨전사극으로 뚫어버린 이병훈 사극. 이제 그 이병훈 사극 역시 변화에 도전을 받고 있다. <마의>, 여전히 매력적인 사극이지만 대중들은 과연 이 고전처럼 되어버린 사극을 받아들일까. 귀추가 주목되는 지점이다.

Posted by 더키앙

미션사극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덕여왕’

“생(生)을 고르면 살고 사(死)를 고르면 모두 죽는다.” 금지시킨 차 교역을 한 죄로 끌려온 덕만(남지현)은, 자신과 일행들의 목숨을 건 제후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미 어느 돌이든 모두 사(死)임을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수수께끼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 덕만이 자신이 선택한 돌을 꿀꺽 삼켜버리고 제후의 나머지 돌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으로 미션을 해결한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어떤 문제를 풀었을 때 갖게 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이로써 덕만의 레벨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은 기본적인 '선덕여왕'의 '미션제시-해결'의 이야기 구조. 이 미션사극을 움직이는 강력한 주동력이다.

이중으로 겹쳐져 있는 위기의 미션
일종의 미션을 제시하는 것이 '선덕여왕'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미션 속에 제시되는 주인공의 위기는 여타의 사극보다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특징을 가진다. 사막까지 쫓아온 자객을 피해 달아나는 미션에서도, 또 우여곡절 끝에 만난 덕만과 천명(신세경)이 설지(정호근)와 그 무리들에게 붙잡혀 팔려갈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션에서도, 또 겨우 도망쳐 나와 절벽에서 천명의 손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살아나오는 미션에서도 이러한 위기는 또 다른 위기와 겹쳐진다.

발을 잘못 디뎌 유사(모래수렁)에 빠져버린 양어머니 소화(서영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덕만은 마침 나타난 자객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비를 내려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설지의 마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게 될 즈음, 미실이 파견한 토벌군에게 쫓기게 된다. 절벽에서 덕만과 천명이 서로의 생명줄을 잡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도 토벌군의 추격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늘 해법은 제시된다. 때 아닌 모래폭풍이 덮치고, 안오던 비가 내리고, 늘 도움만 받아왔던 천명이 오히려 덕만을 구해낸다.

해결책은 의외로 싱겁지만, 그것은 하늘의 기운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위기가 이중삼중으로 겹쳐 있다는 것, 그것이 사극의 힘을 만드는 진짜 힘이 된다. 이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미션사극의 핵심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사극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결말이 뻔한 사극에 빠져드느냐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결과에 이르는가, 그것이 미션사극이 제시하는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이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할 기본 전제
'선덕여왕'의 초반부를 끌어가는 힘을 미실(고현정)이라는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악역에 둔 것 역시 이 사극의 다분히 의도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은 도달해야할 지점이 현재 주인공이 있는 지점에서 멀면 멀수록 더 힘을 발하기 마련이다. 도달해야할 지점인 권력의 정점에 미실을 세워두고 신라도 아닌 중국 이역 땅에 덕만을 배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먼 곳에서부터 점점 중심으로 다가가는 덕만이 해나가는 미션들은 그 거리만큼 더 폭발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덕만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미션들이 가진 단순함이다. 미션사극은 우리식 사극에 저 미드가 가진 스토리 전개를 접목한 것. 하지만 50부작에 이르는 우리네 사극이 저 미드만큼 꽉 짜여진 미션들을 갖고 있다면 이처럼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션들은 물론 뒤따르는 미션과의 연결고리를 갖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만큼 얼개를 느슨하게 가져감으로써 시청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 '돌 뽑기 미션'이나 '사막 추격 탈출 미션'은 연결점 없이 각각의 것으로 존재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미션들을 해결함으로써 어떤 성장의 과정을 그려내는 덕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좀 더 편안하게 각각의 미션을 즐기는 것으로 사극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것은 '대장금'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김영현 작가표 사극의 파괴력이다.

‘선덕여왕’, 미션사극의 새로운 정점
미션사극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병훈 PD의 필모그래피에서 미션사극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조망해볼 수 있다. 99년도에 방영되었던 ‘허준’과 2001년도 방영된 ‘상도’는 미션사극이 가진 가능성을 촉발시켰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최완규 작가일 것이다. 최완규 작가가 이병훈 PD와 함께 ‘허준’, ‘상도’를 통해 우리식 사극에 미드 식 전개를 붙여 미션사극의 바탕을 만들었다면, ‘대장금’에 이르러 그 바톤을 이어받은 후배 작가 김영현은 여기에 여성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사극의 시청층 자체를 넓혀놓았다.

‘선덕여왕’은 김영현 작가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능수능란한 여성이 주인공인 미션사극이다. 따라서 현재 미션사극의 정점으로서 ‘선덕여왕’이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사극의 성공에 작가의 공만이 있을까. 미션 사극에 있어서는 그것을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의 몫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양 극점에 선 인물들이다. 미션을 제시하는 자와 그 미션을 수행하는 자가 균형 잡힌 대립각을 이룰 때, 미션사극의 힘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과 덕만을 연기해온 남지현의 호연은 바로 그 대본이 가진 힘을 배가시켰다.

올해 사극이 새롭게 꺼낸 ‘여걸’이라는 카드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나 ‘자명고’가 거둔 성과가 미미한 반면, ‘선덕여왕’이 단 몇 회만에 폭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미션사극이라는 흥미로운 대본의 공이 크다. 이제 막 초반을 달리고 있는 ‘선덕여왕’은 아직도 그 파괴력의 끝을 알기가 어렵다. ‘주몽’은 한때 월화의 밤을 장악한 이래, 한동안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드라마들이 맥을 추지 못하게 했다. 탄력을 받은 사극을 현대극으로 맞받아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산’이 등장했을 때 SBS는 ‘왕과 나’로 맞불을 놓았었다. 하지만 ‘자명고’가 사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선덕여왕’의 독주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선덕여왕’의 폭발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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